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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사실, 이 전투는 이 설이 없었더라도 결국에는 벌어질 전투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굳이 그 사실을 찝지 않았다.

         

        그들은 우연히 범죄자들을 마주치고 싸운 것이었지만, 죽은 이가 많았고, 다친 이는 훨씬 많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적절한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다.

         

        그게 이 설이었다.

         

        이 설 때문에, 누군가를 잃었다.

         

        이것 하나 만으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었다.

         

        “다 저 사람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그냥 때리기만 하는 건 너무 가벼운 처벌 아닐까요?”

         

        그 말 하나에.

         

        모두가 동조했으니까.

         

        결국.

         

        “죽은 사람이… 어디 보자 열 명이니까… 딱 맞네요. 손톱 열 개만 뽑죠.”

         

        이들은 인간이길 그만뒀다.

         

        ***

         

        손톱을 뽑는다.

         

        남은 59명의 생존자 사이에서 정해진 이 설에 대한 처벌이었다.

         

        명분은 있었다.

         

        이 설이라는 범죄자의 처벌.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강아현이 있었다.

         

        “앞으로 이 설 때문에 사람이 죽을 시, 손톱과 발톱을 뽑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설을 때려서 체력을 낭비할 바에는 그냥 손톱 뽑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더 아플 거고요.”

         

        그리고 그 말 이후.

         

        이 설은 열 개의 손톱이 전부 뽑혔다.

         

        뿌득!

         

        “끄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

         

        뿌득!

         

        “끄그게에에헥…!!”

         

        뿌득!

         

        “우그극…!!!”

         

        10번의 잔인한 소리와 7번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중 3번은 기절하느라 지르지 못한 비명이었다.

         

        피비린내와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손톱을 뽑다 기절한 이 설이 흘린 오줌 때문이었다.

         

        그 잔인한 과정을 진행하는 이는 다름 아닌 이세린.

         

        그녀가 홀로 자원한 것이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제대로 죽여본 적도 없는 이들이 누군가를 고문한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렇기에 진행자는.

         

        이전의 이 설을 목 조르기로 고문하고 사람까지 죽여본 이세린 만으로 충분했다.

         

        “헤헤, 이겨내고 있어…! 제가 이겨내고 있다구요…!”

         

        그녀는 기뻤다.

         

        이 설.

         

        끔찍한 강간마이자 범죄자.

         

        그를 고통에 시달리게 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냈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어린아이들의 눈과 귀를 가리지 않았다.

         

        똑똑히 보게 만들었다.

         

        끔찍한 범죄자가 처벌 받는 그 모습을.

         

        신은 결국에는 모두에게 공평한 처벌을 내려주신다는 그 모습을.

         

        신서아 역시.

         

        그 모습을 뚫어지게 볼 수 밖에 없었다.

         

        “…”

         

        고문이 끝나고 이 설은 반응이 없었다.

         

        눈을 뜬 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입에서는 침만 줄줄 흘릴 뿐.

         

        가끔 몸을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기절한 것은 아니었다.

         

        잠시.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

         

        그 모든 과정을.

         

        회귀자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말리지는 않았다.

         

        고문.

         

        이전 수 회차 동안은 이 설의 고문을 진행했었기에 이 정도로는 담담했다.

         

        무엇보다, 저건 아직 시작에 불과했으니, 그녀의 입장에선 그저그런 처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번 역시.

         

        알 수 없는 찢어질 것 같은 후회감은 뒷전이었다.

         

        ***

         

        “하하… 세린 씨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까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참… 세린 씨 필요한 거 있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세린 씨, 방금 전에는 정말 멋졌어요.”

         

        히히히.

         

        모두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세린은 그것에 희열을 느꼈다.

         

        나를 무시하고 계속 뒤에서 까내리던 이들도 오늘 만큼은 입을 다물고 감사의 인사 만을 내뱉었다.

         

        나서서.

         

        나서서 그 성범죄자 새끼를 고문한 게 가장 컸었다.

         

        그들이 이세린을 바라보는 눈에는 공포심과 존경이 섞여 있었다.

         

        누군가를 고문한 이를 칭찬하고 존경한다.

