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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

        안타깝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나는 실비아씨에게 단숨에 붙잡히고 말았다.

        ​

        하긴 마왕까지 토벌하신 용사님인데, 나 같은 일반인의 달음박질 정도는 가볍게 따라잡을 수 있겠지.

        ​

        마차 사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아마 쉽게 붙잡혔을 것이다.

        ​

        나는 오랜만에 뛰어본 탓인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

        아니, 솔직히 단순한 체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

        조금 전 보았던 그 이해 못할 광경과 지금 내 팔을 억세게 붙잡은 그녀의 필사적인 표정이 불러일으키는 은은한 공포 때문이기도 했다.

        ​

        실비아씨가 내뿜던 살기에 느낀 공포와는 또 다른 공포였다.

        ​

        그때의 공포가 말 그대로 죽음을 예상케 하는 공포였다면, 지금의 공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공포였다.

        ​

        실비아씨는 호흡하나 흩트리지 않은 채 새빨개진 얼굴로 항변했다.

        ​

        ​

        ​

        “어디부터 봤어.”

        ​

        “몰라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

        “들었어…?”

        ​

        “아뇨. 아닙니다. 못 들었습니다.”

        ​

        “…”

        ​

        ​

        ​

        나는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

        당연하지, 그 광경에 관해 설명을 요구할 만큼 나는 용감하지 못했다.

        ​

        마왕도 토벌한 여자가 이불 페티쉬나, 냄새 페티쉬가 있다고 해도 그걸 지적할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

        실비아씨는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추고, 다시 말을 하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

        그러면서도 그 두 눈의 시선은 똑바로 내게 꽂혀 있었다.

        ​

        나는 덜덜 떨며 말했다.

        ​

        ​

        ​

        “그, 어… 그,”

        ​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생각은 틀렸어. 오해야.”

        ​

        “아무 생각 안 했습니다. 살려주세요.”

        ​

        “네가 본 건… 그러니까…”

        ​

        ​

        ​

        실비아씨는 무언가 설명하려다가도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을 더 붉히기만 했다.

        ​

        나는 그녀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

        생각해보자,

        ​

        그녀가 왜 내 이불을 들고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을까.

        ​

        이불을 좋아하나? 

        ​

        아니, 내 이름을 연신 불러대고 있었잖아.

        ​

        설마 나를?

        ​

        나는 고개를 저었다.

        ​

        그녀의 나이가 몇일까.

        ​

        누나랑 같은 아카데미를 나왔다고 하니 누나와 비슷한 나이겠지.

        ​

        그럼 오차 범위를 넓게 잡아도 나보다 3~5살 많다는 뜻이고, 내가 올해 생일에 21살이 되니, 즉 그녀는 20대 중반의 건장한 처녀라는 뜻이다.

        ​

        그럼 그야, 성욕은 있겠지…?

        ​

        여성도 당연히 남성처럼 욕구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

        그녀는 여기서 약 4년간 있었다고 추측된다.

        ​

        대략 20살쯤부터 이곳에서 혼자 살아온 것이다.

        ​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있어 몇 년 만에 처음 만난, 그리고 동거하게 된 낯선 남자였다.

        ​

        그렇다면야…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

        가장 음기가 충만한 혈기 왕성한 시기를 아무도 없는 이 숲에서 보냈을 테니, 남자의 온기를 간절히 바랐을 수도 있다.

        ​

        애초에 내 외모가 용사님을 홀릴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건 아니니까, 이 사태는 결국 그녀가 처한 특수하고도 불행한 이 상황이 원인일 것이다.

        ​

        그렇다면 오히려 이 정도 페티쉬는 아주 양호한 게 아닐까?

        ​

        되려 더한 추태를 보이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

        나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그, 그럴 수 있죠. 워낙에 외롭거나… 그 몸이 달아올라서, 그. 뭐… 사냥하거나 격하게 몸을 쓰면 뭐 그런 욕구가 막 생기기도 한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하고요…? 그, 그러니, 까… 음. 아니 그, 뭐라고 해야 하지.”

