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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전선에서 활동하던 아트라는 청결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물론 초인의 몸뚱이는 그러한 환경에서도 잔병에 쉬이 감염되지 않지만, 여러모로 사기가 떨어지고 육체의 성능이 저하되는 것은 동일하다.

     

    또한, 더럽고 추잡한 환경에 역병이나 독을 다루는 고유능력의 몬스터가 기어들어왔다가는 싸우기도 전에 전멸당하는 수가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옛 중국 땅에서 발생했던 3위계 알파 몬스터, 쌍두독룡(雙頭毒龍).

     

    수준은 3위계 알파.

     

    엄청난 괴물인 것은 맞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영토를 홀로 끝장낸 것은 역병과 독이라는 성질 때문이다.

     

    또한 근처 일대의 청결이 무척 더러웠다는 것이 그를 도왔고.

     

    아무튼.

     

    그 때문에 아트라는 청결을 제법 깐깐하게 따지는 타입이었다.

     

    – 우욱…

     

    그날 이후로 더욱 청결을 따졌다.

     

    어마어마한 심적 충격이 아트라를 후려갈겼고, 이후로 담배에 손 한번 대질 못했다.

     

    숙소에 이하율을 들이기 전에도, 혹여 냄새가 배어있을까 몇 번이고 환기를 시키고 정화 마법이 깃든 마도구를 갈겨댔다.

     

    스스로의 몸도… 이하율이 자주 묻어대던 가슴 부위는 특히나 신경 써서 씻고 있다.

     

    – 뚝

     

    홀로그램을 두드리자 천장에서 쏟아지던 물줄기가 뚝 멎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미리 챙겨온 실내복을 착용한 아트라가 샤워실을 나섰다.

     

    뽀얀 수증기를 일으킨 축축하고 따스한 공기가 밖으로 쏟아지고, 비교적 서늘한 외부의 공기가 아트라의 살결을 두드렸다.

     

    수건으로 머리를 탁탁 털며 방으로 향했다.

     

    – 탁탁탁탁.

     

    “응?”

     

    방으로 향하던 아트라의 발이 멈췄다.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는 소리와, 무언가 굽는 듯 자글자글한 소리. 또한 코를 스치는 음식의 냄새.

     

    아트라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머리도 채 말리지 않고 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거실로 내려갔고.

     

    주방을 차지한 채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이하율이 보였다.

     

    “…?”

    이하율이 한 손으로는 식칼을 쥐어 도마 위에 음식을 잘게 다지고 있었다.

     

    그 반대쪽.

     

    이하율의 등을 둥둥 떠다니거나 망토처럼 걸치고 다니는… 천의(天衣)라고 불리던 아티팩트.

     

    그것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프라이팬을 조절하고, 뒤집개와 조리용 집게를 쥐고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다.

     

    또한 프라이팬 주변을 불의 정령이 얼씬거리며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

     

    여러모로 독특한 광경. 요리 과정이 퍼포먼스 성격을 띠는 음식점에 가면, 초인인 요리사가 저것 비슷한 쇼를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트라가 멍하니 서있자, 인기척을 느낀 듯 이하율이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앞치마를 매고 있던 이하율이 입을 벌리더니, 미안하다는 듯 눈꼬리를 늘어트리며 고개를 숙였다.

     

    [다 씻으셨어요?]

    [죄송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 끝나가요]

     

    “그, 그래.”

     

    뭐라 할 말을 생각하지 못하던 아트라는 떠듬떠듬 대답했다.

     

    잠시 후.

     

    이하율이 말한 대로 요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고, 식탁 위로 접시가 놓였다.

     

    [간단하게 해봤어요]

     

    의자에 착석한 아트라의 옆으로 이하율이 기웃거리며 설명했다.

     

    아트라는 식탁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접시… 그 위에는 갓 조리하여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음식이 세팅되어 있었다.

     

    적절하게 구워져 먹음직스러운 베이컨과 소시지.

     

    노란 황금빛 윤기가 흐르는 스크램블 에그와 작은 계란프라이, 해시 브라운.

     

    다른 접시에 놓인 접시에는 드레싱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염두에 둔 듯 빵이 올려져 있었다.

     

    “……”

     

    간단하게 해봤다. 그 말대로 아침에 간단히 먹을법한 메뉴였다.

     

    아트라는 영국 지역 출신이고, 어릴 적에는 이러한 구성의 아침을 주로 먹었다.