         

        어딘가 정말 기괴할 정도의 사고방식이었지만, 상황과 장소가 그것들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이세린 역시.

         

        평소 선의에 가득 차 있던 이세린 역시.

         

        이제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그저 기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거의 다 사라졌으니까.

         

        “뭘요… 누군가는 해야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앞에 나가서 싸우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제가 전부 치료해 드릴게요!”

         

        고문은.

         

        사람을 참 빠르게 바꿀 수 있는 도구였다.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

         

        …

         

        아프다.

         

        아팠다.

         

        아팠었다?

         

        아플 거다?

         

        뭐라고 해야 되지?

         

        잘.

         

        모르겠다.

         

        히히.

         

        모르겠다.

         

        모르겠어.

         

        너무 아파서 모르겠어.

         

        히히.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한 번 죽어봤잖아.

         

        아플 거야.

         

        아프긴 하겠지.

         

        그래도.

         

        한 번에.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죽지?

         

        잘.

         

        잘.

         

        잘.

         

        잘.

         

        잘.

         

        모르겠는데?

         

        히히히.

         

        [‘가장 어리고 순수한 신’이 괜찮냐고 묻습니다!]

         

        아.

         

        성좌님.

         

        잘 모르겠어요.

         

        [‘가장 어리고 순수한 신’이 걱정합니다!]

         

        히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다른 성좌님들은 어디 계시나요?

         

        [‘장난을 좋아하는 광신’이 자신은 여기 있다고 대답합니다!]

         

        [‘피폐의 감별사’가 당신을 보며 혀를 핥짝입니다!]

         

        [‘후회의 천신’이 당신에게 수고했다 말해줍니다!]

         

        하하.

         

        그래도.

         

        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냥.

         

        아팠다.

         

        “끄으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쉰 건가?

         

        내가 소리를 많이 질렀던가?

         

        솔직히 기억이 흐릿했다.

         

        너무 아파서 몇 번 기절했던 거 같은데, 아직도 손가락이 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세린.

         

        그녀가 나를 직접 고문한 게 가장 마음이 아팠다.

         

        유일하게 나를 때리지 않았던 사람.

         

        유일하게 나를 도와줬던 사람.

         

        그 사람이 끊임없이 목을 조르고 손톱을 뽑았다.

         

        그래서.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지금 나한테 치료를 진행해 줄 때 조차 너무 무서워서 몸이 떨렸으니까.

         

        [어라… 정신을 차렸네…?]

         

        덜덜덜.

         

        의지와 상관 없이 몸이 떨렸다.

         

        저리.

         

        저리 갔으면 좋겠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흐아윽,.. 흐윽… 하아…”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지금 내 손을 감싸는 그 따뜻한 회복의 느낌이 너무 무서웠다.

         

        또.

         

        또.

         

        손톱을 뽑으려나?

         

        잘 모르겠다.

         

        아니면 목을 조르려나?

         

        그것도 모르겠다.

         

        그냥.

         

        그냥.

         

        빨리 이 상황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눈 한쪽은 아예 안 보이지.

         

        귀는 먹먹하지.

         

        손은 끔찍하게 아프지.

         

        정신은 흐릿하지.

         

        하하.

         

        나 망가졌나?

         

        잘.

         

        모르겠다.

         

        [어어? 왜, 왜 치료가 안 되지? 어어? 왜 아물다가 말아?]

         

        그냥 빨리.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모두가 무서웠다.

         

        고문받을 때 나를 쳐다보던 그 수십 개의 시선이 무서웠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서아의 눈이 무서웠다.

         

        나는.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되지?

         

        ***

         

        이세린은 당황했다.

         

        손톱을 치료하던 도중, 회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황했다.

         

        왜왜왜?

         

        왜지?

         

        안 된다.

         

        치료가 안 되면 안 된다.

         

        그러면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없잖아.

         

        망가뜨리고 고쳐야 하는데.

         

        왜 그러지?

         

        그녀가 그리 다급한 의문을 품기도 잠시, 그녀의 눈앞에는 그 이유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회복 마법에 대해 내성이 생긴 것이라 말을 해줍니다!]

