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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전날의 기억과 감각을 떠올리자, 애써 단련을 통해 맑아졌던 정신이 다시금 탁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번뇌(煩惱).

         

       욕망이 몸을 지배하며 다시금 그때의 감각을 느끼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조 ‘암브로시아’라고 한다. 고대에 실존한 모든 저주와 병을 치유해준다는 전설적인 명약이지. 암브로시아의 레시피를 최근 들어 복구하는 데 성공하여 왕실에서 직접 제조한 것이며. 제조하는 데 쓰이는 약재는 하나같이 왕실 정도가 아니면 구하기 힘든 약재밖에 없다. 완성품을 만드는 것도 왕실 약사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고, 암브로시아의 복원 작업에 가장 큰 투자자이자 지휘자가 다름 아닌 여이지. 그리고 그대가 여의 말만 잘 따라준다면 암브로시아의 완성품이 만들어졌을 때 가장 먼저 주도록 하마. 무얼, 누이가 동생에게 주는 선물이다. 사양하진 않아도 좋느니라, 호호.]

         

       마녀가 쉽게 약을 넘길 리는 없으리라.

         

       ‘독한 아줌마, 진짜 지독한 한 수네.’

         

       암브로시아.

       전날 먹었던 액체의 이름이었고, 미완성품에 불과하며 완성품에 비하면 효력이 1%밖에 되지 않을 물약.

       허나 겨우 1% 효과만으로도 이한은 ‘기적’을 봤다.

         

       지금껏 내심 포기했던 영구적 장애가 회복되는 기적을…!

       

       “후우…!”

         

       기껏 포기하고 있던 가능성에 이토록 장작을 넣어주니 번뇌가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한은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들끓는 과거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폭주할 것 같아서.

         

       ‘망할 새끼들…!’

         

       까득!

         

       분노를 잠재운다는 것이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 * *

         

       암살자로 키워지던 시절, 이한은 여러 독을 먹었다.

       독내성을 키우기 위해서였고, 당시에는 전생의 기억도 없는 열 다섯짜리 애송이에 불과한지라 지금이랑 달리 어른의 말을 착실히 듣는 그였다.

       다양한 독을 먹던 어느 날이었나?

       어떤 놈이 독을 잘못 먹어 사고를 치는 날이 있었다.

         

       [저놈 저거 왜 저래!?]

       [저 독, 아무래도 정력제 만들 때 쓰이는 것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미친놈.]

         

       훈련생 중 한 놈이 여성 간부를 덮치려다 그대로 죽는 사건.

       이후 암살자들은 훈련생들의 ‘성욕’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식했다.

         

       수면욕, 식욕, 성욕.

         

       흔히 삼대 욕구가 조직 내에서 큰 문제로 다가오는 건 전생이나 현생이나 동일했음이다.

         

       만일 조직이 일반적인 길드나 조합 따위였다면 이러한 문제를 융통성 있게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하필 이한이 속해있던 조직은 암살 조직이었고, 욕망을 극도로 절제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다.

       그렇게.

         

       [다 거세하도록 하지.]

       [자를까요?]

       [아니, 자르다가 죽을 수도 있다. 주독(呪毒)을 써라.]

         

       주독.

       이른바 주술에 의해 탄생하는 신비의 독으로 몸에 큰 해를 끼치지 않지만, 몸에 영구적인 장애를 남길 수 있는 극독.

       귀하기도 귀하고, 쓰이는 일이 극히 드물며 빠르게 신관에게 보여 고치기만 하면 그다지 큰 효력이 없기에 가치도 저평가됐지만, 하필 암살조직은 그 귀한 주독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조직원들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기까지 했다.

         

       이후 이어지는 과정은 아마 예상이 갈 거다.

       이한은 그 주독이란 놈을 먹었고, 3일 정도 앓아누워야 했고, 넘버즈라 불리던 아이들은 대부분 성욕이 ‘제거’됐다.

