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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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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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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상체에는 두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흉터가 남아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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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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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게 가라앉은 노아의 목소리에 순간 쫄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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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이건 그…아까 식당에서 말했던 실험 자국? 같은 건데 하나도 안 아파! 모양만 험악해 보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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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말하며 속으로 기분 좋게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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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으, 역시 친구가 좋구나. 이런 거로 걱정도 받고.’
    ​
    ​
    개그 세계에선 웬만한 일로 죽을 일이 없었기에(죽더라도 장례식 중에 벌떡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걱정 받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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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일이 있더라도 “힘내.”라는 위로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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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잘생긴 녀석들은 종일 걱정만 받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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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지 같은 외모지상주의는 어느 세계든 남아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적에도, 여학생들이 학교의 왕자님을 만나겠다며 덤프트럭처럼 달려와 내 몸을 치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
    ​
    그때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지고 발목이 나가, 삼일동안 입원했었다.
    ​
    ​
    그런 삶을 살아왔다 보니 노아의 걱정은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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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넌 내 절친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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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에 성공해도 그 마음 잊지 말아줘!’ 따위의 생각을 하며 흐뭇하게 웃었지만, 노아의 표정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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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그으…아,그래! 내가 그걸 말 안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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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니 내 몸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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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곧바로 손뼉을 치고는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진 가위를 들어 올렸다.
    ​
    ​
    어제 네로의 옷을 수선하느라 사용했던 가위였다. 나는 가위를 들고, 방 한쪽에 쌓아놓은 빨랫감 중 오래되어 버릴 때가 된 것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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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달라. 치명적인 상처도 나에겐 그다지 큰일이 아니거든.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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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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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위로 손등을 가볍게 찔렀다. 그러자 두부를 베는 것처럼 가위가 부드럽게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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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개그 필터가 적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손등에 엄연히 단단한 뼈와 근육이 존재하기에 이렇게 쉽게 뚫리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개그 세계에선 오로지 웃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손등이 부드럽게 뚫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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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 푸슛하고 치솟기 무섭게 가위를 치우고 옷감으로 상처를 가렸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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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이러다 죽겠네!’
    ​
    ​
    그렇게 생각하며 울상을 짓자. 피가 단번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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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래 개그 세계에선 ‘히히 난 멀쩡하지롱!’라고 생각하면 보통 하늘에서 커다란 간판 따위가 떨어진다. 
    ​
    ​
    반대로 ‘아이고 나 죽네!’하면서 난리를 치면 보통 상처가 빠르게 낫는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나 죽네’가 효과적이었다.
    ​
    ​
    그런 내 예상대로 옷감을 치우자 말끔한 피부가 나타났다. 물론 피부가 막 붙어 불긋한 흔적이 조금 남아있긴 했다.
    ​
    ​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
    ​
    “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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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이라는 말을 이으려는 순간, 멍한 얼굴로 서 있던 노아가 달려와 내 손을 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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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너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
    ​
    노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잘 깨지는 유리를 잡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피로 젖어있는 손을 살펴보았다. 
    ​
    ​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아문 부분을 보여주었다.
    ​
    ​
    “봐봐, 벌써 아물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빠르게 낫는다고 안 아픈 게 아니잖아!”
    ​
    ​
    노아의 호통에 나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거리며 눈을 도륵도륵 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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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는 별로 안 아파. 살짝 따끔 정도? 정전기보다 안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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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그 세계에선 정전기가 일어나면 높은 확률로 벼락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지만,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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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다지 아프지도 않고 금방 낫기도 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
    ​
    노아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욕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
    ​
    “전,혀 전혀 괜찮지 않아. 전부 잘못됐어.”
    ​
    ​
    노아가 내 어깨를 거칠게 잡으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직시했다.
    ​
    ​
    “아프지 않다고, 금방 낫는다고 타인이 너의 몸을 함부로 희롱해도 될 리가 없잖아!”
    ​
    ​
    노아의 말에 내 머릿속은 고장 나고 말았다. 찰나의 순간 개그 세계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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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납치되었다가 겨우 돌아와서 들었던 “나갔었니?”라는 엄마의 인사.
    ​
    똑같이 다쳤는데 외모가 평범하단 이유로 한쪽으로 던져졌던 경험.
    ​
    제 빚을 대신 갚아달라며 매드사이언티스트에게 날 팔아넘기던 친구 등등.
    ​
    ​
    “흐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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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노아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
    ​
    “노아 넌 정말 착한 녀석이야 흐어엉!”
   
