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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거울에 비친 소녀가 이쪽을 쳐다본다.

       

        어깨보다 살짝 아래에서 끊어지는 머리카락이 랜턴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호박과도 같은 금색 눈동자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분명 나 자신의 모습이다.

       

        머리카락이 노인의 것처럼 새하얗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때요, 언니. 꽤 근사한 거울이지 않나요?”

       

        아카샤와 똑같은 하얀색 머리카락.

       

        거울 속 소녀가 아카샤인지, 아니면 또 다른 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뭐야.”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거울 안의 소녀는 정반대로 입꼬리를 올렸다.

       

        호러나 다름없는 연출에 양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이쪽으로 와.]

       

        마치 눈빛만으로 그리 얘기하는 것 같았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한 가지 실험을 시도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린 채로 경과를 지켜보았다. 거울 속 소녀는 마찬가지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

       

        반대쪽 손이 아니라, 이거지.

       

        거울의 특성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현상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거울을 꼬나보았다. 그러자 머리가 점점 아려오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단순히 어지러운 정도가 아니라, 날카로운 바늘로 쿡쿡 찔러대는 듯하다.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이상 다가가면 돌이키지 못한다고.

       

        나는 최대한 거울에서 멀어졌다. 그러자 맺혀있던 상도 점차 형체를 잃고 사라졌다.

         

        “펜릴을 쓰러뜨린 건 언니잖아요. 던전 공략을 언니가 하셨으니까 이것도 전리품 삼아 챙겨 가시는 게 어떤가요?”

        “…필요 없어. 이건 두고 가자.”

        “에이, 아까운데 두고 가긴 뭘 두고 가요? 여기 봐요. 어여쁜 보석도 총총 박혀 있고, 크기도 기숙사에 놓기 적당한걸요. 기념품으로라도 챙겨가시는 게 어떤지요?”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원하면 네가 가져가든가.”

        “우리 집엔 이런 거 많아서요.”

        “어디 고물상 같은 곳에 팔아버려.”

        “그런다고 많이 벌리기나 하겠어요? 오히려 시장까지 가는데 마찻값이 더 들겠어요.”

       

        어떻게든 자신이 배치한 거울을 가져가게 하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썩 웃기다.

       

        “불길해 보이는데 그냥 처분해 버리자.”

        “히잉. 정말 아까울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요.”

       

        설날 세뱃돈을 모두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울상을 짓는 로즈마리. 입술을 삐죽 내민 모습이 조금 귀엽게도 보인다.

       

       하지만 저런 태도조차도 연기의 일부일 터.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어쩔 수 없네요. 이건 틸레트 박물관에 기증하도록 하죠.”

       

        로즈마리는 2m가 넘는 거대한 거울을 한손으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로즈마리의 체구는 프레이와 맞먹을 정도로 작다. 그런 몸으로 수십 킬로그램은 족히 되어 보이는 거울을 안색 하나 안 바꾸고 들어 올린 것이다.

       

        펜릴에게서 마석을 분리하던 로테와 프레이가 그런 로즈마리를 보자마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공녀님께선 생각보다 힘이 장사셨네요. 가녀리신 줄로만 알았는데….”

        “단순한 고유마도예요. 근력을 키우는 마법이 있거든요.”

       

        양장본에 있는 고유마도를 전부 둘러본 결과 그런 마법은 없었다.

       

        아주 그냥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오나 본데.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렇다면 마수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바로 마석을 남긴다.

       

        제아무리 마수가 판치는 암울한 세상이라지만, 그들이 내놓는 원료조차 나쁜 건 아니다. 마석이 없었더라면 현대 대륙 사회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마석의 쓰임새란 말하는 입이 아플 정도로 다양하다. 스크롤을 제작하거나 마도구를 만드는 건 기본이요, 보석이나 수여품 취급을 받는 것도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앙급 이상의 고위 마수를 쓰러뜨렸을 때 얻을 수 있는 마석 중에는 인간의 기술력으로 만들기 어려운 게 많다. 대표적으로 트랜지스터라든지.

       

       펜릴이 남긴 마석은 대부분 빛을 이용하는 광학계 소자였다. LED라든가, 황화카드뮴 셀이라든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등등. 경보계에 들어가는 아메리슘도 있는 모양인데, 극미량이다.

       

       사치품으로는 못 사용해도 연구에 중요하게 쓰일 만한 물건이다. 안 가져가면 손해야.

       

        “이것 봐! 엄청나게 큰 솔레노이드도 있어!”

       

        펜릴의 배 부분을 가른 프레이가 자기 몸통보다도 커다란 코일을 끙끙거리며 꺼냈다.

       

       솔레노이드는 펜릴 말고 다른 마수를 잡더라도 나오는 부품이다. 그러나 재앙급에게서 나온 거라 그런지 그 크기가 남다르게 컸다. 

       

        “저건 쓸만하겠는데.”

       

       코일은 그 자체보다는 전자석으로 활용하였을 때 그 쓸모가 많다.

       

       토카막을 만들거나 입자를 가속할 때 꼭 필요하다. 물론 핵무기를 만들 때조차도.

       

       아니면 저걸로 EMP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른바 비핵 EMP. 솔레노이드에 갑자기 강한 전류를 걸어주거나, 혹은 강한 전류가 걸린 상태에서 코일을 폭약으로 폭파하면 원자폭탄만큼은 아니더라도 전자기파 펄스가 생성된다.

       

       어떻게 사용하건 귀중한 재료다. 특히 지금처럼 물가가 장난 없이 널뛰기하는 시기에는 현물로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다.

