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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도저히 못 버티겠어!”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회.

       

        극소수의 인원에게 허락되는 이곳은 히어로 지망생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의무에서 해방되는 곳이다.

       

        그 학생회 서기, 송수아는 오늘도 멍하니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크리스마스의 사건 이후로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항상 그럴 때면, 송수아는 누군가를 찾았다. 

       

        그의 행동반경이 지극히 똑같은 패턴을 이루고 있었기에 우연을 가장한 만남은 아주 쉬운 것이었다.

       

        드르륵!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송수아가 움직였다.

       

        오늘도, ‘우연히’ 그를 만나는 거다. 단지 우연이다. 우연일 뿐이다.

       

        * * *

       

        내가 최근 무슨 일을 겪었던 간에,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현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법이다.

       

        오후의 D급 학교.

       

        비정상적인 온화한 날씨덕에 얇은 저지를 입은 나는 운동장 구석에 대자로 뻗어있었다.

       

        “어이.”

        “……?”

       

        따스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자연히 낮잠이 솔솔 몰려오는 기분에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자 좋군. 고작 D 레벨의 능력자가 이토록 게으를 수가 있나.”

       

        목소리처럼 낯선 얼굴이다. 변태 저리가라 할 옷은 그렇다치고, 허리춤의 검을 보니 우리 학교의 재학생은 아니었다.

       

        “자고로 초능력이란 것은 갈고 닦을 수록 더 강인한 힘을 갖게 되는 법이다.”

       

        뭐가 그리 불만인 건지.

       

        놈은 처음 보는 내게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어?”

       

        그러던 중,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점프 슈트를 개량한 듯한 달라붙는 옷.

        머리에 쓴 반쯤 흘러내린 고글.

        허리춤의 검.

        어지간한 꼰대 저리가라 할 말투까지.

       

        “무슨 일인데.”

       

        놈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야 이렇게 뻔한 행색을 하고 있다면, <히사있>을 읽었던 독자라면 모두 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신속>의 최영웅.”

        “뭐, 뭐라? 그걸 어떻게!”

       

        자신의 이명을 친절히 읊어주니 불청객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아니, 설마 이거 비밀이였냐? 그 꼴을 하고서?

       

        그가 <신속>의 능력을 가진 랭커라는 사실 외에도, 나는 녀석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주 많았다.

       

        ‘신성 교단’의 심판관, 주제도 모르고 <성녀>안젤리카와 묘한 경쟁관계라고 생각하는 놈, 검을 차고 다니는데 검술을 모르는 등신 등등.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이놈의 능력은 직관적이다. 재빠른 속도, 그 인간의 한계를 속도로 적을 초살하기 위한 전투 방식까지.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난 뒤로, 몇 없는 ‘안전 인물’로 지정한 녀석이기도 했다.

       

        “놈! 어서 말해라. 도대체 D급의 떨거지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아낸 것이냐?”

        “…….”

       

        잔뜩 붉어진 얼굴의 최영웅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과거, 한유리가 이 아카데미 내엔 수없이 많은 ‘힘숨찐’과 ‘컨셉충’이 산재해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신속>의 최영웅. 이 자식은 그 대단하신 컨셉충의 우두머리다.

       

        “대화로 풀어야 하려 했지만,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놈이군!”

       

        스윽.

       

        놈이 고글을 쓴다.

       

        분명 전투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신속>을 감당하기 위한 나름의 ‘신호’였다.

       

        “…….”

       

        솔직히, 조금 반가웠다.

       

        저 지독한…… 영화 속 누군가를 선망하는 모습이 우리 학교의 컨셉충과 퍽 닮지 않나.

       

        뭐, ‘물품 보관’이나 ‘신체 변환’같은 놈들 말이다.

       

        “경고한다. 내 조사에 성실히 임해라.”

        “까고있네. 어차피 능력 쓰려고 고글 썼잖아?”

        “……허! 보기보다 감이 좋은 놈이야.”

