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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쏴아아아아아아-!

       

       “비가 오네에.”

       

       김루루는 학교 현관 앞에서 먹먹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죽 내렸다. 시꺼먼 먹구름에서 빗방울이 툭 떨어져, 흙바닥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진다. 

       

       사뭇 비극적인 투신이었으나, 빗방울이 죽음을 맞이한 건 아닐 것이다.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흙바닥에 스며들어 갈 뿐. 

       

       흙 대신에 차디찬 아스팔트로 떨어진 빗방울은 어디에도 스미지 못하고 흐른다. 경사로를 따라서 죽 흘러 나간 빗물은 새까만 지옥의 입구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이름은 하수구다.

       

       쿠르르륵.

       

       배고픈 악어 뱃가죽에서 날 법한 소리와 함께, 하수구는 빗물을 게걸스럽게 마셔버린다. 그렇게 하염없이 흐르고 흐른다.

       

       자연의 오묘한 이치는 이처럼 인간사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배가 고플 때 나는 꼬르륵 소리가 닮았다던가⋯⋯.

       

       “좋아, 현실도피 끝.”

       

       이제 집으로 어떻게 간담.

       

       비를 맞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물 맞은 생쥐 꼴로 들어가면 날아올 오대수의 잔소리가 싫다. 심지어 오혜인이도 같이 잔소리를 해 댈 거다.

       

       이렇게 흠뻑 젖으면 안이 다 비치지 않느냐고, 감기에 걸리면 어떡할 거냐고 등등등. 우산 대용으로 삼을 만한 걸 찾아봐야겠는데.

       

       가방?

       

       딱히 젖어도 상관 없는가? 그렇다. 안에 든 교과서들은 그대로 내버려도 괜찮은 것들이다. 특히나 수학 익힘책은 더더욱. 

       

       내일 45p까지 풀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비 맞으면서 가다가 책이 다 젖어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면⋯⋯ 그러면 완벽한 하루가 될 거다. 

       

       숙제도 없고, 잔소리도 없으니.

       

       “좋아.”

       

       김루루가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냅다 달려가려고 하기 직전.

       

       자박. 자박.

       

       익숙한 얼굴이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들어오고 있었다. 파란색 우산을 쓰고, 분홍색 접힌 우산을 옆구리에 끼운 채로.

       

       오대수였다.

       

       김루루는 가까워져가는 오대수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비가 오고 있어서 그런가, 그녀의 얼굴 위에도 비가 오는 것 같았다. 눅눅하고 습하다.

       

       숙제가 일주일 치 밀린 사람의 얼굴, 아니면⋯⋯ 더럽게 아픈 주사 일곱 개를 앞두고 있는 사람의 얼굴, 또는⋯⋯.

       

       더는 못 보게 될 사람의 얼굴. 김루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대수 울어?”

       

       “무슨 헛소리야? 여기, 우산이나 받아.”

       

       “표정 안 좋길래. 오늘 학교도 중간에 빠졌고.”

       

       “⋯⋯그날이야.”

       

       김루루는 아이고 그러셔, 하고 놀리려다가 말았다. 오혜인이 마법소녀의 좋은 점을 설명하면서 ‘마법의 날이 마법같이 사라짐’을 언급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오대수에게서 핑크 우산을 받아, 팡 하고 폈다. 샷건을 상상하면서 펴는 게 포인트였다.

       

       김루루는 어깨에 우산을 척 걸치고 물었다.

       

       “장화는 안 챙겼어?”

       

       “바라는 것도 많네⋯⋯.”

       

       “그치만, 장화가 있으면 물 튀기면서 갈 수 있잖아!”

       

       “물장난은 욕실에서 해. 겸사겸사 발바닥까지 박박 씻고. 또 나한테 발 씻겨달라고 부탁하지 말고.”

       

       파리 쫒듯이 손을 홱홱 내젓는 오대수에게, 김루루는 바짝 붙어서 앵겼다.

       

       “간지러워서 혼자 닦기 어렵다고오!”

       

       “우산끼리 부딪히니까 떨어져⋯⋯!!”

       

       떨어졌다.

       

       그 왜, 알보칠 바를 때라든가. 배때지에 칼 박힌 거 뽑을 때라든가. 김루루는 그런 건 차라리 남의 손을 빌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걸 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는 것들 말이다.

       

       발바닥도 그랬다. 샤워볼로 한번 쓱 지나가면 막막 간지러우면서 소름이 오소소 돋을 게 뻔하지 않던가. 도저히 자기 손으로는 할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김루루는 오대수를 시켰더랬다. 오대수가 발목 잡고 박박 문대니까 웃으면서 자지러지는 터라, 마구 바둥대는 바람에 애꿎은 오대수도 흠뻑 젖어서는.

