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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

       

       문보라는 뜻밖의 결과에 작게 입을 벌렸다.

       

       아니,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어쩌면 이럴지도 모른다고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결과가 현실로 나타나자 문보라는 멍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좋았어!”

       

       뭣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유세하. 자신이 보기에 철없고 착한 그가 신나서 손을 위로 올리고 있다.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아니지. 모를 리가 없지.’

       

       알고 있음에도 찬성을 던진다.

       그저, 옆에 있는 소녀를 위해서 말이다.

       

       “…당신.”

       

       문보라는 손톱에서 피가 날 정도로 깨무는 마하나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 시선에 마하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정말로…제,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거 잘 압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지금-”

       “-하지만!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요!”

       

       절박한 마하나의 외침에 문보라는 물론, 뭣도 모르고 좋아하던 유세하조차 굳어졌다.

       

       “모두에게 욕먹고, 모멸당하고, 손가락질받는다고 해도…이대로, 이대로 저의 꿈을, 결말을 끝낼 수는 없어요. 이런 형태로는 더더욱요!”

       

       언젠가 ‘헌터’로서의 꿈을 접는다고 하여도, 그것이 ‘퇴출’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결과에 의한 산물은 싫었다.

       

       “…어, 음.”

       

       문보라는 갑자기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바보처럼 쭈뼛거리는 유세하를 제쳐두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마하나씨…”

       “제가, 제가 반드시 막아내 볼게요!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기회를 주세요!”

       “……”

       

       무리다.

       적어도 문보라의 눈에는 부질없는 소리였다.

       

       눈 밑의 다크서클이 진하고, 호흡이 거칠다.

       

       허름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 타박상과 시퍼렇게 멍든 자국이 가득할 거다.

       

       필시 지금까지 쌓아온 피로와 부상이 그녀의 몸을 한계까지 좀 먹고 있다는 증거.

       

       이성적으로 물러날 때이다.

       

       하지만……

       

       ―언니, 나도, 나도 할 수 있어! 그러니 버리고 가지 말아줘!

       

       ‘괜한 생각을……’

       

       문보라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옛 기억을 속으로 넘기었다.

       

       자신의 판단이 어찌 되었건 이미 결과가 찬성 2표인 이상, 억지를 부리는 것도 못 할 짓이다.

       

       “…믿어보겠습니다.”

       “…네!”

       

       * * *

       

       푸슉―!

       

       “윽!”

       

       날카로운 관통음과 함께 뾰족한 무언가가 마하나의 허벅지에 깊숙이 박혔다.

       

       무기라고 부를 수도 없는 무딘 쇳조각이다.

       

       “우끼익-!”

       

       그러나 지친 마하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큰 피해를 주었다.

       

       흥이 오른 투명꼬리원숭이는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가려 한다.

       

       그러나

       

       슈컥-!

       

       분노에 찬 유세하의 일격에 허리째로 양단되었다.

       

       “므냥…아, 아니. 마하나씨!”

       “…괘, 괜찮아요…”

       

       이것으로 벌써 8번째 습격이다.

       

       유세하 때문에 숨어서 공격한다는 전략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걸까.

       

       투명꼬리원숭이들은 물량으로 몰아붙여 어떻게든 한 대, 두 대 꽂아 넣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은 꽤 효과가 있었다.

       

       문보라는 마지막 포션병을 꺼내 마하나의 상처 부위에 천천히 부었다.

       

       “아플 겁니다. 참으세요.”

       

       치이익―!

       

       말이 끝나는 직후, 타들어가는 듯한 소음이 울러퍼진다.

       

       “끄으윽!”

       

       즉시 상처를 아물 정도로 효과가 좋지만, 그에 비례하여 고통도 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복된 건 육신의 상처뿐.

       

       “헉, 헉.”

       

       마하나의 체력까지는 회복시켜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하나씨. 이제부터 방패만 들어 올리세요. 오로지 자기 몸만 지키는 걸 신경 쓰는 겁니다.”

       

       그녀에게 더는 요리조리 움직이며 자신들까지 지켜줄 체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 하지만…”

       

       그래서는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을 눈빛으로 전달하는 마하나.

       

       문보라는 그것에 대한 대답을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삽시간에 솟아오른 2개의 [빙결 기둥]이 몰래 접근하는 원숭이를 향해 솟아났다.

       

       “우끼익!”

