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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에 하교했는데도, 학교 교문 앞에는 커다란 검은 차가 서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 앞에는 양혜인이 있었다.

       

       아, 맞다. 어제도 저렇게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지, 참.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게 분명하고.

       

       “……오래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내 질문에, 양혜인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같이 나오던 유하늘과 이수아가 입을 헤 벌리고 내 쪽을 보고 있었다. 하긴, 이렇게 전통적인 메이드 복장을 한 진짜 메이드를 현대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연상에 말투도 엄청 깍듯했으니 더 그렇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원래 사람을 부리던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살면서 조직 내에서 우두머리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적은 군대에서 분대장을 했을 때뿐이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부려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부리는 사람보다는 부려지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부리면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기에는 좀 소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불과 얼마 전에 내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을 협박한 주제에 이런 소리를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말로는 그렇게 해도 진짜로 자를 생각은 없었으니까.

       

       나는 이수아와 유하늘 쪽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헤어져야겠다.”

       

       “으, 응.”

       

       아무래도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메이드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은 유하늘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내일 보자.”

       

       메이드를 부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런 광경을 몇 번은 보아왔을 이수아는 비교적 덜 당황한 채 대답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후, 커다란 검은 세단 뒷좌석에 올라탔다.

       

       고급 세단은 부드럽게 출발했다. 비싼 차이니만큼 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아마 차 안에서 속닥거려도 옆 사람에게 제대로 소리가 들리겠지. 사실, 등하교시간에 타기에는 영 아까운 차이긴 했다. 차 타면 체감상 오 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으니까. 차 막히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걸어가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도.

       

       물론, 내가 중간에 새지 않고 차를 타게 만든 것은 회장의 생각이겠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시려나 봐요.”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 앉은 양혜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까지 인형처럼 얌전하게 굴던 예사라가 갑자기 예정에 없던 일을 하기 시작하니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 걱정의 방향성이 정말로 예사라를 향한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제가 그렇다고 하면, 회장님께 보고하시나요?”

       

       “…….”

       

       양혜인은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긴, 본인 면전에 대놓고 ‘당신이 하는 일은 전부 회장님께 보고 중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겠지.

       

       피식 웃었다. 웃겨서라기보다는 허탈해서다. 보통 소설을 읽거나 게임을 하다가 다른 세상에 떨어지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이유가 있던데. 물론 그 이유라는 것이 과학적이라는 건 아니지만.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소설 욕을 했다던가, 자신이 어떤 캐릭터였다면 더 잘했을 거라던가, 게임 서비스 종료 시간까지 접속을 끊지 않고 있었다던가.

       

       그런데 나는 정말로 뭔가 한 기억이 없다. 솔직히, 이런 게임에 떨어질 거라면 차라리 이 게임을 감명 깊게 한 사람이 떨어지는 쪽이 훨씬 만족스러워하지 않았을까? 퇴근 중에 잠들었다가 뜬금없이 악역 영애의 몸속으로 들어오다니. 이쪽 세상으로 온 지 벌써 3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납득이 되지를 않는다.

       

       “…….”

       

       저택이 거의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 양혜인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딱히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차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확실히, 나는 그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남다운은 그냥 내 운동을 도와줄 뿐이었으니까. 대체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하지만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다’보면 조금 늦는 날도 있을 수 있겠죠.”

       

       “그렇습니까.”

       

       양혜인이 작게 대답했다.

       

       “이 이야기도 회장님에게 들어가겠죠?”

       

       이번에는 양혜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양혜인은 입을 꾹 다문 채로 몇 초 정도 망설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저택에서 예사라와 계속 말을 섞는 유일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적어도 양혜인은 나에게 적대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무기질적으로, 마치 본인이 저택의 가구라는 양 움직이며 나에게 반응조차 하지 않는 다른 고용인들과는 달랐다.

       

       차가 완전히 멈췄다.

       

       “…….”

       

       운전기사는 도착했다는 말도 없이 차에서 바로 내리더니, 뒤쪽으로 와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내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양혜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은 다시 말없이 저택으로 돌아갔다.

       

       *

       

       화영 고등학교는 대단한 학교다.

       

       학교 내에서 학생이 무언가 배우는 데 필요한 설비는 모두 되어있다. 진짜 잔디가 자라는 축구장도 있었고, 수영장도 있고, 거의 대학교에 필적하는 장비가 갖춰진 과학실이나, 연주회를 해도 될 것 같은 음악실, 극장으로 사용해도 될 것 같은 시청각실 등. 비싼 돈을 받는 학교답게 당연히 건물도 비싸게 지어졌다.

       

       그리고 이 학교가 자랑하는 교사진들.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줬으면 고등학교에 와서 수업하고 있을까 싶은 교사진으로 가득 찬 이 학교의 수업은—

       

       글쎄, 내가 느끼기에는 내 고등학교 시절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아무리 앞에서 흡입력 있는 강의를 해주더라도, 학생들이 제대로 듣지 않으면 교사의 실력은 의미가 없다. 수업 내내 잠을 자는 학생이나, 스마트폰을 보는 학생, 그리고 대놓고 옆자리에 앉은 아이와 키득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까지. 면학 분위기가 좋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말들은 결국 포장이라는 것이다.