       아니, 성욕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써먹을 수 없는 것에 가깝다.

         

       ……서지 않으니까.

         

       허나 이를 문제로 여기는 이들은 당시에 없었다.

         

       이유?

         

       교육이란 걸 전혀 받지도 못한 아이들이다.

       거기다 이걸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도 없었고.

       그렇게 자연스레 이건 영구적 장애로 남을 뿐이었다.

         

       이한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가 수년 후 설마 조직이 망할지도 몰랐고, 우연의 일치로 자신이 전생의 기억을 되찾을지는 몰랐으니까.

       그리고 전생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불구의 몸이란 걸 알게 된 순간…!

         

       “으으으음…!!”

         

       ……당시만 떠올리면 여전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전생 30년, 현생 30년.

       도합 60년 동안 독수공방한 노총각이 된 셈이니.

         

       허나 차츰 시간이 흐르고, 강해지는 데만 몰두하다 보니 이러한 자신의 장애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 단원들 중 애인이나 부인을 자랑하는 이들이 있다면 가슴이 시큰거리긴 한데, 그때마다 그놈들을 두들겨, 아니 정당한 대련을 통해 기분전환도 썩 잘하고 있는 중이었고.

         

       한데 지금, 이한은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힘겨운 고통을 이겨낸 게 아니라, 단지 포기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 기회가 생긴 것으로 마음이 요동치고 있음을.

         

       번쩍-!

         

       “…모르면 차라리 마음에 편했지, 알게 하면 어쩌란 건지, 원.”

         

       도통 이해가 안 가는 것 중 하나는 그녀가 대체 자신의 수치스러운 비밀을 어찌 알고 있느냔 거다.

       어디서 정보가 흐른 거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는데?

         

       “하여튼 무서운 아줌마야.”

         

       콰다당!

         

       “아이코!”

       “…그만 좀 넘어지십쇼. 그냥 가만히 있던가.”

       “헤헤, 그럴 수는 없죠. 왕녀님이 기사님을 보필하라고 절 여기 보낸 걸요! 열심히 일할게요!”

       “…진짜 그럴 필요 없는데.”

       “맡겨만 주세용!”

       “…….”

         

       또 한 가지 의문.

       …대체 저 뇌-청순녀를 저한테 보낸 저의가 뭘까?

         

       ‘…설마 내 뒷조사를 시키려고?’

         

       콰당!

         

       “아아, 죄송해요! 그릇이…!”

         

       “…….”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이한은 슬그머니 일어섰다.

         

       의문은 여전히 많지만 이러고 있다간.

         

       ‘저 여자가 내 살림 다 망가트리겠다.’

         

       이한은 살림살이를 지키기 위해 달렸다.

         

       * * *

         

       백사자궁.

         

       팬드래건 왕족 중에서도 왕의 후계자만이 거주하는 것이 가능한 궁전.

       왕의 궁전인 백룡의 궁전에 들어서기 전까지 잠시 머물러야 할 지점에 불과하기도 하고.

         

       그리고 당대 백사자궁의 주인인 아이시스 이레인 드 팬드래건은 직접 아이를 돌보는 중이었다.

         

       “아우우.”

       “손가락 힘이 좋구나. 산송장인 네 애비와 달리 건강할 것 같아 좋구나.”

       “우우?”

         

       아이 앞에서 못할 말을 가감 없이 해버리는 그녀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생후 5개월 밖에 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허나 주변에는 아이시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허허, 공주님. 어찌 애 앞에서 부친의 흉을 보십니까, 훗날 왕자께서 공주님의 말버릇을 배울까 이 알버트는 심히 걱정됩니다.”

       “시끄럽다 늙은이. 여의 자식교육에 참견하지 마라.”

       “허허, 그게 교육이긴 합니까?”

       “아무렴, 최고의 여자가 하는 것이니 최고의 교육이지.”

       “…거, 자신감 하나는 좋습니다.”

       “흥.”

