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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악의 간부 피프스fifth. 

   레비탄.

   통칭 레비땅.

     

   악의 조직의 간부인 그녀는 지금 절찬리 사회 복귀중이었다. 그것도 무려 경찰로서.

     

   “사회 복귀……?”

   “네에… 보스가 그런 걸 잘 챙겨주시거든요.”

     

   아일레가 말하기를- 악의 조직 따위에 속해 있을 필요는 없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사회로 나가도 좋다. 악의 조직에는 그냥 이름만 올려놓아라. 자신을 이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이용해라.

     

   ─라는 것이 레갈리아의 지론이라고 한다. 인재를 좁은 새장 안에 가두는 것보다, 내 손아귀에서 떠나더라도 세상에 풀어주고.

     

   그리하여 떠나간 새가 언젠가 자신을 길러준 주인을 기억하고 되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낭만을 추구하는 것.

     

   열 살배기 어린애다운 낭만이 보스에게는 있었다.

     

   ‘그럼 나도?’

     

   나는 잠시 보스에게 조직에서 탈퇴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떠올렸다. 아일레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조직에서 나가겠다 말했단 이유로 위조 신분증을 말소시키거나 하지는 않으리라.

     

   보스라면 아마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지원해주겠지. 그렇다면 자신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과학 지식을 살릴 수 있는 연구직. 

     

   그래. 바로 이블스 기업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이블스 기업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무척이나 뛰어난, 세계적인 공룡 기업이었으니까. 히어로나 빌런 아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는 최고의 선택지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결국 나가봐야 보스 밑인 건 똑같고…… 심지어는 위에 쓸데없는 상사까지 생긴다 이거네.’

     

   보스가 특채로 뽑아준다면야 연구소장 정도는 얼마든지 차지할 수 있겠지만, 그 연구소장도 위에 그 무엇도 두지 않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존재는 아니다. 기업 내에서도 이사진이니 연구부장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든지 간섭할 수 있는 자리.

     

   쓸데없이 위에 상사를 더 만들어서 정치 싸움하는 것보다야, 그냥 악의 조직 과학자로 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지금은 섬길 사람이 보스 한 사람밖에 없으니까.

     

   “아하핳-! 그 반응 뭐양! 보스가 진짜 말 안 해줬나 보넹?”

   “예, 뭐. 일단은 신입이니까요. 그보다 그 말투는 뭡니까?”

   “왜엥? 거슬려? 그만둘깡?”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싫엉-!”

     

   꺄하하- 웃음 터트리는 레비탄을 보면서, 나는 그녀를 따라 헛웃음을 터트렸다. 쓸데없이 텐션이 높다. 정신 사나울 정도로. 나 같은 방구석 연구자한테는 퍽 버거운 타입.

     

   과연 아일레도 그런 레비탄이 퍽 껄끄러운지,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도 굳이 나를 불러다가 쇼핑에 데려온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런 사람이랑 같이 쇼핑에 오면 기가 쪽 빨려서 연약한 아싸찐따 아일레는 순식간에 마른 오징어가 되버릴 것이다.

     

   “─그래서? 왜 하필 경찰입니까?”

   “으응?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 싶었으니까-!”

   “히어로는…… 아, 실언이었습니다.”

   “아하핳-! 맞아! 실언이양!”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면 경찰보다 히어로가 제격이 아니냐는 말을 꺼내려던 나는 그녀의 직업을 떠올리곤 멈칫했다. 그렇다. 그녀는 경찰이기 이전에 빌런이었다. 그것도 이 도시 최대의 빌런. 악의 조직의 일원.

     

   그런 빌런이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이유로 히어로가 된다? 그건 완전 짜고 치는 연극이 아닌가. 사람들이 피해 입는 모습을 보기 싫다고 사전에 예고하고 출동하는 악의 조직이었지만, 레갈리아는 생각보다 그런 여론에 민감했다.

     

   “그런데 빌런이 경찰직을 맡아도 됩니까? 범죄자는 공무원이 못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보스가 해결해줬엉-!”

   “아, 그렇지 참.”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E 시. 이블스 사가 지배하는 도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도시의 시장이요, 나라 전체의 투표로 뽑힌 대통령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초거대기업이 다스리는 지역.

     

   그깟 경찰에 제 부하 한 명 끼워 넣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리라. 하물며 능력 있고 의욕 있는 신입이라면 더더욱.

     

   “그나저나, 에이트라고 했징-? 그거 정말이야?”

   “……뭘 말씀하시는지?”

   “갈름이의 몸을 고쳐줬다는 거-!”

     

   처음 듣는 말.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본 레비탄은 잘못 알았다는 듯 제가 한 말을 취소하고 뒤로 물러섰다.

     

   옆에 선 아일레가 어째선지 얼굴 표정을 가득 일그리곤 이쪽을 바라보았다. 

     

   [─물류 창고에서 C-1 상황 발생. 지원 바람]

     

   그리고 그때, 어깨에 달아두었던 무전에서 지원 요청이 날아들었다. 그 무전을 들은 레비탄은 곧장 몸을 일으키며 손을 흔들었다.

     

   “아- 나도 가봐야겠넹-! 에이트, 아일레. 잘 만났엉-! 다음에 또 봥!”