       

       하나는 놈의 몸통을 정확히 관통.

       

       캉-!

       

       다른 하나는 마치 방벽처럼 원숭이의 곤봉을 방어해주었다.

       

       “보, 보라님…”

       “굳이 감사 인사는 할 필요없습니다. 모두를 위해서니까요.”

       

       멋지게 대답하는 문보라였지만, 그녀도 사실 별로 좋지는 못했다.

       

       ‘…역시 백업으로는 슬슬 한계인가…’

       

       몸 안 깊숙한 곳.

       

       가득 차 있던 무엇인가가 빠르게 사라지며 바닥을 치는 게 느껴진다.

       

       육신을 움직이는 에너지와는 다르다.

       

       좀 더 근본적이면서 [스킬]이라 불리는 ‘이능’에 관련된 힘.

       

       흔히, ‘마나’라고 불리는 자원의 고갈이 머지않았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슈컥-!

       

       “하나씨! 보라씨! 여기는 처치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유세하.

       그가 자기의 몫을, 그 이상을 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바닥에는 7마리가 넘는 원숭이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거라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아니, 되어야만 합니다.

       

       *

       

       30분 뒤.

       

       괴수의 피와 육편으로 꼬질꼬질한 상태가 된 세 사람은 ‘고블린 부락지’의 최종 지역에 도착하였다.

       

       [보스룸에 입장합니다.]

       [비정상적인 힘의 흐름이 밀림을 휘감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보스’가 등장해야 할 장소.

       

       놀랍게도 보스가 있기는 했었다.

       

       다만 그것이……

       

       “…죽었…네요?”

       

       복부에 커다란 관통상이 새겨진 채 죽어있는 회색빛의 큼지막한 고블린.

       

       바로, 홉 고블린이었다.

       

       “…마치 드릴에 관통이라도 당한 모습이군요.”

       

       말을 흘린 문보라는 홉 고블린의 피로 추측되는 녹색 액체가 이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거대한 곰이라도 살 것 같은 어두운 동굴 안으로 혈액이 줄처럼 이어져 있었다.

       

       푸르륵―

       푸르륵―

       

       귀에 의식을 집중하자, 동굴 안으로 짐승 특유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비정상적인 마력의 흐름이 근원처럼 모여져 소용돌이치는 것도 느껴졌다.

       

       필시, 이 안에 있는 ‘무언가’가 홉 고블린을 쓰러트린 진짜 ‘보스’일 것이다.

       

       문보라는 속으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겼다.

       

       ‘미탐사 루트로 도망치지는 않았네요.’

       

       만약 그랬다면 두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아찔했을 거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여전했다.

       

       그래도 약한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판을 봐야 하니까.

       

       “준비하세요. 다들.”

       

       말을 마친 문보라는 양손을 모아 천천히 동굴 안을 조준하였다.

       

       “[빙결 기둥]!”

       

       삽시간에 날아간 푸른빛의 마력이 날카로운 얼음기둥이 되어 도미노처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잠시 뒤.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므우우우우―!”

       

       쾅―!

       

       동굴 벽을 무너트리고 튀어나온 것은 족히 5m는 될법한 거대한 코뿔소였다.

       

       특이하게도 녀석은 온몸이 구릿빛 재질의 금속 피부를 두르고 있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발달 된 4개의 다리 근육.

       

       랜스처럼 날카로운 외뿔과 끝자락에 맺혀있는 홉 고블린의 피.

       

       마지막으로 몸 깊숙한 곳에서 발광하듯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마석의 빛까지.

       

       틀림없이 특수 보스종이었다.

       

       [보스 룸에 입장하셨습니다.]

       [카파 라이노가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수 현상으로 발생한 보스입니다.]

       [카파 라이노를 쓰러트릴 시 《브레이크 아웃》 현상이 강제 종료됩니다.]

       

       “……젠장.”

       

       문보라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실버백]처럼 당연히 《야수계》 보스가 나타날 건 예상했었지만.

       

       하필, 그게 카파 라이노라니…

       

       ‘…[돌진] 스킬에 카파라는 이름답게 경도가 낮지만, 금속 코팅을 두른 코뿔소 몬스터…’

       

       [메탈 라이노 시리즈] 중 가장 약한 개체지만, 도저히 이런 D급 던전에 나올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확실한 건 아까 상대했던 [실버백]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상위호환이었다.