     

    어릴 적이다.

     

    아카데미를 다니기도 전에… 가족과 이런 아침을 먹고는 했다.

     

    멍하니 음식을 바라보던 아트라가 고개를 돌려 이하율을 바라봤다.

     

    맞은편에 앉지도 않고, 기대와 걱정 따위를 담은 표정으로 아트라의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챈 아트라는 조심스레 포크로 소시지를 찍어 먹었다.

     

    잠시 입을 오물거렸다. 소시지가 입에서 씹히고, 특유의 담백함이 퍼졌다.

     

    너무 기름지지도 않고, 너무 바싹 익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덜 익힌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딱 알맞게.. 아트라의 입맛에 맞춘 듯한 정도였다.

     

    “맛있네…”

     

    “……!”

     

    맛있다.

     

    별다른 치장도 없는 짤막한 감상에, 긴장과 기대에 얼룩져있던 이하율의 감정이 단번에 기대로 쏟아지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가 마치 해바라기가 만개하듯 마냥 행복해 보였다.

     

    아트라에게는 그 미소가 훤히 보였다.

     

    고작 짤막한 말 한마디에 저리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어휴.’

     

    무심코 한숨을 내쉬려다가, 바로 전날의 일이 떠올라 다급히 집어삼켰다.

     

    하지만 속에서도 일어나는 한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저걸 어찌 가르쳐야 하나…’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건 무척 간단한 일이었다.

     

    아트라는 다시 한번 그것을 체감했다…

     

     

    * * *

     

     

    백아린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상업구역의 중앙 분수대 앞이었다.

     

    상업구역은 그 이름답게 번화가에서 찾아볼법한 다양한 음식점과 오락시설 및 대형 쇼핑물 등이 즐비해있다.

     

    약속시간은 12시.

     

    내가 분수대에 도착한 시간은 약속시간보다 30분 빠른 11시 30분이었다.

     

    잠시 기웃거리다가 분수대 근처에 놓인 벤치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관측의 권능으로 주변의 모습을 살폈다.

     

    ‘…꽤 많네?’

     

    시요람에 다니며 거의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거대하고 훌륭한 시설에 비해 사람이 적었다.

     

    그도 그럴게 애당초 시요람 내부에는 사람이 적었다.

     

    교직원과 학사 소속의 자잘한 직원.

     

    시요람에 입학한 생도.

     

    상업지구 등을 유지할 업계종사자와 그 가족이 전부인 장소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제법 많았다.

     

    어디 번화가같이 사람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모인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사람이 돌아다닌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는 됐다.

     

    중간평가가 끝나고 맞이한 첫 주말인 탓이다.

     

    생도들이 지금껏 쌓인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상업지구로 쏟아져 나온 것.

     

    대부분 생도복이 아닌 사복 차림이지만, 관측되는 면면이 이전에 만나본 동급생 혹은 상급생이었다.

    생도만 쏟아져 나온 것도 아니다.

     

    생도가 학업 스트레스에 매몰된 것처럼, 중간평가를 비롯한 학사일정의 기획 및 진행에 떠밀리던 교직원도 많았다.

     

    그들도 함께 쏟아지니, 그래도 인기척이 제법 느껴지게 된 것이다.

     

    ‘음…’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만큼 내게 쏠리는 시선과 수군거림은 많았지만… 이젠 이런 관심도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당장 집으로 도망쳤을 텐데… 새삼 내가 대단해진 기분이다.

     

    벤치에 앉아 다리를 봉봉거리며 백아린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씁…’

     

    백아린을 떠올리자, 이번 만남에 대해 여러모로 조언?을 주었던 홍연화와 스승님이 떠올랐다.

     

    홍연화에게 와있던 무수한 부재중 연락.

     

    그에 기겁하면서도 다급히 문자로 나의 무사를 전했다.

     

    문자를 보내기 무섭게 답장이 날아왔다.

     

    답장에서 연락을 받지 않아 걱정되었다며, 혹시 무슨 일 있었냐는 물음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대화.

     

    잠들어있었다. 음소거로 되어있어 연락을 모르고 있었다. 미안하다.

     

    걱정했었다. 아무 일 없다니 다행이다. 기숙사에서 잠든 거냐?

     

    스승님의 숙소에서 잠들었다.

     

    …네가 거길 왜 있냐. 혹시 무슨 일 있었던 거냐? 등등…

     

    잠시 이야기가 오갔고, 끝내 백아린이 잡은 약속에 대한 걸로 화두가 이어졌다.

