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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필기가 끝났다. 해는 어느덧 중천을 넘어서고 있었다.

         

       점심시간엔 학생식당이 붐비기 마련이다. 평소에도 혼잡했는데 오늘이라고 안 다를까.

         

       다행히 나는 교내 지리를 잘 알고 있는 편이었기에 남들보다 먼저 배식을 받을 수 있었다.

         

       적당히 남는 자리를 찾아 앉은 뒤 목부터 축였다. 배가 고픈 건 둘째치고, 네 시간째 물을 안 마시니까 목이 바싹 말라 있는 상태였다.

         

       식당은 금세 수험생으로 들어찼다. 불과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남아있던 자리가 모두 사라졌다.

         

       “필기 어땠어?”

       “조졌어.”

       “마도이론 19번 풀었냐? 나 그거 손 못 대겠던데.”

       “그건 쉽게 했거든? 근데 1번을 틀린 듯.”

       “아! 계산실수 했어! 아아아악!!”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고 있으니 시험 난이도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능 때도 쉬는 시간마다 저렇게 답 맞추는 애들이 있긴 했지.

         

       옆 테이블에는 고사실에서 마주쳤던 여학생 일행이 자리를 잡았다. 일행의 중심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붉은 머리칼에 홍색 눈을 한 단발의 여자아이였다.

         

       식사할 때조차도 귀티가 팍팍 난다. 다들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딸인가보다.

         

       “로테 님, 이번에 필기 난이도 어떠셨나요?”

       “전반적으로 무난했던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설이랑 비교했을 때 훨씬 쉬웠던 것 같아요.”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었고…….”

         

       와. 사설 모의고사도 있었구나. 이쪽 세계에서도 내가 모르는 입시 전문 학원이라는 게 있는 걸까?

         

       돈 있는 집안 애들이 만약 그런 학원에 다니다가 온 거라면 불안해진다. 정보전에서부터 밀려버린 것이었으니까. 물론 난 돈 없어서 그런 곳을 알았더라도 다니질 못했겠지만.

         

       “아 참, 이번에 기초마도이론 마지막 문제 푸셨나요? 그것만큼은 적중문제랑 완전 딴판으로 나왔던 것 같은데요.”

       “화계마도 문제였잖아. 로테 님께선 푸시지 않았을까? 그렇죠?”

        “아니, 나는…….”

         

       아, 다 먹어버렸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뒷사람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배식구에 식판을 끼워 넣은 뒤 대운동장으로 직행했다. 나보다 먼저 와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야! 너 밥 안 먹었어?”

         

       한 번 들어본 목소리. 작은 폭탄이 나타났다.

         

       오전에 잠깐 만났던 꼬맹이가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칭 드워프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과대망상이 있는 듯했다.

         

       아깐 바빠서 키나 전반적인 옷차림만 눈에 들어왔었는데 지금 보니까 쓰고 있는 마녀모가 머리통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챙의 너비만 놓고 보면 당장 비가 오더라도 우산 대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또 내 말 무시하지!”

       “밥이라면 먹었는데.”

       “그렇게 빨리? 식당이 꽉 찼잖아!”

       “그 전에 먼저 먹고 나왔지. 그러면 꼬맹이는?”

       “한 대 맞을래?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라구!”

         

       아니,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자기 이름도 안 가르쳐 줘 놓고선.

         

       “밥도 안 먹고 돌아다니니까 키가 안 크지.”

       “야 인마아아악─!!!”

         

       아까 전부터 나한테만 따라붙는 꼬맹이와 투닥거리고 있자니 적발홍안의 여학생 일행과 엘프 남학생을 포함한 수험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수험생이 거의 다 모였을 때쯤 감독관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마력을 측정하는 수정구와 마전지, 연금술 재료 등 수많은 실기평가 도구들을 끌고 나오는 모습에 바싹 긴장감이 돌았다.

         

       “모두 주목해주세요!”

         

       체급에 맞지 않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지신 분이었다. 마법으로 음량을 높이신 모양이다.

         

       “이미 아시겠지만 한 번만 더 공지하겠습니다. 우선 실기는 네 부문으로 나눠집니다.”

         

       마력 측정, 연금술, 스크롤 작성, 그리고 전투마도.

         

       마력 측정은 말 그대로 측정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험이라고 보기도 애매했다.

