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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설소영과 통화를 나누며 마지막에 그녀는 내게 이런 부탁을 해왔다.

         

       이번 클라이맥스 씬을 성공할 때까지 계속 자신의 연기를 지켜봐 달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오늘 하루 종일 현장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주말이기도 하고, 늦으면 용석이 형이 어련히 알아서 잘 데려다 주겠지라는 마인드로 마음 편히 그녀의 연기를 감상했다.

         

       하지만 말이다.

         

       그녀의 연기는 도저히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그런 연기였다.

         

       뭐지?

         

       설마 나한테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서 지켜봐 달라고 한 건가?

         

         

       “커, 컷!”

         

         

       고동빈 감독의 다급한 종료 사인과 함께 녹화가 완전히 종료되었다.

         

       스텝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서로를 마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쳤다.

         

         

       짝짝짝짝.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본능적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배우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보통 현장에서 스텝들이 저렇게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경우는 모든 촬영을 마치거나, 이제 더 이상 촬영에 참여하지 않은 배우에게 지금까지 고생했다는 의미로 쳐주거나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작 컷 씬 하나의 촬영을 마쳤다고 박수를 쳐주진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저런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저거 그냥 연기하는 배우가 미친 연기력을 선보여서 순수하게 감탄한 거다.

         

       음.

       솔직히 방금 설소영의 연기는 나도 감탄했을 정도였다.

         

       스토리 작가로서 클라이맥스 씬의 겨울을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감정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온이 과거의 모든 기억을 떠올려 드디어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기쁨과 그런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

         

       이 상극인 두 감정을 동시에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 감정선의 비율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게 된다면 이번 클라이맥스 씬의 분위기 역시 한쪽으로 치우쳐지겠지.

         

       양심적으로 5대5의 비율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게 완벽하게 감정선을 다루는 것은 일류 배우에게도 힘든 일이니까.

         

       6대4, 정 안되면 7대3까지도 양보할 의향이 있었다.

         

       다만.

         

       방금 설소영의 연기는 완벽하게 5대5였다.

         

       그녀의 목소리, 몸짓, 분위기는 내가 상상으로만 그렸던 겨울 그 자체였고 마지막에 하온을 올려다보던 그 얼굴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을 정도였다.

         

       아련함이 담겨 있는 미소.

         

       그리고 그 미소와 대비되는 눈물.

         

       설소영의 방금 눈물은 사실상 애드리브에 가까웠다.

         

       애초에 이번 씬을 촬영할 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보통 배우들이 눈물 연기를 할 때 인공 눈물이나, 스틱을 발라 눈을 자극하는 방법은 지금처럼 감정선의 중립을 지켜야 하는 연기에 자칫 방해될 수 있다.

         

       그리고 보통 눈물이라는 것은 슬픔이라는 감정선을 완전히 넘어섰을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전생에서 수 많은 배우들의 연기를 직접 두 눈으로 봐왔기에 그것이 재능이랑 노력의 힘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슬픔이라는 감정선에만 완전히 몰입했을 때에 비로써 그것이 가능했다.

         

       방금의 설소영처럼 두 가지의 감정선을 동시에 유지하면서 눈물까지 흘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방금의 설소영이 선보인 연기력은.

         

         

       ‘신들렸네.’

         

         

       아마 이 표현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었다.

         

         

       “…….”

         

         

       설소영과 함께 연기를 맞추었던 남궁환 역시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그녀와 함께한 연기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

         

       연기가 모두 끝난 배우가 저 정도로 현타가 왔는데 아련한 BGM과 특수 효과, 거기에다가 보정까지 추가된 상태로 저 장면을 보게 될 시청자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지금까지 가지무침을 먹다가 제육볶음을 먹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싶은데.

         

         

       “흐흐흐…….”

         

         

       옆에 있던 나 PD님이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마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때 자연스레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그런 질문을 해왔다.

         

         

       “작가님 도대체 소영 양에게 어떤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어…….”

         

         

       이번 건 진짜 모르겠는데요?

         

       오히려 내가 더 궁금했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심경 변화가 있었길래 저런 신들린 연기력을 선보일 수 있는 걸까.

         

       솔직히 방금 설소영의 연기력을 본 사람이라면 며칠 전까지 그녀가 NG를 계속 일으켰다고는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허허, 겸손이 심하십니다.”

         

         

       하지만 나 PD님은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이번에는 나 진짜 한 거 없다니까요?

         

         

       “후… 나 PD님. 일단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인가요?”

       “예. 아마 그럴 겁니다. 일단 오늘의 목표는 클라이맥스 씬의 촬영을 마무리하는 거였으니까요.”