        ​

        ​

        ​

        실비아씨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오르더니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

        그리고는 숲에 울릴 만큼 큰 소리를 질렀다.

        ​

        ​

        ​

        “오, 오오… 오해라니까!”

        ​

        ​

        ​

        ​

        ​

        ​

        ​

        ​

        ​

        ​

        *

        “우, 우와 이 토끼 되게 맛있어 보인다…”

        ​

        ​

        ​

        부엌에서 요리를 준비하던 나는 손질되어 살코기만 남은 토기를 바라보며 괜히 말해보았다.

        ​

        ​

        ​

        “…”

        ​

        ​

        ​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한번하고는 요리를 시작했다.

        ​

        솔직히 간만에 해보는 요리인지라 이 시간이 오기를 조금은 기대하기도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건 덕분에 온전히 요리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

        나는 냄비에 썰어둔 야채를 넣고 끓이면서 탁자 쪽을 흘끗거렸다.

        ​

        실비아씨는 자기 얼굴을 가린 채 탁자에 앉아있었다.

        ​

        벌써 세 시간은 저 자세로 앉아 있는 것 같다.

        ​

        간신히 용기를 내 무언가 한마디 건네 보려 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

        하긴, 만약 내가 실비아씨의 이불 냄새를 맡다가 그녀에게 걸렸다고 생각해보면… 어휴, 

        ​

        잠깐 상상해 본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

        자위행위를 하다 가족에게 들킨 상황과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

        ​

        ‘괜찮아요,’ 라고 할까? 아니, 전혀 괜찮지 않을 거다.

        ​

        반대로 내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상대가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것이 더 수치스러울 것 같았다.

        ​

        어… 해도 된다고 할까? 아니 그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

        무엇보다 나 역시 그녀가 그런 행동을 계속해도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

        내 체취를 잔뜩 맡게 하다니,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

        애초에 그녀는 오해라고 거듭 말했을 뿐, 결국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말해주지도 않았다.

        ​

        하지만, 그녀의 동기를 캐물어 볼 용기는 내게 없었다.

        ​

        ‘실례지만 왜 제 이불 냄새를 킁킁 맡고 계셨나요?’ 라는 질문을 어떻게 해. 

        ​

        결국 내 선택은 최선을 다한 화제 전환이었다.

        ​

        ​

        ​

        “야채가 다 익기 전에에- 허브를 밑간해둔 고기를 넣고오-오?”

        ​

        ​

        ​

        나는 어색한 목소리로 조리 과정에 음을 붙여가며 흥얼거렸다.

        ​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어색해서 못 견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침묵을 지워보려는 내 가련하고도 성급했던 시도는 마지막 끝 음 처리에서 삑사리를 내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해 버렸다.

        ​

        그 바람에 나는 다시 부끄러워져 입을 다물었다.

        ​

        결과적으로 전보다 더욱 민망한 공기가 오두막 안을 가득 채웠다.

        ​

        어색한 침묵이 감싼 이곳은 화로에서 보글보글 육수가 끓어오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

        아, 내가 생각한 즐거운 요리 시간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

        ​

        ​

        “… 완성했습니다.”

        ​

        ​

        ​

        약 한 시간 동안의 침묵의 조리시간이 지난 후, 나는 나무 그릇 두 개를 꺼내 열심히 끓여낸 스튜 비스름한 것을 담았다.

        ​

        요리가 완성될 때까지 실비아씨는 얼굴을 가린 채 앉아있었다.

        ​

        마치 흉악한 석화 마법을 맞아 돌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그 마법의 이름은 수치심이다. 

        ​

        ​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앞에 그릇을 놓고, 숟가락도 그 옆에 두었다.

        ​

        그릇 안에는 푹 익은 토끼의 살과 야채들이 가득한 스튜가 모락모락 향긋한 김이 피어올랐다.

