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

       그렇게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기사단에게 이끌려 갔다.

         

       스토리 진행상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아마도 론단의 중심부인 화로일 것이다.

         

       눈보라가 치는 죽음의 땅에서 화로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주는 심장이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밀집해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의 수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용태를 살펴보기 위해 그들을 슬쩍 둘러볼 때면 그렇게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역시 다크 판타지 세상이라는 걸까.

         

       대부분이 허리를 굽힌 채 바닥을 보면서 걸으며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거인을 봐버리는,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사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세를 ‘교정’한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나마 허리를 들고 있는 사람은….

         

         

       “여러분, 보십시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이 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저희의 유일신, 루미너스 님을 믿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루미너스 님을 믿지 않는다면 평생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어서도 허리를 숙인 채 외신들로 가득한 곳으로 가게 될 것이고, 믿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일단 자타공인 정신병자인 나보다도 나사가 더 빠져 보이는 사이비 교도뿐이었다.

         

         

       “아아, 신이시어 우릴 부디 구원해 주소서.”

         

       “어째서 우릴 버리시나이까.”

         

       “공물을 바치겠습니다. 이 세상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니.”

         

         

       무릎을 꿇고 자신들이 창조한 신의 조형물을 들고 기도하거나 설파하는 모습이라니.

         

       외신의 영향이 전혀 없는 물건들인지 슈퍼 겁쟁이 모드의 효력이 발휘되지 않아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이게 세기말이구나, 하는 기분이 확 들었다.

         

         

       우상 숭배자들의 설법도 얼마 안 가 토끼 인형 탈을 입고 있는 이들이 나타나 제지하기 시작했다.

         

         

       “기사단들이다!”

         

         

       한 사람이 외치자 다른 이들도 화들짝 놀라 몸을 수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 한 명, 루미너스를 설법하던 한 우상숭배자는 끝까지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었다.

       

         

       “어어, 이거 놔라! 네놈들, 루미너스 님의 빛이 없는 심연으로 떨어지고 싶은 게냐!”

         

       “이 우상 숭배자 놈, 그만 하고 꺼지지 못해?”

         

       “그냥 잡아라, 론단의 철칙 제2항. 거짓된 신을 숭배하지 마라. 이는 중대한 규율 위반이다. 저놈을 감방에 처넣어.”

         

         

       연기가 나는 사탕을 입에 물고 쪽쪽 빨아먹던 선배 토끼 탈에게 부하가 말했다.

         

         

       “선배님, 감옥은 현재 실제상황에 걸려 폐쇄되었잖습니까.”

         

         

       그말을 들은 선배 토끼탈은 ‘빌어먹을 외신.’ 이라 욕지거릴 하더니 머리를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아, 그냥 지부에 있는 유치장에라도 집어넣어.”

         

         

       늙어 보이는 우상 숭배자는 목소리가 쉴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놔라! 이것들아, 계몽, 계몽해야 한단 말이다!”

         

         

       끌려가는 와중에도 가슴팍에 있는 종이를 꺼내 들더니 주변에 흔들기 시작했다.

         

         

       “서명해라! 화로와 장작은 단지 큰 탑일 뿐이며 진정으로 눈에서 우릴 지켜주시는 것은 빛을 관장하시는 관조자, 루미너스님 뿐이시다!”

         

         

       모두가 종이를 보자 고개를 돌려 눈을 아래로 두길 바빴다.

         

       정신 이상에 면역인 내가 슬쩍 쳐다보았으나 빼뚤빼뚤하여 뭐라 적혀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축성 의식을 거치지 않은 문자를 들이미시면 또 다른 죄목을 넣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계몽은 개뿔.

         

       모기에 빙의해서 피 같은 돈만 쪽쪽 빨아먹을 생각뿐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어디선가 은은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뭐야 이 목소리는?”

         

         

       옥구슬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은 아름다운 음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구슬픈 그런 목소리에 감탄하며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다르게 주변은 정신없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정신공격이다! 모두 귀를 막아!”

         

         

       한 사람이 크게 외쳤고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닌지 행동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도시의 모든 주민, 기사단은 모두 양손으로 귀를 막았고, 심지어 사냥꾼마저 묶여 있는 손을 최대한 벌린 뒤 중지로 고막을 막아서 소리를 차단하며 몸을 웅크렸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자, 풀려난 교도가 빵긋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히이이! 감사합니다 관조자시어!”

         

         

       결국 숭배자는 허겁지겁 달려 도망쳤다.

         

         

       타이밍이 참….

       

       잡히기 전에 도망치는 모습을 보아하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나야 슈퍼 겁쟁이 모드 덕에 단순한 노래로 들린 거겠지만, 저 할아버지는 귀도 안 막고 있던 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뭐, 알아서 하겠지.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군. 갈 길이 멀다.”

         

         

       소리가 그치자 기사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갈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곧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까와 같은 우울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도 일단은 귀를 막는 척 연기를 하며 최대한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기에 또 기사단에게 쿠사리 먹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지나쳐, 탑에 가기 전에 우리는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면 여인이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번엔 고양이 탈을 입고 있던 남자 두 명이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지, 지엄하신 황녀님의 일익이신 부단장님과 그 휘하를 뵙습니다!”

