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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이번에 또 떨어지면, 집안에서 나 죽이려 할 텐데…….”

       

       서울에 있는 S대 신문방송학과 입학을 위해 준비한 재수생 한선아는 우울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전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터라, 다음에는 반드시 붙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녀를 기다린 건 2년차 재수생이라는 꼬리표 뿐이었다.

       

       “하아.”

       

       한선아는 우울함에 좁은 자취방에서 TV를 켰다.

       우울한 마음과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인지 공부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

       

       그녀는 평소 연예계 가십을 좋아했기에, 그에 대해 자주 다루는 예능, 연예생중계의 애청자이기도 했다.

       평소라면 최근 뜨는 인기배우나 아이돌에 대해 소개 해주었을 방송은, 어째서인지 드라마의 메이킹 필름을 방영하고 있었다.

       

       “에휴, 요즘엔 메이킹 필름도 공중파에서 해주나?”

       

       보아하니 돈 좀 투자된 예능인 것 같다.

       태양을 숨긴 달.

       설명을 보아하니, 꽤 인기 있는 소설이 원작인 가상 사극 드라마.

       

       “이런 거 말고 우리 호석 오빠 근황이나 좀 알려주지.”

       

       그녀는 채널을 넘기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다음 코너나 기다리고자 방송을 지켜보았다.

       드라마의 소개.

       그리고 출연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후, ‘어린 시절의 주역’을 연기할 아역을 뽑는 오디션이 시작됐다. 

       

       당연히 한선아는 심드렁했다.

       아역이 아무리 연기를 잘해봐야 아역이 아닌가.

       

       그녀의 감상은 ‘아, 저 여자애는 일일 연속극에서 나온 애네.’라는 게 전부였다.

       

       “와, 박선웅 아들이 벌써 저렇게 컸어?”

       

       한때 미남 배우로 이름높았던 박선웅의 아들, 박정우는 한선아의 시선을 끌었다.

       점차 방송에 몰입하던 그녀는 이어지는 아역들의 연기에 내심 놀랐다.

       

       다들 어린 아이들이니 기껏해야 학예회 수준에서 조금 나은 정도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어려도 제대로 연기를 할 줄 아는 어린 새싹들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박정우, 그리고 조서희의 연기는 이미 개화한 꽃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꽃.

       

       ‘일일 드라마에서 나올 때는 몰랐는데. 저렇게 잘했구나.’

       

       당연한 일이었다.

       일일 드라마에 출연하는 이들은 다들 경험이 많은 베테랑 배우.

       거기서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눈에 띈 조서희의 연기는 그냥 뛰어나다, 라는 말로 묘사하기에 부족했다.

       

       ‘쟤가 1등이겠네.’

       

       한선아는 조서희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여태 펼친 아역들의 연기를 보자면, 누구라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박정우는 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남자 아역들이 기가 죽은 것을 보면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든 배역이 정해졌다고.

       

       이 방송을 시청하던 한선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응?’

       

       하지만, 그때였다.

       

       여태 비중이 없던, 소녀가 앞으로 나오며 모습을 드러낸 건.

       

       귀여운 아이였다.

       짙은 흑발에 옅은 갈색, 아니 붉은빛이 아른거리는 눈동자는 묘한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아직 작은 아이에게선 느낄 수 없는 고요함이 그곳에 있었다.

       

       그 아이를 소개하는 자막에는 연기 경력 반년, 거기에 CF 출연이 전부라는 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한선아는 이 아이가 누구인지 바로 눈치챘다.

       

       “아, 두유 광고!”

       

       요즘 한창 인기라는 두유 광고에 나온 아이.

       분명 광고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연기를 잘할까?’

       

       연기경력 반년에, CF 촬영 두 번.

       어디로 봐도 제대로 연기를 배운 애들이나 연기 경력이 있는 애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묘한 눈동자색과 눈에 띄는 외모 정도로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연기가 시작되고 전혀 달라졌다.

       

       연화공주.

       오디션장에 도도히 모습을 드러낸 연화공주였다.

       노을을 등지고 선 애달픈 소녀.

       

       한선아는 그런 두유소녀의 연기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1부가 끝난 후였다.

       

       “아니! 이렇게 끝내는 게 어딨어!”

       

       한선아는 분개했다.

