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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그래요, 시라바야시 상. 역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런 제가 이상해 보이겠지요. 하지만……’

       

       인형인 까뜨린느에게 말을 거는 렌까였지만, 정말로 까뜨린느가 살아있다고 믿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렸을 적부터 마음의 의지가 되기에 어느샌가 버릇이 된 행동이었을 뿐…… 이라고, 렌까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저도 놀랐습니다.’

       

       렌까는 창 밖으로 백철연이 인력거에 올라 떠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시라바야시 상. 당신에게 그런 면모도 있었군요.’ 

       

       대전에 온 이유가, 소학생 시절 죽은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니! 렌까는 수트케이스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내뱉었다.

       

       『까뜨린느. 이것이 조선인들이 말하는, 조선의 정이라는 것일까?』

       

       ‘정(情)’이라. 평소 자신의 친구들을 아끼던 백철연의 모습을 보면 납득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죽은 친구까지 이렇게 챙겨줄 줄은 렌까로서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각별한 사이였기에, 사람만한 크기의 인체모형을 몸소 옮기는 고생까지 해 가며 죽은 친구를 찾아온 것일까.

       

       ‘분명 소중한 친구였기에 이렇게 찾아온 것이겠지요.’

       

       방금 백철연의 우수에 찬 눈빛을 보면, 비록 어린 나이였을 때의 친구였음에도 매우 각별한 사이였을 것임을 짐작하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니 렌까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죽은 옛 친구를 기리러 온 사람한테 붙어서, 무슨 유원지에 원족이라도 가는 것처럼 웃으면서 따라온 꼴이라니! 

       

       백철연은 그런 자신을 보고, 얼마나 눈치없는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아으으……!』

       

       렌까는 자신의 경솔한 행실이 부끄러워, 보이가 테이블 위에 에그 토스트를 올려놓고 떠날 때까지 한참을 얼굴을 싸매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굴에서 손을 치우고,

       

       『……아니지요.』

       

       문득 생각해보니, 기실 이것은 자신의 잘못만도 아니지 않던가. 렌까는 포크와 나이프를 집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사실, 열차 안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백철연이 말을 확실하게 하지 않고 에둘러 말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냥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만 듣고 죽은 친구를 기리러 간다고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백철연이 야속하고 또 괘씸해진 렌까는, 애꿎은 에그 토스트를 포크로 쿡쿡 찌르며, 화가 난 얼굴로—물론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게끔 조용히—외쳤다.

       

       『저만 바보가 되었잖아요! 미리 말해 주던가요! 시라바야시 상, 바까! 바까 조선인! 바까 요보!』

       

       

       

       ***

       

       

       

       “어우, 귀에 물 들어갔나봐. 간지럽네.”

       

       귀에 라디오를 쓰고 있건만 빗물이라도 들어갔는지 귀가 가려웠다. 나는 귀를 대충 긁어내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공동묘지 아니랄까봐, 뭔가 공기가 다르네.”

       

       공동묘지 앞에서 인력거에서 내린 나는, 등에는 인체모형을 업고, 비가 쏟아져 철벅거리는 언덕길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침이었지만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껴서 어두웠고, 비가 쏟아지는 탓에  가시거리는 짧았다. 아침인 지금도 이정도였으니 밤에 왔으면 나라도 분명 무서웠을 것이라. 

       

       그런데……

       

       “근데 뭔 공동묘지가 동네 한복판에, 그것도 학교 바로 옆에 붙어있냐.”

       

       이것도 좀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미 방숙자가 말해준 바 있지만 공동묘지는 대전 부내에 위치해 있었고, 그것도 울타리 하나 너머로 여자고등보통학교 하나가 공동묘지 부지 바로 옆에 접해 있었던 것이다. 

       

       ‘뭐, 나야 멀리 안 가고 좋지만……’

       

       나는 등에 업힌 인체모형, 방숙자에게 물었다.

       

       “좋아. 이제 어느 쪽으로 가면 돼?”

       [여서 쭉 올라가서……]

       “저기 맞아?”

       [기여. 거서 오른쪽이여.]

       

       나는 인체모형을 등에 업고, 방숙자의 내비게이션을 따라 묘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상하네. 분명 여긴디……?] 

       

       방숙자가 자신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 자리에는 다른 사람의 묘가 들어와 있었다.

       

       내가 봐도, 방숙자(方淑子)의 이름이 새겨진 것이 아닌, 딱 봐도 전혀 다르고 일본인 같은 이름이 새겨진, 길다란 일본식 비석이 놓여져있었던 것이다.

       

       “여기 맞아? 위치를 헷갈린 거 아니야?”

       [여기 맞대니께! 달전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디, 참…… 환장하겄네!]

       “음……”

       

       하긴, 죽어서 혼령이 된 녀석이 자기가 죽어서 묻힌 자리를 모르지는 않으리라. 그렇다면,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있던 무덤이 왜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무덤이 들어선 것일까.

       

       “관리인한테 물어보고 올게.”

       

       나는 인체모형을 바닥에 내려놓고, 공동묘지 묘지기가 지내는 곳으로 보이는 판자집의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두드리자, 추레한 인상에 깎지 않은 수염이 덥수룩한 묘지기가 문을 열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뜸 내뱉는다.

       

       “학생? 조선 사람? 니혼진?”

       “조선 사람입니다.”

       “그래, 왜 왔슈.”

       

       나는 퉁명스러운 태도의 묘지기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분명 6년 전 죽은 방숙자라는 아이의 묘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있었을텐데, 지금 와보니 사라졌다고.

       

       내 말을 들은 묘지기는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 저 우짝에 있는 묫자리 말이유? 학생, 외지인이구만?”

       “그런데요.”

