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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영감님들?”

       

       “크…클로셀님을 뵙습니다!”

       

       일분 일초가 급한 상황이었으니 사람은 많을수록 좋았다.

       

       내가 본 곳은 산 속이었다.

       

       그곳을 뒤지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야 한다.

       

       “말…!! 말이 필요해요!”

       

       내 외침에 란돌프가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 몸을 움직였다.

       

       “여기서 기다리게. 금방 구해 올 테니.”

       

       그때 파라몬의 입이 열렸다.

       

       “그럴 필요 없다.”

       

       “영감님! 급한 상황이예요! 빨리 가야 한다니까요?”

       

       “허허…계속 한곳을 보는걸 보니 저쪽 방향인 모양이구만.”

       

       도대체 왜 이렇게 늦장을 부리는 건지 답답해 죽을지경이었다.

       

       여유롭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급하다고 했는가? 그렇다면 더욱이 말 같은 건 필요 없네.”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는 파라몬의 옆에서 클로셀이 한걸음 걸어 나왔다.

       

       “우리가 말보다 빠르니까 말일세.”

       

       “그게 지금 무슨….”

       

       클로셀의 두팔이 허공을 휘저었다.

       

       “플라이.”

       

       “어어?!!”

       

       그와 동시에 내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날아가는 건 오랜만이구먼…”

       

       “토가 나오면 해도 좋네. 속이 좀 울렁거릴 것이야.”

       

       그 말과 동시에 나와 영감님들의 몸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허억….!!!”

       

       “저쪽 방향이 맞는가?”

       

       클로셀의 물음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강력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말은 커녕 숨 쉬기 조차 힘들었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뿐.

       

       “좀 더 빠르게 가겠네.”

       

       휘이익 –

       

       주변으로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감겨진 눈 사이로 보이는 장면들은 형체를 알아볼 새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껄껄…이렇게 보면 평범한 젊은인데 말이야.”

       

       “말하기 힘들 것이네. 손이라도 뻗어 보게나.”

       

       간신히 숨을 쉬며 헐떡이는 나와는 다르게 두 영감의 음성은 산책이라도 하듯 평온했다.

       

       바람을 맞느라 움직이지 않는 팔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손에 느껴지는 방울의 감촉만이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잠깐, 방울?

       

       움찔.

       

       딸랑 –

       

       그렇다 내 손에는 방울이 있었다.

       

       눈이 안떠진다고 해서 못 보는게 아니다.

       

       난 태어날 때부터 영안을 뜬 무당이니까.

       

       “하아….”

       

       참고 있던 숨을 내쉼과 동시에 정신이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갔다.

       

       어둠을 지나 더 깊은 곳으로.

       

       사아아 –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온몸의 감각들이 살아나며 다른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호오…?자네?”

       

       “흥미롭구만.”

       

       방금까지 느껴지던 저항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모든 풍경들이 보였다.

       

       또한 느껴지고 만져졌다.

       

       “클로셀 영감님, 조금 더 오른쪽이예요.”

       

       뻗어진 손을 따라 온몸이 쏠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내가 봤던 곳이다.

       

       멀찍이서 작은 기운이 느껴졌다.

       

       풀숲에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는 기운이.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머리 끈과 똑같은 기운이었다.

       

       “영감님!”

       

       “우리도 벌써 느꼈네. 고블린이 몇놈 있군.”

       

       “내려가겠네.”

       

       바로 지척이었다.

       

       나는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들자마자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이에게 붙어 있는 영혼이 다급한 감정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박한 상황이었다.

       

       타다닥 –

       

       “이 고블린 새끼들이.”

       

       이윽고 고블린 몇 마리가 풀숲을 뒤지며 히히덕 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케륵?”

       

       “키륵!!”

       

       뛰어나오는 나를 발견한 듯 고블린들이 일제히 내 앞으로 모여 들었다.

       

       열 마리가 넘어 보이는 숫자.

       

       하지만 놀랍도록 마음이 차분했다.

       

       딸랑 –

       

       “사람도 되지 못한 것들이 어디다 칼을 들이밀꼬?”

       

       한없이 낮은 영격들이었다.

       

       쾌락과 식욕 따위의 저급한 본능들만 엉켜있는 덩어리.

       

       내가 마주한 고블린은 딱 그 정도였다.

       

       “미물이 사람을 잡는구나…쯧쯧…”

       

       “키륵!”

       

       다행히도 아이는 멀쩡한 것 같았다.

       

       작은 바위 밑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겁을 먹었을 뿐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 옆에 붙어 있던 영혼 역시 안심한 듯 기운이 안정되어갔다.

       

       “거기 어르신께서 날 좀 도와줘야겠는데?”

       

       방울 소리가 울리며 영혼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

       

       그와 동시에 뾰족한 손톱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케륵!”

       

       하지만 그 손톱은 내 몸에 닿기는커녕 빈 허공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움직이고 있는 내 몸은 마치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듯 능숙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역시나 내가 움직이는 것인지, 영혼이 움직이는 것인지 모를 신비한 감각이었다.

       

       “어찌이리 희한할꼬… 다들 원한도 없이 이승에 남았으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으로 팔이 휘둘러졌다.

       

       퍼석 –

       

       방울에 맞은 고블린의 머리가 부서지며 움푹 패여 들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판 한번 벌려야겠구나.”

       

       내 몸이 펄쩍 뛰어오르며 다시 한번 방울을 휘둘렀다.

       

       마치 검을 휘두르듯 움직이는 팔은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었다.

