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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12. 폴리모프 (5)

       

       

       수련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컨테이너 지붕에 앉아, 인간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일을 계속해서 하네.

       

       이하준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열심히 일하긴 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건 이하준이었다.

       

       “그건 거기에 둬. 그리고, 너 왜 자꾸 속도가 느려지냐? 뒤질래? 빨리 움직여.”

       

       그는 물건을 옮기는 동시에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꼼수를 부리는 녀석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가장 약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고 있다.

       수련이 보기에 그 모습은 아주 흥미로웠다.

       

       -다른 인간과 비교했을 때. 힘이 가장 약한데. 일은 가장 잘해.

       

       다른 사람들과 눈빛 자체가 다르다.

       벼랑에 서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눈빛.

       수련은 그 눈빛을 표현할만한 마땅한 단어를 모른다.

       하지만, 이하준이 다른 사람에 비해 확실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인간이란 사실은 잘 알겠어. 내 부모가 선택한 이유가 저런 모습이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정한다는 건 아니지만.

       

       흥-

       아직 인정한 건 아니야.

       나는 아직 인정 안 해.

       수련은 불만족스러운 콧김을 내뿜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이하준의 일은 반복의 반복의 반복.

       

       -새로운 정보를 찾아야겠어.

       

       찰팍찰팍-

       수련은 컨테이너 지붕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날개가 있었다면 좀 편했을 텐데. 나는 언제 해츨링에서 벗어날까. 어려서 마음에 안 들어.

       

       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두뇌는 그 어느 드래곤보다 좋은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니.

       

       -…빨리 폴리모프를 배워서 어른이 될 거야.

       

       수련은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폴리모프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기 위해 근무지를 탐색했다.

       하나 좋은 곳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련의 목적지는 마수의 사체를 쌓아둔 D-4 창고였다.

       수련은 찰팍거리는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려 있는 창고의 내부로 들어섰다.

       

       -이건…

       

       D-4에 들어간 수련은 깜짝 놀랐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TV에서 본 기억이 있어… 기분이 엄청 좋으면… 천국에 있는 기분이 든다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천국에 있는 것 같아…!

       

       냉동 창고.

       D-4는 마수의 시체를 보관하기 때문에, 항상 영하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냉동 창고는 추위를 좋아하고, 습기가 높아, 물에 친화적인 블루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천국이라 부를 만 했다.

       비록 드래곤의 몸이 추위에 약하다고 해도.

       

       -금속을 통해 폴리모프를 시도하려고 하는 것부터 온도 조절까지. 내 생각보다 인간들은 똑똑한 종족일 수도 있겠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꾼다.

       지하철에서 얼굴에 이상한 걸 발라 외모를 가꾸는 인간을 시작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몸을 금속으로 대체하는 인간까지.

       그 행동의 본질은 드래곤의 자기 몸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폴리모프와 다름없었다.

       

       -그래봤자. 인간이란 틀은 벗어날 수 없을 텐데. 왜 인간들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집주인 녀석이 그런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 아니라 효율적인 측면에서. 나는 의미 없는 일을 지켜보고 싶지 않을 뿐이… 아니, 나는 왜 나한테 해명하고 있지?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

       그 집주인이 뭘 하든 나랑 무슨 상관이지?

       수련은 마음을 다잡고 마수들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시체의 크기는 다양했다.

       소형, 중형, 대형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생김새는 각기 달랐으나, 내부의 흔적은 전부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수련은 그런 마수들의 시체를 관찰하며, 마수들의 종류와 신체 구조를 분석했다.

       

       -생김새를 봤을 때는 지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네. 생존에 대한 본능만 남아 있을 거야. 그래서 뉴스에서 봤던 것처럼, 인간들을 사냥하려 하는 것 같아.

       

       가지고 있는 정보나 지식에 따라 행동만이 바뀔 뿐.

       생존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다는 건, 인간이나 마수나 드래곤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수련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수들의 시체를 천천히 구경했다.

       그러던 도중, 창고에서 인간들이 다가오는 듯한 인기척을 느꼈다.

       

       -들키지 말라고 했어. 드래곤은 절대 안 들켜. 숨어야지.

       

       호다다닥-

       수련은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는 벽에 딱 달라붙어 움직임을 멈춰 숨었다.

       그러자, 다가오는 인간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이거는 중형에 두면 되나? 소형 아닌가?”

       “아으, 이하준 그 새끼가 중형에 두라고 했잖아. 소형처럼 보여도 중형에 둬. 그 새끼가 제일 잘 아니까.”

       “걔는 일은 잘해도 싸가지가 없는게 문제야. 드디어 하나 끝냈네.”