       이는 제작진의 농간이며, 시청률을 올리려는 비열한 술책이었다.

       결국 누가 연화공주냐고.

       

       조서희야, 주서연이야?

       한선아는 씨근덕거리며 책상에 앉았다.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아프지 않았으니까.

       머릿속도 어째서인지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래서 조서희랑 그 두유소녀랑 누구일 거 같아?”

       

       이후 일주일.

       함께 재수학원을 다니는 친구와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신문방송학과를 지원하는 만큼, 선아의 친구 중엔 연예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니, 이번 태숨달 오디션에 관한 이야기도 당연히 언급될 수밖에 없었다.

       

       “어렵네, 근데 나는 두유 소녀 쪽이 좀 더?”

       “하지만 심사보던 사람들이 그랬잖아. 안정성은 조서희가 위라고.”

       “야, 너도 알잖아. 연기는 번뜩임이야, 번뜩임!”

       

       그런 대화가 몇 번이고 오갔을 무렵, 시작된 2번째 메이킹 방송.

       2부의 연기는 1부보다 더 치열했다.

       

       당연히 스포일러가 되기에 모든 장면이 나오지 않았으나, 장면 장면 보여준 다양한 연기들은 당장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서희의 연기는 안정적이었다. 어린데도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졌다.

       천재 아역, 분명 그 수식어가 어울리는 소녀였다.

       

       그에 반에, 이어진 두유소녀. 아니, 주서연의 연기는 투박했다.

       몇 번의 연기를 보니, 확실히 기술적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있었다.

       

       하지만, 존재감이. 강렬함이 있었다.

       감정에게 호소하는,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한선아는 자신도 모르게 서연을 응원했다.

       팬.

       그래, 아마 팬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선아는 정돈된 조서희 연기보다 투박한 서연의 연기에서 애정을 느꼈으니까.

       

       그렇게, 두 번째 방송이 모두 끝나고.

       설마 세 번째 방송으로 발표를 미루나 생각하던 순간.

       

       화면이 전환됐다.

       

       「태양을 숨긴 달, 어린 이혜월 역을 맡게 될 아역은.」

       

       장소는 회의실이었다.

       자리에 앉은 촬영감독, 프로듀서, 각 스태프들이 표를 교환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연화공주, 이혜월의 역은 주서연 양입니다.」

       

       결과는 2표차이로 주서연의 승리.

       마치 한편의 장편 예능을 완주한 만족감이 한선아를 감쌌다.

       

       “……드라마 꼭 봐야겠다.”

       

       한선아는 무심코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최근 공부 때문에 미뤄두었던 드라마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건 꼭 본방을 시청해야겠다고.

       그녀는 그렇게 다짐했다.

       

       ***

       

       메이킹 필름 이후, 서연에 대한 주목도는 단번에 올라갔다.

       지금까지는 두유 CF를 찍은 귀여운 외모의 여자아이.

       

       정도가 서연의 평가였다면, 지금은 여러모로 복합적이었다.

       

       일일 드라마의 공주님, 조서희를 이긴 천재 아역!

       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연기는 조서희가 더 잘했는데, 이건 신인 밀어주기다! 외모만 보고 뽑은 거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서연아, 알지? 인터넷 보면 안 돼?”

       

       수아의 눈과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마에 솟은 핏대가,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거기다, 눈아래는 거뭇거뭇한게, 밤새 인터넷을 한 모양이었다.

       

       ‘어제 넥스트, 막고라 광장에서 엄청 싸우셨던 것 같은데.’

       

       인터넷 포털사이트 넥스트에서, 이번 오디션에 관해 올라온 글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청원이나, 이야기가 오가는 넥스트의 막고라 광장. 

       그곳에서 서연에 대한 비방이 올라온 걸 발견한 수아는 양팔을 걷어붙이고 밤새, 많은 이들과 맞서 싸웠다.

       

       밤에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온 서연은, 용맹하게 싸우는 엄마를 보고 잠시 굳어있었다.

       그 모습은 가히 장판파의 장비와 비견될 정도였으니까.

       

       “흠, 뭐 별 수 있나.”

       

       그에 반에 아버지, 주영빈은 무척 쿨했다.

       

       “알지, 서연아? 이건 진짜 연기로 보여줘야 하는 거야. 아빠는 물론 우리 서연이를 믿는다.”