       “하긴, 오늘 같은 행복한 주말에는 짧게 촬영하는 게 모두의 정신 건강에 좋긴 하겠네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셨습니까?”

       “이제 제가 할 일은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야죠.”

         

         

       사실 미리 용석 형에게 연락을 해두었다.

         

       주차되어있는 곳으로 오면 바로 출발하겠다는 답도 방금 받았고.

         

         

       “아, 참고로 나 PD님. 마지막 화인 16화의 촬영 때 소영 씨가 또다시 NG를 낸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그냥 소영 씨가 훌륭하게 연기해낼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작가님! 그럼 일정이─”

       “미루세요.”

         

         

       나는 단호하게 나 PD님의 말을 끊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네?”

       “제대로 들으신 것 같구만 뭘 못 들은 척을 하세요? 그냥 미루시라고요. 가뜩이나 처음 배우의 길에 접어든 애한테 일정의 부담까지 줘서 뭐 어쩔건데요?”

         

         

       나 PD님은 내 말에 무어라 반박하지 못하셨다.

         

       애초에 변수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든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건 제작 총괄 자리에 앉아 있는 그였으니까.

         

       뭐, 눈치가 빠르신 분이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했을 것이다.

         

       다만.

         

         

       “만약에 제가 작가님의 요구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런 식의 호기심은 그리 달갑지 않은데…….

         

       그의 물음대로 어떻게 할 건 지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해두지 않았다.

         

       그래도 대충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스튜디오엔믹스를 향해 진심으로 화낼 거예요. 당연히 실망도 하겠죠. 뭐… 그게 저희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그때 가서 확인해 봐야겠지만요.”

         

         

       …….

         

         

       은우의 말을 들은 나영진은 생각했다.

         

       927 작가가 한 말은 사실상 협박에 가까웠다.

         

       나영진의 귀에는 만약 그때가 온다면 더 이상 스튜디오엔믹스와 함께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렸으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앞으로 작가님을 실망하게 만들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나영진은 그가 해온 요구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클라이맥스 씬에서 선보인 설소영의 미친 연기력.

         

       그리고 눈앞에 있는 어린 소년 역시 수준 높은 대본을 아무렇지도 않게 창조해내는 미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나영진은 직감했다.

         

       이 두 가지 재능이 지금처럼 합쳐진다면 현재의 드라마 시장의 판도가 많이 바뀔 거라고.

         

       그렇기에 그의 입장에선 이 둘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붙잡아야 했다.

         

       설령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음, 조금 많이 피곤해지더라도 괜찮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의 나영진은 이날에 했던 결심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

         

         

         

       “후…….”

         

         

       연기를 모두 마친 설소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다.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를 모두 책임지겠다던 그 말이 확실히 그녀의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또한, 통화 마지막에 그와 나누었던 부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장의 어디에선가 그 사람이 자신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설소영의 의지를 불태우기 충분했다.

         

       그리고, 연기를 모두 마친 설소영은 장담할 수 있었다.

         

       이번에 펼친 연기는 그에게 보여져도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을 거라고.

         

       아마 그의 기대에 보답할 만한 연기였을 거라고.

         

       그리고…….

         

         

       ‘…어디 계시려나.’

         

         

       사실 그녀가 현장에 남아서 계속 연기를 지켜봐 달라고 한 이유는 그에게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전혀 다른 목적도 있었다.

         

       그건 바로 현장에 그 사람의 발목을 묶어두는 것.

         

       설소영은 줄곧 927 작가와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조금 전에 통화로 인해 그녀의 일차원적인 호기심은 ‘갈증’이란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설소영은 그 이유 모를 갈증을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그와 만나고 싶었다.

         

         

       “…….”

         

         

       설소영은 주의 깊게 현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 여자의 감이긴 한데….

         

       그 사람은 자신에게 허투루 거짓말을 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러니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현장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니 이게 웬걸?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영진 PD님과 생소한 뒷모습을 한 남성이 어딘가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설소영은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찾았다.’

         

         

       라는 확신의 속마음과 함께.

         

       하지만…….

         

         

       “와, 소영아 도대체 휴식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에? 자, 잠깐만요!”

         

         

       바로 근처에 있던 남궁환 배우와 스텝들에게 강제로 붙잡혀버리는 바람에 고동빈 감독의 촬영 종료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 칭찬을 들어야만 했다고 한다.

         

       결국 시간이 꽤나 지난 상태였기에 설소영은 927 작가와 만나지 못했다.

         

         

       “힝…….”

         

         

       뭔가 속상한 것 같은 소리를 내는 건 덤이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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