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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 * *

       

       

       차리친

       

       

       

       

       아마 스탈린은 예상하지 못할 거다.

       

       황녀가 직접 백군을 끌고 올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해야만 했다.

       

       백군의 사기를 끌어올려야만 하니까.

       

       물론 저놈들도 알게 되면 황녀 죽이자고 사기가 오를지도 모르지만, 차리친에 틀어박혀 있으니 우리가 우세를 점할 때까지 모를 것이다.

       

       

       “황녀님께서 친히 이곳에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차리친 포위를 맡은 크라스노프가 나한테 황족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역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표트르 브란겔도 안톤 데니킨 휘하의 군대를 이끌고 차리친에 도착했다.

       

       이것도 체코군단과 열강이 연락망을 만들어둬서 가능했다.

       

       일단 차리친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 남러시아와 이어질 테니,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 소련을 더 압박할 수 있다.

       

       

       “예카테린부르크의 방어는 가이다 장군에게 맡겼으니 괜찮습니다.”

       

       

       가이다의 체코군단이면 충분히 예카테린부르크를 지킬 수 있을 거다.

       

       더군다나 설마하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열일곱살 황녀가 직접 나설 거라고는 레닌조차 예상치 못하겠지.

       

       그러니 이번 전투가 중요하다.

       

       인간백정 스탈린을 조지고 차리친을 탈환한다.

       

       이 세계선에서 트로츠키가 레닌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황녀님. 적군의 방어선이 견고합니다. 상당히 견고합니다. 일단 포위는 했습니다만.”

       “그렇겠죠. 저놈들도 여기에 사활을 걸 겁니다. 남러시아와 예카테린부르크가 연계해서는 곤란할 테니까요.”

       

       

       크라스노프의 말이 맞다.

       

       저 도시에 참호선까지 파고 적군을 배치했다

       

       참호전이란게 길고 지루한 소모전이다.

       

       어디까지나 공격측에서 지루한 소모전이지 막는 입장에서는 대군을 갈아버릴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을 터다.

       

       실제 역사에서 결국 스탈린의 우주 방어로 백군은 세가 약화되는 후반이나 되어서야 차리친을 탈환하지.

       

       스탈린이 참호전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한참 백군이 날뛸 때, 점령하지 못해서 콜차크의 백군과 남러시아의 백군이 연계할 수 없었다.

       

       

       “포위를 단단히 하고 항복을 종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뇨. 차리친 전투를 오래 끌어서도 안 됩니다. 포위로 알아서 자멸하길 기다리다가는 저들 적군에게 시간만 주는 격.”

       “그럼 항복권유는 없는 것입니까?”

       “그러기에는 우리쪽 사정이 더 급합니다. 저놈들이 정신차리기 전에 가진 군사적 역량으로 최대한 피해를 줘야 합니다.”

       

       

       스탈린에게 항복을 제안한다고 받아들일 놈도 아니겠지.

       

       내 추측이긴 하지만, 지금쯤 이놈은 트로츠키와 레닌의 후계자를 걸고, 다투는 중일 수도 있다.

       

       그야 원래 소련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니까.

       

       원래 어려운 상황에서야 말로 권력을 두고 다투기 마련이거든.

       

       적어도 내가 네놈보다는 이 소련을 더 잘 이끌 수 있다 등등.

       

       원래 붉은 군대를 정비한 인간은 레프 트로츠키.

       

        아마 예카테린부르크를 공격한 것도 뒤에 트로츠키가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역사에서 차르일가의 처형은 의견이 분분하다.

       

       레닌이나 트로츠키 같은 거물이 지시를 내렸거나 우랄 소비에트 쪽에서 독자적으로 계획을 진행한 것인지.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건대 트로츠키 같은 놈이 뒤에서 명령을 내린 건 아닐까.

       

       적어도 스탈린은 여우 같이 기회를 노렸다가 단숨에 트로츠키를 쳐내고 서기장 자리에 오른 거니까.

       

       트로츠키가 예카테린부르크 공격을 담당했다면, 스탈린은 차리친 전투가 데뷔전이 될 거다.

       

       어림도 없다.

