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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EP.12

     

   낯선 환경과 처음 겪어보는 상황은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몸을 경직되게 만든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보통 미지의 영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

   다시 말해 앞날이 전혀 예측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잘 알고 있어서 문제였다.

     

   “조, 좀비?”

   “이런 씨바… 방금 봤어? 저 사람 물리자마자 발작하는 거?”

     

   좀비라는 단어에 사람들이 경계 태세의 미어캣마냥 삐죽삐죽 고개를 들어 광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 하나가 쓰러질 때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사람들.

   게다가 쓰러졌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다른 생존자를 쫓기 시작하는 모습은 가히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더럽게 많네…”

     

   한가민의 흘러가는 말에 나는 광장 너머를 바라봤다.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물량의 좀비.

     

   첫 튜토리얼에서 꽤 많은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 분명한데도 광장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너머에 있는 광화문을 바라보니 토끼가 말했던 데로 희끄무레한 푸른빛이 경복궁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말 그대로의 입구. 저곳만 통과하면 된다는 건가?

     

   나는 적당히 눈대중으로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남은 시간 : 00:20:54]

     

   여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는 시간이다.

   광화문까지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저희 어떡합니까?”

     

   뒤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모든 생존자의 마음을 대변하듯 튀어나온 남궁천호의 한마디였다.

     

   “솔직히 말해서 저걸 뚫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니, 가능은 하겠지만 살아남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그 말에 사람들의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도저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표정.

     

   지금도 시간은 흘러갔고 더 많은 생존자들이 좀비가 되어 간다.

   그리고 그런 광경에서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자신들보다 유능한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이었던 듯싶다.

     

   “……왜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다.

   마지막 탈출로를 찾으려 하는 그들의 눈에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혹시 무슨 뾰족한 수라도 없을까요?”

   “뭐든 일러만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공포 그 자체였던 괴물을 해치워 튜토리얼#1의 종지부를 찍은 사람.

   도우미가 인정한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사람.

   그리고 유일하게 지금 이 자리에서 공포에 떨고 있지 않은 사람.

     

   “후우…”

     

   나는 광화문 광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곳에서 저 푸른 영역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800m.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좀비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난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생존자들이 좀비들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바람에 좀비들의 활동 범위가 계속해서 넓어지는 상황.

     

   띠링.

   [빠른 납득(D+)이 발동됩니다.]

     

   하지만 활동 범위가 넓어진다는 말은 사이를 누비고 지나갈 틈이 넓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는 콘크리트 언덕을 넘어가 최대한 은밀하게 주변을 탐색했다.

   [빠른 납득] 덕인지 각성을 한 덕인지. 머리가 맑고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어?’

     

   그리고 나의 눈에 들어온 가능성 하나.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가려진 광화문역의 입구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재빠르게 광화문역 5번 출구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이미 무너져 입구를 가린 담장과 벽을 살짝 치워냈고 그곳에서 지하도의 내부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지하도로 진입했을 때.

     

   삐빅.

     

   [좌표 (■■■,■■■)]

   [튜토리얼#1이 이미 진행된 지역입니다.]

     

   낯선 경고음과 함께 지하도의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

     

   어두운 통로.

   고요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곳곳에 부서진 벽과 약간의 비상전력이 남아 끔뻑거리는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좀비가 없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지상의 좀비들은 소리를 지르고 아주 난리에 난리를 피우는데 이렇게 조용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 흐흑.

     

   사람의 울음소리가 나의 귀에 포착됐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인기척을 보이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히끅. 히끅.”

     

   억지로 참아보려고 하지만 새어 나오는 듯한 목소리.

   나는 그 소리를 쫓아 걸음을 옮겼고 입구 코너를 도는 순간, 전의를 상실한 채 쪼그려 앉아 있는 몇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이미 튜토리얼#1이 진행되었던 지하도.

