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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치안부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정전사태가 마족과의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즉, 이제는 대피가 아닌 시설의 보수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입니다.”

        “어둠의 숲에 남아 있던 전투 흔적은요?”

        “마력흔(魔力痕)도 없고, 당시 ‘연금술을 위한 시약 조제법’ 강의를 듣는 수습생 중에서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런 테러로 보이는 행위를 예측하는 것은 정보부의 관할에 가까운지라…….”

       

        혹시 모르니 모험가를 고용해 1층의 방비를 늘리자는 의견을 끝으로 치안부장은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바톤을 넘겨받은 정보부장이 당시 자신들은 매우 중요한 작전을 수행 중이어서 어둠의 숲 사건에까지 인력을 투자하기 어려웠다며 변명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작전은 파딱이 되어 갤러리 내부로 잠입하는 것이었으므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옆자리에서 골몰하는 시엔의 표정이 어두운 건 안 봐도 뻔했다.

       

        “이상하네, 분명 뽑힐 것 같았거든…….”

        “근거가 뭐였는데?”

        “어떤 조직이든 인성이 그른 사람을 관리자로 임명할 수는 없잖아. 나는 욕도 안하고 누가 보더라도 되게 모범적인 유저였단 말이야.”

       

        나는 혀를 끌끌 찼다.

        그래서 니가 안 되는 거야. 가끔 미친 척도 하고 어그로도 끌고 그래야지.

        지금 파딱들도 한때는 갤러리에서 유명한 분탕들이었다.

        내가 사람 만들어 놓겠다고 어르고 달래서 그렇지.

       

        어쨌거나 이대로라면 당분간 정보부가 내 정체를 파악하기란 요원해 보였다.

        하기사, 갤질에 인생을 바치면 바칠수록 마탑에서 말하는 훌륭한 마법사의 삶과는 거리가 먼 법이었다.

        나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시엔의 다리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새로 임명된 부관리자가 고작 둘이었어. 그것도 하나는 이렇다 할 활동도 없었던 걸로 미루어서 처음부터 내정자가 있던 게 분명해. 그럼 처음부터 우리 속셈을 눈치채고 솎아내기를…….”

        “그건 그렇고 내기는 지켜야지?”

        “내기!?”

        “말했잖아.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이쪽은 비석에 이름을 새겨 2층에 발을 디뎠고, 그녀는 파딱이 되지 못했으니 내 승리였다.

        나는 당황한 시엔의 손에서 위치노트를 빼앗았다.

       

        “이거 압수. 넌 앞으로 쓰지 마라.”

        “뭐어!? 안 돼!”

        “왜?”

        “그야 위치노트가 없으면 불편한 게 한 두 개가 아니잖아! 지도도 못 보고 의뢰 게시판도 못 쓰고 가끔 이걸로 정보부 임무도 받는단 말이야!”

       

        위치노트는 본래 연구부에서 제작한 마도구였다.

        지금도 미개척 지역이나 풀지 못한 비밀이 많은 마탑에서 마법사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수단.

        없으면 생활에 지장이 생길 뿐더러 내가 빼앗는다 한들 다른 경로로 노트를 주워 쓰면 말짱 도로묵이었다.

        고심하던 나는 대신 다른 조건을 걸었다.

       

        “그럼 갤러리에 글만 쓰지 마. 아니, 의뢰 게시판도 쓴다고 했지? 그럼 글 쓸 때마다 나한테 허락받고 올려.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지, 진짜……?”

       

        나는 관리자 계정이 아닌 기존에 쓰던 다른 부계정 하나의 정보를 노트에 추가한 뒤 돌려주었다.

        일대일 메시지를 통해 시엔이 갤러리에 올리고자 하는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단칼에 짤라버릴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면 정보부 활동을 막는 동시에 갤러리에서 받는 나쁜 영향도 최대한 줄일 수 있겠지.