    ​
    노아는 분명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가 분명할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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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지지 관계에서 벗어나 노아와 난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노아를 향한 공격은 나를 향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
    ​
    ​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노아가 몸에 힘을 풀며 나를 껴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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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흐흡, 같은 남자 놈이 껴안은 건데도 발로 차지도 않고 받아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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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 너는 얼마나 천사인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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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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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는 서럽게 우는 리안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입술을 깨물었다.
    ​
    ​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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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동생인 네로와 단둘이 살아남게 된 이후부터 노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생존’이었다. 
    ​
    ​
    마왕의 손에 떨어진 왕국에서 ‘동정’같은 감정은 사치였다.
    ​
    ​
    노아는 살아남기 위해 네로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외면했다. 아니,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
    ​
    아이들을 대신해서 팔려가 죽어주는 것 말고는 도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아는 무수히 많은 죽음을 외면하며 제 동생을 지켜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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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생을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살인조차 저지를 수 있을 것 같던 믿음이 펑펑 울고 있는 남자로 인해 혼란으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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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리안이 실험을 받지 않는다면…네로가 실험을 받게 될지도 몰라.’
    ​
    ​
    ‘생존’을 위해선 리안을 외면해야 했다. 그가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에 안도하며 관망해야 했다. 하지만 노아는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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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다행이라며 웃어 보이는 리안을 단호하게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는다고 해도 노아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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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를 대신해 실험체가 될 수도 없었고, 다른 아이들을 실험체로 쓰라며 내놓을 수도 없었다.
    ​
    ​
    노아는 그 간극에서 오는 무력감에 숨이 턱 막혔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막막함이 명치 부근을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
    ​
    그 순간, 리안이 노아의 어깨를 밀어내며 떨어졌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숨기지 못한 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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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훌쩍, 고마워 노아야. 나 앞으로 실험도 열심히 받고 밥도 열심히 할게.”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희롱당하는 건 당연하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나 외에 다른 사람은 힘들잖아. 거기다 다들 어리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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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조금전까지 울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연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마주친 눈동자 속에서 노아는 태어나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었다.
    ​
    ​
    약하고 어린 아이들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는 ‘어른의 눈빛’이 노아를 똑바로 직시했다. 노아는 덜컥 굳은 채 멍하니 리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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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실험이나 요리 쪽으로 최선을 다해볼 테니까, 노아 너는 아이들을 최대한 챙겨줘.”
    ​
    ​
    항상 제 동생을 지키기 위해 털을 곤두세운 노아에게 리안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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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지켜줄게, 함께 소중한 사람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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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어린 나이에 철이 들어야 했던 노아에겐 너무나 달콤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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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를 향한 죄책감, 죄악감을 무시하고 다정한 웃음에 속아 넘어가기만 하면, 그녀는 그에게 의지한 채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
    무수히 많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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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가 좀 더 성숙하고 경험이 많은 어른이었다면 리안을 좀 더 다그치고 혼을 냈겠지만, 그녀는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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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같이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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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평생을 후회할 선택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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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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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고 왜 전부 안 통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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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은 이를 갈며 만들어낸 독약을 바닥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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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걸작을 만들기 위한 길은 정말 험하구나. 온 세상이 나를 이리도 방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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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억,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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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바닥에 던져진 독약을 발로 마구 뭉갰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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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벗겨지지 않는 거야!”
    “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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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물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온갖 독약에 온몸이 절여진 소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늘어져 있다가 도반의 발에 차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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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름다운 피부만 있으면 정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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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은 씩씩거리며 몸을 휙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엔 다양한 몸으로 엮인 키메라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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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후…안되겠어. 역시 그 독을 구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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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피부와 부드러운 머릿결을 가지고 있지만, 빼빼 마르고 왜소한 몸 때문에 소녀는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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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도반은 머리 가죽과 피부를 벗겨 가장 아끼는 키메라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이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소녀에겐 이상할 정도로 독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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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완전히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피부를 부드럽게 벗겨낼 정도는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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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마지막 남은 재고를 미아가 사 갔다고 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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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은 눈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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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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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투베론님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약간 크리스마스 나홀로X에 나오는 도둑(도반)이 X빈네 집에 찾아가는 장면이 떠오르는 군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정말 즐겁게 행복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

노아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상체에는 두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흉터가 남아있었다.

