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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무사히 하루를 마친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은 야영장에 모여 뒤풀이를 가졌다.

         

       그들의 공연은 아무리 성공적이어도 환호와 갈채를 기대할 수 없었다.

       피땀 흘려 준비하고 아무리 열심히 연기해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혐오 어린 시선뿐이었다.

         

       사람들이 마음 편히 경멸하고 분노하고 모욕할 대상을 제공해주는 것.

         

       그것이 괴물서커스의 본질이었다.

         

       그렇기에 단원들에게 있어서 이런 자리는 더욱 각별했다.

         

       뒤풀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없었다.

       서로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것뿐이었다.

         

       “정말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여러분들 연기에 사람들이 깜빡 속아 넘어갔답니다!”

         

       부단장 엘라는 단원들 한 명 한 명 짚으며 사람들이 뭐에 놀랐고, 단원들의 뭐가 대단했는지 치켜세워주었다.

         

       4시간 동안 부스 안에 갇혀 온갖 지저분한 연기를 해야 했던 단원들.

         

       그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연기도 연기지만, 자신의 치부를 구경거리로 드러내고,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보통 정신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별거 아닌 칭찬이나 격려도 큰 위안거리가 되었다.

         

       “고생했어요.”

       “너야말로.”

       “낄낄, 다들 힘들었지.”

       “어휴, 어깨가 많이 아프네요.”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느라 팔도 다리도 뻐근한 단원들이 많았다.

         

       특히 가장 덩치가 큰 우몬이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앓는 소리를 했다.

         

       2m가 넘는 키.

       악어껍질 같은 거친 붉은 피부.

       머리에 자란 뿔과 입에 솟은 엄니.

         

       위협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올해로 10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었다.

         

       서커스단의 막내인 그는 형과 누나들에게 마사지를 받으며 웃음을 흘렸다.

         

       “헤헤헤, 간지러워요!”

       “우린 있는 힘껏 주무르고 있는데!”

       “가죽이 너무 딱딱하다.”

       “아야! 나 이 뾰족한 부분에 찔렸어!”

       “낄낄! 조심하라고. 나 저번에 이놈이랑 놀다가 목이 잘릴 뻔했잖아.”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예예.”

       

       괴물 연기는 사람의 몸과 마음 모두 지치게 했다.

       어찌 보면 그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쇼이기도 했다.

         

       하지만 괴물서커스단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는 단원은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생각했다.

       여기 들어와서 비로소 진정한 친구들을 만난 것 같다고.

         

       타고난 외모 때문에 괴물이라고 사회에서 차별받던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잘 이해했다.

       이렇게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아무는 느낌을 받았다.

         

       “자자, 식사 준비됐습니다!”

         

       여섯 개의 팔이 나타났다.

       각각의 팔은 음식이 가득 담긴 쟁반들을 받치고 있었다.

         

       팔들의 주인은 보랏빛 머리카락을 비녀로 묶은 성숙한 여인이었다.

         

       여섯 개나 되는 쟁반을 떠받치고 걸어오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그 위태위태한 균형 때문인지 걸음 하나하나가 고혹적으로 보였다.

         

       그녀의 볼은 화로의 열기 때문에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거미 여인, 유라크네.

         

       그녀는 요리실력이 뛰어나, 서커스단의 식사 전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엘라는 주방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고 그제야 아차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또 혼자 다 해버린 거예요? 저를 불렀어야죠. 도와드린다니까요.”

       “후훗,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부단장님에게 이런 일을 시킬 순 없지.”

         

       유라크네가 싱긋 미소짓자 엘라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가장 나이가 많은 해골 스벤에게도 반말을 쓰는 엘라이지만, 왠지 유라크네에게는 존댓말이 나갔다. 철딱서니 없게 구는 스벤과 달리, 그녀에게선 연장자로서의 위엄이 느껴졌다.

         

       “내일 아침 식사는 진짜 저도 도울게요.”

       “괜찮아. 혼자서도 충분한걸.”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지, 진짜 괜찮은데…….”

         

       이제는 슬슬 불안한지 쩔쩔매는 유라크네.

         

       “너무 저를 배려해주시려 애쓸 필요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유라크네가 부단장을 주방에 들이지 않는 건 배려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이유를 부단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보다 못한 단원들이 엘라를 만류하러 나섰다.

