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깝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나는 실비아씨에게 단숨에 붙잡히고 말았다.
하긴 마왕까지 토벌하신 용사님인데, 나 같은 일반인의 달음박질 정도는 가볍게 따라잡을 수 있겠지.
마차 사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아마 쉽게 붙잡혔을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뛰어본 탓인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아니, 솔직히 단순한 체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조금 전 보았던 그 이해 못할 광경과 지금 내 팔을 억세게 붙잡은 그녀의 필사적인 표정이 불러일으키는 은은한 공포 때문이기도 했다.
실비아씨가 내뿜던 살기에 느낀 공포와는 또 다른 공포였다.
그때의 공포가 말 그대로 죽음을 예상케 하는 공포였다면, 지금의 공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공포였다.
실비아씨는 호흡하나 흩트리지 않은 채 새빨개진 얼굴로 항변했다.
“어디부터 봤어.”
“몰라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들었어…?”
“아뇨. 아닙니다. 못 들었습니다.”
“…”
나는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당연하지, 그 광경에 관해 설명을 요구할 만큼 나는 용감하지 못했다.
마왕도 토벌한 여자가 이불 페티쉬나, 냄새 페티쉬가 있다고 해도 그걸 지적할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실비아씨는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추고, 다시 말을 하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그 두 눈의 시선은 똑바로 내게 꽂혀 있었다.
나는 덜덜 떨며 말했다.
“그, 어… 그,”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생각은 틀렸어. 오해야.”
“아무 생각 안 했습니다. 살려주세요.”
“네가 본 건… 그러니까…”
실비아씨는 무언가 설명하려다가도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을 더 붉히기만 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생각해보자,
그녀가 왜 내 이불을 들고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을까.
이불을 좋아하나?
아니, 내 이름을 연신 불러대고 있었잖아.
설마 나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나이가 몇일까.
누나랑 같은 아카데미를 나왔다고 하니 누나와 비슷한 나이겠지.
그럼 오차 범위를 넓게 잡아도 나보다 3~5살 많다는 뜻이고, 내가 올해 생일에 21살이 되니, 즉 그녀는 20대 중반의 건장한 처녀라는 뜻이다.
그럼 그야, 성욕은 있겠지…?
여성도 당연히 남성처럼 욕구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는 여기서 약 4년간 있었다고 추측된다.
대략 20살쯤부터 이곳에서 혼자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있어 몇 년 만에 처음 만난, 그리고 동거하게 된 낯선 남자였다.
그렇다면야…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가장 음기가 충만한 혈기 왕성한 시기를 아무도 없는 이 숲에서 보냈을 테니, 남자의 온기를 간절히 바랐을 수도 있다.
애초에 내 외모가 용사님을 홀릴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건 아니니까, 이 사태는 결국 그녀가 처한 특수하고도 불행한 이 상황이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정도 페티쉬는 아주 양호한 게 아닐까?
되려 더한 추태를 보이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나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그럴 수 있죠. 워낙에 외롭거나… 그 몸이 달아올라서, 그. 뭐… 사냥하거나 격하게 몸을 쓰면 뭐 그런 욕구가 막 생기기도 한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하고요…? 그, 그러니, 까… 음. 아니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실비아씨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오르더니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숲에 울릴 만큼 큰 소리를 질렀다.
“오, 오오… 오해라니까!”
*
“우, 우와 이 토끼 되게 맛있어 보인다…”
부엌에서 요리를 준비하던 나는 손질되어 살코기만 남은 토기를 바라보며 괜히 말해보았다.
“…”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한번하고는 요리를 시작했다.
솔직히 간만에 해보는 요리인지라 이 시간이 오기를 조금은 기대하기도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건 덕분에 온전히 요리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냄비에 썰어둔 야채를 넣고 끓이면서 탁자 쪽을 흘끗거렸다.
실비아씨는 자기 얼굴을 가린 채 탁자에 앉아있었다.
벌써 세 시간은 저 자세로 앉아 있는 것 같다.
간신히 용기를 내 무언가 한마디 건네 보려 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긴, 만약 내가 실비아씨의 이불 냄새를 맡다가 그녀에게 걸렸다고 생각해보면… 어휴,
잠깐 상상해 본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자위행위를 하다 가족에게 들킨 상황과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괜찮아요,’ 라고 할까? 아니, 전혀 괜찮지 않을 거다.
반대로 내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상대가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것이 더 수치스러울 것 같았다.
어… 해도 된다고 할까? 아니 그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나 역시 그녀가 그런 행동을 계속해도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내 체취를 잔뜩 맡게 하다니,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애초에 그녀는 오해라고 거듭 말했을 뿐, 결국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말해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동기를 캐물어 볼 용기는 내게 없었다.
‘실례지만 왜 제 이불 냄새를 킁킁 맡고 계셨나요?’ 라는 질문을 어떻게 해.
결국 내 선택은 최선을 다한 화제 전환이었다.
“야채가 다 익기 전에에- 허브를 밑간해둔 고기를 넣고오-오?”