       

        최영웅이 슬쩍 웃었다.

       

        놈을 마주한 나는 아리송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신속>의 능력은 강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그 경이로운 속도에 검이 휘둘러지는 파괴력은 정말 대량살상병기에 비견될 정도니까.

       

        그렇다면 그 그가  왜 나를 찾아와, 대뜸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말인가.

       

        <신속>의 최영웅. 놈이 이렇게 움직일 이유는 단 하나다.

       

        “신성교단에서 보냈나?”

       

        멈칫!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던 놈의 동작이 곧장 멎었다.

       

        “……뭐, 뭐라고?”

       

        그리고는, 더 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아, 이것도 비밀이었나?”

        “이노옴!”

       

        스르릉!

       

        검이 뽑혀나온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초월한 공격이 곧장 내게 쇄도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가해지는 ‘물리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을까?

       

        [ 현상 거절. 내게 가해지는 모든 물리 공격을 거절한다. ]

       

        물론 가능하다.

       

        파각!

       

        “뭐, 뭐라?”

       

        진언을 읊는 순간, 둔탁한 피격음과 함께 멍한 최영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무슨 짓을 한 거냐? 도대체 내 공격이 어떻게……!”

       

        놈이 경악해 소리를 치던 말던, 나는 고뇌를 계속했다.

       

        현상 거절. 이 능력의 진언은 허점과, 논리의 궤변이 알아서 보정되는 힘이 있다.

       

        “가, 감히! 고작 D급의 버러지가!”

        “흠.”

        “죽어라!”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방식으로 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현상 거절, 내게 가해지는 물리력을 모두 상쇄하고, 대상자의 기력을 빼았는다. ]

       

        파가가가각!

       

        다시 한번, 최영웅의 공격이 틀어박힌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기꺼운 사실은 그의 검이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굳이 ‘공허’라는 공간을 꺼낼 필요도 없이…… 나는 놈의 극상성인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래, 소위 말하는 ‘카운터’라는 것이다.

       

        “이놈! 도대체 무슨 사술을 쓴 거냐?”

        “조용히 해. 지금 집중하고 있으니까.”

        “이, 이자식이! 죽여버리겠다!”

       

        물리적인 힘을 가진 능력의 한계다. 

       

        뭐, 물리적인 파괴를 가하는 능력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게 그 물리력을 가할 수가 없다는 뜻이지.

       

        놈은 내게 좋은 실험쥐였다. 

       

        뜬금 없이 나타나, 온갖 실험을 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현상 거절, 내게 가해지는 공격을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균등히 나누어 받는다. ]

       

        왈칵!

       

        “아, 이건 선을 넘었나?”

       

        새로이 진언을 읊자, 곧장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것이 고작 얼마 전인데 목 깊은 곳에서 피가 울컥 흘러나온 것이다.

       

        슥슥.

       

        대강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은 나는 잔뜩 붉어진 얼굴의 최영웅을 바라보았다.

       

        대뜸 검을 내지른 것이 거짓말처럼, 놈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일까? 더 없이 진중한 태도다. 진작에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성녀>가 왜 그리 조심하라고 했는지, 이제 알겠군.”

        “성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성녀, 그 여자가 최영웅을 내게 보냈다고?

       

        <성녀> 안젤리카 ‘더 글로리아’ 플리머스. 그녀가 내게 최영웅을 보냈다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녀는 존재 자체가 ‘기적’의 산물이다. 성녀가 진심으로 나를 해하려 들면, 나 혼자의 힘으로는 대항하기 어려울 것이 뻔하다.

       

        “그래. 성녀가 네 조사를 부탁하더군!”

        “……?”

       

        최영웅의 외침에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조사?”

       

        설마 내가 아는 조사라는 단어와, 최영웅이 아는 조사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다른 건가?

       

        “그렇다.”

        “…….”

       

        씨익.

