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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12화. 뮤턴트가 아니라 크리처!
     
     
     
     
     
     
     
     
   모두가 바짝 긴장해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고,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로 외부 기척에 집중했다.
   그런데, 다시 소리가 멈췄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질 때, 강호가 물으려고 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저게 뭐지?”
     
   입술을 잘근 깨물고 있던 레이나가 작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하지만 그녀의 대답을 다 들을 수 없었다.
     
   쿠웅. 쿵쿵쿵.
   쿠우웅.
   끼이이익!
   쩌저적!
     
   대피소의 강화 셔터가 찢겨 벌어졌다.
     
   대피소 안에서 봤을 때, 정면의 강화 셔터 가장자리가 찢겨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뚫고 들어 온건 석회 같은 느낌의 거대하고 투박한 낫이었다.
     
   모두가 그 장면을 보며 경악하는 중에, 마치 해머로 쇠문을 힘껏 내리치는 것 같은 충격음이 사방에서 동시에 터졌다.
     
   쿠우우웅.
   쾅. 쾅쾅.
     
   그때, 레이나가 탄식처럼 말을 토해냈다.
     
   “이종 뮤턴트. 실험체였던 뮤턴트요.”
     
   조금 전 하려던 말을 그제야 뱉어낸 것이다.
     
   “…….”
     
   강호는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빠른 속도로 찢기고 있는 셔터 앞으로 묵묵히 가 섰다.
   그러고는 오른팔을 살짝 들었다.
     
   우우우웅.
   파츠츠츠츠.
     
   깊은 울림의 공명과 번개.
   이젠 너무도 익숙한 과정을 거쳐 플라즈마 기체가 거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쉬이이익!
     
   마치 거대한 비행체의 터빈이 돌아가는 듯한 굉음 뒤로 번개가 사방으로 치뻗었다.
     
   파츳!
   츠츠츠츠.
     
   강호는 에너지가 증폭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슉.
     
   쿠우웅.
     
   묵직한 충격에 대피소 전체가 진동했다.
     
   드드드드.
     
   뒤이어 한 템포 늦게 요란한 폭발이 일었다.
     
   꽈아아아앙!
   쿠아앙!
     
   그러자 찢어진 셔터 너머에서 괴성이 터졌다.
     
   끄에에에엑!
   끼아악!
     
   털썩.
   철푸덕.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대피소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밖의 기척에 집중했다.
   일단 강호의 빠른 대처로 위급한 상황은 넘긴 것 같았지만, 여전히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른 데서 문제가 터졌다.
     
   “으아아악!”
     
   비명은 곧 절규가 됐다.
     
   “사, 살려줘!”
     
   한강호가 위력을 펼친 정면 도어에 집중하고 있던 일행들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봤다.
     
   “왜?!”
   “무슨 일인데?”
     
   언제 열렸는지, 후면 셔터가 반쯤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서 뭔가가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헨리를 낚아챘다.
     
   “히, 히힛, 으헤헤헤헤!”
     
   뭔가에 끌려 나가던 헨리는 결국 정신을 놔 버렸다.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던 그는 곧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쿵.
     
   그때를 놓치지 않고 사토시가 달려 나가며 슬라이딩을 했다.
     
   타탓!
   촤아아.
     
   “헨리! 손 뻗어요!”
     
   순간, 그의 이능이 발휘됐다.
   민첩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움직임에 잔상이 느껴졌다.
     
   그렇게 빠르게 미끄러지며 헨리에게 닿았지만, 헨리는 사토시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미지의 괴력에 다시 쑥 빠져나가 버리는 바람에 사토시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
     
   움직임이 멈춘 사토시는 감히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찢긴 정면의 문은 좌우로 슬라이딩 되는 미닫이 방식인 것과 달리, 후면의 문은 위아래로 개폐되는 셔터 구조였다.
   반쯤 올라가다가 멈춘 문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으드득, 까드득, 우적.
     
   2m? 아니, 3m는 될 것 같은 크기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괴생명체가 두 손으로 헨리의 몸통을 붙잡고 그의 머리를 오독오독 씹고 있었다.
     
   “으으.”
     
