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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해럴드의 마법검술 대련 수업 자체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물론 그래봤자 실질적으로 한 것은 검술부나 마법부 애들하고 검을 들고 투덕거리며 대련을 한 정도가 전부였지만.

         

        일단 검술부의 1위에서 4위까지를 배제해 놓으니 확실히 남은 인원들끼리는 그럭저럭 붙어볼 만하기도 했다.

         

        물론 그냥 상대 자체가 검술부 하위권 애들이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아무리 검술부와 마법부의 공통 강의라고 한들 기본기인 검술을 다루어야 하는 만큼 마법부의 수강률은 그리 높지 않았고, 수강생 60명 중에서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마법부 학생인 내가 첫날부터 검술부 상위권 학생과 검을 나누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정도 승률이면 다음 수업에서는 조금 더 높은 등수 애들하고도 붙어볼 만할지도 모르겠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에단이나 나탈리와도 한번 붙어보고 싶은데 말이지.’

         

         

        당연히 내가 질 것이 뻔한 승부이기야 하겠지만 뭐 어때, 남자라면 자신이 질 것이 뻔한 승부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게 아니겠어.

         

        나탈리의 검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캐릭터들이 지금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녀와 검을 나눴을지라든가, 어쨌든 내가 저지른 스토리 개입으로 검술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에단의 검을 직접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물론 검술부 사이에서도 인외 수준인 걔들과 겨우 마법부에서 검 좀 쓰는 정도인 내가 대련을 할 기회 같은 건 아마 오지 않겠지만.

         

         

        그리고 그 밖에는, 해럴드의 수업이 나에게도 제법 도움이 될 정도로 쓸만했다는 것.

         

        전설적인 소드 마스터였으니 당연히 수업 방식도 딱딱하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해럴드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애들을 가르쳐주고 있었으니.

         

        오늘 해럴드에 관해 의외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그는 학생들이 다루는 검의 종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일반적인 형태의 검을 다루지 않는 학생들에게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최대한 교육을 전하는 모습이었으니까.

         

         

        “그 묵직한 대검을 휘두를 거면 상대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생각해라. 그리고 앞으로는 팔보다 가능한 한 복부 근육을 기르도록.”

         

        “네, 교수님!”

         

        “에스터크를 사용할 거라면 베는 것보다는 찌르기를 위주로 훈련하도록. 그 가벼운 검으로는 넓은 부위를 베는 것보다 한 곳에 집중해서 찌르는 편이 훨씬 더 치명상을 입히기 좋을 테니.”

         

        “알겠습니다!”

         

         

        카라함과 나탈리의 대련을 한 차례 확인한 해럴드가 두 사람에게 건넨 조언이었다.

         

        평소 해럴드가 사용하는 검은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 보이는 투핸디드 소드에, 실제로 게임 속에서도 평소 자신이 허리춤에 메고 다니는 애검을 제외하면 다른 검을 쓰는 경우가 아예 없었지만.

         

        저 고지식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검에 대한 지식 자체는 광범위하게 넓은 모양이었으니, 사용자가 다루는 무기가 검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면 편견 없이 자신의 지식을 전해주었다.

         

        카라함의 거대한 대검이나 나탈리의 에스터크는 물론, 다른 일반 학생들이 다루는 갖가지 형태의 검에 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당연히 단검을 들고 휘두르는 나에 관해서도 한 차례 조언이 들어왔다.

         

         

        “이 많은 학생 중 오직 자네만이 단검이군, 릴리스 로즈우드. 이 수업에 참여한 마법부 학생이 딱히 자네만은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혹시 단검을 고집하는 이유라도 있나?”

         

         

        『단검 장착 시 공격력 +15』라는 개꿀 옵션이 있으니까요.

         

        라는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으니 일부러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적당한 핑계를 들이밀었다.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뜻이지?”

         

        “제가 이 수업에서 단검을 기반으로 한 마법검술을 배우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어쨌든 제가 가진 가장 강력한 능력은 마법을 다루는 힘입니다. 마법사로 검술을 사용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역시 검술을 사용해야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주인…교수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계속 말해보게.”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가까이 붙은 적을 상대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교수님이 그 마법사에게 가까이 붙은 적이라고 가정한다면, 마법사의 허리에 기다란 장검이 달려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마법과 검술을 모두 능히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여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겠지.”

         

        “그렇다면, 허리춤에 아무것도 없고 대신 품속에 단검을 숨긴 마법사라면요?”

         

        “…마찬가지로 경계심은 늦추지 않겠지만, 비장의 수단이 숨겨놓은 단검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조금 더 늦어지겠지.”

         

        “제가 노리는 부분 또한, 그 부분입니다.”

         

        “호오….”

         

         

        내 대답에 턱을 쓰다듬으며 제법 진중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해럴드.

         

        여기까지 온 이상 어설프게 얼버무릴 수는 없었으니 나는 즉석에서 만들어 낸 핑계를 어떻게든 완성해냈다.

         

         

        “어차피 마법사에게 있어서 보조 무장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일 뿐, 근접전의 거리를 허가해 준 시점에서 이미 승기는 완전히 기울었다고 봐야겠죠. 그런 상황에서 장검을 들고 휘둘러봤자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

         

        “하지만 마지막까지 숨겨두고 있다가 방심한 적의 심장을 찌르는 데는 이 단검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최소한 습격자는 이 단검의 칼날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는 제게 어떤 보조 무장이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요.”

         

        “…제법 그럴싸한 이론이로군.”

