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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서준의 검에서 일렁이는 금빛 검기. 그것을 본 흑호문의 문주가 이를 악물었다.

   

    ‘착각인 줄 알았는데, 절정경이 맞았단 말인가?’

   

    당황도 잠시, 그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본래 검기라는 것은 내공 소모가 심하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의 최선은 인원수의 우위를 바탕으로 소모전을 펼치는 것.

   

    “맞서지 말고 최대한 몸을 사려라!”

   

    문주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서준이 땅을 박찼다.

   

    일렁이는 금빛 검기가 허공에 궤적을 그린다. 그의 눈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는 문도 하나에게 꽂히고, 그대로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서억-

   

    부드럽게 그려진 궤적에 칼과 함께 사람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다. 

   

    “이놈이…!”

   

    분노한 문주가 사납게 달려든다. 그의 박도에 맺힌 탁한 검기가 일순 환하게 빛났다.

   

    ‘신검합일.’

   

    내가 검이 되고 검이 내가 되는 경지. 본래 그 깨달음에 대한 단초를 잡은 뒤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 정상이나, 서준의 경우는 반대였다.

   

    ‘이런 느낌이구나.’

   

    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만들어낸 검기를 통해 그 이전의 길을 되짚는다. 

   

    문주가 휘두르는 박도를 보며 서준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지금까지는 펼치지 못했던 기술. 하지만 지금이라면, 신검합일의 편린을 손에 쥔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황운신검. 그중 가장 먼저 배웠던 초식.

   

    운류청천雲流淸川

   

    맑은 강처럼 흐르는 구름이 검 위로 내려앉는다. 다가오는 박도의 끝에 검면이 닿고,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부드럽게 흘러가 베어낸다.

   

    촤아악-!

   

    피가 튀었다. 옆구리를 베인 문주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끄으윽…!”

    “문주님!”

   

    꼴에 충성심은 있는지 흑도 놈들이 달려든다. 서준은 검 위로 도도히 흐르는 검기를 보며 숨을 들이쉬었다.

   

    ‘더 효율적으로.’

   

    검 전체를 감쌀 필요 없다. 얇은 날 위로 기운이 어릴 정도면 충분하다.

   

    쉬이익-!

   

    사방에서 달려드는 문도들. 검을 꽉 틀어잡은 서준은 문득 일체감을 느꼈다.

   

    “검이 곧 나요, 내가 곧 검이라….”

   

    검이 손과 같다. 뜻이 향하는 길을 검이 뒤쫓는다. 

   

    숨이 턱 막힐 만큼 황홀한 궤적이 부드럽게 흘렀다.

   

    “커억…!”

    “아아아악…!”

   

    티끌만큼의 걸림도 없이 이어진 검로에 걸친 모든 것이 베여나갔다.

   

    흘러나온 피의 열기에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서준이 고개를 틀자 시선이 마주친 문주가 입술을 짓씹었다.

   

    “제기랄…!”

   

    그가 몸을 날린다. 서준이 있는 방향이 아닌, 높게 솟은 담벼락을 향해.

   

    “무, 문주님…!”

    “저 개새끼!”

   

    전의를 잃은 문도들을 두고 서준이 문주를 쫓았다. 문주가 훌쩍 뛰어 담벼락 위에 섰을 때, 서준 역시 뒤를 이어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저리 비켜!”

   

    땅에 내려선 문주는 길을 막는 어린아이에게 도를 휘둘렀다. 

   

    ‘잠깐. 어린아이? 이 시간에?’

   

    문주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을 때, 슬쩍 도를 피한 아이가 그의 발을 걸었다.

   

    “윽…!”

   

    옆구리의 부상과 예상치 못한 상황, 그에 더해 쫓기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일류 고수조차 발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다.

   

    우당탕-!

   

    넘어진 문주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금빛이 일렁이는 검이 미간을 겨누고 있었다.

   

    “자, 잠시만…! 영약을 원한다 했었지! 전부 내어줄 테니 살려주게!”

   

    하지만 문주의 가슴을 짓밟은 서준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춘봉아. 여길 왜 와.”

    “…그럼 내가 집구석에서 기도라도 하고 있어야 되냐?”

    “다치면 어쩌려고.”

    “누가 할 소리를.”

   

    춘봉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직 내가 너보다 세거든?”

    “얘가 큰일날 소리를 하네? 너 힘 그렇게 쓰면 바로 황천행이야 인마.”

    “남이사.”

   

    에휴, 한숨을 내쉰 서준이 문주의 미간에 검을 찔러넣었다. 푹-. 문주가 죽었다. 

   

    이 꼬맹이를 어쩌면 좋을까.

   

    검에 묻은 피를 털고 납검한 뒤, 춘봉이를 업고 다시 담벼락을 넘으니 문도들은 그새 죄다 도망가고 없었다.

   

    “뛸 테니까 꽉 잡아라?”

   

    대답 대신 춘봉이가 어깨를 꽉 붙잡는다. 

   

    혹여나 놈들이 도망가면서 영약을 훔쳐 달아나기라도 할까, 서둘러 문주가 있던 방으로 돌아온 서준이 주변을 휘 둘러봤다.

   

    “왠지 느낌이 와.”

   

    문주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영약이 있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뭔가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감각이 이곳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느껴졌다.

   

    “여긴가?”

   

    책장 앞에 선 서준이 그걸 발로 후려찼다.

   

    콰앙-!

   

    책장이 산산조각나며 그 뒤편에 숨어있던 금고의 모습이 드러났다.

   

    “강철인가?”

    “그런 거 같은데.”

   

    등에서 내린 춘봉이 금고를 두드렸다. 툭툭, 꽤 두꺼운지 울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흠, 죽이지 말 걸 그랬나?”