       

       기왕 다 젖은 거 같이 씻자고 했다가,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오대수한테 또 한 소리 듣고 그랬다.

       

       “으흐흥.”

       

       김루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찰박찰박 걸었다. 오대수가 마중을 나와주니까 조금 신났다. 빗소리도 듣기 좋았다. 오대수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게 유일한 흠이었다.

       

       통. 통.

       

       김루루는 짧게 도움닫기를 하고, 공중에서 휘리리릭. 세 바퀴를 돌아 착지했다.

       

       찰팍!

       

       “짠!”

       

       “⋯⋯물 튀잖아!”

       

       한 소리 들었다.

       

       그렇게 다시 나란히 걷고 있다가, 오대수가 툭 말했다. 휙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바둑돌을 던지는 것처럼 툭.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안 나와서 아무거나 던지는 것처럼.

       

       “오혜인은 부활동?”

       

       “응. 그래서 우산도 하나만 들고 온 거 아냐?”

       

       “그랬지. 하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응응.”

       

       쏴아아아아-!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힘이 조금 더 세졌다. 시각적으로도 느껴진다. 강하게 내리는 비는 저어 아스팔트 아래에 희끄무레한 안개처럼 퍼지지 않던가.

       

       별거 아닌 잡다한 대화를 나눌수록, 오대수의 얼굴에 내리는 빗줄기도 거세져 갔다. 김루루는 진지하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점검해 봤다.

       

       그러다가.

       

       “⋯⋯야, 김루루.”

       

       “왜?”

       

       “혹시⋯⋯ 아니야. 못 들은 걸로 해 줘.”

       

       그 말을 듣고는 빙긋 웃었다. 아, 얘가 나한테 삐지거나 내가 싫어져서 죽상인 게 아니구나.

       

       그냥 머리에 교통사고가 난 거구나!

       

       금기나 다름없는 ‘혹시-못 들은 걸로 해 줘’ 콤보를 캐치한 김루루는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수도기사단장의 영특한 두뇌가 도출해 낸 해답은 하이킥이었다.

       

       뻥-!

       

       김루루가 발등이 머리 위로 넘어갈 정도로 쭉 찢어진 멋진 하이킥으로, 오대수의 우산을 저어어어 멀리 차 날려버렸다. 

       

       “⋯⋯⋯⋯??”

       

       오대수는 얼빠진 표정으로 굳었다.

       

       김루루는 자기 우산도 길바닥에 휙 던져버렸다. 거세게 내리는 비에 두 사람은 순식간에 흠뻑 젖어버렸다. 김루루는 배시시 웃었다.

       

       오대수가 화를 내기 직전, 김루루는 챱 소리와 함께 오대수의 볼따구를 잡았다.

       

       “자, 머리 식히고. 지금 네가 생각해야 하는 건 하나야. 알겠지? 잘 듣고 명심해.”

       

       “⋯⋯⋯⋯.”

       

       “나 잡아봐라, 골딱아.”

       

       “⋯⋯⋯⋯?”

       

       김루루는 빗속을 후다닥 달려서 도망갔다. 오대수는 상황 파악을 좀처럼 못 하고 있다가, 얼얼한 손등을 한 번 쓸고. 시야를 가리는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뒤에.

       

       “거기 서 김루루 미친년아-!!”

       

       “으하하하하핫-!!”

       

       웃음기 싹 뺀 전력 질주로 추적했다.

       

       ===============================================================

       

       놀이터, 당연하겠지만 아무도 없는.

       

       그곳의 구멍 숭숭 뚫린 인간용 숨숨집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바싹 붙은 채로.

       

       처음부터 붙어 있던 건 아니었다. 김루루가 찰싹 붙었다가, 오대수가 멀어지고. 김루루가 엣취, 하고 재채기를 하자 오대수가 다시 붙었다. 

       

       오대수는 자신의 머리를 둘둘 말아서 두 손으로 물기를 쭉 짜내며 생각했다. 얼빠진 짓을 하고 나니까 머리에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이게 김루루의 투박한 응원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당시에 ‘김루루 잡기’라는 임무가 주어진 순간 머리가 깨끗하게 비었던 데다가, 이후 응원이라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좀 힘이 났다.

       

       “대수야, 손잡아도 돼?”

       

       “⋯⋯⋯⋯.”

       

       그래서 김루루가 손을 잡아 오는 것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다. 도움이 됐으니까. 우울하던 기분이 확실히 전환됐으니까.