       

        헌데 정작 사전검열의 객체가 된 그녀는 몇 번이고 침을 꼴깍 삼키더니, 조심스레 물어왔다.

       

        “개인 메시지……! 매번 너한테 보내면 읽어준다고? 하루에 몇 개라도 상관없이?”

        “묘하게 기뻐 보인다? 너 어차피 글 자주 쓰지도 않잖아.”

        “그야 수습생 시절엔 이런 거 안 알려줬었잖아! 어쨌거나 알겠어. 꼭, 꼭 연락할게!”

       

        시엔은 입가가 느슨해진 채 자신의 노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작 나보곤 회의 때 노트 보지 말고 집중하라더니.

       

        덕분에 바쁜 시간을 더욱 잘게 쪼개야 했지만 이걸로 원탁회나 정보부의 동향을 더 잘 알 수 있을 테니 내게도 이득이었다.

        서로 머무는 층도 다른데 다음부터는 이렇게 시엔을 자주 만나지는 못할 테니까.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작은 생활부에서 기숙사 사감은 보통 네개 동이 번갈아 가며 원탁회에 참여했다.

       

        “근데 있잖아 클락. 이 ‘초전도체은발미소녀’가 진짜로 네 아이디야?”

        “…….”

       

        자신의 노트에 추가된 친구의 정보를 확인한 시엔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답했다.

        그녀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대체 왜?’라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

       

        ====

        관리자

        [올해 새로 임명된 부관리자 명단입니다]

       

        1. 초천재금발미소녀

        2. 창쌘짱짱맨

       

        힘든 자리인 걸 알면서도 두 분 모두 기꺼이 자원해 주셨습니다

        갤 관리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모두 응원해주세요

       

        — 빔

        — 삼고빔빔

         ㄴ 아니 빌지 말고 응원하라고 ㅋㅋㅋㅋ

        — 자?원 ㅋㅋㅋ

        — 아 아무튼 본인 손으로 차단 풀었으니 자원한 거라고

        — 주딱부터 신나서 돌리는 걸 보니 이번 부품도 얼마 못 갈 것 같아요~

         ㄴ 어허~ 나쁜 발언~

        ====

        ====

        [당신이 새로운 파딱이신가요?]

       

        반갑다 나는 새벽만 되면 털뭉치가 너무 좋아져 갤러리 모두와 취향을 공유하고 싶어지는 악질 유저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 아 벌써 하나씩 튀어 나오냐고 ㅋㅋㅋㅋ

        — 이 새낀 당당하게 자기 입으로 악질이라네 ㅋㅋㅋ

        — 좆됐네 당분간 이미지 차단 걸어야 할듯

        — 윽, 털박이 아웃

        — 완장!! 빨리 일 해!!!

        ====

        ====

        초천재금발미소녀

        […….]

       

        …….

       

        — 아 본인 왔음? ㅋㅋㅋㅋ

        —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데 ㅋㅋㅋㅋ

        — 컨셉도 못 잡네 어지간히 충격이었나봄

        — 주딱이랑 벌써 만났음?

         ㄴ 이건 진짜 궁금한데? 둘이 만나서 뭐함?

        ====

        ====

        [뭘 둘이 만나 걍 언플용이지]

       

        이래야 내년 파딱도 뽑을 거 아님 ㅋㅋㅋ

        어차피 부품 수명은 끽해야 1년이야 그 전에 주딱 볼 기회가 올 거 같음?

       

        — 하긴 탑주랑 진짜 만났으면 저 컨셉충이 입다물고 있을 리가 없음

        — 당장 썰 풀고 념글 갔어야지 ㅋㅋㅋ

        — 천문대묘지기 : 아니야두사람진짜만났어여우같은년이가슴들이밀었어주딱냄새도맡았어비석앞에서벽쿵하고고백까지했어

         ㄴ 또또 고장난 시계

         ㄴ 점성학파 새끼들은 신비가 장난이냐? 천칭에 아무거나 막 올리네

         ㄴ 어차피 저거 제대로 된 결과 아닐거임 주딱 관련 정보는 대가성이 너무 커서 뭘 바쳐도 축을 기울일 수가 없음

         ㄴ 맞음 거의 미래시(未來視)수준임 걍 제 수명만 깎아먹는 짓

        ====

       

        다사다난했던 파딱 임명이 끝났다.