         

         

        내 대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는지 묘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는 해럴드.

         

        그리고는 내가 설명하는 과정에서 꺼낸 은장도를 가져가 자신의 오른손에 쥐어 보였다.

         

         

        “단검을 다루는 방식에는 정수법과 역수법이 있다. 정수는 손을 편하게 쥐어서 원하는 대로 단검을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지만, 그만큼 상대 또한 궤도를 예측하기 쉽지. 역수는 그 반대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네.”

         

        “그러니 단검을 다룰 거라면 적어도 한 손으로 정수와 역수를 바꿔서 드는 방법 정도는 익혀두는 게 좋네. …이런 방식으로 말일세.”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손에 들린 은장도를 손안에서 이리저리 굴려 칼날의 방향을 바꾸는 해럴드의 모습.

         

        날붙이를 손에 든 상태에서도 너무나도 손쉽게 파지법을 바꾸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튀어나왔다.

         

         

        “자네는 오늘분의 대련이 끝났으니,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이 검을 바꿔 쥐는 법에 대해서만 연습하도록. 잘 모르겠으면 언제든지 물어봐도 좋고.”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에단을 잘 부탁하네.”

         

        “…네.”

         

         

        묘하게 다른 의미의 의중이 담긴 것 같은 말을 남기며 다른 학생의 검술을 봐주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해럴드.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일단은 그의 조언대로 단검 파지법을 다루는 것에 관해서만 연습해두었고.

         

        수업이 끝나갈 때쯤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검날을 반대로 쥐는 법에 관련하여 약간이지만 익숙해졌다.

         

         

        …어떻게든 수업에 집중해서 떨쳐내려 했던 조금 우울했던 감정은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지만.

         

         

         

       ⁎ ⁎ ⁎

         

         

         

        에단과 릴리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치르는 공통 과목, 마법검술의 기초 수업이 끝나고 난 후.

         

        하루를 마치고 기숙사실로 돌아온 릴리스는 귀가한 이후부터 우울한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하아아….”

         

         

        침대 위에 반쯤 걸터앉은 채 턱을 괴고 한숨을 내뱉는 릴리스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본 에단과 이사벨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임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으니.

         

        기숙사실로 돌아오고 난 이후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그녀를 향해 에단과 이사벨은 적지 않은 걱정을 쏟아냈다.

         

         

        “혹시 오늘 아카데미에서 릴리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도련님?”

         

        “…글쎄. 딱히 짐작 가는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만.”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버지의 수업인 마법검술의 기초를 듣고 난 이후부터 계속 저 상태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오늘 점심시간까지만 해도 릴리스에게서는 딱히 이상이라든가 우울한 모습 같은 걸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만약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면 틀림없이 마법검술의 기초 수업 도중이나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일 터.

         

        그러나 에단의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그녀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마법검술의 기초 수업 도중 치러진 대련에서도 릴리스는 세 차례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수업이 끝난 이후에는 기숙사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곧바로 기숙사실로 되돌아왔으니 기분이 상할 만한 일 자체가 생길 이유가 없었으니까.

         

         

        “흐아아….”

         

         

        그러나 침대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채 힘이 빠진 듯 신음하는 릴리스를 보면 분명히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을 겪은 것이 분명했고.

         

        그 원인을 알아내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그녀의 기분만큼은 풀어주고 싶다는 게 에단의 생각이었다.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해야 자신이 릴리스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으으으….”

         

        “릴리스, 혹시 어디 아파?”

         

        “으응, 딱히….”

         

        “혹시 에단 도련님이랑 같이 자면 잠자리가 피곤해서 그래? 오늘 하루는 내 방 침대에서 잘래?”

         

        “아니, 괜찮아…. 지금은 그냥 혼자 생각하게 해줘….”

         

        “으응, 고민거리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꼭 말해줘야 해? 응?”

         

        “응, 고마워….”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이사벨의 위로에도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증상에 에단의 걱정은 더욱 가중되었고.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그였다.

         

         

        ‘릴리스가 좋아하는 게, 뭐가 있었더라….’

         

         

        생각해보면, 릴리스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음에도 정작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메이드 동료인 이사벨과 카타리나 같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든가, 혹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특정한 음식이나 물건 같은 것을 좋아하는 티는 거의 내지 않았던 릴리스였으니, 지금의 자신이 그녀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 또한 깊어졌고.

         

        최근 그녀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때가 어느 순간이었는지 눈을 감고 잠시 떠올려 본 에단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서 절제하지 않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마지막 기억이라면, 아마 그 순간….

         

         

        ‘도, 도련님…! 그, 그곳은…흣, 하아악…!’

         

        ‘…아니, 아니. 지금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어쩌자는 거야.’

         

         

        행복한 표정을 짓는 릴리스를 떠올리려다가 생각난 것이 자신에게 가슴을 만져지며 신음하는 그녀라니.

         

        그로 인해 한동안 에단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남자로서의 욕망이 묘하게 꿈틀거렸으나, 다행히 지금의 에단은 순간적인 본능에 잠겨 비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 년간의 훈련으로 그는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는 남자가 되어있었으니까.

         

         

        ‘…흐읏, 하! 하으으윽…!!’

         

        “…….”

         

         

       그러나 진정된 자제력과는 별개로 자꾸만 에단의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는 릴리스의 붉어진 얼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짧은 상상에서 에단은 작은 힌트를 찾아낼 수 있었고.

         

        릴리스의 기분을 풀어줄 수도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머릿속으로 조용히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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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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