       

       쾅-!

       두 일꾼은 마수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놨다.

       이제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흠… 이하준이면… 집주인인데…

       

       수련은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가만히 모습을 감춘 채 대화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오, 어깨야. 걔가 없던 동안에는 진짜 개꿀이었는데. 소장도 뭐라 안 하고.”

       “그렇긴 했지. 너 걔가 왜 잠수탔는지 알고 있냐?”

       “나야 모르지. 근데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이 잠수타는 이유는 똑같잖아. 도박에 손 대거나 했겠지.”

       “하, 그렇겠지? 자기는 우리랑 다른 척 하더니. 비응신 새끼. 걔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똑같다는 걸 아직도 모르나?”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이하준에 대한 일방적인 뒷담이다.

       앞에서 하지 못할 얘기를 뒤에서 하며, 낄낄대며 웃을 뿐이다.

       

       -…

       

       수련은 그런 두 인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은 가만히 있던 몸을 움직여, 인간들의 뒤에 섰다.

       

       -드래곤인 내가 다르다고 하는데. 저 두 인간들은 어떤 부분이 자신들과 똑같다는 거지?

       

       기분 나빠.

       수련은 자리를 떠나려는 녀석들을 향해 입을 쫙- 벌렸다.

       그리고, 녀석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샤아-!!”

       

       인간이 들을 때는 단순한 울음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용언을 포함하고 있었으니.

       

       퍼억-!

       

       걸어가던 두 사람은 뒤에서 뒤통수를 강하게 때린 것처럼, 정직하게 앞으로 꼬꾸라 넘어졌다.

       

       “아악-!!”

       “시발-! 누구야-?!”

       

       황급히 놀라 뒤를 돌아봤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니가 그랬냐?”

       “뭘.”

       “방금 내 머리 친 거. 장난이 심하네?”

       “뭘 내가 해. 나도 맞았는데. 생사람 의심하지 말고. 꺼져.”

       “꺼져? 이 새끼 말하는 뽄새봐라?”

       

       급기야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멱살을 잡고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흥. 뒤에서 없는 사람한테 그러지 말고. 서로 앞에서 싸우기나 해.

       

       서로 얼굴을 붉힌 채, 얼굴에 침을 튀기며 퇴장하는 두 사람.

       수련은 그 두 사람을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너는 이거 문 닫고 나서 보자.”

       

       -잠깐, 닫지 ㅁ-

       

       냉동 창고의 거대한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쾅-!!

       거대한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 철제 문.

       그 추운 냉동 창고에 갇혀버린 수련은 허망한 얼굴로 문을 쳐다봤다.

       

       -…문 열어야 하는데. 추운 건 좋아해도. 오래 못 있는데. 드래곤은 추위에 약한데.

       

       큰일 났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괜히 감정적으로 반응해서…

       

       수련은 뒤늦게 자기 행동을 후회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철문은 수련의 후회를 들어주지 않았다.

       

       -누가 문 열어줘. 나 오래 있기 힘들어.

       

       쿵쿵-!

       수련이는 문을 꼬리로 내려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창고에서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힘이 빠진 수련이의 가냘픈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샤아- 샤아-”

       

       

       ***

       

       

       “수고하셨습니다.”

       

       하루를 끝내는 소리를 내뱉고.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뭐가 그리 급해 이하준!”

       “그럴 일이 있어요!”

       

       뒤에서 들려오는 소장님의 말에 빠르게 대답하고.

       나는 수련이를 데리고 온 가방을 확인했다.

       

       “없잖아! 1시간마다 보고하라 했더니. 얘 어디 간 거야!?”

       

       미치겠네.

       드래곤이라 믿은 내가 바보지.

       애는 애가 맞아.

       어린애는 눈을 한시라도 떼면 사고를 친다니까.

       나는 이를 꽉 깨물고서 수련이가 있을 만한 위치를 탐색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게 컨테이너 위였는데.”

       

       나는 상자를 밟고 컨테이너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밑에 있던 소장님이 크게 소리쳤다.

       

       “이하준! 이 새끼야 너 대체 뭐하는 거야?!”

       “아 좀 가만있어 봐요. 저 바빠요.”

       “일만 하더니 정신이 나가버렸나. 컨테이너 내려앉아 임마!”

       

       소장님이 자꾸 잔소리하긴 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무시했다.

       

       “여기는 없어.”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걱정되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지금은 냉정함을 잃으면 안 되는 법.

       

       “후우. 찾기만 해. 나한테 뒤지게 혼날 테니까.”

       

       나는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며 탐색을 재개했다.

       

       “여기 있니?”