     

   그곳 생존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좀비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무슨 장치가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허나 그것을 깨달은 소수의 인원이 좀비를 피해 지하도에 숨어들었다는 사실이 그 자체가 더욱 중요했다.

     

   ‘가능해…’

     

   나는 그 사람들을 그대로 둔 채,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인 씨…!”

     

   내가 돌아오자 서세영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채 나에게로 다가왔고 그녀의 뒤를 다른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따랐다.

     

   “다들 저기 광화문역 5번 출구 보입니까?”

     

   나는 곧장 손을 들어 광화문역 5번 출구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나의 물음에 머리를 빼꼼 내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를 통해서 건너편으로 갈 겁니다.”

     

   드디어 찾은 한 줄기의 희망. 하지만 내가 던진 작전의 가장 큰 문제점을 발견한 한가민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하에 좀비가 있으면 어떡해요?”

     

   “그건 걱정 마.”

     

   지하에는 좀비가 없었다. 오히려 문제라면 지하도를 벗어난 이후 전방에 개떼처럼 몰려 있는 좀비들이 문제.

     

   “지하에는 좀비가 없었어. 아마도 튜토리얼이 진행됐던 구간이라 뭔가 오류가 생긴 모양이야.”

     

   나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그것은 첫 번째 문제였을 뿐. 이제 남은 건 우리가 탈출해야 할 건너편에 도사리는 좀비 떼였다.

     

   “……건너가고 나서도 문제네요.”

     

   한가민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지나갔지만 지금 이 방법 말고는 제시간에 탑의 영역으로 들어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하나쯤 뚫리기 마련.

     

   “……미끼를 쓰죠.”

     

   침묵을 일관하던 사람들의 사이에서 박조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인조를 만들어서 출구의 좀비를 치울 수 있다면 지하도를 통과한 사람들은 무사히 광화문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를 바라봤다.

   지하도 건너편에 있는 좀비를 유인해 후방으로 끌어들인다.

     

   분명 쉽지는 않겠지만 확실한 방법이었기에 몇몇 사람들이 박조철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박조철의 말을 들은 남궁천호가 가만히 손을 들어 의문을 제시했다.

     

   “……그렇게 되면 유인조에 들어간 사람들은 무조건 위험해질 겁니다. 그런 희생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인 문제. 남궁천호의 말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좀비를 유인하게 될 사람들은 분명 위험해질 것이고 겁을 집어먹고 제대로 미끼 역할도 하지 못한 다면 그저 개죽음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

   심지어 시간도 한정적이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박조철은 고개를 들고서 단호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일단 지원자를 받아보죠. 목숨이 걸린 일에 감히 누군가를 지목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누구도 그의 말에 토를 달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고 가장 민주적인 절차였으니.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누군가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진 짧은 침묵.

   하지만 그 적막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띠링.

     

   귓가에 익숙한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나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수의 성좌들이 답답해합니다.]

   [성좌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 당신에게 개인 임무를 내립니다.]

     

   ‘개인 임무? 그게 무슨……’

     

   —

   『살신성인 – 殺身成仁』

     

   주제 : 서브

   난이도 : 후원 [C]

   내용 : 현재 상황에 흥미를 느낀 성좌가 당신의 정의를 시험해 보고자 한다. 당신은 타인을 위해 얼마만큼이나 희생할 수 있는가? 검을 들어라. 그리고 사람들을 탑으로 무사히 인도하라.

     

   임무 : 해당 그룹의 플레이어를 최대한 많이 탑으로 인도하십시오. 단, 3명을 초과하는 플레이어가 사망 시 임무는 실패합니다.

     

   성공 조건 : 탑의 영역에 입장한 그룹 내의 플레이어 (0/30)

     

   보상 : 탑의 영역에 입장한 생존자의 수에 비례한 보상

   실패 페널티 : 사망

   —

     

   [임무 선금 1,000 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하, 하…”

     

   임무를 끝까지 읽어 내려간 나는 메시지 끝에 적힌 ‘사망’이라는 단어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시인 씨 괜찮습니까?”

