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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1.

       

       “여기가 황궁이야 호텔이야?”

       

       벌써 오후 일곱 시.

       

       나는 절찬리에 푹신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무척 파란만장했다고 회상하면서.

       

       이십 년동안 살아왔던 새로운 고향을 떠나 황궁에 왔고, 스승님이랑은 내일부터 뭘 배워야 할 지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고, 갑자기 내 방에는 북부 대공이 쳐들어와서 자기랑 직통으로 연결되는 유사 명함을 주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는 쭉 방에 틀어박혀 혼자 뒹굴거리고, 낮잠을 자는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여유로운 하루라기엔 사실 집에서는 원래 매일 이렇게 했었지만.

       

       무심코 내가 황궁에 온 게 아니라 사실 호캉스를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이었다. 가만히 낮잠 한 숨 때리고 일어나면 알아서 맛있는 밥 차려주고, 귀족답지 않으니 체통을 지키라며 잔소리하는 아버지도 없고.

       

       음, 믿겠다. 여기는 호텔이 맞군.

       

       조금 심심한 걸 빼면 더할나위 없이 안락하고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도중.

       

       – 아아. 루드릭 군, 들리는가?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정체는 방 안에 비치된 수정구.

       

       벌떡 일어나서 수정구에 손을 얹어 나도 통신 마법을 활성화하며 대답했다.

       

       “네, 잘 들려요 스승님.”

       – 쉬고 있는데 미안하네만, 중요한 일이 있어 불렀다네.

       “갑자기 중요한 일이요?’

       

       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수업을 빙자한 마법 연구도 내일부터 시작이고 벌써 저녁인데 이 시간에 중요한 일이라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정구 너머로 들리는 스승님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듯한 기색이었다. 당황이나 놀라움으로 떨리는 건 아니고, 어딘가 희열에 차서 떨리는 목소리.

       

       – ……이 늙은이는 틀림없이 지금껏 본 사람 중에 루드릭 군의 재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확신하고 있었네만, 루드릭 군에게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를 한 명 더 찾았다네.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세요?”

       – 내가 잠시 산책 삼아 거리를 걷던 도중에…… 에이, 풀어서 설명하려니 번거롭구먼. 내가 곧 데리고 그쪽으로 감세.

       “네? 지금 오신다고요? 지금 바로요?”

       

       내가 황급히 물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끊어진 통신.

       

       나는 황망한 얼굴로 통신이 끊긴 수정구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이 할머니가 갑자기 지금 뭐라는 거야?”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니까 끊기기 전까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거리를 산책하다가 나와 비슷할 정도로 마법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하나 더 찾았고.

       

       그리고 지금 데리고 온다고? 그럼 벌써 제자로 삼았다는 건가?

       

       행동력이 굉장히 빠르신데.

       

       얼떨떨한 얼굴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 앉히고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대마법사라는 게 사실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같은 게 아니고서야 그만한 재능이 쉽게 발견될 수 있을까?

       

       그것도 하루만에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나.

       

       “……이거 느낌이 굉장히 쎄한걸.”

       

       스승님은 갑자기 산책을 나갔고, 산책을 나갔는데 엄청난 재능을 지닌 미래의 대마법사 유망주를 하나 주워왔다.

       

       말이 되지 않느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닌데, 어딘가 굉장히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겉옷으로 로브를 대충 걸치고는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목적지는 아까 아침에 들렀던 스승님의 연구실.

       

       거기에 가서 나와 마찬가지로 스승님의 제자가 될 그 녀석을 직접 눈으로 보면 확실해지겠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말이야.

       

       

       

       2.

       

       운이 좋았다.

       

       정말로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회귀하기 직전, 실피아가 유희에서 맡았던 배역은 인간의 마법사. 루드릭은 그런 컨셉이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던 배역이다.

       

       드래곤의 유희란 드래곤이 배우가 되어 정해진 배역을 맡아 혼신의 힘을 다한, 일종의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것과 같은 행위.

       

       회귀 직전의 유희는 그녀에게 있어 가장 길었던,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슬픈 기억의 단락으로 남았을 터이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잘 풀리는 경우도 있군요.’

       

       늙은 마법사를 얌전히 뒤따르던 실피아가 기쁜 미소를 지으며 내심 생각했다.

       

       회귀 전에는 분명히 뛰어난 마법 실력을 보여주고 황궁 소속의 마법사로 등용되는 과정을 겪었지만, 이번엔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이 곧장 궁중 마법사 로렌초 토날리의 눈에 들어 그녀의 제자가 된 참이었다.

       

       ‘……허어, 그만한 마나를 지니고 있을 줄이야.’

       ‘네?’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게. 나는 궁중 마법사 로렌초 토날리라고 하는 늙은이인데, 아가씨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마나가 범상치 않군.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겐가?’

       

       ……비록 그녀를 보자마자 눈이 뒤집힌 궁중 마법사의 첫 멘트는 사이비 종교의 포교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처참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어떤 식으로 일을 풀어 나갈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있어 회귀 전의 유희와 똑같이 황궁의 마법사가 되는 과정을, 단숨에 건너뛰게 해줄 수 있는 로렌초의 존재는 퍽 매력적이었기에.

       

       ‘인간도 이렇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네요. 의외로 말이죠.’

       

       로렌초 토날리.

       

       실피아의 기억 속에서는 그저 마법 조금 쓰는 인간 늙은이 정도로 기억되고 있는 이름이었지만, 그 기억이 이런 때에는 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사실 어지간히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어도 로렌초가 접근하는 방식을 본다면 곧장 사기꾼이라며 문전박대할 게 뻔했으니.

       

       “마나가 불꽃을 닮았군.”

