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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좋아. 가볼까.”

       

       라이터 하면 담배. 담배 하면 엘리 아닌가.

       

       일차원적인 수준의 발상이지만, 분명 효과가 있으리라. 그리 장담하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1층 구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엘리와 리디아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둘 다 거무죽죽한 표정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뿜어대니 끼어들기가 힘들었다는 게 문제였지.

       

       특히 엘리는 담배를 얼마나 피운 건지 재떨이에 꽁초가 수북하고, 주변은 자욱한 연기로 가득한 상황.

       

       아무리 마력초 담배가 평범한 담배와 달리 중독성이 있다거나, 몸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건이 아니라지만…저렇게 많이 핀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가 피는 마력초 담배는 잃어버린 오른팔에서 환통이 느껴질 때, 진통제 대신 피는 거니까.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걱정을 해맑은 웃음으로 가리며 호다닥 뛰어갔다.

       

       “엘리!”

       

       “…요나? 자러 간다고 하지 않았니?”

       

       “잘 생각이었는데, 깜빡한 게 있어서요.”

       

       어쩐지 어두운 안색. 그렇게 피고도 모자랐는지 엘리의 입에는 새로운 연초가 물려있었다.

       

       마침 불을 붙이려는 차였는지 라이터 마도구를 들고 있길래 일단 뺏었다.

       

       소매치기…ON!

       

       “에잇!”

       

       “자, 잠깐! 뭐야 방금 그거?! 휙 하더니 갑자기 사라졌는데?!”

       

       “지금 그런 게 중요해요? 됐으니까 가만히 있어 보세요.”

       

       내 소매치기 스킬을 보는 건 처음인지 호들갑 떠는 엘리를 진정시키고는 그 앞에 섰다.

       

       평소였다면 아닌척하면서 내 여기저기를 훔쳐봤을 엘리였으나…어째서인지 지금은 내 시선을 피하듯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그 짧은 사이에 설마…?

       

       어떻게든 숨기려던 것 같지만, 신조차 모독하는(진짜임) 천재(아님)인 나 김요나는 전부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너그러운 미소로 잿빛 정수리를 통통 두드려 주었다. 엘리가 앉아있기에 가능한 일. 내 손이 닿을 때마다 늑대 귀가 쫑긋거리는 게 좀 재밌네.

       

       “괜찮아요 괜찮아. 전 신경 안 써요. 그럴 수도 있는거죠 뭐.”

       

       “요나 너, 다 알고…?”

       

       “그럼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제 배를 반찬 삼아 딸치고 온 거죠? 그러다 리디아 님한테 걸려서 혼나고 있는 거고요.”

       

       “……하?”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건지 어이없어하는 시늉을 하는 엘리. 귀엽기는.

       

       “아이참. 다 이해한다니까요? 제가 매력적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 어린 몸. 분명 고결한 리디아 님은 어린아이에게 발정하는 엘리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겠죠.”

       

       “아니야!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이 발랑 까진 꼬맹이는?!”

       

       “하루 종일 야한 생각만 하지만, 정작 기회가 왔을 땐 쫄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처녀?”

       

       “팩트 멈춰! 마음이 아프니까 제발 멈춰….”

       

       “어휴. 방금 막 한 발 빼고 왔더니, 후배에게 걸려서 진지하게 한 소리 들은 것도 모자라, 반찬이 된 당사자가 말을 걸어오면 찝찝하면서도 미안한 기분이 든다는 건 알겠는데…그래도 너무 모르는 척하시면 저 서운해요?”

       

       “내 말을 좀 들으라고…!”

       

       가슴팍을 움켜쥐며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는 엘리. 그 옆에서 리디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짝짝!

       

       “요나 대단해. 엘리 선배를 잘 알고 있어.”

       

       “엣헴. 제가 이 정도에요.”

       

       “리디아 너까지?!”

       

       “엘리 선배는 경비대에 끌려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해.”

       

       “…그냥, 다 뒤졌으면 좋겠다.”

       

       한탄과 함께 고개를 푹 숙이는 엘리. 여전히 그녀의 입가에는 불이 붙지 않은 연초가 물려있었다.

       

       용케도 떨어뜨리지 않았네. 키득이며 그녀의 볼을 붙잡아 이쪽을 바라보게 했다.

       

       “엘리.”

       

       “…….”

       

       “저 좀 봐요 엘리.”

       

       “…왜.”

       

       삐져도 단단히 삐졌는지 퉁명스런 목소리로 시선을 피하는 엘리.

       

       그런 그녀의 앞에 검지를 세우고는 작게 읊조렸다.

       

       “미약한 불꽃.”

       

       화륵.

       

       손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에 엘리의 노란 눈이 크게 뜨였다.

       

       “마법…이야?”

       

       “미궁에 다녀왔더니 마력이 조금 생긴 것 같아서요. 이 정도 마법이 최선이지만요.”

       

       어깨를 으쓱이고 있자니, 리디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마력이 있다고 누구나 마법을 쓰는 건 불가능.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대충 그런 거죠. 말했잖아요? 전 원래 모험가 지망생이라 이것저것 미리 예습했다고.”

       

       “…….”

       

       전혀 납득한 표정은 아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 미안하지만 가챠 능력은 비밀이라 어쩔 수 없다.

       

       뭐, 지금껏 미궁에서 보여준 모습이 있으니 대충 넘어가 주지 않을까? 아니더라도 기껏해야 나를 천재라 착각하는 정도일 테니 괜찮겠지.