       

       내가 있는 이 역사에 강철콧수염은 소련의 위대한 영도자는 결코 제명에 못 살 거다.

       

       조지아의 인간백정으로 죽게 해주마.

       

       

       “그렇다면.”

       “전차로 참호를 뚫어버립시다.”

       “하지만, 아직 전차라는 것은 우리 군이 배우려면 좀 걸립니다. 그러니 바로 사용하는 것은.”

       

       

       그렇기는 한데.

       

       이 시기 대전쟁의 패전과 열악한 처지의 소련에 대전차포라는 게 있을 리도 없고. 전차만 밀어넣어도 우수수 무너져 내릴 거다.

       

       

       “어차피 러시아국기를 달고 있지 않습니까.”

       “예.”

       “영국과 프랑스 의용군을 써먹읍시다. 수상하게 영국어와 프랑스어를 잘 쓰는 러시아인으로 싸우게 하면 되겠죠.”

       

       

       영국과 프랑스군은 ‘의용군’으로 장교들이 백군의 전차 훈련을 맡겼다. 

       

       하지만 이번 차리친 전투에서 백군이 공여받은 전차를 백군이 쓰기에는 여전히 훈련도의 문제가 있다.

       

       어차피 전차 안에 있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차리친의 적군이 볼 일도 없을 거다.

       

       유감스럽게도 적군을 돕는 세력은 없으니, 무기도 부족해서 전차에 대응할 방법도 없을 테고. 그저 수상하게 영어와 프랑스어를 잘하는 러시아군이 운용하는 전차가 참호선을 밟고 넘어갈 거다.

       

       어차피 이럴 때 쓰라고 영프가 보낸 거 아니겠나.

       

       외국군인 것만 들키지 않으면 볼셰비키가 민심을 챙길 일도 없을 거다.

       

       자, 그럼 이제 때가 되었다.

       

       

       “지금 차리친은 붉은 역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신생 러시아의 위대한 백군이여! 저 더러운 볼셰비키가 판 참호선을 넘어 차리친을 해방하라!”

       

       

       백군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전차를 앞세우고 그 뒤를 보병이 뒤따르며 보조를 맡게 했다.

       

       1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전차.

       

       영국의 MK시리즈와 프랑스의 르노FT 가 당당하게 선두에 서 무한궤도를 굴리며 참호선으로 향했다.

       

       쿠르르르릉

       

       뭔가 전차의 할아버지 격을 보는 기분인데 이거.

       

       이걸 보기 위해서라도 직접 나선 것이다.

       

       저거 묵직하게 굴러가는 것 봐라.

       

       이 시기 전차는 기관총을 아래로 내려서 참호에 있는 적들을 소탕하면서 참호선을 청소했다.

       

       심지어 1차 세계대전에서 전차의 개발로 영국과 프랑스는 전차의 종주국 타이틀을 달았다.

       

       여기에 대전쟁을 겪으며 실전경험도 풍부하다.

       

       급조한 적군이 저들을 이길 방법은 없다.

       

       쿠르르르르릉

       

       저 무한궤도 굴러가는 소리 봐라.

       

       내가 아는 현대의 전차보다 묵직하고 굴러가는 것만으로도 도로를 죄다 파괴할 거 같은 웅장한 소리다.

       

       

       “황녀께서는 전차에 대해 잘 아십니까?”

       

       

       뭔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전차 사단을 ‘의용군’으로 끌고 온 자들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나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아뇨.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 전차가 우리 보병들을 지켜줄 거 같군요.”

       

       

       내가 알기는 뭘 알아.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대로 행동하는 것 뿐이지.

       

       러시아 백군을 멱살잡고 끌어 올리려면 차리친 전투는 반드시 승리 해야 한다.

       

       

       “그런 것 치고는 전차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것 같습니다만.”

       

       

       딱히 그런 건 아니긴 한데.

       

       

       “그야 쉽게 죽는 인간보다야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는 전차를 앞세우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이 내전에서 황녀님께서 승리하시면 좋겠군요. 제 상관이신 필리프 패탱 원수께서도 부디 백계 러시아가 이기길 바라고 계십니다.”

       

       

       

       

       뭐? 필리프 패탱?