“너,이거…”

낮게 가라앉은 노아의 목소리에 순간 쫄아버렸다.

“어? 어,이건 그…아까 식당에서 말했던 실험 자국? 같은 건데 하나도 안 아파! 모양만 험악해 보이는 거야.”

그리 말하며 속으로 기분 좋게 웃음 지었다.

‘크으, 역시 친구가 좋구나. 이런 거로 걱정도 받고.’

개그 세계에선 웬만한 일로 죽을 일이 없었기에(죽더라도 장례식 중에 벌떡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걱정 받는 일이 없었다.

큰일이 있더라도 “힘내.”라는 위로가 전부였다.

‘물론…잘생긴 녀석들은 종일 걱정만 받을 수 있지…’

거지 같은 외모지상주의는 어느 세계든 남아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적에도, 여학생들이 학교의 왕자님을 만나겠다며 덤프트럭처럼 달려와 내 몸을 치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지고 발목이 나가, 삼일동안 입원했었다.

그런 삶을 살아왔다 보니 노아의 걱정은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넌 내 절친이다. 정말!’

‘나중에 성공해도 그 마음 잊지 말아줘!’ 따위의 생각을 하며 흐뭇하게 웃었지만, 노아의 표정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그으…아,그래! 내가 그걸 말 안 했구나!”

생각해보니 내 몸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손뼉을 치고는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진 가위를 들어 올렸다.

어제 네로의 옷을 수선하느라 사용했던 가위였다. 나는 가위를 들고, 방 한쪽에 쌓아놓은 빨랫감 중 오래되어 버릴 때가 된 것을 챙겼다.

“사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달라. 치명적인 상처도 나에겐 그다지 큰일이 아니거든. 이렇게 -..”

푹!

가위로 손등을 가볍게 찔렀다. 그러자 두부를 베는 것처럼 가위가 부드럽게 들어갔다.

이게 개그 필터가 적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손등에 엄연히 단단한 뼈와 근육이 존재하기에 이렇게 쉽게 뚫리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개그 세계에선 오로지 웃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손등이 부드럽게 뚫려버린다.

피가 푸슛하고 치솟기 무섭게 가위를 치우고 옷감으로 상처를 가렸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고, 이러다 죽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울상을 짓자. 피가 단번에 멈췄다.

원래 개그 세계에선 ‘히히 난 멀쩡하지롱!’라고 생각하면 보통 하늘에서 커다란 간판 따위가 떨어진다.

반대로 ‘아이고 나 죽네!’하면서 난리를 치면 보통 상처가 빠르게 낫는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나 죽네’가 효과적이었다.

그런 내 예상대로 옷감을 치우자 말끔한 피부가 나타났다. 물론 피부가 막 붙어 불긋한 흔적이 조금 남아있긴 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짜 -…”

‘잔!’이라는 말을 이으려는 순간, 멍한 얼굴로 서 있던 노아가 달려와 내 손을 채갔다.

“너,너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노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잘 깨지는 유리를 잡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피로 젖어있는 손을 살펴보았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아문 부분을 보여주었다.

“봐봐, 벌써 아물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빠르게 낫는다고 안 아픈 게 아니잖아!”

노아의 호통에 나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거리며 눈을 도륵도륵 굴렸다.

“그,나는 별로 안 아파. 살짝 따끔 정도? 정전기보다 안 아파!”

개그 세계에선 정전기가 일어나면 높은 확률로 벼락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지만,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다지 아프지도 않고 금방 낫기도 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노아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욕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전,혀 전혀 괜찮지 않아. 전부 잘못됐어.”

노아가 내 어깨를 거칠게 잡으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직시했다.

“아프지 않다고, 금방 낫는다고 타인이 너의 몸을 함부로 희롱해도 될 리가 없잖아!”

노아의 말에 내 머릿속은 고장 나고 말았다. 찰나의 순간 개그 세계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납치되었다가 겨우 돌아와서 들었던 “나갔었니?”라는 엄마의 인사.

똑같이 다쳤는데 외모가 평범하단 이유로 한쪽으로 던져졌던 경험.

제 빚을 대신 갚아달라며 매드사이언티스트에게 날 팔아넘기던 친구 등등.

“흐으..”