       

       퍼석 –

       

       “키익!…크륵…”

       

       머리가 부서진 고블린이 하나 늘었다.

       

       고블린의 공격 따위 가볍게 피해낸 내 몸이 연신 머리통을 부수고 다녔다.

       

       퍼억!

       

       “추잡하고 더럽구나.”

       

       퍼석 –

       

       “영혼에 들어 있는 것이 이런 것들밖에 없으니, 딱하기도 하구나.”

       

       “케륵…!”

       

       방울은 철퇴라도 된 듯 고블린을 부쉈다.

       

       굿판을 노니는 느낌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발이 땅을 디뎠고, 방울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어느새 서 있는 고블린은 없었다.

       

       “쯧쯧….”

       

       피가 묻은 방울을 허리에 꽂아 등 뒤로 돌렸다.

       

       저벅.

       

       발걸음을 옮겨 풀들을 치우니 작은 아이가 보였다.

       

       오들오들 떨고 있던 머리가 나를 향했다.

       

       “눈은 감고 있거라.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야.”

       

       끄덕.

       

       아직도 공포에 질린 게 느껴졌다.

       

       그만큼 아이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가야, 이름이 무엇인고?”

       

       “…아…알리사..”

       

       “눈을 뜨지 말거라.”

       

       끄덕.

       

       아직도 주변에 더러운 기운들이 많았다.

       

       피 냄새를 맡고 온 것일까?

       

       몸을 들썩이며 모여드는 고블린들이 느껴졌다.

       

       아마 저놈들을 다 처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지 싶었다.

       

       다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영혼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직 도움이 더 필요…”

       

       영혼은 이제 되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희미한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뒤에 있는 영감들을 향해 돌아갔다.

       

       “….내 죽기전에 이런 걸 다 보는군.”

       

       “자네 어떻게 한 것인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클로셀을 바라봤다.

       

       고블린을 때려잡는 것쯤이야 하늘을 날아온 영감의 능력에 비하면 초라한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호기심을 가지는 걸까?

       

       “…자네 설마 모르고 있나?”

       

       “그런 것 같군.”

       

       이상한 말이다.

       

       영감들의 눈에 신기해 보일 현상이라고는 능숙하게 잘싸웠다는것뿐일 텐데···.

       

       내 생각을 깨며 파라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눈은 언제 뜰 생각인가?”

       

       “…..?”

       

       눈?

       

       순간 머릿속이 깔끔해지며 감각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미친….”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순간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들과 영감들이 보였다.

       

       그렇다.

       

       나는 눈을 감고 싸운 것이다.

       

       너무나 선명한 감각에 눈을 감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내 영안이 이렇게까지?

       

       맹세코 내 영안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껄껄.”

       

       “이제 알겠는가?”

       

       클로셀과 파라몬이 호기심을 가질만 했다.

       

       세상 어느 인간이 눈을 감고 고블린과 싸우겠냔 말이다.

       

       마주한 클로셀의 두 눈에는 짙은 호감이 담겨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잘도 싸우더군. 제국의 병사들이 쓰는 전투술을 사용하면서 말이야.”

       

       “예?”

       

       “아이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퍽 인상 깊었네. 듣자 하니 물욕도 없다지?”

       

       아무래도 이 영감은 나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오해를 풀어 줄 기회는 없었다.

       

       주변에 모여든 고블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키르륵.”

       

       사방에 고블린들이 가득했다.

       

       아이를 보호하면서 싸우기에는 지형조차 불리했다.

       

       “걱정 마시게.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런걸 보기가 힘들었겠구먼.”

       

       파라몬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고블린을 향해 걸어갔다.

       

       “비록 검은 없지만, 이제는 이것도 제법 익숙해졌다네.”

       

       스윽.

       

       파라몬의 품속에서 작은 망치가 나왔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들고 있던 그 망치였다.

       

       “껄껄.”

       

       웃으며 걸어가는 파라몬은 여전히 산책을 하듯 여유로웠다.

       

       “이런 표정으로 싸워본적이 있었던가… 행복하게 산다는 건 아직은 어색하구만…”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망치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파스스 –

       

       연기가 나듯 피어오르던 푸른빛이 잦아들고, 선명하게 모양이 잡혔다.

       

       오러 블레이드가 저런 모습일까?

       

       방금까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풍기던 파라몬의 기세가 변했다.

       

       천천히 팔이 땅으로 떨어지고 망치가 바닥에 닿는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꽈과광 –

       

       망치로 바닥을 때렸는데 저런 소리가 난다고?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파라몬의 앞을 시작으로 바닥이 갈라졌다.

       

       아니 부서졌다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미…친…..”

       

       파라몬의 앞에 있던 고블린들이 모두 터졌다.

       

       내가 죽인 고블린의 모습은 양반이었다.

       

       지금 죽은 고블린들은 몸이 박살 나며 사지가 여러 곳으로 흩어져 버렸으니까.

       

       “껄껄.”

       

       꽈광!

       

       꽈과광!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방으로 땅이 갈라졌으며, 도망가던 고블린 마저 여지없이 몸이 터져 나갔다.

       

       꽈앙!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온몸을 울렸다.

       

       파라몬이 망치를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을 때는 주위가 온통 폐허가 되어 있었다.

       

       정확히 우리가 서 있는 곳만을 제외하고.

       

       “허허허…”

       

       그 속에서 허허롭게 웃음을 짓는 파라몬.

       

       그 상반된 광경 앞에서 나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저번에 내가 저걸로 맞을 뻔했다는 거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늙었다는 건 강하다는 것.

    선작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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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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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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