         

       마력량은 노력으로도 끌어올릴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천적인 재능에 큰 영향을 받는다. 즉 유전이라는 소리다. 원래 세계로 치자면 IQ에 대응하는 양일 것이다.

         

       그리고 난 IQ가 0에 수렴하지. 금안족은 체질상 그런 종족이었다.

         

       “각 부분은 25점 만점으로 진행됩니다. 도합 100점 만점이며, 이 중 40점 이상 얻지 못한다면 과락을 받게 됩니다. 과락하신 응시자께선 필기점수와 무관하게 불합격 처리되오니 이 점 유의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저, 실기 점수는 곧바로 나오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지원자가 많은 관계로 실기 점수는 각 섹터에 계신 감독관들이 부문별로 채점하여 알려드립니다. 후에 필기점수와 합산하여 합격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실기의 경우 그 전에도 수험생 여러분이 어느 정도의 점수를 받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40점 이상이 과락 면제 조건이라는 말에 반응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나만 빼고.

         

       가능하면 더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좋겠지만 최소 기준치는 40점이다. 애초에 제대로 된 준비 기간이 3개월밖에 안 됐는데 필기와 실기 둘 다 고득점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필기 고득점 + 실기 기준점’ 조합으로 합격하는 것. 실제로 나 말고도 이곳에 지원하는 학생이라면 다들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실기는 일정 부분 재능의 영역이었고, 부모 잘 만난 애들은 쉽게 해낼 테니까.

         

       반대로 필기는 노력의 영역이었다. 공부란 걸 했다면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는 영역. 다만 지원자가 전부 수재들이라 학교 측에서 변별력을 명분으로 악랄한 문제만 내는 게 문제였지.

         

       대표적으로 이번에 나온 기초마도이론 마지막 문제라든가. 그건 출제자를 때려죽여도 시원찮다.

         

       그렇지만 실기는 ‘적당한 점수를 맞는다’라는 가정 하에 필기보다 널널하다고 할 수 있었다. 평가 자체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기에서는 제한시간 내 작품을 완성하거나 개인의 전투역량을 보여주는 것을 평가한다.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가 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공정성이 있을까?

         

       아카데미 입학은 어떤 수험생들에겐 일생이 걸린 일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점수를 잘못 깎았다가 귀족 학부모의 클레임이라도 들어온다면 학교 내에 큰 파문이 일 것이 분명했으니.

         

       결국 입학처에선 ‘실전은 입학한 후 배우면 되겠지’라는 마인드를 바탕으로 실기평가를 사실상 절대평가로 운용하기에 이르렀다.

         

       필기 400 실기 100이라는 기형적인 평가제도가 만들어진 것에는 그런 연유도 있었으리라.

         

       “그럼 지금부터 첫 번째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실기 감독관이 우리를 2열 종대로 줄 세운 뒤 마력측정을 시작했다. 놀랍지 않게도 내 차례가 다가오자 측정을 해 주시는 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0시버트입니다.”

         

       여기까진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진짜?”

       “마력이 아예 없다고…?”

         

       그 소리가 조금 컸던 탓에 어그로가 끌렸다. 내 뒤쪽에 있는 학생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마도구에 적힌 결과를 훔쳐보았다. 모두가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체념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공개처형을 당하니 쪽팔리기 그지없었다. 금안족의 몸속에 들어오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다.

         

       여기저기서 ‘쟤는 금안족이니까 그럴 수 있다’, ‘나 금안족은 처음 본다’와 같은 전형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 틈을 뚫고 아까의 꼬맹이가 다가오며 실소를 흘렸다.

         

       “키킥, 마력 없는 찐따래요.”

         

       하마터면 품에 있는 마력초를 지금 쓸 뻔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참아야지.

         

       학생들의 고까운 시선을 지나치며 다음 시험장으로 향했다.

         

       하나의 시험이 끝나고 난 뒤 이어서 치르는 시험은 또 다른 감독관이 채점한다. 지원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하루 안에 모든 과정을 끝내려면 모든 시험을 동시에 진행해야만 했다.

         

       즉 내가 속한 조에서 마력측정을 했으면, 다른 조에서는 스크롤을 만들거나 연금술 시험을 보고 있다는 말이다.

         

       내 조는 순차적으로 시험을 봤다. 마력측정 후에 연금술과 스크롤 작성을 순서대로 치렀는데, 여기서도 마력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 됐다.