“…!”

눈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노아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노아 넌 정말 착한 녀석이야 흐어엉!”

노아는 분명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가 분명할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결심했다.

오늘부터 지지 관계에서 벗어나 노아와 난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노아를 향한 공격은 나를 향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노아가 몸에 힘을 풀며 나를 껴안아 주었다.

‘크흐흡, 같은 남자 놈이 껴안은 건데도 발로 차지도 않고 받아주다니…’

노아, 너는 얼마나 천사인 거냐!

***

노아는 서럽게 우는 리안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제 동생인 네로와 단둘이 살아남게 된 이후부터 노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생존’이었다.

마왕의 손에 떨어진 왕국에서 ‘동정’같은 감정은 사치였다.

노아는 살아남기 위해 네로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외면했다. 아니,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대신해서 팔려가 죽어주는 것 말고는 도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아는 무수히 많은 죽음을 외면하며 제 동생을 지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살인조차 저지를 수 있을 것 같던 믿음이 펑펑 울고 있는 남자로 인해 혼란으로 변질되었다.

‘만약 리안이 실험을 받지 않는다면…네로가 실험을 받게 될지도 몰라.’

‘생존’을 위해선 리안을 외면해야 했다. 그가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에 안도하며 관망해야 했다. 하지만 노아는 그럴 수 없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다행이라며 웃어 보이는 리안을 단호하게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는다고 해도 노아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대신해 실험체가 될 수도 없었고, 다른 아이들을 실험체로 쓰라며 내놓을 수도 없었다.

노아는 그 간극에서 오는 무력감에 숨이 턱 막혔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막막함이 명치 부근을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리안이 노아의 어깨를 밀어내며 떨어졌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숨기지 못한 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훌쩍, 고마워 노아야. 나 앞으로 실험도 열심히 받고 밥도 열심히 할게.”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희롱당하는 건 당연하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나 외에 다른 사람은 힘들잖아. 거기다 다들 어리기도 하고.”

“…!”

리안은 조금전까지 울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연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마주친 눈동자 속에서 노아는 태어나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었다.

약하고 어린 아이들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는 ‘어른의 눈빛’이 노아를 똑바로 직시했다. 노아는 덜컥 굳은 채 멍하니 리안을 바라보았다.

“내가 실험이나 요리 쪽으로 최선을 다해볼 테니까, 노아 너는 아이들을 최대한 챙겨줘.”

항상 제 동생을 지키기 위해 털을 곤두세운 노아에게 리안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지켜줄게, 함께 소중한 사람을 지키자.

너무나 어린 나이에 철이 들어야 했던 노아에겐 너무나 달콤한 말이었다.

그를 향한 죄책감, 죄악감을 무시하고 다정한 웃음에 속아 넘어가기만 하면, 그녀는 그에게 의지한 채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노아가 좀 더 성숙하고 경험이 많은 어른이었다면 리안을 좀 더 다그치고 혼을 냈겠지만, 그녀는 너무 어렸다.

“…그래, 같이 열심히 해보자.”

노아는 평생을 후회할 선택을 내리고 말았다.

***

“이것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고 왜 전부 안 통하는 거야!”

도반은 이를 갈며 만들어낸 독약을 바닥에 던졌다.

“아아 -…걸작을 만들기 위한 길은 정말 험하구나. 온 세상이 나를 이리도 방해하니!”

퍼억,퍽!

그는 바닥에 던져진 독약을 발로 마구 뭉갰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왜! 벗겨지지 않는 거야!”

“끄윽…”

오물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온갖 독약에 온몸이 절여진 소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늘어져 있다가 도반의 발에 차여 날아갔다.

“그 아름다운 피부만 있으면 정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도반은 씩씩거리며 몸을 휙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엔 다양한 몸으로 엮인 키메라가 서 있었다.

“후우,후…안되겠어. 역시 그 독을 구해야 해!”

고운 피부와 부드러운 머릿결을 가지고 있지만, 빼빼 마르고 왜소한 몸 때문에 소녀는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없었다.

이에 도반은 머리 가죽과 피부를 벗겨 가장 아끼는 키메라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이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소녀에겐 이상할 정도로 독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피부를 부드럽게 벗겨낼 정도는 되지 못했다.

“…분명 마지막 남은 재고를 미아가 사 갔다고 했었지?”

도반은 눈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야겠군.”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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