         

       “그래, 지금 여기 지부장이 누구지.”

         

       “검은 사자입니다!”

         

       “불러.”

         

       “예,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피곤해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두 명은 빠릿빠릿하게 건물 안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식은땀을 흘리며 바깥으로 나온 검은 사자, 라고 하는 사람은 호랑이 인형 탈을 쓰고 있었다.

         

       아니, 왜 사자면서 호랑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지부장은 부단장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경례를 했다.

         

       부단장이 경례를 받아주자, 얼른 손을 내린 지부장은 차렷 자세로 돌아왔다.

         

         

       “제4지부 현 상황 보고합니다. 야간 취침 5, 부상 3이 열외, 현재 5명의 기사가….”

         

       “그런 거 들으러 온 거 아니니까 그만해라.”

         

         

       부단장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그제야 지부장은 본론을 물었다.

         

       

        “어쩐 일로 화로로 가시지 않고 여기에 오신건지….”

         

       “다름이 아니고, 공무를 위해 황녀님과 통신을 할 예정이니 이들을 맡아 주었으면 한다.”

         

       “…누구십니까?”

         

       “지하 감옥 죄수들이다.”

         

       “아… 설마 그곳에서 데리고 온 것입니까?”

         

       “맞다. 죄인들을 황녀님이 있으신 곳까지 갈 수는 없으니까. 이곳에서 판단을 여쭤볼 생각이다.”

         

         

       지부장의 눈빛이 부단장의 말을 듣자마자 싸늘하게 식었다.

         

       어우, 저 눈빛 봐.

         

       차라리 죽게 놔두지, 라고 하는 것 같아서 별로 눈을 맞추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부탁하지.”

         

       “예, 예… 알겠습니다.”

         

         

       다행히 자세히 설명할 생각은 없었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 우리를 놔둔 채 세 명이 유유히 떠나기 시작했다.

         

         

       아니, 갑자기 이렇게 방치시킨다고?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사들이 다가와 우리를 묶은 청테이프를 당겼다.

         

         

       “부단장님의 명령이 있었으니 너희의 신변을 맡도록 하지. 따라와라.”

         

       

         

         

       #

         

         

         

         

       그렇게 안내받은 곳은 안쪽에 있는 쇠창살이 가득한 방이었다.

         

       역시 여기 와서도 유치장에 갇히는 건 똑같은 건가.

         

       죄 한 번 지은 적 없는 인생인데….

         

       빛 하나 없는 지하 감옥에서 지상의 유치장으로 넘어온 거니 그나마 나아진 거라고 해야 하나?

         

         

       사람이 아무도 없긴 했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임시로 가둬놓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공간인 듯했다.

         

       철문이 오랫동안 제 일을 하지 못했던 건지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고, 지부장의 손짓을 따라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함부로 나오려고 하지 말고.”

         

         

       지부장이 그렇게 말한 뒤, 문을 투박하게 닫고 열쇠로 문을 잠가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러고 그냥 곧바로 유치장에서 나가버렸다는 걸까.

         

       괜히 앞에 계속 서 있으면 신경 쓰여서 쉴 수도 없을 테니.

         

         

       그렇게 불편할 정도로 잠잠해진 공간.

         

         

       말할 것도 딱히 생각나지는 않아서 그냥 가만히 있으니, 아가르타가 심심한지 발을 움직이면서 바닥을 툭툭 쳐대기 시작했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그만하겠거니 싶었는데, 오히려 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만하라고 말하려 하는 순간.

         

         

       “으으으… 으아!”

         

         

       아가르타가 울부짓었다.

         

       아가르타는 졸라짱 시끄러워서 인간 중에서 제일 시끄러웟다.

         

         

       우와.

         

       정말 단 1분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성격이구나!

         

         

       존경심마저 드는 그 모습에 감탄하고 말았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조용해요? 이러다가 지루해서 말라 죽겠어요.”

         

       “굳이 입을 열어야 하나.”

         

       “아니! 아까까지는 그래도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하더니?”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로군.”

         

       “이럴 때 소비 안 하면 에너지는 남아도는 거라고요.”

         

         

       아가르타가 뭔가를 생각하는 듯 ‘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드디어 뭔가를 생각해내는 데에 성공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계속 가게 되는 건 어쩌면 저희는 운명 공동체일지도 몰라요.”

         

       “…허튼 소리.”

         

       “그러니까 간수도 있어 탈옥도 못하는 김에 저희 과거에 관해서 얘기해보는 거 어때요? 어쩌면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도둑질을 업으로 삼는 녀석에게 공감되는 부류라면 차라리 빠른 임종을 맞이하는 게 낫겠지.”

         

       “에이, 듣고 나면 또 다를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먼저 말했으니까 저부터 하죠.”

         

         

       아가르타의 입에서 평소와 같이 시답지 않은 말이 나올 거로 생각했다. 

         

       물론 그녀의 표정은 그런 것 따위를 말하는 것처럼 따분한 표정이었다.

         

         

       “전, 도적이 어머니를 강간해 낳은 딸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내뱉은 아가르타의 이야기는 무척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