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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12 – 0.1%의 이벤트>

     

    “장난하냐?”

    “진심이다. 영웅후보라는 녀석들은 위로 갈수록 남자투성이라서 말이지. 보는 재미도, 기르는 재미도 없더군. 여자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희소하지.”

     

    즉, 이런 것이다.

    남자였다면 완드마법을 사용한 뒤에야 통과했을 시험이지만, 여자인 오크노디에게는 이 정도 근력으로도 합격점을 줄 수 있다는 것.

     

    “납득했나?”

    “전혀.”

    “납득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검은 가끔 피를 봐야 길이 잘 들지. 원한다면 덤벼도 좋다. 네가 모시는 아가씨는 슬퍼하겠지만 말이야.”

     

    집사 조나는 미하엘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등을 돌렸다.

     

    “…관두지. 괴짜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으려던 생각이 어리석었어.”

     

    손에 힘을 풀고 여관으로 들어가는 집사.

    미하엘은 아쉬움에 품에 넣었던 손을 빼지 못했다.

     

    “아쉽군. 오랜만에 베는 맛이 있는 상대였는데.”

     

    더블넘버는 차세대 영웅의 재목에게나 허락된 티켓.

    그러나 그것을 평가하는 사람은 시험관.

    미하엘의 진짜 평가기준은 간단했다.

     

    ‘10년 내로 베는 맛이 있는 인재로 자라날 수 있는가, 없는가.’

     

    ‘아가씨’는 있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다시 따분한 하루가 시작되겠군.”

     

    집사 조나의 뒤를 이어 미하엘마저 떠난 뒤.

    마당의 풀벌레들은 그제야 다시 울기 시작했다.

     

     

    * *

     

     

    묘한 티켓을 얻었다.

     

    “흠. 흐음? 흐으음.”

    “아가씨. 티켓이 신경 쓰이십니까?”

    “아니요. 음. 거짓말이에요. 실은 신경 쓰여요.”

     

    게임에서는 티켓에 색 따위는 없었다.

    티켓은 그저 티켓.

    트리플 넘버니 더블 넘버니 하는 설정도 몰랐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 그런가?’

     

    굳이 변덕스러운 방법을 고집하며 오일이나 버텼던 것은 히든보상인 평판 <미하엘이 인정한 재목>을 받기 위해서.

    이 평판을 지닌 응시생은 묘하게 입학시험에서의 평가도 좋고, 입학생이 된 후에도 다수의 긍정적인 보정을 받는다.

    분명 미하엘 같은 엄청난 사람에게 인정받은 입학생이라고?

    스고이하네.

    눈여겨봐야겠어.

    이런 생각을 하는 교수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미하엘 본인의 평가가 높아지는 것도 좋다.

    언젠가 아카데미에 초빙강사로 등장할 미래에 그의 호감이 있다면 성적확보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근육남캐로 히든루트공략을 했을 때는 미하엘에게서 이렇게까지 호의적인 반응은 없었다.

     

    ‘여자라서 그런가?’

     

    이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귀공자 미하엘이?

    설마.

    저 얼굴이면 밤마다 길거리에서 밤을 함께 보낼 여자는 골라잡고도 남는다.

    후일 아카데미 초빙강사로 다시 등장할 미하엘은 아카데미에서 볼 수 있는 강사 중에서는 공명정대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때는 반에 남자밖에 없는 회차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남녀를 차별하는 그런 스윗판남(판타지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조나씨.”

    “부르셨습니까.”

    “시험관님이랑 무슨 얘기 하고 왔어요?”

     

    조나는 담담히, “별 얘기 안했습니다.”라고 시치미를 떼었다.

    집사를 보니 문득 깨달았다.

    게임 설정과 다른 일이 일어나는 건 집사의 호루라기부터가 시작 아니었던가.

    이번 티켓시험에서 히든루트가 먹힌 걸 보면 전부 변한 건 아니지만 군데군데 디테일한 부분에서 아무래도 큰 차이들이 생겼으리라고 추정된다.

    그래도 이만하면 큰 단서다.

     

    ‘고인물 테크닉으로 운빨을 뚫고 피지컬과 뇌지컬을 발휘해 편리하게 최고보상을 노릴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굉장하잖아?’

     

    하지만 한 가지, 떨쳐낼 수 없는 의문도 있다.

    미하엘의 히든루트.

    이건 뜸 들이는 시간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6일부터는 고인물이고 뭐고 절대로 못 깬다.

    하지만 5일이라면 어떻게든 된다.

    검술뿐만 아니라 완드술까지 사용한다면 말이다.

    기껏 집사의 미움을 받을 각오까지 하고 몰래 준비했건만 정작 완드술은 사용하기도 전에 평가가 끝나버렸다.

    그 이전에 게임에서랑은 합격대사부터 달라졌다.

     

    ‘왤까? 남자라면 이 정도 힘은 기본이라면서 힘으로 칭찬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의문도 잠시.

    티켓을 들고 기지개나 켰다.

     

    “진짜는 입학시험이지. 아직 합격은 아니에요.”

    “옳은 마음가짐이십니다.”

    “탑승편을 준비해주세요!”

     

    여관을 떠날 때가 되었다.

    다음 목표는 입학시험장.

    대망의 아카데미 입성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 *

     

     

    집사가 탑승편을 수배하러 간 사이.

    암상인 지젤이 다가왔다.

     

    “정말로 붙을 줄은 몰랐군요.”

    “내기는 제가 이긴 거 맞죠?”

    “인정하죠.”

     

    플래티넘 티켓을 본 지젤이 솔직하게 찬사를 보냈다.

     

    “티켓의 차이는 알고 있습니까?”

    “대충은요.”

     

    오크노디는 본디 플레이어.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를 게임으로 즐겼다.