        ​

        스튜 위엔 구워낸 토끼의 살을 손으로 찢어 토핑으로 올려놓았고, 그 위에 다시 간단하게 구운 채소들을 잘게 부숴 버려놓았다.

        ​

        버섯을 노릇하게 구운 뒤, 안에 다져 넣은 골파와 감자를 채운 사이드 메뉴도 있었다.

        ​

        어제 큰소리를 쳐 놓은 게 있다 보니 제법 정성을 다해 만들었고, 그래선지 겉보기에는 꽤 먹음직스러웠다.

        ​

        소금은 결국 구할 수가 없었기에 싱거운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허브와 버섯 등으로 감칠맛을 끌어 올렸으니 겉보기뿐 아니라 맛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역시 있었다.

        ​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오두막 안에는 어색하고 냉랭한 분위기만이 감돌았다.

        ​

        전혀 식사를 즐길 분위기가 아니었다.

        ​

        ​

        ​

        “실비아씨. 드셔요.”

        ​

        “…”

        ​

        “…”

        ​

        ​

        ​

        물론 내가 요리를 하겠다 제안한 것은 내게 여러 배려를 해 주었던 그녀를 대접해주고 싶었기 떄문이었다.

        ​

        애초부터 그녀를 위한 음식이니까, 정작 실비아씨가 식사할 기분이 아니라면 내가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하지만 솔직히 없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만든 요리인데, 제대로 즐겨주지 않으면 조금 많이 섭섭할 것 같았다.

        ​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각오를 다졌다.

        ​

        ​

        ​

        “낮에 있던 일 때문에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예요?”

        ​

        ​

        ​

        나는 답이 뻔히 나와 있는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

        당연히 내가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

        단지,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를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

        실비아씨의 몸은 내 질문을 듣자마자 크게 움찔거렸다.

        ​

        ​

        ​

        “그럴 수도 있죠.”

        ​

        “우으,”

        ​

        “…실비아씨는 이불을 세탁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것뿐, 다른 의미가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잖아요?”

        ​

        “…!”

        ​

        ​

        ​

        나는 그녀가 도망갈 구멍을 파 주었다.

        ​

        역시 용사님, 

        ​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는다.

        ​

        ​

        ​

        “그, 그렇지… 그런 거였지.”

        ​

        “그, 그렇죠?”

        ​

        ​

        ​

        물론, 나는 그게 단순히 내 이불의 세탁 시기를 가늠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다.

        ​

        그리고, 당연히 그녀도 내가 배려해 주고 있다는 걸 알 것이다.

        ​

        우리는 속는 사람 하나 없는 거짓말을 위해 서로의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

        ​

        ​

        “그야, 제가 여기 온 지도 벌써 얼마나 오래 지났는데요. 그 와중에 땀도 많이 흘렸을 테고,”

        ​

        “그렇지, 끙끙 앓기도 했고, 식은땀도 많이 흘렸으니까… 악취가 나는지 확인 해 본 것뿐이야…” 

        ​

        “허허허, 이제는 다리도 괜찮아졌으니 그런 집안일 같은 건 제가 해도 되는걸요.”

        ​

        “아니, 아직 나은지 얼마 안됬으니까 무리하지는 말아야지.”

        ​

        “아까 제가 도망치던 거 보셨잖아요? 이제는 괜찮아,”

        ​

        “아,”

        ​

        “아, 아앗,”

        ​

        ​

        ​

        이런, 실수했다.

        ​

        그녀는 내가 도망치던 광경을 떠올리더니 다시 얼굴이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

        예전의 나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

        다시 식탁 위에 침묵이 감돌았다.

        ​

        빌어먹을.

        ​

        ​

        ​

        ​

        ​

        ​

        ​

        ​

        ​

        ​

        *

        결국 이 대치 상태를 깨트린 것은 나의 노력이 깃든 음식들의 향긋한 냄새와 종일 공복에 시달렸던 우리 두사람의 뱃가죽이 울려대는 소리였다.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뱃속이 꼬르륵 울리자, 그녀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

        그녀는 천천히 숟가락을 들어 올리고는 천천히 스튜를 떠먹기 시작했다.

