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2

        

       

       “그런데 또, 너를 믿으라고?”

       

       침묵이 흘렀다. 아주 깊은 침묵이었다. 세차게 휘날리던 눈보라마저 이 순간만큼은 고요했다.

       

       [칭호 ‘용 앞에서 담대한 자’가 발동됩니다.]

       – 상태이상, ‘긴장’이 사라집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올리비아가 눈을 부릅떴다. 

       이 이상 말려들면 위험했다. 

       

       키엘이 이 사실을 다른 회귀자들에게 알려버린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는 키엘을 계속 제압한 상태로 데리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죽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젠장, 빙계가 아니라 정신계 루트를 탔어야 했나?’

       

       기억 조작같은 최상위 마법은 그쪽 테크를 타지 않으면 사용이 아예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다른 데서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예 10년 정도 동면을 시켜버려?’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했을것이다. 하지만 동면에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 수단이 전제된다. 아무리 키엘이 초인이라지만, 아무것도 없는 얼음 속에서 몇 년을 버틸 수는 없다.

       

       올리비아는 정면으로 키엘을 응시했다. 저 눈동자 안에 담긴 분노를, 그녀는 감히 재단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그저 화면 너머의 유희였다. 

       하지만 키엘에게 자신은 황제를 시해한 원수였고, 수만 명을 학살한 미치광이였다.

       

       ‘……근데 좀 억울하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억울했다.

       

       누가 게임이 현실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플레이하겠는가?

       그럼 무서워서 게임 하겠어?

       

       애초에.

       

       너희만 화낼 자격 있냐?

       

       너희들 때문에 화병걸려서 죽을 뻔했던 거 생각하면 이쪽도 만만치 않거든?

       

       올리비아는 키엘을 직시하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믿지마 그럼. 누가 믿으래?”

       

       고개를 들자 키엘이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13년. 

       올리비아가 락테아에 시간을 쏟은 햇수였다.

       수천, 아니. 수만 시간을 게임 속에 살다시피 했다.

       

       개중에 키엘에게 죽은 횟수만 몇 번인지 아는가?

       

       스물 세 번.

       

       키엘은 올리비아를 스물 세 번 죽였다. 그러면 그 반대는?

       

       한 번.

       

       단 한 번이었다.

       

       “날 그렇게나 잘 아시면, 내가 몇 살인지는 당연히 알겠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내 가정사는 아냐?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아니, 애초에 아는 게 있기는 하냐?”

       

       백 번 양보해서 세계를 멸망시킨게 나라고 치자.

       그러면 나는 세계를 칠백하고도 아흔 다섯번을 구했다.

       

       그동안 너희는 뭘 했나?

       자기들끼리 싸워대고, 제멋대로 전쟁을 벌이고, 도와달라고 북부까지 온 나를 매몰차게 쫓아내고, 맘에 안 든다고 죽이고.

       

       맘에 들지 않으면 말도 섞어주지 않던 너희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던 게 한두 번이 아닌데.

       

       한 번. 고작 한 번 때문에 이 지랄을 해?

       안 그래도 빙의당해서 좆 같은데?

       

       그래. 화딱지나서 마지막에 다 죽여버린건 인정한다.

       

       증오할 수 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할 수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는거 안다고.

       

       “근데 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기만? 신뢰를 배신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희들이 개지랄만 안했어도 몰살 엔딩은 시도도 안했어.

       

       ‘내가 너 새끼들 호감작 할라고 온갖 개지랄한 것만 모아도 떡을 친다. 떡을 쳐.’

       

       이놈들 때문에 락테아를 막 시작했을 때 얼마나 고생했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수백 번 구했는데, 한 번쯤 멸망시켜도 되지 않을까.]

       

       왜 처음에 그런 문장이 떠올랐는지 이제는 알겠다.

       

       “후우…….”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을 내리누른 채,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확실한 건, 난 오늘 너를 처음 봤고.”

       

       스태프를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젠장, 저도 모르게 흥분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화가 나는지.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키엘은 허를 찔린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숨도 쉬지 않은 채로 한참을 바라본다. 

       키엘을 수천 번도 넘게 만나봤지만, 그런 얼굴은 처음 보았다.

       

       후회, 분노, 불신, 혼돈, 경악, 애증……. 애증?

       

       아무튼 한 얼굴에 저런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올리비아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아까 전과 다르게 키엘은 피하지 않았다. 그새 체념이라도 한걸까.

       

       “기억해. 다음에도 아는 척 하면 뒤진다.”

       

       올리비아의 손에서 푸른 전류가 튀었다. 

       

       풀썩.

       

       키엘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올리비아는 혀를 차며 키엘의 몸을 얼렸다. 적당히 얼렸으니 사흘이면 풀려날 것이다.

       

       “일단 기절은 시켰는데…….”

       

       하하하…….

       

       나 이제 우짜냐.

       

       

       

       ******

       

       

       

       [음…….]

       

       글레이시아는 초조한 얼굴로 레어 바깥을 쳐다봤다.

       

       [왜 안오냐…….]

       

       글레이시아는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검은 인간이 검을 휘두르자 하늘이 갈라졌고, 한 끝 차이로 목이 잘릴 뻔했다.

       

       글레이시아는 다시 한 번 제 목덜미를 매만졌다. 다행히 아직 붙어 있었다.