        결과적으로는 마리엘 하나만 영입한 셈이지만 추가된 인원은 둘이었다.

        평소 저격용으로 쓰던 부계정 하나를 같이 등록했기 때문이다.

        갤러리의 관심이 그녀에게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기도 했고, 활동하는 파딱이 너무 적으면 분탕들이 더욱 날뛰기에 취한 조치였다.

       

        본의 아니게 서로의 비원을 공유한 셈이지만 다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마리엘은 딱히 신경 안 쓰는 듯했다.

        이유를 물으니 ‘지금껏 마탑을 무너뜨리려는 조직은 수도 없이 있었고 관리인은 어차피 그럴 힘도 없는 것이에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별 거 아닌 일로도 가끔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의자 바퀴가 떨어졌다길래 고쳐주러 갔더니, 문밖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관리이인!!’

       

        이젠 그냥 비명을 지를 때도 내 이름을 추임새처럼 붙이는구나.

        갤러리를 확인해보니 한 분탕에 의해 털이 북슬북슬한 전술핵을 맞은 듯했다.

        조회수는 0인데, 글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예상대로 그녀의 능력이 갤러리 관리에 최적임을 확인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찾으셨어요?”

        “눈이! 눈이 아파요오오!! 시신경에 박힌 끔찍한 사진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에요!!”

        “일단 바퀴부터 갈겠습니다. 비켜봐요.”

       

        고장난 의자에 앉아 있다 뒤로 자빠져 바닥을 뒹굴고 있는 마리엘.

        나는 그녀를 놔두고 바퀴를 새로 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날이 풀린 탓인지 얼마 전부터 기숙사 안에서는 지나치게 얇은 차림이어서 눈 둘 곳이 곤란했다.

        머리모양도, 말버릇도, 성격마저 현대인의 감성으론 이상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외모와 몸매를 합쳐 총 4점짜리 하드웨어는 압도적이었다.

       

        참고로 내 기준에서 비나는 외모만 5점이었다.

        완장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보는 다른 점수를 다 합쳤을 때 마이너스로 수렴해서 그렇지.

       

        “관리히이이인, 거기 있죠호오오?”

        “네, 괜찮으세요?”

        “저 좀 부축하는 것이에요. 세안을 해야겠어요오…….”

       

        이런 식으로 묘하게 거리감이 줄어들었단 말이지.

        팔뚝과 허리 정도는 빨리 받치라는 듯이 기대 오고.

       

        나는 잡념을 버리고 마리엘을 화장실에 데려다놓은 뒤, 침대에 걸터앉아 위치노트를 켰다.

        그리고 관리자 전용 게시판에 새로운 파딱들이 글을 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기존에 있던 셋까지 합치면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갤러리 관리가 수월해질 것이다.

        그러면 나도 마음 편히 등반할 수 있겠지.

       

        ====

        — 관리자 : 두 명 더 뽑았으니까 이제 널널할 거임 근데 나머지 인원들도 가끔은 도와주셈

        — 벽력뇌제霹靂雷帝 : 알았다. 근데 주딱, 정말로 연회를 열 생각인가?

        — 관리자 : 연회? 모임 말하는 거? 지금 니들 하는 꼴 보면 별로 의욕이 있진 않음

        — 당신께 축복을 : 제가 잘못했어요…… 이번 원정 끝나면 진짜로 갤질만 할게요 (╥﹏╥)

        — 관리자 : 그렇다고 예전만큼 하라는 건 아니니까 사과할 것까진 없음 일단 일정 정해지면 나중에 여기에 공지함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부엉

        — 관리자 : 근데 부엉이 넌 진짜 실망이야

        — 부엉부엉부엉이 : …….