   사토시는 기겁했다.
   본능인 듯 누운 상태로 버둥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헨리의 머리가 사라지고 몸통이 순식간에 뜯겨나갔다.
   팔 한쪽이 툭 떨어졌다.
   그리곤 이내 검붉은 피가 내장과 함께 질퍽하고 쏟아졌다.
     
   촤아아아.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는 거대 괴수의 눈은 붉은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조금도 현실감 없는 광경이었지만,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사토시가 어느 정도 몸을 뒤로 뺏을 때, 헨리의 다리 한쪽이 다시 떨어졌다.
     
   철퍽.
     
   그때까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리사가 그 다리를 보고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꺄아아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화 티타늄 합금 재질의 앞문에 이상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
   끼기기기기.
     
   강호의 공격으로 쓰러진 줄 알았던 미상의 존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뮤턴트가 아니라 크리처! 그렇다면 이쪽은 또 뭐지?!’
     
     
   사실 강호는 이곳 종 보관소에 왔을 때까지도 뮤턴트나 크리처가 뭔지 몰랐다.
   최근 재난 매뉴얼의 업데이트 된 내용을 통해 알게 됐다.
     
   둘 다 외부의 특정 조건에 의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거나 의도적인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생명체를 뜻한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뮤턴트는 인간과 유사했는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지능과 자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변이 형질 속성의 이능력을 가졌다.
     
   반면 크리처는 이종 변이 몬스터였는데, 이성이나 지능은 없고 본능만 존재하는 일종의 야수, 혹은 괴물이었다.
     
   당장 셔터 앞에서 헨리의 잔해를 오물거리고 있는 괴수가 바로 전형적인 크리처였다.
     
   ‘놈의 식사가 끝나면 당장 다음 목표는 나머지 일행이 되겠군.’
     
   정면의 문도 곧 마저 찢어질 것 같았다.
     
   “하아아.”
     
   한강호는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군 복무 시절, 참 다양한 수많은 작전을 겪어봤지만, 어제오늘 이틀 동안 겪고 있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니, 지금은 차라리 꿈이라고 해야 이해가 수월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이젠 당황스럽지도 않아.’
     
   그는 어느새 감정을 덜어내고 최대한 간략하게 지시했다.
     
   “리사, 셔터가 다 열리기 전에 저 괴물을 뒤로 물러나게 해.”
     
   방법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이능을 충분히 활용할 만큼의 경험이 있다.
     
   “알겠어요.”
     
   놀라 당황하던 리사도 강호가 나서자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사토시는 대기하면서 리사의 공격에 놈이 반응하는 걸 살피고 빈틈을 찾아.”
   “네!”
     
   강호의 지시는 쉼 없이 이어졌다.
     
   “울프.”
     
   컹!
     
   “리사와 사토시를 보호해.”
     
   컹컹!
     
   이후 강호는 레이나를 돌아봤다.
   그녀도 강호를 마주 봤다.
   그렇게 잠깐, 서로를 마주 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아무리 아래층에서 좀비 웨이브를 뚫고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크리처나 뮤턴트는 전혀 다르다.
     
   조금 전 거대 괴수의 위력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직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폭발 등을 대비해 만든 방어 셔터를 찢는 것도 위력을 반증하는 일이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강호는 한편으로 호기심을 느끼는 자신이 신기했다.
     
   ‘하프 엘프의 능력을 볼 수 있게 됐군.’
     
   레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음에도 단 한 번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심지어 매번 최선의 판단과 대응 전략을 마련했다.
     
   ‘군인, 혹은 그에 준하는 일의 경험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남자는…. ’
     
   레이나가 강호의 수준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 또한 미 해군 항공대 여군 장교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눈빛 교환은 짧게 끝났다.
     
   “레이나. 엄호해.”
     
   그녀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순간, 강호의 어깨에 전류가 휘감겼다.
     
   파지직.
   찌릿!
     
   “모두, 지시한 작전의 시작은 내가 셔터를 박차고 나가면서부터다.”
     
   강호는 마치 작전 명령을 하달하듯, 짧고 간결하게 말을 마쳤다.
   동시에 그는 반쯤 찢긴 문을 어깨로 들이받아 부수고 밖으로 사라졌다.
     