   “……”

     

   남궁천호가 나를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로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나에게만 주어진 성좌의 후원미션.

     

   나는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나에게 왜 자꾸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지…

   임무의 내용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실패 페널티 : 사망]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모두… 아니, 최소 27명의 인원이 광화문을 통과하도록 해야 하는 극악의 미션.

     

   “천호 씨…”

   “네, 말씀하세요.”

     

   지원자 찾았습니다.

   굉장히 억울한 지원자 한 명이요.

     

   나는 순간 마른침을 삼키며 하늘을 바라봤다.

   울화가 치밀어 올라 아주 쌍욕을 갈겨 주고 싶다.

     

   하지만…

     

   욕을 받아야 할 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억울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나의 손은 이미 머리 위로 올라간 상태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눼.”

     

   걱정 어린 시선들과 함께 ‘내가’ 나섰기에 안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발음이 살짝 찌질해졌던 것 같지만 일단 넘어가자.

     

   “후우…… 그럼 작전부터 설명할 테니 다들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나는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불러 모았다. 나의 말에 곧바로 옹기종기 모이는 사람들.

   이 중에 나와 함께 희생하겠다며 용감하게 말하는 사람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조금 억울하다.

     

   ‘뭐, 차라리 없는 게 더 다행인가?’

     

   내가 살려야 하는 사람은 최소 27명.

   억울함 한 번 덜어 보자고 소중한 목숨 하나를 굳이 바닥에 내다 버릴 생각은 없었다…… 아, 물론 내 목숨을 말한 거다.

     

   하지만 그 순간.

   당황스럽게도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가녀린 손 하나가 있었다.

     

   “……제가 할게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가만히 손을 들고 있는 서세영.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의문과 경악으로 물든다.

     

   “미끼, 시인 씨 대신 제가 하겠습니다.”

     

   처음 광화문을 통과하자고 말한 나도, 유인조를 만들자고 제시한 박조철도, 이곳의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 언니? 갑자기요?”

     

   고작 하루였지만 서세영과 가까워진 한가민이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

     

   그녀는 사람들의 의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얼굴에 떠오르는 강한 결의.

     

   폭탄 발언을 한 것치고는 그녀가 편안한 모습을 보이자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혹시 부채감 때문입니까?”

     

   얼핏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하지만 박조철 만큼은 내가 던진 말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스카이 게임즈의 로비에서 내가 그녀를 구해줬던 일.

   위기의 상황에 내가 괴물에게 달려들었던 일을 그녀는 계속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나 보다.

     

   “서세영 씨, 로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라면 굳이 나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생각이 맞았던지 나의 말에 서세영의 눈동자가 옅게 떨려온다.

     

   내가 이틀간 봐온 서세영은 꽤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선의 하나만으로 목숨을 걸고 의리를 지키겠다고 행동하는 사람이 이 사람 외에 또 누가 있을까?

     

   “하, 하지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녀가 살짝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억지로 용감한 모습 보일 필요 없습니다. 두려우면 다른 사람들처럼 가만히 계셔도 됩니다. 그저 내가 유인조에 뽑히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안도하셔도 됩니다. 그게 보통입니다.”

     

   그녀는 로비에서 탈출한 이후로 계속해서 무리를 하고 있었다.

     

   튜토리얼의 난이도가 상승하며 괴물이 탕비실에 들이닥쳤을 때, 그녀는 온몸을 벌벌 떨면서도 의자를 들어 반쯤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괴물을 내리쳤다.

     

   로비에 도착했을 때도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물자를 정리했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도 가만히 나의 옆을 지켰다.

     

   “저를 믿어 주세요. 안 죽을 자신 있으니까.”

     

   고마운 사람.

     

   그렇게 말을 끝낸 나는 곧장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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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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