       

       쓰레기통.

       

       “있으면 대답해.”

       

       컨테이너 아래.

       

       “제발 여기 있어라.”

       

       트럭.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했지만.

       수련이는 어디에 숨었는지 도통 보이지를 않았다.

       

       “…마지막은 거기밖에 없는데.”

       

       창고 구역.

       거기 말고는 수련이가 있을 만한 곳이 없다.

       

       슬슬 지금쯤 닫고 있을 텐데.

       

       ‘거기에 있나?’

       

       나는 더 늦기 전에 온 힘을 다해 창고 구역을 향해 달렸다.

       평소와 다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달랐다.

       

       ‘아직 안 닫았어.’

       

       하아- 하아-

       나는 숨을 고르며 창고 관리자에게 물었다.

       

       “하아, 잠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지금 일 다 끝났는데? 근데 방금 뛰어온 거 너 맞어? 뭔 달리기 속도가-”

       “됐고. 들어갈 수 있냐고.”

       “어우, 싸가지는 여전하네. 빨리 갔다 와. 퇴근 시간 늦으면 그냥 닫고 간다.”

       “어.”

       

       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창고 구역으로 들어갔다.

       일반 물류 창고들은 지금 막 닫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수련이는 지금 일반 물류 창고에 없다는 거다.

       사라진 지 2시간은 더 지났으니까.

       

       “냉동 창고에 있을 수 있겠어.”

       

       나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 냉동 창고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냉동 창고는 굳게 닫혀 있었다.

       냉동 창고는 다른 창고와 달리 2~3시간은 일찍 닫으니, 사람들도 굳이 냉동 창고 쪽에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수련이는 이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나 왔으니까 있으면 대답해. 수련아. 안에 갇혀 있니?”

       

       냉동 창고의 문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니.

       안쪽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열어… ㅈ…”

       

       드래곤의 울음소리가 아닌, 앳된 소녀의 목소리였다.

       

       ‘수련이가 아니잖아… 아니지. 설마?’

       

       수련이의 울음소리가 아니라서 살짝 실망하긴 했지만.

       혹시나 싶어 창고 문을 개방하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희뿌연 냉기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냉기에 휩싸인 작은 푸른 뿔에 푸른 꼬리를 단.

       차가운 인상의 무표정한 소녀가 지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늦었어… 구하러 올 거면… 빨리 구하러 왔어야지… 시원한 건 좋은데… 드래곤의 몸은… 추위를 오래 버티지 못한단 말이야…”

       

       확실히.

        파충류는 추위에 약하긴 하다.

       아니, 그것보다.

       

       “너 수련이 맞지…?”

       

       수련이는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 보면… 모르겠냐고… 역시 인간은 바보야… 똑똑하다는 거 취소야…”

       “왜 여기에 들어가 있던- 아니, 그 전에 옷부터 입자.”

       

       나는 입고 있던 트레이닝 점퍼를 벗어, 수련이를 입혀줬다.

       수련이는 힘이 다 빠진 눈을 하며, 내게 소매로 뒤덮인 양팔을 뻗었다.

       

       “빨리 집에 가자… 나 피곤해…”

       “혼내려고 했는데 애교부리는 게 어디 있어.”

       “혼은 나중에 날 테니까… 일단 가자…”

       “에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애를 혼낼 만큼 쓰레기는 아니다.

       나는 내게 손을 뻗은 수련이를 등으로 엎어줬다.

       수련이는 내 등에 올라타자마자 ‘새근새근-‘거리며 잠에 빠졌다.

       

       “참 빠르네. 그것보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드래곤이긴 한데. 이건 그냥 애잖아.”

       

       사고는 사고대로 치고 말이야.

       

       “에휴.”

       

       나는 수련이의 꼬리를 옷으로 숨기고, 뿔을 트레이닝 점퍼의 후드로 가렸다.

       수련이가 원하는 대로.

       

       “그래 집이나 가자. 무사해서 다행이다.”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

       

       

       그렇게, 수련이를 데려가던 도중.

       나는 뜻하지 않게 소장과 마주치고 말았다.

       

       “무, 뭐야? 이하준. 너 임마. 애 있었냐?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그것보다 애를 키우고 있었으면 얘기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아니, 그게 아닌데…”

       “그럼 뭔데? 조카야?”

       “아니, 일단 내가 부모가 맞긴 한데…”

       “그럼, 니 애 맞잖아! 임마!”

       “이걸 뭐라 설명해야 돼…?”

       

       졸지에 이상한 오해가 생기고 말았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련이는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긴 것처럼, 편하게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흠냐…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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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다르팽이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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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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