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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톨루즈 공작가 영애인 졸업반 반장 나이틀리가 전투수석교수에게 개박살났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일시에 50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산점과 전투수석교수의 미친 검술까지도.

       

       목검을 딱 두 번 휘두르자 나이틀리가 윽엑억 거꾸로 바닥에. 현장에 있던 수많은 학생들 중 전투수석교수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나이틀리를 무력화했는지 자세히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그렇고 감히 제국의 내로라하는 고위귀족의 딸을 그렇게나? 뭐하는 미친놈이지? 목숨이 두 개인가?

       

       이 소식을 들은 전투학과 교수들은 모두 경악과 한탄을 금치 못했다.

       

       “기껏 제대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

       

       드워프 카다자르가 분노해 책상을 내리쳤고 종합전투 모턴은 당시 현장에 있던 제네브를 조용히 질책했다.

       

       “너는 대체 거기서 무엇을 하느라 그자를 제지하지 않았나?”

       “일개 과목교수가 수석교수의 행동을 어떻게 막는단 말입니까.”

       

       제네브의 대답에 전투승마 애나가 양손을 쥐며 울먹거렸다.

       

       “이제 우리 전투학과는 끝났어요…. 딸이 얻어맞은 것을 안 톨루즈 공작이 아카데미에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하하. 설마 그러겠어? 여기는 학생들 가르치는 학교인데 실습중에 다치고 할 수도 있는 거지.”

       

       긍정왕 웨이버는 밝게 웃었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다른 건 몰라도 진짜 귀족 출신 애들은 건드리는 거 아닌데….”

       “모르겠다. 혹시 모르니까 사직서나 준비해 놔야지.”

       

       실전적인 교육훈련을 고대했지만 이렇게나 급발진을 할 줄은 몰랐던 전투학과 교수들이 암담해 하는 동안 전투학과의 대척점에 있는 이론학과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오갔다.

       

       “수석교수님. 어떻게 보십니까? 톨루즈가가 행동에 나설까요?”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지랄 맞은 톨루즈라면 분명 아카데미를 뒤집어 놓을 것 같은데요.”

       

       이론학과 교무실. 상석에 앉은 이론수석교수 이스메라는 교수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전투학과의 헛발질이 설마 우리한테까지 불똥으로 튀는 건 아니겠지요? 안 그래도 지금 키르린 교장도 굉장히 위태로운 상태잖습니까.”

       “도대체가 신임 전투수석은 무슨 생각인 건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카데미에 ‘출몰’한 전투수석교수 디안.

       

       전투수석이라고 한다면 분명 관련된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전사일 테지만 아무리 봐도 디안이라는 작자는 희멀건한 젊은이. 외모만 보면 오히려 이론학과 교수나 혹은 아카데미 도서관 사서가 어울린다.

       

       그래서 이론학과 교수들은 백방으로 그의 뒷배경을 조사했지만 딱히 나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이상하다.

       

       대단하면 대단한 대로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뭐라도 나와야 정상인데 어째서인지 디안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때문에 이론교수들은 디안이 제국의 특임요원 출신이 아닐까 짐작만 하는 중.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다들 그런 식이니까.

       

       다만 이스메라의 경우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디안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알고 있다. 4년전쟁 동안 만들어진 여러 특임대 중 하나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거기서 엄청난 공을 세웠다는 것.

       

       정확히 어떤 전공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톨루즈 공작가의 여식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목검으로 두들겨 패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여유로울 정도는 된다는 거지. 혹은 톨루즈 공작가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스메라가 입을 열자 교수들이 모두 침묵하며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할 곳은 톨루즈가 아니라 황성이라는 겁니다.”

       

       그 말에 교수들이 낮은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요. 황성에서 키르린 교장을 내치려는 건 공공연한 사실. 전투수석교수가 저렇게 활개를 치는 건 모두 키르린 교장이 승인을 한 탓이니 황성에서는 이것을 기회로 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봐서는 톨루즈가에서 문제삼지 않더라도 황성에서 일부러 일을 키워서 교장의 모가지를 칠 수도 있겠는데요? 그럼 후임 교장에는 당연히….”

       

       교수들이 기대감 담은 표정으로 이스메라를 쳐다봤지만 이스메라는 대답 없이 속을 알 수 없는 옅은 미소만 지었다.

       

       보리밭 같은 백금발에 에메랄드를 연상케 하는 녹안, 그리고 기다란 귀를 가진 눈부신 외모. 

       

       이스메라는 엘프다. 살던 숲이 마왕군에게 불타 없어진 후 생존일족과 함께 인간세상에 이주해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엘프들이 그렇듯 머리가 좋아 불과 10년만에 고등석사가 되어 신설 특수임무 아카데미 수석교수에 인선된 인물. 황제의 낙하산인 다크엘프 키르린과는 그 결이 다른 자다.

       

       그래서인지 키르린은 2황녀와 더불어 이스메라 역시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전임 전투수석은 도망쳐서 공석이니 교장의 대리인은 이론수석교수. 그리고 하필이면 이스메라는 키르린과 대비되는 순혈엘프에 경력도 굉장하다.

       

       키르린 역시 멍청이가 아니고 나름대로 잘리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는 있지만 이러나 저러나 이스메라와 비교당하는 일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론학과 교수들은 만약 황성에서 키르린을 자른다면 그 공석에 이스메라가 앉지 않을까, 그리고 이스메라의 공석이 생긴다면 거기에 오르는 건 혹시 자신은 아닐까, 하는 희망회로를 돌리는 중이다.