       

       

       “혹시 이름이?”

       “샤를 드 골 대위입니다.”

       

       

       이 사람,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그것도 대위가?

       

       어지간히도 1차 세계대전이 개판난 건 확실한 모양이다.

       

       영국에서 건너 온 장교들도 자기네 전차의 위대함을 설파하면서 내전 이후 대놓고 은혜를 뒤집어 씌우겠다는 노골적인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여간 혐성국 아니랄 까봐.

       

       어차피 내전은 계속 질질 끌 생각이거든.

       

       대전쟁으로 다 기 빠질 놈들이 뭔가 콩고물을 바라면 당당히 무시할 것이다.

       

       샤를이란 인물은 한참 전차에 대해 말해주다가 프랑스 전차를 타러갔다.

       

       

       “반동들이 우리의 이 노동자의 도시를 점령하고자 진격해오고 있다! 적군은 막아라!”

       “우리의 예카테리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도시를 해방하여 차리나께 바치자!”

       

       

       백군들 사이에서 나는 이미 차리나였다.

       

       백군이라고 다 같은 군주주의자들은 아닐 텐데. 내가 그간 행동한 것이 어지간히도 빛을 발한 모양이다.

       

       차리나라니 참.

       

       예카테리나라면 그 러시아의 유명한 여제 아니었나.

       

       자세한 업적은 모르지만 욕먹을 짓도 많이 하고 잘한 일도 많다고 들었는데. 뭐라도 이명을 붙이려고 한 모양이다.

       

       

       “표정이 불편해 보이십니다.”

       

       

       임시직으로 예카테린 부르크, 시베리아 백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나를 따라온 콜차크가 내 눈치를 살살 보고 있다.

       

       

       “아직 난 차리나도 아니고. 이 전쟁의 끝에 제국이 다시 세워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공화국이 될 수도 있고, 저 볼셰비키보다는 온건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합중국도 있고.”

       

       

       내전 후, 러시아가 무엇이 될 지 모른다.

       

       지금의 백군은 어디까지나 나를 구심점으로 볼셰비키부터 때려잡자이니까.

       

       정말 대가리 깨진 놈들만 있어서 다시금 제국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놈들이 있다면야, 뭐 두마(의회)를 설치하고 나는 뒤로 물러나면 되겠지.

       

       그 모든 가능성은 두고 내가 다른 국가로 망명할지, 아니면 허수아비 차리나라도 될지. 그도 아니면 그냥 여대공 작위를 달고 어딘가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살지 정해야지.

       

       

       “현재로서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차르입니다. 설령 끝에 제국이 없다고 한들 지금 저들이 무엇이라 부르든 받아주시는 것이 사기 진작에 좋습니다.”

       “그래요?”

       “비록 나라를 망치긴 했어도 결국 차르란 존재는 여전히 저들에게는 중요한 상징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어디 그럼 한 번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두두두두두

       

       참호전을 넘는 전차들이 참호에 처박혀서 방어만 하던 빨갱이들을 기관총으로 소탕한다.

       

       그래. 바로 저거지.

       

       참호가 시원하게 뚫리는 거 봐라. 정말 볼 만하지.

       

       

       “뭐야 이건!”

       “황녀가 이상한 걸 끌고 왔어!”

       “막아라! 막아!”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전차가 막힘없이 나아가는 것을 보면, 빨갱이들은 잘 막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저런건 가까이서 직접 보는 게 좋은데 말이다.

       

       한 번 뒤따라가볼까?

       

       

       “절대 안 됩니다. 여기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이미 할 일은 충분히 하셨습니다.”

       

       

       콜차크는 곧 죽어도 내가 가는 것을 뜯어말렸다.

       

       백군의 아이돌이자 마스코트인 나는 절대 저곳에 갈 수 없다.

       

       하긴 내가 참호전에서 직접 싸웠다는 소리를 듣고 이 콜차크는 게거품을 물었다.

       

       이 사람 속내야 어찌 되었든 백군의 구심점인 내가 무너지면 곤란할 테니 어쩔 수 없겠지.

       

       

       “황녀님! 참호선이 뚫렸습니다!”

       

       

       왜 이리 쉽냐?