         

       연금술과 스크롤 작성 모두 어떻게든 작품을 만들긴 했다. 문제는 그 작품을 작동시키는 것까지가 평가요소에 반영된다는 사실이었다. 마력초를 물지 않으면 하급 스크롤 하나 돌리지 못하는 이 몸으로는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연금술 이론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하나 발동을 시키지 못하는군요. 이래서야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으니 25점 만점에 12점 드리겠습니다.”

       “회로 이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군. 그래도 마력을 불어넣지 못한다는 건 실기에서 큰 문제네. 안타깝지만 13점 정도가 적당하겠군.”

         

       이런 점 때문에 내가 과락을 면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수험생들에게 마없찐 인증을 받은 마력측정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과목의 합산은 25점. 이렇게 된 이상 전투마도에서 15점 이상을 받아야만 했다.

         

       마지막 시험 장소에 도착한 우리 조는 감독관의 설명을 들었다.

         

       “전투마도는 무작위로 두 사람을 지명한 뒤 제한시간 동안 대련을 벌여 수험자의 전투 운용력을 보는 실기평가입니다.”

         

       헤를라인 교수가 했던 충고가 떠오른다.

         

       전투마도는 상대를 뚜까 팬다고 해서 만점 받는 시험이 아니다. 적당한 때에 적절한 마법을 사용하면서 페이스의 흐트러짐이 없게 하는 것, 체력과 마력을 최대한 온존함과 동시에 꾸준한 전투력을 내는 것이 고득점의 비결이었다.

         

       ─ 너도 마법을 쓰긴 써야 하는데, 상대가 더 많이 쓰게 만들면 네 승리야. 실전에선 명중률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 둬.

         

       또 그런 조언도 있었고.

         

       “전투마도는 실전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기 때문에 마력초와 같은 일부 마도구의 사용이 허락됩니다. 단 마도구를 사용할 땐 사전에 감독관에게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마도구를 사용할 경우 점수 차감이 있을 예정이며, 이를 미리 신고하지 않고 시험에 임했다가 적발된다면 불합격 처리 및 향후 3년간 우리 학교에 지원하실 수 없습니다.”

         

       마도구를 사용하겠다고 신고한 건 나를 포함해 몇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참고로 시험을 치기 전에 소환한 스태프는 점수 차감에서 제외한다고 한다. ‘전투’마도이기 때문에 스태프 없인 평가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마력초는 한 개비당 5점씩 차감입니다.”

         

       거 더럽게 많이 깎아먹네.

         

       이걸로 초기 점수는 20점. 여기서 5점보다 많이 감점된다면 황실에 팔려나가는 건 기정사실이 된다. 그 전에 하스펠트 교수한테 두들겨 맞는 건 덤이겠고.

         

       상상만 해도 억울해 뒤지겠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눈앞에서 온갖 마법이 날아다녔다. 이미 알고 있는 마법은 물론이요, 난생처음 보는 것들까지 골고루 쓰는 수험생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왜 나만 머글이야.

         

       얼마 후 감독관이 내 수험번호를 부르자 몸을 일으켜 시험장으로 향했다.

         

       바닥은 적셔지거나 파인 곳이 많아서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못했다. 하스펠트에게 사들여졌을 때 봤던 노예시장 바닥의 질감과 닮은 모양새였다.

         

       정면에선 이제 막 익숙해진 얼굴이 보였다.

         

       적발 홍안의 여자아이가 자신의 스태프를 점검하고 있었다. 머리핀으로 단정하게 넘긴 옆머리가 인상적이다.

         

       계속된 시험에 지치기라도 한 걸까. 아침에 봤을 때보다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른쪽은 살리에르 가문의 영애인가. 하스펠트 가문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는 인재라는 소리가 있다지, 아마?”

       “저 금안족 아이는 안 됐네요. 분명히 질 거예요. 살리에르 가문의 마력량은 대륙에서도 손꼽을 수준으로 많다고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일행 여러분.

         

       그러니까, 상대분의 마력이 엄청 많아서 쿨타임 없이 화염구를 쏴댈 수 있다는 소리시죠? 그러면 미니 하스펠트랑 싸우는 기분이겠네.

         

       “그럼 최종 고지 후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수험자께선 링 안으로 들어와 주시길 바랍니다.”

         

       근데 마력이 많건 적건 상관은 없거든요.

         

       마지막에 못 쓰게 만들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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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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