   쾅!
     
   “이런! 엄호하라면서! 그렇게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면 뭘 어떻게 하라고!”
     
   뒤늦게 레이나가 강호의 뒤를 따라 셔터밖으로 튀어 나갔다.
     
   파핫.
     
   찢긴 셔터가 마저 뜯겨 나가고, 밖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리사와 사토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저, 저건 또 뭘까요?”
     
   거대한 전갈이었다.
   아니, 후면부 셔터에 있는 괴수처럼 그것 또한 정의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정체 모를 갑각류의 몸에 사람의 얼굴이 달려 있었다.
   양쪽 팔은 사마귀처럼 낫의 형태였고, 거미와 같은 여덟 개의 다리에는 송곳같은 돌기가 가득 솟아있었다.
     
   “으으.”
     
   그 기괴하고 끔찍한 모습에 사토시가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아니, 어디서 자꾸 저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이 기어 나오는 건데?!”
     
   그가 경악하는 순간, 달리던 강호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괴수를 향해 날아갔다.
     
   타탓!
   후우욱.
     
   괴수는 제게 날아드는 인간의 몸뚱이를 단칼에 갈라버리겠다는 듯 손 낫을 빠르게 휘둘렀다.
     
   쉬이익!
     
   커다란 몸집과 달리 무척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콰직.
     
   강호의 주먹과 괴수의 낫이 맞닿는 순간, 금속이 충돌해 깨지는 충격음이 울렸다.
   곧이어 강호의 어깨에서 시작된 눈부신 번쩍임이 그의 팔을 타고 뻗어나가며 금세 괴수의 몸을 휘감았다.
     
   파직.
   치지지직!
     
   그사이 강호는 바닥에 착지했고,
     
   턱.
     
   괴수는 고압 전류에 감전된 멧돼지처럼 사지를 미친 듯이 떨어댔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하지만 괴수는 끝내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분노를 터뜨리며 발광했다.
     
   그어어어어!
     
   괴수 아니랄까 봐,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괴성이 울렸고, 모두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인상을 써야 했다.
     
   그때였다.
   어디서 나온 건지 레이나의 모습이 괴수의 등 뒤쪽 공중에 스륵 나타났다.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깃털같이 가벼운 느낌의 하강과 착지 후,
     
   탓.
     
   괴수의 목으로 추정되는 곳에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마체테가 꽂혔다.
     
   푸욱.
     
   “끼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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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뮤턴트가 아니라 크리처!

모두가 바짝 긴장해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고,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로 외부 기척에 집중했다.

그런데, 다시 소리가 멈췄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질 때, 강호가 물으려고 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저게 뭐지?”

입술을 잘근 깨물고 있던 레이나가 작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하지만 그녀의 대답을 다 들을 수 없었다.

쿠웅. 쿵쿵쿵.

쿠우웅.

끼이이익!

쩌저적!

대피소의 강화 셔터가 찢겨 벌어졌다.

대피소 안에서 봤을 때, 정면의 강화 셔터 가장자리가 찢겨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뚫고 들어 온건 석회 같은 느낌의 거대하고 투박한 낫이었다.

모두가 그 장면을 보며 경악하는 중에, 마치 해머로 쇠문을 힘껏 내리치는 것 같은 충격음이 사방에서 동시에 터졌다.

쿠우우웅.

쾅. 쾅쾅.

그때, 레이나가 탄식처럼 말을 토해냈다.

“이종 뮤턴트. 실험체였던 뮤턴트요.”

조금 전 하려던 말을 그제야 뱉어낸 것이다.

“…….”

강호는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빠른 속도로 찢기고 있는 셔터 앞으로 묵묵히 가 섰다.

그러고는 오른팔을 살짝 들었다.

우우우웅.

파츠츠츠츠.

깊은 울림의 공명과 번개.

이젠 너무도 익숙한 과정을 거쳐 플라즈마 기체가 거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쉬이이익!

마치 거대한 비행체의 터빈이 돌아가는 듯한 굉음 뒤로 번개가 사방으로 치뻗었다.