        ​

        ​

        ​

        “…어,”

        ​

        “…!”

        ​

        ​

        ​

        뭐지, 입에 안 맞나?

        ​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

        ​

        “와아… 맛있는데?” 

        ​

        “됐다!”

        ​

        “…?”

        ​

        “아, 아니에요.”

        ​

        ​

        ​

        나도 모르게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

        그야 방금 실비아씨의 반응은 너무나 생생해서 거짓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 떄문이었다.

        ​

        여전히 어색한 기운이 맴돌던 그녀의 표정이 스튜를 먹자마자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전환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

        나는 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의자 등받이에 늘어졌다.

        ​

        ​

        ​

        “후아…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이에요.”

        ​

        “예전에 모험할 때도 야영하면서 많이 먹었던 스튜라서 큰 기대는 없었는데…”

        ​

        ​

        ​

        실비아씨는 토끼처럼 크게 눈을 뜨더니 이내 곧 연거푸 스튜를 떠먹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옛날의 평화로웠던 시절의 기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

        만약 우리 집이 귀족 가문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백작가의 주방장이 되었을 것이다.

        ​

        남매 중 아버지의 요리 실력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나였으니까.

        ​

        실제로 귀족이 되기 전엔 바쁜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종종 누나와 동생의 식사를 만들곤 했었다.

        ​

        둘 다 입맛이 없어 다른 음식은 입에도 안 댈 때에도, 내가 만든 요리만큼은 한 숟갈이라도 꼭 먹어주곤 했었다.

        ​

        특히 배가 고프던 날엔 그릇을 바닥까지 싹싹 비우고 만족스럽게 웃기도 했다.

        ​

        귀족다운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해맑은 미소를 띤 두사람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

        물론 그때 라일라는 죽만 먹을 수 있던 갓난아기였으니 지금은 기억도 못 했지만, 누나는 분명 똑똑히 기억하겠지.

        ​

        … 멍청이.

        ​

        뭘 기억해.

        ​

        둘 다 죽었잖아.

        ​

        ​

        ​

        “애쉬?”

        ​

        “아, 네?”

        ​

        ​

        ​

        나를 부르는 실비아씨의 목소리에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아, 아니… 그게,”

        ​

        “…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

        “그거 아니에요. 좀.”

        ​

        ​

        ​

        나는 또 폭주하려는 실비아씨를 진정시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예전에… 가족들에게도 이렇게 요리를 해주곤 했었거든요…”

        ​

        “…그랬구나.”

        ​

        “…”

        ​

        ​

        ​

        이런 미래가 기다릴 줄 알았다면, 그떄 누나가 먹고 싶어 하던 고가의 햄도 자주 써볼걸,

        ​

        라일라가 좋아하던 방울토마토도 조금 더 열심히 구해볼걸,

        ​

        마음속 슬픔에 덮어둔 뚜껑이 살짝 열리며 그런 후회가 물밀듯이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

        하,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

        어차피 기다리는 건 이렇게 이른 나이에 맞이한 죽음뿐인 것을.

        ​

        아직도 이따금 궁금하곤 했다.

        ​

        왜 그 둘은, 이렇게 빨리 죽었어야 했는지.

        ​

        왜 나만 이렇게 살아남았어야 했는지.

        ​

        그 두사람의 죽음과 운명에 어떠한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보았다.

        ​

        그저 불운한 우연뿐이었다면 너무 억울하고 슬픈 불행이 아닌가.

        ​

        ​

        그 순간 내 잡념을 찢어놓는 실비아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행복했겠다.”

        ​

        “네?”

        ​

        “네 가족은 행복했겠다. 이런 요리를 해주는 네가 있어서.”

        ​

        “에이, 그런 건…”

        ​

        ​

        ​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말을 반박하려 했다.