       “네.”

       “크, 요즘 아빠가 진짜 서연이 덕에 살맛 난다니까.”

       

       서연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은 주영빈은 넥타이를 메곤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했다.

       최근 그는 회사에 가는 게 아주 즐거웠다.

       

       자고로, 부모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뭐냐.

       바로 자식 자랑이다.

       

       심지어 출근만하면 주변에서 영빈에게 서연에 대해 묻는 이들이 많았다.

       경우에 따라선, 미리 사인을 받고 싶다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그것이 그동안 영빈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김 팀장이었던 탓에, 영빈의 기분은 거의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아빠, 엄청 좋아하네.’

       

       물론 서연은 그런 영빈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래서 오디션, 오디션하는 구나.’

       

       확실히 근 시일 내에 화제를 끌어모으려면 이만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만약 버튜버도 오디션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확 홍보가 되지 않을까?

       

       ‘이 정도면, 나중에 기업세를 노려보는 것도…….’

       

       버튜버도 오디션으로 뽑지 않나?

       거기에 출연에서 이번 같이만 한다면, 한 번에 괴물 신인! 같은 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다짐하는 서연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수아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서연아, 그래도 너무 부담은 가지면 안 돼? 그리고, 다음에 병원도 예약해뒀으니 꼭 가야한다?”

       “아, 네.”

       

       서연은 문득 이전에, 서연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정신과를 예약했다는 걸 떠올렸다.

       아마 누구의 제안이었던 것 같은데…….

       

       ‘흐음.’

       

       서연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그녀로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장소였으니까.

       

       ***

       

       태양을 숨긴 달의 홍보는 현재 매우 성공적이었다.

       연예생중계 PD에게 부탁하여 특별 편성을 한 건 정답이었던 모양이었다.

       

       다만 그와 별개로 하태오 PD는 내심 불안했다.

       

       ‘주서연…… 괜찮을까.’

       

       투표로 정해진 승자였다.

       당시 오디션에 보여준 연기력만 보자면 두말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연기는 비슷한 또래와 연기를 펼치는 게 아니었다.

       배우들.

       

       그중에서도 연기력으로 인정 받은 베테랑 배우들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아마 배우 중에선, 제대로 연기를 배우고 엘리트의 절차를 밟던 조서희가 떨어진 것에 불만을 품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솔직히, 그 아이는…… 흠, 사도(邪道)에 가까우니까.’

       

       말하자면 정석이 아닌 지름길로 달려 온 케이스다.

       당연히 제대로 연기를 배우고, 프라이드가 강한 배우일수록 좋지 않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태오는, 오디션 투표에서 조서희에게 한 표를 선사했다.

       분명 오디션에서 더 큰 충격을 보여준 건 주서연이었지만, 촬영현장은 오디션과 달랐으니까.

       

       “하 PD님.”

       

       그때, 희끗한 머리를 가지런하게 정돈한 여배우가 하태오를 불렀다.

       

       “아! 네, 정은선 배우님.”

       “오늘, 그 아이의 드라마 첫 촬영이라지요?”

       “그렇, 습니다.”

       “흐음.”

       

       하 PD는 슬쩍 정은선의 표정을 살폈다.

       배우답게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사람에겐 심기라는 게 있다.

       오랫동안 많은 배우들을 지켜본 하태오는 그것을 대충 읽을 수있었다.

       

       ‘이거, 찍혔네.’

       

       정은선 배우는 원로 배우다.

       특히 연기에 대해선 깐깐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투박한 서연의 연기는 못마땅함 그 자체였다.

       

       ‘거기다 공공연하게 조서희를 이뻐하는 티를 내기도 했고.’

       

       그녀 또한 아역 출신으로 대성한 경우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드러낸 조서희을 특히 예뻐했다.

       함께 예능에 나왔을 때는 조서희와 드라마에 촬영할 때가 기대된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 기회를 덜컥.

       어디선가 굴러온 돌이 박살 내버렸다.

       

       ‘부디, 그 아이가 멘탈이 튼튼하길 바라야겠군.’

       

       하필, 정말 하필.

       정은선이 맡게 된 배역은 은혜대비.

       

       말하자면 연화공주, 이혜월의 왕대비.

       즉, 할머니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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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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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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