         

       오러 유저 집사만이 가능한 건방진 언사.

       왕태녀인 자신을 향해 전하가 아닌 공주라 부르는 것을 봐주는 것도 어찌 보면 특별대접이리라.

         

       그래서일까, 알버트는 사적인 질문도 허용됐다.

         

       “한데 공주님. 어찌 이한 경에게 암브로시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 것입니까?”

         

       알버트는 내심 궁금했다.

       이한, 그 젊은이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주위에 내보인 적이 없다.

       왕실 첩보집단조차 그가 누구에게서 태어나고, 노예로 팔려 어떠한 조직에 팔렸다는 것까지 알지만, 그러한 병이 있음을 알지는 못했으니까.

         

       오직 왕녀 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는 얘기.

         

       “흥, 질문을 하는 의도가 무어냐, 여가 의동생과 동침이라도 했을까 그러더냐?”

       “고, 공주님….”

         

       민망하기 짝이 없는 얘기.

       알버트는 여성이 어찌 그런 걸 입에 담냐며 타박하는 눈짓을 보냈고, 아이시스는 여상스레 홍차를 마실 뿐이었다.

       그리고선 천천히.

         

       “여의 의동생은 말이다, 여에게 넘어온 적이 없더구나..”

       “…?”

       “단 한 번도 여를 향해 흥분을 느끼지 않더군. 이토록 아름다운 여에게 말이다.”

       “……예?”

         

       알버트는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오러 유저인 그의 청각이 노화할 일은 잘 없는데, 지금으로선 노화가 의심된다.

       차마 그녀의 고운 입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 없는 상스러운 발언이니.

         

       그러나 그녀는 당당했다.

         

       “여의 미색은 왕국제일이다. 이는 나이가 들었다고 한들 달라지지 않는다. 어떠한 남자도 여를 보고 반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발정난 개처럼 구는 것이 당연하다. 한데 여의 의동생은 단 한 번도 그러지 않더구나. 그 젊은 나이에 반응이 없는 것을 봤을 때 여는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의동생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거나, 남성적 기능이 유실됐을 경우.

         

       “허나 여의 의동생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기능의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지.”

       “…겨, 겨우 그것만으로 그런 추론을 하셨단 겁니까?”

       “당연하지. 여의 미색은 으뜸이니까.”

       “……자기애가 대단하십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일 뿐!”

       “…허허.”

         

       알버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겨우 그런 이유로 왕국 첩보부대조차 밝혀내지 못한 비밀을 알아냈다?

       알버트는 내심 이한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어쩌다 저런 여성에게 약점을 들켰을꼬.

         

       ‘…흠, 그래도 약을 얻을 수 있으니, 그에게도 이득이겠지.’

         

       상부상조.

       서로에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으니 모두에게 이득일지어니.

         

       “허허.”

         

       알버트는 가볍게 웃어 보이며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발언을 애써 수긍했다.

         

       “한데 레이라는 왜 이한 경에게 보내신 겁니까?”

       “아아, 시녀 말인가?”

         

       뜬금없이 왕성이 아닌 앞으로 이한에게 출근시킨 시녀.

       어떠한 의도로 그녀를 이한에게 보낸 걸까?

       혹, 레이라를 팽한 것일지도….

         

       “동기부여가 되라고.”

       “……예에?”

       “아직도 의동생은 여의 ‘부탁’을 들어줄지 망설이는 중이겠지. 허나, 젊은 여성과 같이 생활하다 보면 몸이 동하지 않겠는가, 여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게 이득임을 알게 되겠지.”

       “…….”

       “머리가 좀 모자라긴 하나, 미색은 제법 나쁘지 않은 아이니, 후후. 충분히 정신적 고통을 줄 것이야.”

       “……잔인도 하십니다, 정말.”

         

       다시금 생각하건데, 이한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어쩌다 이런 여자에게 걸려서….

         

       노집사는 제가 모시는 주인의 치밀함과 사악함에 그만 고개를 저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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