         

       “부단장 제발……!!”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유라 씨가 성격이 좋아서 둘러서 말하는 거지.”

       “엘라 양의 요리는……음…….”

         

       그때, 얌전히 있던 우몬이 정색하고 나섰다.

         

       “엘라 누나가 만든 음식은 고문이에요!”

       “말 잘했어, 우몬! 엘라, 전원 식중독 걸렸던 그 날 기억 안 나?”

       “찍찍! 인간! 주방에! 얼씬도! 마라!”

         

       어느새 구석에 있던 랫맨들까지 몰려왔다.

       단원들의 호들갑에 엘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시, 시끄러워! 식중독이라니.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그리고 그거 재료가 상해서 그런 거였잖아. 나도 이제 잘할 수 있어! 그리고 랫맨들! 너희들은 음식물 찌꺼기를 먹는 주제에 무슨 맛을 따져!”

       “찍찍! 찌꺼기에도! 격이 있다!”

       “맞다!”

       “맛있는 음식이! 맛있는 잔반을! 남긴다!”

         

       굽실댈 줄만 알던 쥐 수인들이 이렇게 열을 올려 의견을 피력하는 건 처음 봤다.

       엘라는 괜히 민망해져 단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에잇! 그럼 당신들이라도 돕든가!”

       

       엘라의 말에 다들 서로를 둘러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툭 하면 팔이 떨어지는 뼈다귀 스벤.

       자기 몸의 통제권을 두고 싸우는 세쌍둥이 트라이머리.

       음식에 각질이나 진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붕대 감은 밴딕 등.

         

       애초에 요리하기에 부적합한 신체조건을 가진 단원들이 많았다.

       천성이 위생과 거리가 먼 랫맨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기에 유라크네 혼자 식사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라, 나 정말 괜찮다니까.”

       “…하, 하지만 최근 요리량이 많이 늘어났잖아요. 예전에는 대충 국밥 한 그릇으로 때웠는데, 이제는 매끼가 정식이니…….”

         

       늘어난 예산 덕에 식탁이 풍성해진 것은 좋다.

       그러나 그만큼 만드는 사람이 고생하게 됐다.

         

       더군다나 오늘부터는 또 공연을 시작했지 않은가.

       연기도 하고, 식사 준비도 하고.

       엘라는 유라크네의 몸에 무리가 갈까 걱정이었다.

         

       “후훗, 걱정하지 마. 혼자서도 충분해. 우리가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또, 나는 팔이 여섯 개나 있잖아.”

         

       유라크네가 수줍은 듯 그녀의 어깨 뒤에 달린 2개의 팔과 그녀의 허리에 달린 2개의 팔을 가지런히 모았다.

         

       ‘저 4개의 팔만 없다면, 상당한 미인일 텐데……,’

         

       실제로 그녀는 시골 출신답지 않게 피부가 무척 고왔다.

       매일 힘든 일을 하는데도 손에 물집 하나 없었다.

       허리도 가늘고, 위와 아래는 부러울 정도로 볼륨감이 살아 있었다.

         

       옷만 잘 차려입으면, 귀족가의 영애라 해도 믿었으리라.

       아니, 옷보다 저 팔만 없었더라면…….

         

       제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잘못됐다.

       이런 생각 자체가 그녀에게 실례되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아름답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조금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그걸 문제로 생각하는 건 무례한 짓이었다.

         

       ‘그 전형적인 반대 예시가 저기 있으니 말이지.’

         

       엘라는 단장의 마차가 있는 마차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잘생긴 남자였다. 그 미소 역시 매력적이었다.

         

       그건 그를 싫어하는 엘라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 안에 든 건 인간을 흉내 내는 교활한 악마였다.

       외형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그에게 껍질이란 그만큼 무의미한 것이었다.

         

       요 몇 주간, 수상할 정도로 얌전히 굴긴 했지만, 엘라는 속지 않았다.

       저러다가 어느 순간 돌아서서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는 게 놈이었다.

         

       “오늘 연기의 MVP는 유라크네 씨지!”

       “푸핫핫핫! 아, 맞아! 유라 씨 최고!”

       “인정! 백프로 인정!”

         

       단원들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오늘 있었던 공연에 대해서 품평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언급이 많이 되는 인물은 우몬과 유라크네였다.