       

       혹시라도 검은 인간이 올리비아를 죽였다면?

       

       ‘그렇게 되면 매우 기쁠 것 같지만…….’

       

       아무리 올리비아가 개 미친 싸이코에, 마녀도 손사래 칠 희대의 쌍년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 인간이 나을 때가 다 있네.’

       

       뭐가 돼도 이승이 낫다는 게 글레이시아의 지론이었다.

       

       “……으윽.”

       

       글레이시아가 신음성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예, 아니. 제자라던 인간 셋이 돌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제야 정신이 든 모양이다.

       

       그들의 몸은 엉망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할 정도였다. 두 놈은 그나마 양호했지만, 한 놈은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마 저대로 내버려두면 큰일 치르겠지.

       

       저 놈이 올리비아의 제자가 맞던 아니던 간에, 죽으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게 될까?

       

       [하아…….]

       

       글레이시아가 한숨을 쉬며 인간 형태로 일변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글레이시아를 보고 제이나가 소리쳤다.

       

       “흐, 흐악!”

       “닥쳐라, 암컷. 지금 내가 치료를…….”

       

       글레이시아가 아라미스에게 손을 뻗은 순간,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너 뭐하냐?”

       

       글레이시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올리비아님?”

       

       올리비아는 양 손에 무언가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너 지금 내 제자들 먹으려고 했냐?”

       “아, 아닙니다! 오햅니다 오해!”

       “오해는 무슨. 암컷이니 뭐니 하더만.”

       

       올리비아가 글레이시아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다 좋은데, 앞으로 내 앞에서 암컷이니, 수컷이니 하면 반으로 갈라버린다.’

       

       글레이시아가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알아 먹었으면 잠깐 비켜봐.”

       

       글레이시아가 옆으로 비켜선다.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은 올리비아가 제이나의 뒷목을 잡아챘다.

       

       “사, 살려……!”

       “안 죽여. 이거 포션이야, 포션.”

       

       익숙한 딸기향을 맡은 제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반응을 본 올리비아가 피식 웃는다.

       

       ‘제이나 얘가 적응력 하나는 최고지.’

       

       강단도 있고, 친화력도 좋다. 조금 과장해서 정글 한복판에 떨궈놓고 한 달 뒤에 찾아가면 식인종들이랑 친구 먹을정도로 씹인싸다.

       

       “와!”

       

       맛있다고 놀라는거 봐라. 얘가 이 정도다.

       

       올리비아는 로와 아라미스에게도 포션을 먹였다. 인간 불신이라는 종특이 발동한 아라미스가 입을 쳐닫는 해프닝이 생기기는 했지만, 레벨차로 가볍게 찍어 눌렀다.

       

       강제로 포션을 쑤셔넣었다는 말이다.

       

       “커억, 커억!”

       “이 아까운걸 다 흘리네. 제자야, 너 진짜 죽을래?”

       “나는……네 제자가 아니다!”

       “진짜로?”

       

       올리비아의 손아귀에서 전류가 파직거렸다.

       

       “난 제자가 아닌 놈을 데려온 기억이 없는데?”

       

       화들짝 놀란 제이나가 손을 치켜들었다.

       

       “저, 전 제자 맞아요!”

       “……제이나?”

       

       아라미스가 미쳤냐는 듯 노려봤지만 제이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근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스승님?”

       

       저런 종류의 영악함은 싫어하지 않는다.

       올리비아가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뭘 배우게 되는 거죠?”

       “마법.”

       “그, 그러니까 어떤 마법인지 좀……. 헤헤.”

       

       제이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자신이 진짜 마녀라면 가르치는 마법 또한 마(魔)와 관련된 것일테고, 악마와 연루되어 가문에 먹칠을 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거참.’

       

       [제이나 이큘레인]

       – 레벨 : 37

       – 호감도 : 0 (와, 이거 맛있네.)

       

       호감도가 가장 높은 제이나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씁쓸했다.

       만약 이 셋이 다른 놈들처럼 호감도가 작살난 상태였다면?

       이런 식의 대화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나는 마녀가 아니야. 마법사지.”

       “증거가 없지 않나.”

       

       아라미스의 말에 올리비아가 코웃음쳤다.

       

       “아무도 죽이지 않은 게 그 증거지.”

       “…….”

       

       정론에 아라미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도 내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올리비아가 정말로 마녀였다면 백탑에 있는 모든 이들이 죽고도 남았다는 것을.

       

       “아무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마법은 이거다.”

       

       올리비아가 인벤토리에서 고서들을 쏟아냈다. 쪼렙 시절부터 틈틈이 모아두었던 아이템들이었다.

       

       “이, 이건?!”

       “흐아아! 이건 카리엘 학파의 크루울리스 원본!”

       “소, 솔미안의 이백가지 소환술도 있어!”

       

       올리비아는 순식간에 고서를 세 종류로 분리했다. 하나는 빙계, 다른 하나는 뇌전류, 마지막 하나는 백마법이었다.

       

       “잘 생각해 너희들. 나 정도 되는 마법사가, 이 정도 자료로 가르쳐준다는게 어떤 뜻인지는 알지? 이건 기회야. 평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기회.”

       

       올리비아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싫으면 지금 나가. 보내줄게.’

       

       백탑 제자들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4화 초반부 수정했으니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지금 시간대에 올릴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