       

       뭐, 이상한 것도 없다. 여기 나오는 학생들은 거의 다 이 학교의 교사진보다도 훨씬 비싼 교사진에게 예습을 받고 온 학생들이니까. 여기서 정규 교과 과정에 따라가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지는 애들도 많을 것이다. 몇몇은 대놓고 그냥 문제집을 풀고 있기도 했을 정도니까.

       

       사실, 나도 그 별로 좋지 못한 면학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잘해서 이렇게 책상에 엎드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저 앞에서 하는 말 대부분이 새롭게 느껴졌다. 아마 제대로 따라가려면 저 열심히 수업하는 교사의 말을 전부 받아적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여기서 마지막 등수를 차지하건, 대학에 가지 못하건 무슨 상관인가?

       

       내 상속분만 해도 대한민국 재계 2위 그룹 전체의 시가 총액보다 많은데.

       

       물론 그 재산을 현 회장이 어떻게든 하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든 그 재산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평생 돈을 펑펑 쓰면서 살아간다. 그게 당장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인생 목표였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당장 내가 공부에 집중할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바로 어제 평생 하지 않던, 아마 이 육체의 원래 주인이던 예사라도 평생 동안 하지 않았던 운동을 그렇게 격하게 한 뒤였다. 허벅지와 종아리 모두 엄청나게 당겼다. 가슴도 뻐근하고, 달리면서 팔을 휘적휘적 움직인 것 때문인지 어깨도 무지하게 아팠다.

       

       그러니까 도저히 공부할 생각이 들지 않는 몸 상태였다는 말이다.

       

       그렇게 흐느적거리는 몸을 책상 위에 눕혀두고, 그냥 공부 포기 상태에 진입하려는데—

       

       “으힣?”

       

       콕, 하고 누가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해괴한 소리를 내버리긴 했지만, 다행히 소리가 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저 내가 낸 소리라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가.

       

       그래, 누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면, 적어도 이 반에 범인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볼펜을 들고 있는 유하늘이 있었다. 아마 볼펜 뒤쪽의 뭉툭한 부분으로 내 옆구리를 찌른 모양이었다.

       

       ‘왜?’

       

       내가 입 모양으로 그렇게 물어보자, 유하늘이 미간을 모으며 똑같이 입 모양으로 대답했다.

       

       ‘수업 중.’

       

       아마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소리가 없어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

       

       나는 잠깐 유하늘을 흘겨본 다음, 다시 자리에 엎드렸다.

       

       “으헿?”

       

       그리고 바로 다시 들어오는 공격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유하늘을 대놓고 노려보았다. 눈부셔서 가늘게 뜨는 눈이 아니라. 안 그래도 눈매가 사나운 예사라였다. 각 잡고 노려보면 어마어마하게 살벌하다.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내가 내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둘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눈빛을 직접 받은 유하늘은 여전히 나를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

       

       아마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이번에도 입모양 뿐이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

       

       나는 한동안 유하늘을 노려보다가, 결국 한숨을 푹푹 쉬면서 교과서를 펼쳤다. 일부러 과장되게 교재를 펼쳐 보이자, 그제야 유하늘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수업을 듣는 데 집중했다.

       

       

       “끄흡.”

       

       응?

       

       뭐지, 방금 누가 웃음을 참는 것 같은 소리를 낸 것 같은데.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아도, 딱히 웃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여전히 수업은 듣고 싶은 애들만 듣고 있었고, 다들 다른 곳을 보며 다른 짓을 하고 있었다.

       

       하긴, 누가 나를 보더라도 그런 소리를 냈을 리가 없지. 투명 인간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그저 내 착각이겠거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난 이틀동안 병원에서 골골거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목요일 아침에 퇴원했기 때문에 그날은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수술한 부위보다 마취할때 주사맞은 허리 쪽이 훨씬 더 아파서 일어나지를 못했네요. 다행히 전에 써둔 내용과 수술하는 날 오전에 쓴 내용으로 목요일 분량까지 업로드 할 수는 있었지만, 금요일에는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몸을 일으키는 것 만으로도 너무 힘이 들었어요…ㅠㅠ 사실 지금도 척추 마취 부작용으로 두통이 다소 있는 상황이라 글을 길게 쓰지 못하겠네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사막북극곰님, 후원 감사합니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신작을 쓰겠다는 생각만 하고 홍보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네요. 후원 감사 인사를 늦게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병원에 있느라 글을 쓰지 못해 후원을 받고도 바로 감사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전작부터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지난 소설을 쓰는 7개월간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기에, 이번에도 이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글을 쓰기 시작하니 하루 하루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흘러가네요. 글을 쓰지 못한 지난 이틀동안은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이렇게 수술까지 받아야 하는 제 몸상태를 원망했었습니다. 사실 저도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최대한 빠르게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지만, 연초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서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차라리 글 안 쓰고 쉬던 기간에 병원부터 가볼걸 하고 조금 후회가 되네요.

    부디 독자 여러분은 저처럼 귀찮다는 이유로 아픈 것을 그냥 두고 병원에 가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한 번 수술을 받아보니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상처 아무는데도 오래 걸리고, 그 외에 먹어야 하는 약도 많고, 병원도 주기적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 데다 상처가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귀찮은 일들이 따라붙습니다. 역시 병이라는 것은 최대한 작을 때 빠르게 잡아야 하는 건가 봅니다.

    이렇게 저의 신작까지 찾아오셔서 후원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소설은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플러스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부디 이 이야기의 끝까지 독자 여러분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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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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