파츳!

츠츠츠츠.

강호는 에너지가 증폭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슉.

쿠우웅.

묵직한 충격에 대피소 전체가 진동했다.

드드드드.

뒤이어 한 템포 늦게 요란한 폭발이 일었다.

꽈아아아앙!

쿠아앙!

그러자 찢어진 셔터 너머에서 괴성이 터졌다.

끄에에에엑!

끼아악!

털썩.

철푸덕.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대피소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밖의 기척에 집중했다.

일단 강호의 빠른 대처로 위급한 상황은 넘긴 것 같았지만, 여전히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른 데서 문제가 터졌다.

“으아아악!”

비명은 곧 절규가 됐다.

“사, 살려줘!”

한강호가 위력을 펼친 정면 도어에 집중하고 있던 일행들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봤다.

“왜?!”

“무슨 일인데?”

언제 열렸는지, 후면 셔터가 반쯤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서 뭔가가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헨리를 낚아챘다.

“히, 히힛, 으헤헤헤헤!”

뭔가에 끌려 나가던 헨리는 결국 정신을 놔 버렸다.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던 그는 곧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쿵.

그때를 놓치지 않고 사토시가 달려 나가며 슬라이딩을 했다.

타탓!

촤아아.

“헨리! 손 뻗어요!”

순간, 그의 이능이 발휘됐다.

민첩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움직임에 잔상이 느껴졌다.

그렇게 빠르게 미끄러지며 헨리에게 닿았지만, 헨리는 사토시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미지의 괴력에 다시 쑥 빠져나가 버리는 바람에 사토시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

움직임이 멈춘 사토시는 감히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찢긴 정면의 문은 좌우로 슬라이딩 되는 미닫이 방식인 것과 달리, 후면의 문은 위아래로 개폐되는 셔터 구조였다.

반쯤 올라가다가 멈춘 문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으드득, 까드득, 우적.

2m? 아니, 3m는 될 것 같은 크기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괴생명체가 두 손으로 헨리의 몸통을 붙잡고 그의 머리를 오독오독 씹고 있었다.

“으으.”

사토시는 기겁했다.

본능인 듯 누운 상태로 버둥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헨리의 머리가 사라지고 몸통이 순식간에 뜯겨나갔다.

팔 한쪽이 툭 떨어졌다.

그리곤 이내 검붉은 피가 내장과 함께 질퍽하고 쏟아졌다.

촤아아아.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는 거대 괴수의 눈은 붉은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조금도 현실감 없는 광경이었지만,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사토시가 어느 정도 몸을 뒤로 뺏을 때, 헨리의 다리 한쪽이 다시 떨어졌다.

철퍽.

그때까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리사가 그 다리를 보고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꺄아아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화 티타늄 합금 재질의 앞문에 이상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

끼기기기기.

강호의 공격으로 쓰러진 줄 알았던 미상의 존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뮤턴트가 아니라 크리처! 그렇다면 이쪽은 또 뭐지?!’

사실 강호는 이곳 종 보관소에 왔을 때까지도 뮤턴트나 크리처가 뭔지 몰랐다.

최근 재난 매뉴얼의 업데이트 된 내용을 통해 알게 됐다.

둘 다 외부의 특정 조건에 의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거나 의도적인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생명체를 뜻한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뮤턴트는 인간과 유사했는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지능과 자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변이 형질 속성의 이능력을 가졌다.

반면 크리처는 이종 변이 몬스터였는데, 이성이나 지능은 없고 본능만 존재하는 일종의 야수, 혹은 괴물이었다.

당장 셔터 앞에서 헨리의 잔해를 오물거리고 있는 괴수가 바로 전형적인 크리처였다.

‘놈의 식사가 끝나면 당장 다음 목표는 나머지 일행이 되겠군.’

정면의 문도 곧 마저 찢어질 것 같았다.

“하아아.”

한강호는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군 복무 시절, 참 다양한 수많은 작전을 겪어봤지만, 어제오늘 이틀 동안 겪고 있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니, 지금은 차라리 꿈이라고 해야 이해가 수월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이젠 당황스럽지도 않아.’