     

    나 또한 여러모로 물어볼 것이 있었기에 환영할 문답이었다.

     

    ▶홍연화 : 이상한 짓 하면 바로 주먹부터 갈겨버려

    ▶홍연화 : 봐줄 필요 조금도 없으니까 망설이지 말고

    ▶홍연화 : 알았지?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냥 이상한 짓을 하면 거부하라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답이 고작.

     

    홍연화도 왜 백아린이 이런 내기를 걸었는지는 모르겠다는 모양이다.

     

    “─라고 꼭 기억하고. 알았니? 내가 뭐라고 했지?“

     

    [누가 몸을 만지려 하면 바로 주먹을 날려요…]

    [스승님]

    [이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 근데 왜 내가 만지고 있는 건 왜 가만히 있니?“

     

    [스승님이잖아요]

    [스승님은 좋아요]

     

    “…그, 그렇구나.“

     

    숙소를 나서기 전에도, 스승님에게 비슷한 답? 교육을 받았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저런 걸 누가 모른다고 자꾸만 강조하는 것인지.

     

    하지만 홍연화가 걱정하여 해주는 말이고, 스승님이 해주시는 말씀인지라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리를 까닥이며 홀로그램으로 마법 서적이나 뒤적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고작 10분이나 지났을까.

     

    관측 범위의 끄트머리로 백아린이 들어왔다.

     

    이어 수많은 기척 사이로, 또각이는 발걸음 소리가 분수대를 향해 다가왔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백아린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아 왔다.

     

    “이런. 20분이나 일찍 나왔는데도 제가 늦었네요.”

     

    [괜찮아요]

    [저도 방금 막 도착했는걸요]

     

    멋쩍다는 듯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묻는 백아린에게 고개를 저어주며, 그녀의 차림을 살폈다.

     

    언제나처럼 단정하게 뒤로 묶은 푸른 머리카락.

     

    별다른 장식은 없는 깔끔하고 새하얀 면티.

     

    그 위로 걸쳐 입은 청재킷과 길쭉하게 뻗은 다리의 태를 살리는 듯한 청바지.

     

    옷 자체는 특별한 부분이 없지만, 옷걸이가 워낙 좋아 차림새가 더욱 좋아 보였다.

     

    “점심은 드시고 오셨는지요?”

     

    [네?]

    [만나서 먹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오, 잘 기억해 주셨군요.“

     

    그렇게 말한 백아린이 싱긋거리더니 대뜸 내게 손을 내밀었다.

     

    “?”

     

    나는 잠시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저게 무슨 제스처인지 깨닫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새하얀 손바닥.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얼음의 송곳을 수백 개도 쏟아내는 위험한 손바닥.

     

    물론 그것이 실제로 여기서 쏟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요람의 내부니까. 경계심은 크게 들지 않았다.

     

    조심스레 손을 뻗자 백아린이 덥석 손을 잡아왔다.

      

    검은색 팔토시에 감싸인 손과 새하얀 살결을 그대로 내보인 손이 마주 잡혔다.

     

    따듯하지 않고 서늘했다.

     

    – 띡

     

    그에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자 백아린의 스마트워치에서 알람이 울렸다.

     

    작게 떠오른 홀로그램 위로 타이머가 떠올랐다.

     

    [23:59:57]

     

    “그럼, 지금부터 24시간 타이머 시작.“

     

    [네?]

     

    그게 무슨 뜻이냐며 묻자 백아린이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제가 말했었죠? 하율 씨의 하루를 받아 간다고요.”

     

    “???”

     

    그게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물으려는 순간 떠오른 생각.

     

    하루.

     

    지구가 둥글게 회전하는 시각.

     

    그리고, 24시간.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

     

    하루가 그 하루라고?

    내 생각을 긍정하듯, 백아린은 맞잡은 손을 흔들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Ilham Senjaya 님! 선작과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원동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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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아카데미 장애인 전형 생도가 되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created a game character.
Instead of taking several perks, I added restrictions.

▶Restriction (I): “Curse of Sensory Seal”
─Permanently seals a chosen sense.
─Choice: Sight, Taste, Smell

▶Restriction (II): “Curse of Short Life”
─You are born with a body doomed to a short life.

▶Restriction (III): “Curse of Silence”
─Speaking causes you pain.

When the next day came, I couldn’t se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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