나는 어색한 목소리로 조리 과정에 음을 붙여가며 흥얼거렸다.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어색해서 못 견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침묵을 지워보려는 내 가련하고도 성급했던 시도는 마지막 끝 음 처리에서 삑사리를 내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해 버렸다.
그 바람에 나는 다시 부끄러워져 입을 다물었다.
결과적으로 전보다 더욱 민망한 공기가 오두막 안을 가득 채웠다.
어색한 침묵이 감싼 이곳은 화로에서 보글보글 육수가 끓어오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아, 내가 생각한 즐거운 요리 시간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 완성했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의 침묵의 조리시간이 지난 후, 나는 나무 그릇 두 개를 꺼내 열심히 끓여낸 스튜 비스름한 것을 담았다.
요리가 완성될 때까지 실비아씨는 얼굴을 가린 채 앉아있었다.
마치 흉악한 석화 마법을 맞아 돌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마법의 이름은 수치심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앞에 그릇을 놓고, 숟가락도 그 옆에 두었다.
그릇 안에는 푹 익은 토끼의 살과 야채들이 가득한 스튜가 모락모락 향긋한 김이 피어올랐다.
스튜 위엔 구워낸 토끼의 살을 손으로 찢어 토핑으로 올려놓았고, 그 위에 다시 간단하게 구운 채소들을 잘게 부숴 버려놓았다.
버섯을 노릇하게 구운 뒤, 안에 다져 넣은 골파와 감자를 채운 사이드 메뉴도 있었다.
어제 큰소리를 쳐 놓은 게 있다 보니 제법 정성을 다해 만들었고, 그래선지 겉보기에는 꽤 먹음직스러웠다.
소금은 결국 구할 수가 없었기에 싱거운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허브와 버섯 등으로 감칠맛을 끌어 올렸으니 겉보기뿐 아니라 맛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역시 있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오두막 안에는 어색하고 냉랭한 분위기만이 감돌았다.
전혀 식사를 즐길 분위기가 아니었다.
“실비아씨. 드셔요.”
“…”
“…”
물론 내가 요리를 하겠다 제안한 것은 내게 여러 배려를 해 주었던 그녀를 대접해주고 싶었기 떄문이었다.
애초부터 그녀를 위한 음식이니까, 정작 실비아씨가 식사할 기분이 아니라면 내가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없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만든 요리인데, 제대로 즐겨주지 않으면 조금 많이 섭섭할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각오를 다졌다.
“낮에 있던 일 때문에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예요?”
나는 답이 뻔히 나와 있는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당연히 내가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를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실비아씨의 몸은 내 질문을 듣자마자 크게 움찔거렸다.
“그럴 수도 있죠.”
“우으,”
“…실비아씨는 이불을 세탁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것뿐, 다른 의미가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잖아요?”
“…!”
나는 그녀가 도망갈 구멍을 파 주었다.
역시 용사님,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 그렇지… 그런 거였지.”
“그, 그렇죠?”
물론, 나는 그게 단순히 내 이불의 세탁 시기를 가늠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도 내가 배려해 주고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우리는 속는 사람 하나 없는 거짓말을 위해 서로의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야, 제가 여기 온 지도 벌써 얼마나 오래 지났는데요. 그 와중에 땀도 많이 흘렸을 테고,”
“그렇지, 끙끙 앓기도 했고, 식은땀도 많이 흘렸으니까… 악취가 나는지 확인 해 본 것뿐이야…”
“허허허, 이제는 다리도 괜찮아졌으니 그런 집안일 같은 건 제가 해도 되는걸요.”
“아니, 아직 나은지 얼마 안됬으니까 무리하지는 말아야지.”
“아까 제가 도망치던 거 보셨잖아요? 이제는 괜찮아,”
“아,”
“아, 아앗,”
이런, 실수했다.
그녀는 내가 도망치던 광경을 떠올리더니 다시 얼굴이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식탁 위에 침묵이 감돌았다.
빌어먹을.
*
결국 이 대치 상태를 깨트린 것은 나의 노력이 깃든 음식들의 향긋한 냄새와 종일 공복에 시달렸던 우리 두사람의 뱃가죽이 울려대는 소리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뱃속이 꼬르륵 울리자, 그녀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천천히 숟가락을 들어 올리고는 천천히 스튜를 떠먹기 시작했다.
“…어,”
“…!”
뭐지, 입에 안 맞나?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와아… 맛있는데?”
“됐다!”
“…?”
“아,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그야 방금 실비아씨의 반응은 너무나 생생해서 거짓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 떄문이었다.
여전히 어색한 기운이 맴돌던 그녀의 표정이 스튜를 먹자마자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전환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나는 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의자 등받이에 늘어졌다.
“후아…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이에요.”
“예전에 모험할 때도 야영하면서 많이 먹었던 스튜라서 큰 기대는 없었는데…”
실비아씨는 토끼처럼 크게 눈을 뜨더니 이내 곧 연거푸 스튜를 떠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옛날의 평화로웠던 시절의 기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만약 우리 집이 귀족 가문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백작가의 주방장이 되었을 것이다.