        ​

        그것은 겸양이기도 했고, 사실 정정이기도 했다.

        ​

        아무리 그래도 내 실력이 아버지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던 데다가, 우리 가족의 결말을 생각해 보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기 떄문이었다.

        ​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자 나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

        그녀의 얼굴엔 짙은 부러움과 깊은 그리움이 배겨있었다.

        ​

        마치 아주 오랫동안 행복한 적이 없던 사람처럼.

        ​

        누군가의 행복한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질투가 나서, 흐뭇한 미소를 짓지 못하고 아니라 진심으로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

        그녀는 내가 만든 버섯요리를 한입 베어 물고는 눈을 감은 채 오물거렸다.

        ​

        턱이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

        그녀는 이빨이 버섯을 가르는 감촉과 버섯 안에 채워 넣은 야채의 맵싸한 단맛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느끼려 하고 있었다. 

        ​

        한참이나 입안의 음식을 맛보던 그녀는 꿀꺽 삼키고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

        ​

        ​

        “맛있어. 정말.”

        ​

        “실비아씨…”

        ​

        ​

        ​

        나는 내 짧은 생각을 반성했다.

        ​

        남자의 온기가 그리웠을 거라고?

        ​

        그런 단순하고도 얄팍한 욕구가 아니다.

        ​

        그녀는 인간의 온기 자체가 너무나 그리웠을 것이다.

        ​

        대화, 논쟁, 다툼 같은 사회적인 상호작용.

        ​

        친밀, 우정, 사랑 따위의 인간적인 감정을 나눌 사람.

        ​

        칭송받아야 마땅할 영웅인 그녀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을 이 오지에 박아두었다.

        ​

        어쩌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소금간 하나 없는 음식에 이렇게까지 감동할 정도로 너무나 비참한 수준의 생활,

        ​

        고작 동거인 남자의 향기에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피부를 파고드는 싸늘한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그 누구에게 도움 하나 요청하지 못했다.

        ​

        어떻게든 자신의 생존과 저주를 세상에 알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세상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면서도, 마왕을 무찔렀다는 업적에 걸맞은 보상심리가 그녀를 수없이 부추겼을 것이다.

        ​

        그러나 그녀는 그저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

        날짜 감각도 사라질 만큼 아무런 변화도 사건도 없는 이 숲속에서 홀로.

        ​

        상처는 육체를 죽이지만, 고독은 자아를 익사시킨다.

        ​

        그녀에겐 죽음조차 그저 부러운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

        ​

        ​

        “앞으로는 매일 해드릴게요.”

        ​

        “어? 진짜?”

        ​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물론… 구할 수 있는 재료가 한계가 있으니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못 하지만요.”

        ​

        “…”

        ​

        “아니, 다 말해요. 어떻게든 만들어 볼 테니까.”

        ​

        “…후후, 고마워 애쉬.”

        ​

        ​

        ​

        실비아씨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

        오늘 하루 동안 그녀의 얼굴이 몇번이나 붉어지는지 모르겠다.

        ​

        어두운 오두막 안에 빛이라고는 오직 촛불뿐이었기에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째 오늘 중 지금 그녀의 얼굴이 가장 빨갛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

        ​

        ​

        “… 왠지 덥네.”

        ​

        “그러게요. 상상한 거랑 달리 숲속의 여름도 무척 덥네요.”

        ​

        “당연하지, 엄청 더워. 벌레도 많고.”

        ​

        “음… 이만큼 더우면 당분간 저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

        “뭐가?”

        ​

        “이불이요. 그러니까 필요하시면 빌려다…”

        ​

        “오해라고 했지.”

        ​

        “…넵.”

        ​

        ​

        ​

        우여곡절 끝에, 내가 준비한 저녁 식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그녀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내 이불을 들고 세탁 바구니에 처박았다.

        ​

        그 박력이 너무나 대단했기에 나는 그날 더 이상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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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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