       

       나는 이기는 쪽에 걸면서도 적어도 며칠간 피튀기는 싸움은 있을 거라 봤는데.

       

       내가 알기로 차리친 전투는 결국 스탈린이 방어해낸 것으로 안다.

       

       나중에 적백내전 후기에나 백군이 겨우 겨우 뚫는데.

       

       그 정도로 차리친은 뚫리지 않는단 소리다.

       

       역시 단합된 힘과 군벌집단은 다른 법인가.

       

       더군다나 볼셰비키는 예카테린부르크에서도 패배했으니. 사기도 엉망이겠지.

       

       황녀가 선두에 서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기존 역사보다 전투력은 남달랐다.

       

       여기에 독일군과 100일 전투에서 싸워온 영국과 프랑스의 전차까지 합세한다면 이건 뻔하겠지.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밀리고 있다.

       

       잠깐, 그럼 이거 전략을 수정할까.

       

       밀려도 너무 쉽게 밀리잖아.

       

       이래서야 내가 백군의 운명을 걸고 차리친을 회복하겠다고 한 것이 너무 무게만 잡은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니지. 잠시만.”

       

       

       만일 정말로 예카테린부르크 공격을 트로츠키가 맡았다면 말이다.

       

       아마 트로츠키는 정치적 타격을 받을 거다.

       

       그 사이를 스탈린이 치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예카테린부르크 공격이 성공해서 내 세력을 와해시키면 차리친에서 남러시아 백군을 막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공격은 실패했고, 나는 반대로 차리친으로 진격했다.

       

       그래. 스탈린에게는 나름의 명분을 쥐여주는 거다.

       

       약간 도박이긴 하지만.

       

       독일이 레닌을 러시아에 투하해버렸듯. 스탈린을 모스크바로 철군하게 만들면 어떨까?

       

       어차피 스탈린도 패배한 이상, 트로츠키랑 권력 투쟁이라도 벌여 승리하려 하겠지.

       

       스탈린을 이대로 밀어버려도 좋지만, 자기들끼리 물어뜯게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황녀님?”

       

       “차리친 방어를 맡은 볼셰비키가 스탈린이란 자는 트로츠키란 볼셰비키와 볼셰비키 내부에서 권력 투쟁을 하는 자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해방되어 붉은 역병에서 벗어난 전볼셰비키가 말해주더군요.”

       “나름 거물 빨갱이 아닙니까? 반드시 죽여야.”

       

       

       그래. 보통은 죽이는 게 맞다.

       

       나도 내 손으로 스탈린 멱을 따면 그것도 재미있을 거 같고.

       

       하지만,  지금 스탈린을 죽이면 순교자가 될 것이다.

       

       마지막 전투.  그러니까 모스크바를 탈환할 때가 아닌, 지금, 잡아 죽이면 혁명의 아이돌 레닌과 트로츠키가 선동할 수도 있고.

       

       

       “살려서 내부 다툼을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놓아준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부러 모스크바 방향으로 보란 듯이 길은 열어 줍시다. 결사항전하는 작자를 죽여 빨갱이들의 순교자로 만들 바에야 아 저기 퇴로가 있네? 모스크바로 돌아갈까. 느낌이 들게 해주자는 거죠.”

       “아쉽습니다만.”

       

       

       아쉽긴 하지, 나도 그런데. 조금 더 미래를 봐야 한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털린 붉은군대의 뒤에 트로츠키가 있습니다. 그리고 놈은 실패했고, 경이 나와 합류하면서 우리의 세력은 더욱 불어났죠, 그 힘으로 이곳까지 진격한 것이 아닙니까?”

       “트로츠키란 놈이 우릴 제압하지 못하는 바람에 스탈린은 차리진 전투의 패전의 책임을 트로츠키에 넘기려 할 수 있다는 소리군요.”

       “네. 그 두놈이 서로 싸울 때 우리는 남러시아와 시베리아, 극동을 발판으로 내치를 다스리면 됩니다.”

       

       

       자, 인간백정아.

       

       이번 한번은 살려줄 테니, 부디 그 안경쟁이와 알아서 자멸해주라.

       

       가는 김에 보로실로프도 데려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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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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