       “네?”

       

       그렇게 실피아가 상념에 잠겨 걷는 동안, 앞장 서서 걷던 로렌초가 입을 열었다.

       

       “때때로 마법사들 중에서는 특정한 속성 계통의 마법에 대해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나는 이들이 존재하곤 한다네.”

       “…….”

       “그리고 백이면 백, 그런 자들은 특화된 속성과 머리의 색이 일치하곤 하지. 바로 자네처럼 말일세. 불꽃 계통의 특화라면 붉은색, 뇌전 계통의 특화라면 노란색, 암흑 계통은 검은색……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맞아요. 다른 마법들 보다는 불꽃 계통의 속성 마법에 더 재능이 있었거든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로렌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아니었다.

       

       머리색이 붉은 이유는 단순히 실피아, 그녀가 레드 드래곤이라서 그렇다. 불꽃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것 역시 레드 드래곤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실피아는 굳이 로렌초의 착각을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대충 맞장구를 치고, 우선 지금은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간 제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황궁에 입성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드래곤의 유희라지만, 이런 정상적인 방법을 거치지 않을 경우 그녀가 황궁에 들어서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노력은 굉장히 많았다.

       

       ‘광범위 정신 조작까지 쓸 생각이었는데…… 정말로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어요.’

       

       무심코 실피아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황궁에 있는 인원 수백, 수천 명을 대상으로 모두 정신을 조작하여 실피아라는 마법사가 원래부터 황궁에 있었다는 거짓을 인식시키는 건 아무리 실피아라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더군다나 모든 드래곤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룰’까지 위배되는 일인 만큼, 위험에 대한 부담도 높았을 터.

       

       그런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어진 만큼 그녀에게 로렌초는 어떻게 보면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제국의 수도로 왔는데, 길에서 로렌초 토날리 궁중 마법사를 만나 황궁으로 바로 향하다니.

       

       정말로 운이 좋았다는 말이 아니면 어떤 말로 더 표현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렇게 기분 좋게 실피아는 황궁으로 향하고 있었을 텐데.

       

       “그렇지, 내 정신 좀 보게. 이 기쁜 소식을 어서 전해야겠구먼.”

       “네?”

       “실은 오늘 내가 자네 말고도 제자를 한 명 더 들인 날이라네. 황녀 전하의 시찰을 동행했다가, 자네 못지 않게 뛰어난 재능을 지닌 소년을 한 명 발견했지 뭔가.”

       

       갑작스러운 말에 되물었던 실피아가, 이어진 로렌초의 말에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찰. 재능. 소년.

       

       ‘나만한 재능을 지닌 소년 마법사라고요……?’

       

       순간적으로 실피아의 머릿속에 루드릭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몇년 후의 미래까지 이미 겪은 바 있던 그녀에게 그 세 단어가 조합되는 순간, 루드릭의 얼굴이 그려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적어도 그녀의 기억 속에서 그만한 재능을 지닌 마법사가, 그것도 남성이 나타났던 미래는 루드릭을 제외하면 본 적이 없기에.

       

       다급하게 실피아가 확인 차 되물으려던 찰나, 로렌초가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네. 바이스 백작령이라니, 처음에는 그런 영지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런 한미한 곳에 대마법사의 재능이 숨어 있을 줄은 어떻게 알았겠는가.”

       “루드릭 바이스.”

       “음? 뭐라고 말했는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바이스 백작령.

       

       그래, 실피아 그녀가 찰나의 유희 속에서 드래곤이라는 본분조차 망각하고,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던 그의 이름은 루드릭 바이스.

       

       “어쨌든 자네나 루드릭 군이나 피차 내 밑에서 수학하게 된 동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 궁으로 돌아가면 서로 인사라도 나누게 해야겠구먼.”

       “…….”

       

       실피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미래가 바뀌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루드릭은 여전히 그의 영지에 있어야 할 터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미 수도로 상경해 궁중 마법사의 제자로 들어간 상태.

       

       그리고 분명히 시찰을 나간 황녀와 동행해서 발견했다고 한다면…….

       

       ‘엘레나 황녀가 벌써……?’

       

       어렵지 않게 결론이 나왔다.

       

       “아아, 루드릭 군. 들리는가? 쉬고 있는데 미안하네만……”

       

       앞장 서서 걸어가던 로렌초가 수정구를 이용해 루드릭과 통신 마법을 연결하고 있었지만, 실피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미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간단하게 도출된 결론에 의하면, 과거로 회귀한 건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란 말이죠.’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동공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파충류의 그것처럼 변했다가, 이내 눈을 깜빡이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실피아의 시선이 로렌초를 향했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피부에 용린이 돋아나고, 눈동자가 변했지만 늙은 마법사는 통신 마법에 정신이 팔려 눈치채지 못한 모양.

       

       실피아의 입매가 슬쩍 올라갔다.

       

       “운이 좋네요.”

       

       나직한 중얼거림. 흡족한 얼굴로 실피아가 예의 그 나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것도 아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2천자 정도 써놓고 쉬는 날이라 자고 일어나서 마저 쓰려고 했는데

    골골거리다가 누운 자리에서 그대로 18시간 풀취침을 때려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생 최잠 기록 갱신,,

    내일은 결국 밤새고 출근해야겠네요,,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로판 주인공 하기 싫습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reincarnated as the eldest son of a noble family with nothing to do.

Even if I put aside the fact that the world I was reincarnated into is a little strange.

– Northern Grand Duchess Eileen is confused after realizing she has regressed.

– Admiral Lassiel realizes she has regressed and immediately turns the fleet around.

– Princess Elena prepares to inspect the Weiss County, chewing over the past.

What is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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