   

    머리를 긁적인 서준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 모습에 춘봉이 그를 말렸다.

   

    “야야! 검 부러져!”

    “검이야 다시 사면 되지.”

    “끄응….”

   

    괜히 안절부절 못 하던 춘봉이 뒤로 물러났다. 자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이 상황이 낯부끄러운 모양이다.

   

    “춘봉아.”

    “왜.”

    “오빠라고 한 번만 불러봐라.”

    “…갑자기? 내, 내가 왜?”

    “그러면 이거 부술 수 있을 듯.”

    “…진짜 지랄 좀 하지 마.”

   

    …오빠. 말끝에 작게 붙인 호칭에 괜히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까짓것 금고 하나 못 베겠냐.”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검끝의 하늘을 땅으로.’

   

    삼류 무공에 불과하다는 삼재검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평가절하 당할 무공이 아니라 생각한다.

   

    삼재검법의 초식은 결국 기초. 하지만 심법의 구결에 담긴 심상은 그 거창함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신검합일도, 초식의 형形도, 이 순간만큼은 머리에서 지운다.

   

    내 재능이, 그리고 내 뜻이 향하는 곳은 결국 기氣. 스스로 한계를 두는 대신 한 방울 기에 내 의지를 담아낸다.

   

    쐐액-!

   

    툭, 곧게 내리베어진 검이 가볍게 땅을 찍었다. 작게 콧김을 내쉬며 납검하자 춘봉이 눈을 깜빡였다.

   

    “너…, 뭐냐?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듯한 금고의 문을 슬쩍 밀어내니 반으로 잘린 문이 안으로 쓰러졌다.

   

    안으로 손을 넣어 금고의 잠금을 풀고, 반만 남은 문마저 떼어내니 그 내부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기를 다루는 재능 하나는 고금제일이라며. 그렇게 된 거지.”

   

    서준이 씩 웃으며 안에 놓인 목함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옆에 쌓인 은자 따위는 내팽개쳐둔 채 목함의 뚜껑을 살짝 여니 청아한 향이 뇌를 시원하게 씻어내리는 것 같았다.

   

    “흑목단黑木丹이네.”

   

    춘봉이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흑목단?”

    “어. 꽤 괜찮은 영단이야. 너 먹으면 되겠네.”

    “이걸 내가 왜 먹어? 니가 먹어야지.”

    “됐어.”

   

    춘봉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잖아. 나한테 필요한 건 양기라는 거. 흑목단은 목기木氣가 강하긴 한데, 조화에 중점을 둔 영약이라 나한텐 의미 없어.”

   

    서준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목함의 뚜껑을 닫고 품에 챙기더니, 금고 안에 있는 은자들을 적당한 보따리에 쓸어담아 어깨에 걸쳤다.

   

    “일단 집에 가자.”

   

   

    *

   

   

    집에 돌아온 서준은 은자 보따리를 대충 구석에 던져두고 곧바로 마당으로 나왔다.

   

    “양기…. 양기라….”

   

    오른손에 수기를 휘감아 위로 치켜올렸다. 희미하게 빛나는 금빛의 기가 밤하늘의 달과 같았다.

   

    “황운신공…. 음….”

   

    중얼중얼 혼잣말을 해대는 그를 보며 춘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고, 그냥 니 먹어. 애초에 내가 뭐 당장 내일 어떻게 되냐? 나중에 다른 거 생기면 그때 먹든 하면 되잖아.”

    “춘봉아.”

    “뭐.”

    “닥쳐 그냥.”

   

    발끈한 춘봉이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하지만 춘봉이는 어리고 약한 꼬맹이. 일류 고수를 이겨낼 방법 따위 없었다.

   

    “어허, 얌전히 있도록.”

   

    그녀를 제압해 살살 깔고앉은 서준이 손끝의 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것도 결국 양기잖아.”

   

    황운신공은 그 끝에 무극無極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때 가면 음양이 조화를 이룬다고는 하는데…, 지금 당장은 턱도 없는 소리다.

   

    그러니 결국 황운신공의 내공은 양기에 가깝다. 애초에 그래서 춘봉이가 청운신공을 익히지 않았는가. 여인은 양기보다 음기가 강하니까.

   

    “보자….”

   

    서준이 춘봉의 등에 왼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서늘한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이게 음기. 그중에서도 찬 기운이 강한 음한지기라는 거지?

   

    왼손은 춘봉의 등에, 오른손에는 황운신공의 내공을 두른 채 몇 분 간 고민을 계속했다.

   

    “…야, 슬슬 무거우니까 좀 비키지?”

   

    춘봉이 툴툴거릴 때쯤 눈을 뜬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겠다.”

    “뭐를.”

    “넌 알 필요 없고.”

   

    춘봉이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쭈욱 들어올렸다. 그대로 집 안에 들고 들어가 방 한가운데 앉혀두니 춘봉이가 눈을 뾰족하게 떴다.

   

    “내가 물건이냐?”

    “쉿.”

   

    검지 손가락을 춘봉이의 입술에 댔다. 얘는 뭐 입술도 차갑네. 증세가 심각하다.

   

    서준은 그대로 품속에서 목함을 꺼내 열었다. 예의 그 청아한 향이 집 안 가득 퍼진다.

   

    춘봉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이, 서준은 손가락으로 흑목단을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흑갈색의 반들반들한 단약.

   

    그걸 빤히 쳐다보다…, 기습적으로 춘봉이의 입에 쑤셔넣었다.

   

    “으벱…!?”

    “쓰읍! 삼켜!”

    “으브븝…!”

    “어차피 입에 들어갔잖아 인마! 어어? 너 계속 그러면 약효 다 날아간다?”

   

    자, 집도 들어갑니다.

   

    음기니 양기니, 고금제일의 재능 앞에서는 의미 없다는 걸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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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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