남매 중 아버지의 요리 실력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나였으니까.
실제로 귀족이 되기 전엔 바쁜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종종 누나와 동생의 식사를 만들곤 했었다.
둘 다 입맛이 없어 다른 음식은 입에도 안 댈 때에도, 내가 만든 요리만큼은 한 숟갈이라도 꼭 먹어주곤 했었다.
특히 배가 고프던 날엔 그릇을 바닥까지 싹싹 비우고 만족스럽게 웃기도 했다.
귀족다운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해맑은 미소를 띤 두사람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때 라일라는 죽만 먹을 수 있던 갓난아기였으니 지금은 기억도 못 했지만, 누나는 분명 똑똑히 기억하겠지.
… 멍청이.
뭘 기억해.
둘 다 죽었잖아.
“애쉬?”
“아, 네?”
나를 부르는 실비아씨의 목소리에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 그게,”
“…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거 아니에요. 좀.”
나는 또 폭주하려는 실비아씨를 진정시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가족들에게도 이렇게 요리를 해주곤 했었거든요…”
“…그랬구나.”
“…”
이런 미래가 기다릴 줄 알았다면, 그떄 누나가 먹고 싶어 하던 고가의 햄도 자주 써볼걸,
라일라가 좋아하던 방울토마토도 조금 더 열심히 구해볼걸,
마음속 슬픔에 덮어둔 뚜껑이 살짝 열리며 그런 후회가 물밀듯이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하,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어차피 기다리는 건 이렇게 이른 나이에 맞이한 죽음뿐인 것을.
아직도 이따금 궁금하곤 했다.
왜 그 둘은, 이렇게 빨리 죽었어야 했는지.
왜 나만 이렇게 살아남았어야 했는지.
그 두사람의 죽음과 운명에 어떠한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보았다.
그저 불운한 우연뿐이었다면 너무 억울하고 슬픈 불행이 아닌가.
그 순간 내 잡념을 찢어놓는 실비아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복했겠다.”
“네?”
“네 가족은 행복했겠다. 이런 요리를 해주는 네가 있어서.”
“에이, 그런 건…”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말을 반박하려 했다.
그것은 겸양이기도 했고, 사실 정정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실력이 아버지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던 데다가, 우리 가족의 결말을 생각해 보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자 나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엔 짙은 부러움과 깊은 그리움이 배겨있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행복한 적이 없던 사람처럼.
누군가의 행복한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질투가 나서, 흐뭇한 미소를 짓지 못하고 아니라 진심으로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내가 만든 버섯요리를 한입 베어 물고는 눈을 감은 채 오물거렸다.
턱이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그녀는 이빨이 버섯을 가르는 감촉과 버섯 안에 채워 넣은 야채의 맵싸한 단맛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느끼려 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입안의 음식을 맛보던 그녀는 꿀꺽 삼키고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맛있어. 정말.”
“실비아씨…”
나는 내 짧은 생각을 반성했다.
남자의 온기가 그리웠을 거라고?
그런 단순하고도 얄팍한 욕구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의 온기 자체가 너무나 그리웠을 것이다.
대화, 논쟁, 다툼 같은 사회적인 상호작용.
친밀, 우정, 사랑 따위의 인간적인 감정을 나눌 사람.
칭송받아야 마땅할 영웅인 그녀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을 이 오지에 박아두었다.
어쩌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금간 하나 없는 음식에 이렇게까지 감동할 정도로 너무나 비참한 수준의 생활,
고작 동거인 남자의 향기에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피부를 파고드는 싸늘한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그 누구에게 도움 하나 요청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자신의 생존과 저주를 세상에 알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면서도, 마왕을 무찔렀다는 업적에 걸맞은 보상심리가 그녀를 수없이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날짜 감각도 사라질 만큼 아무런 변화도 사건도 없는 이 숲속에서 홀로.
상처는 육체를 죽이지만, 고독은 자아를 익사시킨다.
그녀에겐 죽음조차 그저 부러운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매일 해드릴게요.”
“어? 진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물론… 구할 수 있는 재료가 한계가 있으니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못 하지만요.”
“…”
“아니, 다 말해요. 어떻게든 만들어 볼 테니까.”
“…후후, 고마워 애쉬.”
실비아씨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오늘 하루 동안 그녀의 얼굴이 몇번이나 붉어지는지 모르겠다.
어두운 오두막 안에 빛이라고는 오직 촛불뿐이었기에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째 오늘 중 지금 그녀의 얼굴이 가장 빨갛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 왠지 덥네.”
“그러게요. 상상한 거랑 달리 숲속의 여름도 무척 덥네요.”
“당연하지, 엄청 더워. 벌레도 많고.”
“음… 이만큼 더우면 당분간 저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뭐가?”
“이불이요. 그러니까 필요하시면 빌려다…”
“오해라고 했지.”
“…넵.”
우여곡절 끝에, 내가 준비한 저녁 식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녀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내 이불을 들고 세탁 바구니에 처박았다.
그 박력이 너무나 대단했기에 나는 그날 더 이상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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