        ====

       

        사람이 바쁘면 잠시 갤질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

        파딱은 사람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개인 사정까지 터치하는 건 내 성격이 아니었다.

        다만 갤질에 미쳐있던 악귀들이 이렇게 바쁠 때만 쏙 빠지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것도 무슨 상층을 뚫는다느니 원정을 떠난다느니 어줍잖은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말이다.

       

        “관리인? 아직 밖에 있나요오?”

        “있습니다.”

        “저 수건 좀 갖다주는 것이어요. 옷장 두 번째 칸에 있어요.”

        “네네.”

       

        마리엘의 부름에 나는 노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칸의 개념 대신 혼돈이 자리한 옷장에서 속옷 더미들을 해치며 수건을 찾기 시작했다.

       

       

       

        *

       

        “저곳입니다.”

       

        교국(敎國)의 기사단장이 어둠에 휩싸인 고성을 가리켰다.

        모든 나무가 갈사(渴死)해버린 산맥에는 죽음만이 감돌고, 생명을 빨아들여 뒤틀린 힘은 한점으로 모이고 있었다.

        축성받은 병구를 수없이 두르고 있는 성신의 기사들이 차마 앞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서린 두려움은 불가해한 재앙에 의해 새겨진 것이었다.

       

        “기사단의 누구도 살아 생전 저런 악의를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 교단의 추기경께서도 산맥에 걸린 끔찍한 저주를 해제하는데 실패하여 겨우 목숨만 건지셨습니다.”

        “…….”

        “신성학파의 장문(掌門)인 당신께서 이번 토벌에 도움을 주신다면 저희 교국은 앞으로 마탑과의 교류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교단에도 자리를…… 현자님?”

        “어머, 죄송해요. 급한 연락이 와서. ”

       

        세실리아는 위치노트를 접어 소매에 집어 넣었다.

        신성술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신의는 다 좋은데 노출이 과한데다 주머니가 없는 게 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대륙에 뿌리내린 4대 재앙 중 하나, ‘태양의 적’을 발리에타 산맥 끝까지 몰아붙인 신성기사단이 마지막 돌격을 준비하는 중이었으니까.

       

        “배려 감사해요. 하지만 제가 여기 온 것은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랍니다?”

        “그럼 어째서…….”

        “기본적으로 마법사들은 재앙의 토벌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저도 예전같은 성격이었다면 절대 탑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텐데, 음……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둘까요?”

       

        과거, 갤러리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자신에게 제발 분탕 좀 그만치고 현생이나 살라던 주딱의 한 마디.

        누구보다 위대한 마법사의 조언을 받아들인 그녀는 탑에서 나와 대륙을 떠돌았다.

        그 결과 정체되어 있던 마법은 한 단계 더 진화했고 성신의 가르침도 더욱 또렷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갤러리에 소홀해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기분이 많이 상하신 모양이라 여기까지만 하고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해야겠어요. 그건 그렇고 모임이라,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이건 기대되네요…… 후훗.”

       

        주딱의 마지막 채팅을 떠올리며 웃음 짓던 세실은 제단이 갖추어졌다는 사제의 말을 듣고 벼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에는 여전히 짙은 어둠과 함께, 산산조각난 태양의 파편이 소름끼치는 핏빛을 머금은 채 스러지고 있었다.

        산맥의 모든 생물의 피를 흡수해버린 귀신의 영역에 들어가려면 저것부터 본래의 모습대로 돌려놓아야 했다.

       

        “그럼 다들, 준비되셨으면 기청(祈請)을 시작할게요?”

       

        눈가리개를 풀며 몸을 빙글 돌린 그녀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윽고 산맥 전체를 감싸는 칠현자의 압도적인 마력이, 창천의 조각난 태양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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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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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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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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