       

       공격력, 돌진에 의한 가속도, 깡 방어력이 높은 [구리피부] 특성이 완벽하게 시너지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녀석의 대표적인 약점은 바로 불.

       

       하지만 여기서 불 속성 계통의 힘을 쓸 수 있는 자는 없다.

       

       “므우우우우!”

       “옵니다!”

       

       상념을 가르듯 괴성과 함께 달려드는 카파 라이노.

       

       이곳 ‘고블린 부락지’의 마지막 사투가 시작되었다.

       

       *

       

       두두두두두―!

         

       마치 바람을 타듯 단숨에 카파 라이노가 달려들었다.

       녀석의 전신을 두른 푸른빛의 마력이 흰색으로 변질되며 더더욱 속도를 높여주었다.

       

       [카파 라이노가 <돌진>을 사용합니다.]

       

       순간적으로 상승한 속도에 육중한 무게가 더해진다.

       

       심상치 않은 파공음이 울려 퍼지며 외뿔에 닿는 굵직한 나무들이 단숨에 찢겨 바닥을 뒹굴었다.

       

       아무리 봐도 저 작은 마하나가 도저히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되지 않는 위력.

       

       “…므우우?!”

       

       그때 카파 라이노의 움직임이 휘청거린다.

       

       그 이유는 녀석의 발밑에 생겨난 오돌토돌한 얼음 빙판 때문이었다.

       

       “…후우!”

       

       이리될 것을 예측한 문보라가 타이밍 좋게 설치한 함정이 녀석의 균형을 잃게 하였다.

       

       “마하나씨! 아무리 위력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저걸 정면에서 받아내면 승산이 없습니다! 저는 [빙결 기둥]을 캐스팅하는데 모든 의식을 쓰고 있어요! 어디로 막아내야 피해가 적을지 판단하는 건 ‘탱커’인 당신의 몫입니다!”

       

       문보라의 외침을 이해한 마하나는 들고 있던 대형 방패를 부서지라 움켜쥐었다.

       

       ‘…3초, 2초, 1초…지금!’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정확한 타이밍을 잰 마하나는 라이노의 외뿔이 닿기 직전, 아주 미세하게 몸을 비틀었다.

       

       가장 피해가 높은 충격지점을 회피한다.

       

       그다음 녀석의 공격이 이어지기 전에 먼저 방패로 들이밀어 충격을 저지하였다.

       

       “므아아아아!!!”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들이밀었다.

       

       쿠구구구―!

       

       “므끄으읏!”

       

       그것만으로도 육중했다.

       압도적인 체급과 능력치의 격차.

       

       하지만 결국, 마하나는 라이노의 [돌진]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라이노의 빈틈이 드러났다.

       

       “유세하씨!!!”

       

       마하나의 외침에 부응하듯 풀숲에서 숨어있던 유세하가 지면을 박찼다.

       

       “…후우.”

       

       유세하는 숨을 골랐다.

       양손에 힘을 준다.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 번 사용하였던 발도의 경험과 요령을 다시 한번 승화시킨다.

       

       ‘…힘을 조절한다.’

       

       살의를 조절한다.

       한번 공격하고 다시 근육통이 번져 리타이어 되는 어리석은 결과가 나오지 않게 조심한다.

       

       쾅―!

       

       땅을 강하게 밟은 유세하는 번개처럼 카파 라이노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찰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번뜩이는 섬광이 신속의 발도술을 펼쳤다.

       

       [<류참(流斬)>이 발동됩니다.]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 발도류 스킬의 최종 위력이 100% 증가합니다.]

       

       소름 끼치는 절삭음이 울려 퍼지며.

       

       슈컥―!

       

       딱 봐도 튼튼한 [구리피부]가 마치 종잇장처럼 갈라진다.

       

       파고든 검날이 두터운 살을 가르고, 안에 있는 장기를 가른다.

       

       “무으으으으!”

       

       격렬한 통증에 라이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녀석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며, 초점이 뒤집힌다.

       

       흔히, ‘눈에 보이는 게 없다.’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상태가 된 카파 라이노는 거친 콧김을 내뱉으며 돌아보았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와 덩어리진 내장 일부가 줄줄 흐름에도 녀석의 눈은 완벽하게 ‘유세하’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유세하는 뒤로 재바르게 물러서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어.’

       

       씨발.

       좆된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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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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