       

       던전에서 나온 우리는 둘로 갈라졌다. 로즈마리는 거울을 틸레트 박물관으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 틈을 타 나는 펜릴의 사체를 연성부 동아리 부실로 차례차례 옮겼다. 뜻밖이었지만 이로써 ‘2단계’를 시작하기 위한 재료가 하나 모인 셈이었다.

       

        “어후.”

       

        그나저나 힘들어 죽을 것 같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동안 숨이 차서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현관에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고는 그대로 침대에 다이빙. 거대한 마시멜로 위에 있는 것 같은 푹신함과 말랑함이 온몸을 고루 감싼다.

       

        “침대에 바로 누우면 안 돼! 조금 전까지 바깥에서 있었잖아!”

        “…잠깐만 이러고 있게 해줘.”

       

        로테는 내 엄마라도 된 것처럼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로즈마리와 종일 신경전을 벌인 탓에 다른 곳에 사고를 쏟을 여력이 모자라다. 이사장과 약속한 플레어 소형화도 해야 하고, 버멜도 만나서 남은 정보도 교환해야 하는데….

       

        그나마 내일이 휴일이라서 다행이다. 조금 쉬면서 기력을 회복할 수 있겠다.

       

        “그러고 있을 거면 빨리 씻고 자.”

        “알았다니까.”

       

        안 그래도 귀족다운 몸가짐을 중요시하는 로테다.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귀족 작위를 받을 나에게 미리 예법을 가르쳐 주려는 거겠지. 

       

        이어지는 잔소리에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욕실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이곳에서 샤워만 하고 나왔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영 별로다. 피로를 풀 수단이 필요하다.

       

        나는 나 답지 않게 머리에 수건을 묶은 뒤 수도꼭지를 끽끽 돌렸다.

       

        촤아아악!

       

        “으아악!”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잘못해서 반대 방향으로 돌렸어….”

       

        샤워기 바로 아래에 서 있었던 탓에 몸을 담그기 전 머리부터 젖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하.”

         

        오늘은 일이 안 풀리는 날인가 보다. 욕조에 고무 오리를 띄우는 건 다음에 하도록 하자.

       

        대충 씻고 나온 뒤 로테가 샤워하는 동안 머리를 말렸다. 머리가 하도 길다 보니 30분이 지나도 물기가 다 사라지질 않고 있었다.

       

        침대에서 헤어 드라이어와 레슬링을 하고 있자 로테가 파자마 차림으로 욕실에서 나왔다. 

       

        “아이고, 드라이어 이리 줘 봐. 내가 말려줄게.”

       

        개털이 된 머릿결을 정성스레 만져주기 시작하는 로테.

       

        저번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지. 그때는 트리트먼트를 발라주는 거였지만.

       

        “끝단부터 말리면 머릿결이 상하기 쉬워. 그리고 모양도 안 예뻐지잖아.”

       

        내 머리는 반쯤 곱슬이었다. 그러다 보니 씻고 말리는 걸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금세 돼지 꼬리처럼 변하기 십상이었다.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빗으로 제아무리 빗어도 수습이 안 된다.

       

        “나중에 미용실에 좀 가야겠는걸. 스트레이트를 하든지, 짧게 자르든지 해야 할 것 같아.

         

        로테가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 올려준다. 드라이어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조금씩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공녀님이 말씀하신 대로야. 넌 머리가 기니까 손거울 같은 거 하나 들고 다니면 좋겠어.”

        “…그런 건 여자애나 하는 짓이야.”

        “너 정말 졸린가 보구나.”

       

        평소보다 몸이 노곤했다. 육체보다는 정신에서 얻은 피로 때문이겠지.

       

        앞으로도 로즈마리의 공격을 버텨내야 한다. 그게 언제까지인지도 모른 채로.

       

        “이번 주 호르데가 아예 안 나타났는데, 다음 주에는 나타날까?”

        “나야 모르지.”

       

        일부러 무심한 척한다. 실제로는 당장이라도 만나서 공녀님 좀 어떻게 해 달라고 떼쓰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버멜이라면 학교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같은 기숙사 쓰는 남자애들이 그러는데, 일주일째 기숙사에도 안 들어오고 있대.”

        “언젠가 나타나겠지. 정 모르겠으면 헤를라인 선생님께 모레 여쭤봐도 되고.”

       

        쓸데없는 연애 스캔들의 재발을 막기 위해 당분간은 떨어져 지내더라도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어디서 모일지 논의할 수 있을 거 아닌가.

       

        “자, 이 정도면 됐어.”

        “땡큐.”

       

        나는 솜이불을 덮고 먼저 누웠다. 보통 이 시간대에는 로테와 나란히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한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빈둥거리고 싶었다.

       

        할 게 산더미라서 그런 걸까. 쉬려고 하는 데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사장이 주문한 플레어의 소형화도 해야 하고, 버멜도 찾아야 한다.

       

        세상 망하는 걸 막으려면 수소폭탄도 만들어야 하고, 거기에 원소마도 공부까지.

       

        몸이 몇 개라도 모자라다.

       

        “…….”

       

        아. 모르겠다.

       

        오늘은 충분히 열심히 했어.

       

        “좋은 꿈 꿔.”

       

        나는 솜이불을 머리채까지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로테 말대로 꿈에서만큼은 좋은 일이 있길 기대하면서.

       

        어느덧 의식은 닻을 올린 배처럼 수평선 너머로 항해를 해 나가기 시작한다. 

       

       

        **

       

       

        [─ SYSTEM : (경고) 현재 4번 시련에 돌입할 가능성이 50% 이상입니다.]

        [─ SYSTEM : 절대로.]

        [─ SYSTEM : 무슨 일이 있더라도.]

        [─ SYSTEM : 저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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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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