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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13.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서(5)

       

       

       [리엔을 처치하지 않았습니다.]

       

       [살육의 마왕이 현세에 강림합니다.]

       

       [……리엔의 호감도가 일정 수치 이상입니다.]

       

       [히든 루트 발견, 리엔이 당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자살합니다.]

       

       [리엔이 자살합니다.]

       [리■이 자■합■다.]

       [■■■ ■■■■■,]

       

       [……제왕의 격이 살육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그릇의 개화 상태가 초기화되었습니다.]

       

       [심각한 오류를 확인했습니다.]

       

       [운명 경로를 재설정합니다.]

       

       *****

       

       다행히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단락되었다.

       

       저번처럼 또 알 수 없는 메시지창이 읽을 수 없는 속도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든지.

       

       리엔이 전보다 너무 꽉, 그것도 노골적으로 껴안는 바람에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건강한 육체 특성을 억누르며 애국가를 불렀다든지.

       

       리엔이 아버지와 다시 재회하며 서로 사과하고 울먹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든지.

       

       제사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리엔의 폭주에 관한 건을 제국군 탓으로 돌려 적절히 둘러대고-다들 기절해 있어서 생각보다 쉬웠다-, 어떻게든 유해 수습을 총괄했다든지.

       

       오늘 바로 떠나기엔 나도 리엔도 지쳐 있는 상황이라 제사장에게 부탁해서 그나마 멀쩡한 집을 숙소로 빌렸다든지.

       

       이런저런 일은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 대사건이 있었는데 이 정도로 수습된 거면 잘 풀린 편이었다.

       

       그렇기에 내 머릿속을 채우는 의문은 하나뿐이었다.

       

       ‘도대체 왜?’

       

       위화감.

       피할 수 없는 위화감이 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마을 사람들, 너무 멀쩡하잖아.

       자기들의 사이비 점술 결과만 가지고 리엔을 핍박한 사이비교도, 라는 스포일러 글에서 나온 설명이랑은 조금 엇나감이 있다.

       

       리엔의 아버지는 리엔을 점술 결과 때문에 죽이려고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차마 동정심 때문에 점술 결과를 모두에게 말하진 못했다.

       

       어중간하다.

       내가 스포일러 글을 조금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조금 기억이 흐트러졌나?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결국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 점괘는 맞아떨어졌잖아.’

       

       리엔은 마왕으로 각성할 뻔 했다.

       물론 그것은 나비효과가 불러온 우연의 결과물이라고 판단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절묘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이건, 확인해볼 수밖에 없겠네.’

       

       나는 리엔에게 침대에 누워 푹 쉬라고 당부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

       

       집이 대부분 불타서 그런가. 제사장이 침대가 하나밖에 없는 곳을 숙소로 주어서 어차피 거기 있어도 잠은 못 잤으리라.

       

       ……이 지랄맞은 건강한 육체 특성을 어떻게 하든지 해야지 원.

       

       같이 누워있다간 폭주할 거 같아서 누구랑 같이 자지를 못하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제사장을 찾아갔다.

       

       “자네인가? ‘한창 바쁠’ 시간에 대체 무슨 일로…….”

       

       대체 왜 ‘한창 바쁠’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건지, 나는 애써 무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제 미래를 점쳐 주실 수 있나요?”

       

       이게 내가 생각한 대책이다.

       

       그 스포일러 글의 신뢰도를 검증하기 위해서 이것만큼 좋은 수단도 없었다.

       

       생각해 보라.

       

       만약에 진짜 저 사람이 제대로 된 점괘를 내놓으면?

       

       스포일러 글에 조금 잘못된 정보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거기에 내 미래까지 알 수 있으니, 내게 부족한 원작 지식이 보충되는 셈이다.

       

       그리고 만약 점괘가 가짜라면?

       

       그럼 스포일러 글을 신뢰해도 된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니. 내게 손해 볼 건 없다.

       

       어느쪽이든 이득 볼 일 밖에 없는데. 이걸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리엔 고 녀석. 아무리 마음에 든 남자애라 해도 부족의 비전인 점성술 이야기까지 술술…….”

       

       제사장은 딸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는 사람 냄새나는 투정을 내뱉으며 의식을 준비했다.

       

       ……그러고 보니까 점성술에 관한 건 스포일러 글에서 본 거였지.

       

       너무 울다 지쳤는지. 침대에 눕히자마자 잠에 들어버린 리엔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여기선 일단 리엔이 내게 말해 준 걸로 해 두자.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안입니다.”

       

       그 말을 들은 제사장은 피로 이중원을 그린다.

       곳곳에 이런저런 상징물들이 올려진다.

       

       그리고…….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애써 차갑게 식는 표정을 감추려 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다.

       

       제사장은 체면 상 자네한테는 얕보일 수 없다며 열불을 내고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점쳐보겠노라 이야기했다.

       

       이름과 외견만 설명하면 된다는 단순한 방식.

       나는 적당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시엘의 운명을 봐 주세요. 머리는 검은 색이고…….”