       

       그보다 지금은 서둘러야 한다. 이 순간에도 쌀알 수준의 마나가 빠르게 소모되는 중이었으니까.

       

       “이 불꽃에 집중해 주세요 엘리.”

       

       “……?”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리의 앞에서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덩달아 흔들리는 불꽃.

       

       “당신은 점점 눈앞의 소년이 좋아집니다….”

       

       “요나, 너 지금 나한테 최면 거는 거니?”

       

       “너무 좋아서 오늘 밤 덮치고 싶어집니다….”

       

       “안 덮친다니까!”

       

       “그리고 책임진답시고 결혼하게 됩니다….”

       

       “거기서는 자수하는 게 보통 아닐까.”

       

       “하지만 죄책감이 사라지질 않아 소년이 하는 말에 거절할 수 없고, 전 재산도 소년의 명의로 돌려놓습니다….”

       

       “그게 목적이었어?!”

       

       경악하며 오들오들 떠는 엘리를 잠시 감상하다가, 기습적으로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얍.”

       

       “어, 어어?”

       

       순식간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이 붙자, 당황해 머리를 뒤로 확 빼는 엘리. 그녀의 멍한 얼굴 위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슬슬 마력이 다 떨어져 가길래 고갈 현상을 일으키기 전에 손목을 털며 마법을 해제했다.

       

       “어때요? 가장 먼저 엘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리디아 님한테도 비밀로 한 건데. 마음에 드셨나요?”

       

       “…….”

       

       일시 정지라도 당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엘리. 그저 노란 눈동자만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나와 담배를 왕복한다.

       

       그런 엘리의 볼을 만지작대며 씨익 웃어보였다.

       

       “엘리가 무슨 걱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엘리 편이에요.”

       

       “요나야….”

       

       “엘리에게 받은 게 한둘이 아니잖아요? 리디아 님한테 제 과외를 맡긴 것도 그래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제가 이번에 납치당하니까 불안해져서 그런 거죠?”

       

       엘리는 평소에도 나한테 잘해주던 사람이었지만, 리디아한테 거금을 주며 의뢰를 맡길 정도는 아니었다.

       

       모험가 같은 위험한 일 하지말고 자기 일이나 도우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라는 권유도 자주 했었고.

       

       하지만 그런 엘리가 나를 제대로 된 모험가로 만들 생각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역시 이유는 하나뿐이다.

       

       가만 놔두면 모험가도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자기한테 올 줄 알았더니, 그대로 납치당해 팔려나갈 뻔하지 않았던가.

       

       괜히 모험가가 되는 걸 막는 대신 제대로 지원해 줘서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워주고 싶었던 거겠지.

       

       “정말 엘리는 바보네요. 제가 납치당한 건 엘리 탓이 아닌데.”

       

       “나는…그게….”

       

       꺼낸 말을 차마 완성하지 못하고 더듬는 엘리. 그런 엘리를 포옥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자책하지 마세요. 그리고 조용히 지켜봐 주세요. 저는 절대 엘리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

       

       엘리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격하게 움찔거린다. 조금 멋 부리며 말하긴 했지만 이는 진심이다.

       

       미궁도시는 넓고, 사람은 많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라고 내 캐릭터들을 안 찾아봤겠는가. 열심히 뒤져봐도 엘리밖에 찾을 수 없었을 뿐이지.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략적인 설정만 짠 탓에 엘리의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내 캐릭터들 중 몇 없는 완벽한 선역이라는 건 확실하니까.

       

       창조주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소설 속에서나 보던 이상형을 눈앞에 둔 남자로서 살짝 허세를 부려보았다.

       

       “엘리에게 받은 건 언젠가 2배로 갚을 테니까 기대하세요. …그리고 그때까지 제 옆에 있어 주세요.”

       

       “아, 아니. 난 그런 걸 바라고 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우물쭈물대는 엘리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리디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도 엘리로 자주 딸치니까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치죠?”

       

       “……?!”

       

       이제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엘리의 등을 한 차례 더 토닥여 주고는 리디아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가볍게 포옹할 생각으로 양팔을 벌렸지만….

       

       “곤란. 엘리 선배가 귀찮아져.”

       

       정말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엘리의 눈치를 보길래, 그냥 어깨 부분의 갑옷만 톡톡 두드려 주었다.

       

       “리디아 님도 오늘 고마웠어요! 이제 진짜로 가볼 테니 두 분 모두 잘 자요~”

       

       “에, 으…그에.”

       

       “응. 내일은 쉬고 이틀 뒤에 다시 봐.”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엘리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리디아.

       

       그러고 보니 내일은 재정비 및 미궁에서의 일을 복습하고, 그다음 날에 다시 미궁에 들어가자고 했었지.

       

       “넹. 그럼 이틀 뒤에 봐요.”

       

       리디아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준 뒤에야 다시 2층의 방으로 올라갔다.

       

       

       

       

       

       

       

       

       

       

       

       

       

       

       

       

       

       

       

       

       쿵!

       

       문을 닫자마자 꼭 쥐고 있던 손을 펼쳤다. 그곳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라이터 마도구가 있었다.

       

       고급스러운 장식과 마감이 유독 영롱해 보인다.

       

       “팔면 1실버는 가뿐히 넘기겠네.”

       

       엘리에겐 내가 있으니까 라이터는 필요 없잖아?

       

       이걸로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돚거 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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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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