       “그거, 밀어버렸지.”

       “밀어버렸다고요?”

       

       내가 되묻자 묘지기는 며칠 전 일을 회상하듯 비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기여. 거 얼마 전에, 부청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말여. 인구가 늘어서, 일본 놈들 묻을 매장지가 부족하담서, 그래가지고는 뭣이냐, 시정 명령이다 뭐다 하면서……”  

       

       묘지기는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입가의 침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찾아오는 식구 친지도 없고 아무 연고도 없는 조선 사람 묘는 싹 다 밀어버린겨. 일본 놈들 묻는다고.”

       “아…….”

       

       방숙자의 묘는, 공동묘지의 매장지 부족이라는 명목으로 철거된 것이다.

        

       방숙자의 부모는 사업 실패로 어딘가로 흩어지고, 남아있는 연고자도 없었으니…… 이렇게 아무런 연고 없이 남겨진 조선인 소녀의 묘 따위야, 철거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

       

       나는 방숙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묘지기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방숙자가 말했다. 

       

       [어쩐지, 대전에 딱 왔을 때부터 기분이 이상하드라고. 분명히 내가 타고 자란 고향인디, 기분이 어째 달전같지가 않고, 내가 있으얄 곳이 아닌 것 같은게……]

       

       아까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방숙자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이것 때문이었나.

       

       “…….”

       […….]

       

       나도, 방숙자도 그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나는 귀에 쓴 라디오를 벗고, 바닥에 눕힌 인체모형의 곁에 주저앉아 비를 맞으며 생각했다.

       

       ‘이제 어쩌지?’

       

       무덤이 없어졌으니, 방숙자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려던 원래의 계획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거, 지금이라도 렌까를 찾아가서 렌까의 인형에 빙의시켜야 하나? 

       

       그렇게 어떻게 렌까를 구슬려 방숙자를 렌까의 인형에 빙의시킬까 고민하고 있자니,

       

       『돈 가진 것 없다더니, 자아, 있잖아?』

       『이, 이건 어머니 약 값이에요……』

       

       저 먼발치에서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의 여학교와 울타리를 두고 접해있는 방향이었는데, 묘지 옆에 붙어있는 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인 듯 했다.

       

       『어머니의 약 값? 헤에, 무슨 병인데? 의사의 진단서는 있니?』

       『꺄하하! 분명, 거짓말이겠지! 요보들은 곤란하면 거짓말부터 지어내는 법이니까!』

       『지, 진짜예요……』

       

       멀리서 소리만 들어도 여학생 둘이 하나를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학교 바로 옆의 인적없는 곳이니만큼, 학생들간의 괴롭힘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쓰이는 모양이었다.

       

       ‘어딜 가나 괴롭힘은 있구나.’

       

       그것도, 소리를 들어보건대 괴롭히는 쪽은 일본인 여학생이고, 당하는 쪽은 조선인 여학생으로 보였다.

       

       ‘싸대기 마렵…… 아니지.’

       

       괘씸하고 또 딱하기는 했지만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었다. 내가 끼어들어봐야 괜한 오지랖이었으니까. 그냥 나가는 길에 묘지기에게 말해서 쟤네들을 공동묘지에서 쫓아내는 것이 최선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더 이상 여기에 있을 게 아니라, 대전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렌까를 찾아가 인형을 빌려서 방숙자의 빙의를 시도해봐야 했다. 

       

       “대전역으로 돌아가자. 렌까가 가지고 있던 인형에 빙의가 될지 어떨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인체모형을 업어들려는데 또 여학생들 쪽에서,

       

       『헤에- 생각해보니 말야, 예전에 소학생 다니던 때에도 이런 어리숙한 녀석이 있었지? 주제도 모르고 우리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요보와 가난뱅이 콤비가 있었잖아?』

       『꺄하하! 맞아! 결국 요보는 자살하고, 나까요시(단짝)였던 가난뱅이는 전학을 갔었지!』

       

       하는 말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인체모형을 업어들려다가 말고 여학생들 쪽을 바라보았다.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본 얘기였는데……

       

       [저 년들, 인제야 알어보겠구만.]

       

       가만히 서 있는 내 옆에서 방숙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돌아보니 인체모형은 똑바로 일어서 있었다. 분명 인체모형에 축적된 생력이 소진되어서 까닥거리기도 힘들어하던 방숙자였건만, 내 도움 없이도 똑바로 일어서 있었던 것이다.

       

       ‘잠깐.’

       

       나는, 아까 벗어둔 라디오를 아직 귀에 쓰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서야 눈치챘다. 그런데도 방숙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 

       

       영혼의 미약한 신호를 증폭시켜 소리를 들려주는 장치 없이도 혼령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는 것은,

       

       ‘아뿔싸.’

       

       인체모형의 내부를 넘어서서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혼령의 에너지량이 늘어났다는 의미였다.

       

       [인제야 똑똑이 알어보겠다고. 저 년들……]

       

       인체모형은 똑바로 일어섰을 뿐만 아니라, 넘칠 듯한 혼령 에너지가 인체모형의 몸을 감싸며 요동치고 있었고, 장기에 내장된 꼬마전구와 유리알 안구에서는 흉흉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사또미랑 나를 못살게 굴던 년들이여.]

       

       그렇게 말하는 방숙자의 목소리에는 진득한 귀기가 서려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의 TMI!
    당시 대전부 춘일정 3정목(현재의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의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호수돈 여중·여고)’의 인근에는 작중에 나온 것처럼 공동묘지가 있었답니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있다고 하네요.

    P.S. 당시 대전에 대해 찾아보다가 느낀 것이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의 대전에 뭐가 유명했는지는 정말로 모르겠더라구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즐거운 주말 되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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