   “무슨 일인가요?”

   “비.밀- 이라고 하고 싶지망. 이건 에이트 너랑도 관련이 있는 거니까 이야기해줄겡.”

     

   레비탄은 마치 엄청난 비밀을 말한다는 듯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자기가 만든 로봇. 그것만 전문적으로 노리는 강도가 나타났엉.”

   “그런가요.”

   “응-! 별로 안 놀라넹?”

   “인간이 다 그렇죠 뭐.”

   “……으흐응- 인간이라. 응! 레비땅은 자기가 마음에 들어!”

     

   대체 뭐가 마음에 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레비탄은 그리 말하며 잽싸게 사라졌다. 휘이잉- 내달려서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뒤늦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우…… 기 빨린다.”

   “마, 맞아요…….”

   “아- 아일레. 미안. 같이 콜라보 카페 가자고 했었는데…….”

   “괘, 괜찮아요-! 지금부터라도…….”

   “그럴까?”

     

   그렇게 아일레와 둘이 남은 나는 쫘아악- 빨렸던 기가 다시 되돌아오는 느낌을 받으며 같이 마법소녀 콜라보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는 뽑기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고, 그곳에서 1등상(마법소녀 피규어)에 당첨되었다. 아일레가 부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법소녀 피규어를 손에 쥐며 생각했다.

   운이 좋군.

     

     

   * * *

     

     

   생산을 중단한 네모버스터는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어째선지 가격에 미친 듯이 거품이 끼기 시작한 것이다. 9.99달러로 판매를 시작한 제품이 이젠 천 달러를 주고도 쉽게 구할 수 없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가격이 오르는 걸 보게 된다면 사람 마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 오르지 않을까. 가격이 더 올라가지 않을까.

     

   이때, 유리한 지점에 서 있는 건 기존에 네모버스터를 구매한 구매자들이었다. 생산도 중단되었겠다. 비슷한 성능의 장난감이 나올 일도 없겠다(적어도 이 가격에 이만한 물건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일반인들도 족히 알고 있었다).

     

   그저 손 놓고 숨쉬기만 하고 있으면 승리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네모버스터를 원하는 사람들은 구매가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가질 수 없다면 훔치면 되는 것이다.

     

   “엄마아아-! 내 장난감!”

   “어라? 분명 여기 뒀었는데….”

   “도, 도둑이야!”

     

   그들은 가정집, 유명 인플루언서의 사무실, 코인 채굴을 돌리는 채굴장, 대형 장난감 가게의 창고 등등- 네모버스터의 재고가 있을 법한 장소란 장소는 모조리 털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이 뒤늦게 네모버스터의 보유를 자기신고하고 보호 요청을 해달라고 공표했지만, 그건 악수였다.

     

   상대방은 경찰 내부에 내통자라도 있는 건지 그 정보를 역으로 이용해 털어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만 대가 넘는 네모버스터가 한 자리에 모였다.

     

   “으흐흐- 몇 번을 봐도 말도 안 되는 성능이로군.”

     

   천재 과학자, 닥터 쿠로이는 제 앞에 놓인 수만 대의 네모버스트의 회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이렇게나 많은 실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회로를 재현하거나 그 방법을 이해하는 건 지난한 일이다.

     

   천재 매드 사이언티스트로서의 자존심이 붕괴하는 일이었으나, 고작 그 정도로 멘탈이 무너져 내리면 천재 과학자라는 이름이 운다.

     

   “하지만 이 천재님에게 걸리면 그것도 소용없단 말씀.”

     

   닥터 쿠로이는 분해한 네모버스터의 회로를 한데 모았다. 그리 모은 회로로 새로운 회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에이트가 만든 장난감 회로의 구성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유튜버들이 회로로 게임을 돌리고, 컴퓨터의 그래픽 연산을 대신하듯- 몇몇 사람들은 그 자그마한 회로에서 여러가지 가능성을 느꼈다.

     

   여기 있는 닥터 쿠로이도 마찬가지였다.

     

   “─완성이다.”

     

   수백 개의 회로를 병렬 연결해서 만든 초인공지능. 그를 완성한 닥터 쿠로이는 전원을 투입했다. 아주 조그마한 전력만으로도 작동하는 회로가 움직이며 닥터 쿠로이가 사전에 세팅한 설정에 따라 움직인다.

     

   기계 인형이 눈을 뜬다.

     

   [─반갑습니다. 주인님.]

   “오, 오오-! 그래! 성공했구나!”

     

   닥터 쿠로이는 제 앞에 서 있는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아직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초과학의 산물.

     

   그 경지에 세계 최초로 발을 디딘 것이다.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업적. 닥터 쿠로이는 제 이름이 대대로 남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하며 안드로이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서 보여주거라. 네 무서움을.”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잠시 후.

   귀여운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은 안드로이드가 닥터 쿠로이 앞에서 귀여운 애교를 부렸다.

     

   [어서오십시오. 주인님! 주문은 뭐로 하시겠어요? 목욕? 식사? 아니면…… 저?]

   “으흐흐흐-! 너로! 너로 하마!”

   [꺄아아-! 주인님 대담하세요!]

     

   이 날.

   이 세상에 처음으로 강인공지능이 탄생했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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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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