       

       간질간질.

       

       김루루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오대수의 손가락을 얽으며 들어왔다. 그리고 깍지를 껴서 손을 꼭 잡았다. 이렇게까지 낯간지러운 방식으로 잡을 줄은 몰랐어서, 한마디 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김루루가 살짝 고개를 돌린 채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래서 오대수도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면 이런 장난을 치지나 말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러다, 충분히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로데루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있잖냐.”

       

       “응?”

       

       “나는, 사실⋯⋯ 오대수가 아니야.”

       

       “어, 외국인이라며? 저번에 말했었잖아. 오대수는 본명이 아니고, 로⋯⋯ 로 뭐더라?”

       

       “그 얘기가 아니라, 나는 네가 모르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레드번 공작의 오른팔, 명령만 들으면 누구라도 죽이는 사냥개, 사람을 구한 적도 없고, 구할 자격도 없는 남자.

       

       양손이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어서, 몸이 시리도록 비를 맞아도 붉음이 씻겨나가지 않는.

       

       오대수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로데루스라는 자는, 이토록 보잘것없는 놈이었다.

       

       로데루스의 마음속 독백을 당연히 들을 수 없었던 김루루는, 간단하게 평했다.

       

       “중2병이야⋯⋯?”

       

       “⋯⋯⋯⋯.”

       

       “아, 아아~이, 삐지지 말고, 응? 생각보다 별일 아니라서 그랬어! 안심해서!”

       

       로데루스는 바늘에 찔린 것처럼 윽, 소리를 내고는. 김루루를 바라보며 약간 언성을 높였다. 진지하게조차 받아들여 주지 않는 것 같아서.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닌데!”

       

       “그럼, 나랑 지금 대화하는 사람이 누군데!”

       

       “⋯⋯⋯⋯.”

       

       “오대수, 아니야?”

       

       하지만 어쩌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쪽은 자신인지도 몰랐다. 이 모든 관계를.

       

       마주 본 김루루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곧고, 무언가, 환하게 빛나는 순수함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꾸밈없는 애정이다.

       

       “바보 오대수. 자꾸 신경질 부리는 거, 그거 병이래. 좀 고쳐. 그런데, 네가 고슴도치처럼 굴어도 나는 너 좋아해.”

       

       “⋯⋯⋯⋯.”

       

       “입으로는 툴툴거리면서 나 생각해 주는 거 아니까. 이거, 오대수잖아. 나랑 얘기하고 있는 거, 오대수잖아. 혹시 악의 조직이 너 세뇌해서 억지로 시킨 거야? 너 나 싫어?”

       

       “⋯⋯아니.”

       

       “그럼, 됐네 뭐.”

       

       김루루는 그러고는, 할 말 다 했다는 듯이 벽에 등을 기댔다. 로데루스는 뭔가, 다른 할 말을 찾아내 보려다가. 그냥 포기하고 침묵을 즐겼다.

       

       간단하게 긍정 받았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아직 와닿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가슴속에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 동료, 우정,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그리고 뭐⋯⋯ 나도, 너는 전혀 상상도 못 할 본모습이 있거든! 누누이 말하지만, 내 진짜 모습은 엄청 세다니까?!”

       

       “⋯⋯퍽이나.”

       

       그렇게, 루루와 로데루스는 조곤조곤 대화를 나눴다. 돌아가면 랭겜 같이 돌리자느니, 너랑 같이하면 티어 떨어지니까 안 된다느니 하면서. 

       

       그러다가 찾아온 자연스러운 정적 속에서, 로데루스는 넌지시 물어봤다. 재차 확인받고 싶었으니까. 

       

       “⋯⋯내가 남자라면 어떨 것 같아?”

       

       남자? 오대수가?

       

       ⋯⋯지금도 두근대 죽겠는데, 남자면?

       

       김루루는 조심스럽게 오대수의 위로 잘생긴 남자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머리는 똑같이 주황색에, 살짝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 그러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두근두근.

       

       김루루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으, 되게 힘들겠는데⋯⋯?”

       

       “⋯⋯⋯⋯!!”

       

       쿠구궁. 저 밖에서 커다란 천둥이 울렸다.

       

       로데루스는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

       

       다음 날, 체육 시간, 실내 수영장 수업.

       

       로데루스는 우울한 해달이 되어, 서핑보드를 끌어안고 수영장 위를 둥둥 떠다녔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비가 온다네요. 지금이 딱 운동 나갔다 올 타이밍인데 덪에 걸려버렸습니다.
    그러면 또 내일 만나요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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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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