       우몬이야 그 압도적인 존재감 덕에 말할 것도 없었지만, 비교적 얌전한 분장을 했던 유라크네도 많이 언급되었다.

         

       왜냐하면, 오늘 맡은 그녀의 연기가 평소의 그녀랑 이미지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키히히! 이 철창만 없으면! 네놈들 인간들을 또 잡아먹는 건데 말이야! 이리 와! 이리 오라고! 키하아악!

         

       수줍고 배려심 많은 그녀가 무서운 분장을 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요부의 연기를 했다.

         

       관객들은 무서워했지만, 그녀의 연기를 지켜보는 다른 단원들은 웃음을 참느라 죽을 뻔했다.

         

       “오오, 이리와! 이리오라고!”

       “키히히! 키하아악!”

         

       남 놀리는 데는 빠지지 않는 해골 스벤과 난쟁이 요벨이 서로에게 팔을 휘저어가며 ‘거미 여인’의 연기를 어설프게 흉내 냈다.

         

       어딘가 허접하면서도 또 핵심 포인트는 잘 집어낸 덕에 절로 거미 여인의 연기가 연상되었다.

       구경하던 단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엘라도 참지 못하고 킥킥댔다.

         

       유라크네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우웃! 두 사람 다 디저트 없을 줄 알아요!”

       “오오, 유라 씨! 그거 아나? 나는 어차피 음식을 안 먹는데? 안 먹는데? 안 먹는데?”

         

       해골이 얼씨구나 어깨를 으쓱이며 춤을 췄다.

       다른 단원들도 손뼉을 치며 흥을 돋우었다.

         

       유라크네는 오늘 낮에 그의 놀잇감이 되었던 부둣가 일꾼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의 머리통을 확 날려버리고 싶었다.

         

       “정말이지…….”

         

       유라크네가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고 그를 흘겨봤다.

         

       “못됐어요, 스벤.”

       “미안~ 미안해~핫핫! 미안해~”

       “어휴, 더는 말을 말아야지. 자, 음식들은 각자 덜어 먹어요.”

         

       얼마 전까지 차등 배급제였던 식사가 이제는 뷔페식으로 바뀌었다.

         

       서커스단이 가난할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넉넉한 후원을 받는 지금은 다들 같은 수준의 식사를 배불리 할 수 있었다.

         

       “아, 참! 깜빡하고 말 못 했는데, 상인회에서 오늘 흥행에 만족했다고 선물을 보내왔어요. 돼지 통구이를요! 이제 슬슬 다 익었으니 가져올게요!”

         

       유라크네가 다시 주방 쪽으로 향하려 했다.

         

       그때, 엘라가 우몬에게 눈치를 줬다.

         

       둔해 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우몬은 10살이지만 영리한 아이였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라 누나는 앉아 계세요. 지금까지 계속 일했잖아요. 저랑 엘라 누나가 갔다 올게요”

       “언니는 쉬고 있어요. 이건 요리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몬이랑 저랑 둘이면 충분해요.”

       “음……좋아! 그래 그럼. 부탁할게.”

       

       유라크네는 나란히 걸어가는 엘라와 우몬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서커스단에서 유일하게 평범한 인간, 엘라.

         

       그녀는 자신에게 늘 고맙다고 말하곤 했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녀가 할 수 없는 단원들의 정서적 받침대 역할을 해줘서, 맏언니의 역할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엘라는 알고 있을까?

       그건 유라크네가 그녀에게 가지는 고마움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을.

       엘라는 그들에게 희망을 줬다.

       자신들도 평범한 인간과 어울려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막연히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다가와 보면 자신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인데.

       왜 사람들은 그저 우릴 두려워하기만 할까.

         

       그때, 유라크네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는 서커스단.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들이 사회에서 당하는 것과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단장 원더스타인.

       자신들도 그를 괴물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피하지 않는가?

         

       ‘단장님도 같은 기분일까?’

         

       늘 웃기만 하는 단장.

       한 번도 화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자신들을 두려워하거나 멸시하는 빛도 비친 적이 없었다.

         

       그도 외롭지 않을까?

         

       유라는 곧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영역까지 이해심을 발휘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단원들이 알았다면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단장이 악마 취급당하는 것은 그의 외형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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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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