그는 어느새 감정을 덜어내고 최대한 간략하게 지시했다.

“리사, 셔터가 다 열리기 전에 저 괴물을 뒤로 물러나게 해.”

방법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이능을 충분히 활용할 만큼의 경험이 있다.

“알겠어요.”

놀라 당황하던 리사도 강호가 나서자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사토시는 대기하면서 리사의 공격에 놈이 반응하는 걸 살피고 빈틈을 찾아.”

“네!”

강호의 지시는 쉼 없이 이어졌다.

“울프.”

컹!

“리사와 사토시를 보호해.”

컹컹!

이후 강호는 레이나를 돌아봤다.

그녀도 강호를 마주 봤다.

그렇게 잠깐, 서로를 마주 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아무리 아래층에서 좀비 웨이브를 뚫고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크리처나 뮤턴트는 전혀 다르다.

조금 전 거대 괴수의 위력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직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폭발 등을 대비해 만든 방어 셔터를 찢는 것도 위력을 반증하는 일이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강호는 한편으로 호기심을 느끼는 자신이 신기했다.

‘하프 엘프의 능력을 볼 수 있게 됐군.’

레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음에도 단 한 번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심지어 매번 최선의 판단과 대응 전략을 마련했다.

‘군인, 혹은 그에 준하는 일의 경험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남자는…. ’

레이나가 강호의 수준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 또한 미 해군 항공대 여군 장교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눈빛 교환은 짧게 끝났다.

“레이나. 엄호해.”

그녀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순간, 강호의 어깨에 전류가 휘감겼다.

파지직.

찌릿!

“모두, 지시한 작전의 시작은 내가 셔터를 박차고 나가면서부터다.”

강호는 마치 작전 명령을 하달하듯, 짧고 간결하게 말을 마쳤다.

동시에 그는 반쯤 찢긴 문을 어깨로 들이받아 부수고 밖으로 사라졌다.

쾅!

“이런! 엄호하라면서! 그렇게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면 뭘 어떻게 하라고!”

뒤늦게 레이나가 강호의 뒤를 따라 셔터밖으로 튀어 나갔다.

파핫.

찢긴 셔터가 마저 뜯겨 나가고, 밖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리사와 사토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저, 저건 또 뭘까요?”

거대한 전갈이었다.

아니, 후면부 셔터에 있는 괴수처럼 그것 또한 정의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정체 모를 갑각류의 몸에 사람의 얼굴이 달려 있었다.

양쪽 팔은 사마귀처럼 낫의 형태였고, 거미와 같은 여덟 개의 다리에는 송곳같은 돌기가 가득 솟아있었다.

“으으.”

그 기괴하고 끔찍한 모습에 사토시가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아니, 어디서 자꾸 저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이 기어 나오는 건데?!”

그가 경악하는 순간, 달리던 강호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괴수를 향해 날아갔다.

타탓!

후우욱.

괴수는 제게 날아드는 인간의 몸뚱이를 단칼에 갈라버리겠다는 듯 손 낫을 빠르게 휘둘렀다.

쉬이익!

커다란 몸집과 달리 무척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콰직.

강호의 주먹과 괴수의 낫이 맞닿는 순간, 금속이 충돌해 깨지는 충격음이 울렸다.

곧이어 강호의 어깨에서 시작된 눈부신 번쩍임이 그의 팔을 타고 뻗어나가며 금세 괴수의 몸을 휘감았다.

파직.

치지지직!

그사이 강호는 바닥에 착지했고,

턱.

괴수는 고압 전류에 감전된 멧돼지처럼 사지를 미친 듯이 떨어댔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하지만 괴수는 끝내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분노를 터뜨리며 발광했다.

그어어어어!

괴수 아니랄까 봐,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괴성이 울렸고, 모두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인상을 써야 했다.

그때였다.

어디서 나온 건지 레이나의 모습이 괴수의 등 뒤쪽 공중에 스륵 나타났다.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깃털같이 가벼운 느낌의 하강과 착지 후,

탓.

괴수의 목으로 추정되는 곳에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마체테가 꽂혔다.

푸욱.

“끼아아아아아!”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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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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