         

        ‘내… 성?’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회복을 하루에 너무 많이 진행해서 그런 것이라 말합니다!]

         

        ‘하, 하지만 저는 회복 마법이 아닌 걸요! 그래 특성! 특성이라고요!!’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당신은 회복술사라고 말해줍니다!]

         

        ‘힐러가 왜죠?’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회복술사는 치료 마법을 다루는 존재이기에, 자연스럽게 특성에도 그 마법이 평소보다 진하게 묻어 있다 말합니다!]

         

        ‘그, 그럼 더 이상 회복이 안 통한다는 뜨, 뜻인가요?’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그렇다고 합니다!]

         

        어떻게.

         

        어떻게 하지…!

         

        큰일 났다.

         

        정말 큰일 났다.

         

        치료를 해야만 다시 망가뜨릴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설을 망가뜨리는데 회복을 못 시키면 곤란했다.

         

        다시.

         

        사람들의 무시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또 남들이 자신을 괴롭힐 수도 이었다.

         

        분명.

         

        나쁘다고 찍힐 가능성도 있었다.

         

        ‘시, 싫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착한.

         

        착한 사람.

         

        착한 아이가 돼야 하는데!!!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당신의 마법적 수준을 높여 더 고차원적인 회복 마법을 익히면 된다고 설명합니다!]

         

        ‘지, 지금은 그걸 못 하잖아요…! 어, 어떻게 하지?’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이세린.

         

        그녀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착한 사람.

         

        언제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선의를 배풀어 줄 수 있는 그런 착한 사람.

         

        그녀는 ‘도구’를 이용해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그 ‘도구’ 덕분에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

         

        그 ‘도구’가 준 용기 덕분에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남들은 자기를 무시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을 좋게 대해줬다.

         

        근데.

         

        근데.

         

        근데.

         

        그거 가능하게 해준 ‘도구’가 망가진다고?

         

        고쳐야 했다.

         

        반드시 고쳐야 했다.

         

        ‘무, 무슨 방법인가요? 제발, 제발 알려주세요…!!’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당신은 계약한 성좌가 없으니 자신과 계약하면 된다고 합니다!]

         

        ‘할게요…! 할게요!! 당장 할게요!!’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그 대신 이 계약에는 대가가 있다고 합니다!]

         

        ‘할게요!! 할게요!! 대가가 뭐든! 주, 죽는 것만 아니라면 할게요…!’

         

        [‘숨은 기억의 회고자’가 대가는 당신의 숨겨진 기억의 복구와 일부 행동의 제약이며, 당신의 신체에 해가 되는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죽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부 행동에 제약이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숨은 기억.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잊어버린 몇몇 기억 아닐까?

         

        그거면 충분하다.

         

        당연히 충분하다.

         

        그러니.

         

        그러니 나의 신이시여.

         

        제발.

         

        저와 계약해 주세요!!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당신의 성좌는 ‘숨은 기억의 회고자’입니다!]

         

        [당신의 특성에 변화가 생깁니다!]

         

        [‘회복’이 ‘초회복’으로 강화됩니다!]

         

        아아아.

         

        드디어.

         

        다시.

         

        다시 한번.

         

        도구를.

         

        고칠 기회가.

         

        생겼다.

         

        이제는.

         

        망가지지 않게.

         

        잘.

         

        아주 잘 사용해야지.

         

        히히.

         

        [계약의 대가를 지불합니다!]

         

        [숨은 기억을 복구합니다!]

         

        [1살의 기억]

         

        [2살의 기억]

         

        [3살의 기억]

         

        .

        .

        .

        .

        .

        .

         

        [29살의 기억]

         

        [복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이후의 기억의 양이 방대합니다!]

         

        [영구적으로 기억의 총량을 늘립니다!]

         

        [복구를 재개합니다!]

         

        [1회차의 기억]

         

        [2회차의 기억]

         

        [3회차의 기억]

         

        [4회차의 기억]

         

        .

        .

        .

        .

        .

        .

         

        [523회차의 기억]

         

        [복구 완료: 2Y 11M 16D 8H 27M]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은 연참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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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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