    그것이 실제 현실이 되어버린 이세계.

    게임과 현실의 차이는 괴리감을 지닌다.

    티켓의 색상과 등급도 이에 속했다.

     

    금화 10매 – 티켓(30% 확률로 불량티켓)

    금화 100매 – 확정티켓

     

    돈을 덜 쓰면 꽝이 걸리는 싸구려 티켓.

    그것이 실은 아이언 티켓이라서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브론즈 티켓이라서 참가자 정원에 따라 응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반대로 플래티넘 티켓은 왠지 모르지만 얻으면 운이 좋은 티켓.

    색상도 등급도 없던 게임 속의 티켓으로는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운 좋은 티켓으로 여겨졌다.

    트리플넘버니 더블넘버니 하는 특혜조차도 그녀는 모르는 이야기.

     

    ‘이 아이를 키워온 귀족가에서도 작정을 했군.’

     

    그런데도 티켓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는 있다.

    그렇기에 지젤은 생각했다.

    이 지식은 귀족가의 교육을 받은 결과물이라고.

     

    기프트 아카데미.

    대륙제일의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는 귀족가문은 한둘이 아니다.

    그를 위해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받는 일도, 반대로 입학을 막기 위해 고문에 가까운 시달림을 겪는 일도 가문의 숫자만큼이나 많이 일어난다.

     

    “꼬마숙녀분. 혹시 가문의 이름이 어찌 되십니까?”

    “몰라요.”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을 괴롭히던 집사는 탑승편을 구하러 갔고, 메이드도 테이블을 지키느라 우리 대화를 엿들으러 올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몰라요.”

    “……정말로, 나고 자란 가문의 이름도 모른다고?”

     

    오크노디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제 사용인들을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밥도 잘 챙겨주고 좋은 시설에서 훈련도 하게 해주시는 걸요.”

    “사교회 데뷔는?”

    “그런 이벤트는 필요 없어요.”

    “또래 영애들과의 다과회는?”

    “그거 하면 먹을 거 많이 나와요?”

     

    글렀다.

    이건 정상적인 귀족가문에서 자란 아이가 아니다.

    어떻게 봐도 입학만을 위해 길러진, 가문의 영광을 돋보이기 위해 인생을 희생당한, 아이의 즐거움도 여성의 즐거움도 모르는 가엾은 인생.

    이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죄스러울 정도로 안쓰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아이다.

    저래서는 아카데미에 입학해도, 가문의 뜻에 조종당하는 마리오네트 신세는 면치 못하겠지.

     

    “저, 결심했습니다.”

    “뭐를요?”

    “이번 입학시험. 저도 치를 겁니다.”

     

    오크노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이 아저씨가 지금 뭐라는 거야.

    입학시험은 만 20세 이하만 치를 수 있는데.

     

    “아저씨는 늙었잖아요.”

    “하하. 나이야 위조하면 그만이죠.”

    “속일 수 있을지는 둘째 치더라도 무리해서 입학해봤자 적응하기도 힘들 걸요?”

     

    아카데미의 강도 높은 스케줄은 범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지젤도 범상한 남자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체력이 줄어들기 마련.

    밤새 과제를 하고 시험을 준비할만한 체력이 부족하다면 아무리 날카로운 재치와 번뜩이는 재능이 있어도 아카데미를 졸업할 수 없다.

     

    “게다가 아저씨는 돈빨로 티켓시험을 통과했잖아요. 입학시험은 그렇게 쉽게는 안 될걸요?”

    “천진난만하시군요. 우리 꼬마숙녀가 아는 것과 달리, 세상은 추악합니다. 더러운 어른의 비열한 짓이면 될 것도 안 되고, 안될 것도 되죠.”

     

    뇌물이라도 쓸 작정일까?

    내 일이야 아니니 상관없다만 저 대담한 패기 하나는 존경스럽다.

     

    ‘암상인이 티켓 안 팔고 시험 보러 가도 되나?’

     

    게임에서는 한 번도 없던 이벤트.

    이래도 되나 싶긴 하지만 시험 보겠다는 사람을 오지 말고 촌구석에서 티켓이나 팔고 살라고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도 이 게임에서 한 번도 없던 이벤트라는 사실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600 대 300 대 99 대 1의 법칙.

     

    흔한 분기는 600과 300.

    희소한 분기는 99.

    유니크한 분기는 1.

    60%와 30%, 9.9%의 확률을 모두 피해 0.1%의 확률에 당첨되어야만 일어나는 이벤트.

    대단한 확률에 걸렸음을 의미한다.

     

    물론 확률도 확률 나름.

    이것이 대단한 행운인지, 대단한 불행인진 모르지만.

    지젤은 대결을 진지하게 임했다.

    결과에도 순순히 승복하였다.

    티켓암상인이라는 신분과 달리, 인간성만큼은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

     

    “중년의 꿈같은 거죠? 잘됐으면 좋겠네요.”

    “…중년의 뭐? 그런 게 아니라,”

    “응원할게요. 파이팅!”

     

    판매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티켓을 들고 미하엘의 방을 찾아 올라간 지젤.

    잠시 후, 그는 플래티넘 티켓 한 장을 보란 듯이 흔들며 내려왔다.

    늦은 나이에라도 학업의 성취를 이루고자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는 열의가 대단하기는 하다.

     

    “공부에 늦은 나이는 없대요. 힘내세요!”

    “망할 꼬맹이. 꿀밤마렵네 진짜.”

    “어째서?!”

     

    격려해줬는데 욕을 먹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하고 중얼거리던 지젤은 메이드를 보고는 입을 닫았다.

     

    “아저씨 리프 좋아해요?”

    “…….”

    “소개시켜줄.. 아얏.”

     

    꿀밤 맞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만학도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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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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