       

       설명을 마치자, 다시금 제사장은 이해 못 할 단어들을 떠들며 피로 진을 그린다.

       

       그리고…….

       순간, 제사장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 자네.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당장 연을 끊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제사장을 처다보자 제사장은 흥분한 채 말을 이어갔다.

       

       “재액을 불러올 운명이야. 마음 속 깊이 숨겨 둔 복수의 불씨가 타올라서, 주변의 모두를…. 아니, 이 세상을 불태워 버릴 거라고!”

       

       ……복수?

       걔가?

       

       그 맹하고 생각없는 꼬맹이가, 복수귀라고?

       어이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다.

       

       물론, 시엘이 어머니를 잃었다는 건 저번에 들어 알고 있다. 걱정되서 괜찮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괜찮은데.

       

       -……진짜로?

       

       -사랑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거면 됐어.

       

       무덤에 가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걸로 작별인사를 마치겠다고 후련하게 이야기했단 말이다.

       

       그런 애가 복수 때문에 이 세상을 멸망시킨다고?

       

       “……진지하게 들어야 하네! 운명은 결코 피할 수 없어!”

       

       제사장은 그렇게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허나,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할 말이 있다.

       

       “리엔은 지금 멀쩡한데요? 운명, 그거 절대적인 거 맞긴 합니까?”

       

       “……그건.”

       

       리엔이 마왕으로 각성할 뻔 했든 말든, 지금은 그냥 새근새근 자고 있다.

       

       역시 그냥 사이비일 뿐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물러나려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상한 직감이 들어서이다.

       뭔가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

       

       “한 사람 더 운명을 봐 주었으면 하는데…….”

       

       나는 그리 이야기하며 율리의 이름과 외견을 설명했다.

       

       내가 율리에 대한 걸 물어보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모아야 할 동료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율리는 전작에서 직접 보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장하는 모습까지 전부.

       아주 속속이 알고 있는 인물.

       

       율리는 전작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딸이었으니까.

       

       신성력을 타고난 성녀.

       암울한 본 앤 블러드 세계관에서 그나마 플레이어의 마음을 치유해주던 귀여운 꼬맹이.

       

       이걸로 시험해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

       

       다시금 제사장이 의식을 준비한다.

       

       그리고…….

       

       “불길하군. 불길해. 사악하고 끔찍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대체 자네는 왜 이런 사람들이랑만 엮이는 겐가?”

       

       결국, 반전은 없었다.

       

       뭐?

       성녀한테서 사악한 기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는 왜 이 아저씨가 리엔한테 천살성이니, 수많은 사람을 죽일 운명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떠든 건지 감이 잡혔다.

       

       저거 그냥 대충 안좋은 소리만 떠드는 거잖아.

       

       “……늙어서 그런가. 조금 힘에 부치는군. 미안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네.”

       

       제사장은 뻔뻔하게 뭘 했다고 지친 티를 팍팍 냈다. 자기도 더 했다간 사기가 들킬 거라 생각하기라도 한 건가.

       

       허나, 그런 말을 면전에 대고 할 정도로 예의가 없진 않았기에. 나는 적당히 제사장에게 감사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이상하네.’

       

       내 직감은 잘 맞는 편인데. 

       이렇게 거하게 빗나간 건 처음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는데. 감만으로 우길 수는 없는 노릇.

       

       ‘하긴 뭐, 감이 틀리는 날도 있는 법이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허탈한 심정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

       

       제사장은 혼자 남아 멍하니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까 그 청년이 도저히 자신의 점성술 결과를 믿지 않는 것 같아서다.

       

       원래라면 그도 그렇게 신경쓰지는 않았으리라.

       

       허나…….

       

       ‘그래도 가족이 될 사이인데……. 벌써부터 사위한테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그런 생각이 제사장을 자꾸 신경쓰이게 했다.

       

       그 이안이라는 남자와 딸이 찾아왔을 때, 리엔이 그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만 보고도 제사장은 단번에 딸이 품고 있는 마음을 눈치챘다.

       

       물론, 제사장은 이안이 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다정하게 안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뭘 더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게다가 어지간히 눈깔이 삔 게 아닌 이상 우리 딸 같은 여자를 누가 마다한다고.

       

       “으음…….”

       

       그렇기에 제사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바닥에서 이안의 하얀색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그리고 왜 아까 이안의 운명이 보이지 않았는지 알아차렸다.

       

       이안이라는 게 남자의 진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 제국에 고아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부모가 처음 지어준 이름이 아닌, 버려진 후 자신이 만든 두 번째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이거라면.’

       

       신체의 일부라면 다시 점을 칠 수 있다.

       이걸로 의식을 진행하면 이번엔 확실히 결과가 나오리라.

       

       그런 생각으로 다시금 제사장은 의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묵묵부답이다.

       하늘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군.”

       

       결국 제사장은 그리 말하며 쓸쓸하게 웃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한 사람의 혼이 이 세상보다 무겁다는, 그들이 모시는 하늘보다 존귀하였기에 감히 운명을 읽을 수 없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을 그 누가 눈치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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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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