       

       “다들 경거망동하지 말아요. 이번 일은 전적으로 교장님과 전투수석님께서 대응하실 문제. 우리 이론학과에서 이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닙니다.”

       

       전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태도로 이스메라는 교수들의 들뜬 논쟁을 일축했다.

       

       “아침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다들….”

       “수석교수님! 수석교수님!”

       

       이스메라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이론학과의 조교 한 명이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 들어왔다.

       

       “난리가 났습니다! 톨루즈 공작께서 아카데미로 오신답니다!”

       

       

       # # # # #

       

       

       전투학과와 이론학과 교수들이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동안.

       

       “이제 난 죽었어….”

       

       교장실의 키르린은 안 그래도 검은 피부가 더욱 어두워진 채로 웅크리고 앉아 웅얼거렸다.

       

       전투학과의 교육훈련 개선안의 최종결재란에는 키르린의 사인이 들어가 있고 톨루즈 공작가가 이번 일을 물고 늘어진다면 모든 책임은 그녀가 져야만 한다.

       

       톨루즈 공작가는 제국 귀족원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문. 그런 가문이 큰소리를 낸다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황성에서도 못 이기는 척 키르린을 자를 것이고 키르린은 일족의 숲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마주해야만 한다.

       

       일족의 명운을 걸고 마왕군을 배신해 인간의 편에 붙었고 기적적으로 전생이 인간측 승리로 끝나면서 일족은 순식간에 황제의 생명의 은인으로.

       

       이에 아버지는 일족이 완전히 제국에 편입되도록 키르린을 공립 아카데미에 보내 공부를 시켰고 또 여기 특수임무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앉혔다.

       

       그런 아버지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숲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여기서 자살을 해버리는 게 나아….

       

       “교, 교장님…!”

       

       소매 속에서 꺼낸 비수를 보며 극심한 갈등을 하고 있는데 행정실장이 얼굴이 사색이 된 채 뛰어 들어왔다.

       

       “히익!? 뭐하십니까? 지금 암기 손질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비수를 들고 있는 키르린을 다그치며 행정실장이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톨루즈 공작이 아카데미로 오고 있답니다! 앗, 교장님!”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는 키르린을 본 행정실장이 비명을 질렀다.

       

       

       # # # # #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아카데미 정문으로 나가니 거기에는 이미 교수들이 나와 있었다.

       

       가장 선두에는 키르린 교장과 이론수석교수 이스메라가.

       

       “이쪽으로 오세요, 전투수석님.”

       

       마침 나를 발견한 이스메라가 엘프 특유의 자애롭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을 가리켰다.

       

       “안녕하세요, 이론수석님. 그런데… 괜찮으세요, 교장님?”

       “괘, 괘괘, 괜찮을, 것 같아…?”

       

       안개처럼 차분한 이스메라와 달리 키르린 교장은 거의 기절할 것처럼 떨고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반응이 다른 게 이상할 것도 없다.

       

       키르린은 2황녀를 무서워 하지만 이스메라 교수는 딱히 접점이 없다. 그리고 톨루즈 공작의 경우는 아마도 무장전투수업에서 나이틀리를 때려 눕힌 일 때문에 오는 것이리라.

       

       그것 역시 이스메라 교수는 관련이 없으니 남일 보듯이 저러고 있는 것. 하지만 키르린은 다르지. 2황녀와 톨루즈 모두 자기가 직접 감당해야만 하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하나도 아니고 둘이 동시에 오니 지금 이 자리에서 실신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마차가 보입니다!”

       

       위병의 외침과 함께 저 멀리서 마차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톨루즈 공작이십니다!”    “으흑…!”

       

       키르린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입을 틀어 막았고 이에 이스메라 교수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때 나는 이스메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포착했다. 아까 내게 보였던 선의의 미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 마치… 마치… 비웃음 같다.

       

       하지만 모두 가까워지는 공작의 마차를 보느라 그 찰나의 미소를 본 것은 나뿐이었다. 저건 기억을 해둬야겠다.

       

       막 정문을 지나친 마차가 교수진들 앞에 급정거를 했다. 문이 열리며 중년의 남성이 성큼성큼 내려섰다. 톨루즈 공작이다.

       

       “키르린 교장!”

       

       톨루즈 공작이 분노의 외침을 지르자 불쌍하게도 키르린 교장은 휘청이며 이스메라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말았다.

       

       “우리 애를 잘 가르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오! 대체 어느 미친놈이 여자애를 그렇게나 두들겨 팬 거야!”

       “그, 그게….”

       

       발발 떠는 키르린을 보고 있기 딱해서 공작 앞을 가로 막으며 소리쳤다.

       

       “사령관님! 오랜만입니다!”

       

       그 소리에 내게로 시선을 돌린 톨루즈 공작의 눈이 튀어 나오려고 했다.

       

       “엇?! 너, 너! 디안 중위?!”

       “맞습니다!”

       “이런 미친?! 네놈이 왜 여기에 있냐?!”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여기서 사령관님과 다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 새끼! 갑자기 사라졌길래 뒤진 줄 알았더니!”

       

       공작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와락 끌어 안았다.

       

       

       # # # # #

       

       

       이게 무슨 상황이지?

       

       갑자기 서로 끌어 안는 공작과 전투수석을 본 이스메라는 극심한 당혹감을 느꼈다.

       

       분명, 분명 교장과 전투수석을 싸잡아 짓밟아 놓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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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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