       

        내 태도가 변했다고 생각한 건지, 최영웅이 슬쩍 웃는다.

       

        그 꼴을 보니 화가 치솟았다. 이 새끼 뭐야?

       

        “그럼 왜 대뜸 공격이야? 미친놈아.”

       

        어이가 없었다.

       

        하긴, 아무리 기억을 짚어도 교단에 척을 질 일은 기억에 없었다.

       

        ‘그것도 아닌가? <성녀>가 죽음을 예언한 송수아를 살려냈으니.’

       

        예언이 틀어졌다는 걸 깨달은 성녀가, 조사를 위해 <신속>을 내게 파견했다면 얼추 퍼즐이 맞았다.

       

        물론… 예언이 틀어진 이면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 미미, 미친…… 놈?”

       

        그런데.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습게도 최영웅은 욕설에 면역이 없는 애송이인 모양이다.

       

        부들부들.

       

        놈이 곧장 붉어진 얼굴로 손을 부르르 떨었다.

       

        “화났네.”

        “감히, 감히, 감히!”

       

        또 무언가 올 것 같은 분위기.

       

        그에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능력을 개방했다.

       

        [ 현상 거절, 내게 가해지는 물리 공격을 거절한다. 또한, <신속>이 만드는 소음을 차단한다. ]

       

        “…….”

       

        진언을 읊고 나니, 내 앞에서 희끄무리한 무언가가 날아다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보나마나 최영웅이 열심히 칼로리를 태우는 중인 거겠지. 생긴 것과 달리 참 정직한 놈이다.

       

        “퉤!”

       

        입 안의 피를 바닥에 뱉은 나는.

       

        “크아아악! 죽어! 죽으라고!”

       

        자리를 깔고 다시 누웠다.

       

        물론, 그런 나를 향해 최영웅이 열심히 공격을 가하고 있긴 했지만…….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애석한 사실은 그의 공격은 내게 닿지 않다는 것이다. 그게 이 현실 세계의 법칙인데 어떡하나.

       

        * * *

       

        “흐흥-”

       

        송수아는 기분좋은 콧노래와 함께 걸었다.

       

        한손에는 새하얀 비닐 봉투가 들려 있다. 

       

        그 안에 든 것은 얼마 전, 임혜성과 함께 갔었던 카페의 빙수. 맛있게 빙수를 먹던 모습이 떠올라 포장 주문한 것이었다.

       

        “헤헤.”

       

        더이상, 만남을 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덕분인지…… 아까부터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와 만나고, 대화하며, 달콤한 빙수를 함께 먹을 생각에 슬쩍슬쩍 미소가 삐져나온다.

       

        “여긴데에?”

       

        이미 몇차례의 우연을 가장한 접근 덕분에 지리가 익숙한 D등급 학교다. 지금 시간은 ‘자율 수련 시간’. 분명 임혜성은 운동장이나, 실외 수련장에 있을 것이다.

       

        더 없이 하늘하늘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

       

        그런데.

       

        저 멀리서 이상한 것이 보인다.

       

        인적이 드문 운동장의 구석.

       

        누군가…… 바닥에 쓰러진 이를 향해서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는 와중이다.

       

        설마 자신이 꿈을 꾸는 건가, 싶었던 송수아는 천천히 눈을 비볐다.

       

        꿈이 아니다. 

       

        정말, 그 끔찍한 일이 대낮의 아카데미에서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툭!

       

        빙수가 들어있던 봉투가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소름이 돋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어려웠다.

       

        모두 바닥에 쓰러진 사람…… 그의 얼굴을 본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흙을 적신 검붉은 피.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남자, 임혜성.

       

        그를 향해 섬뜩한 칼날을 휘두르는 의문의 남자.

       

        쿠구구구궁-

       

        하늘이 진노했다.

       

        곧장 화창한 하늘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저게…… 뭐야?”

       

        먹구름처럼 어두운 분위기가 송수아의 얼굴에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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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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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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