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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자, 타세요.”

    “…….”

     

    일반적인 자가용보단 조금 더 큰 오프로드 차량이다.

    험지돌파 능력이 뛰어나 숲지기들이 자주 타고 다니는 모델.

    거기다 돌파력을 위해 개조한 부분도 언뜻 보인다.

     

    도시로 따지면 경찰차나 다름없는 그 형태에 서드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정말 타도 괜찮은 것인지 한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정말 타도 괜찮은 건가?’

     

    자신을 데리러 오는데 굳이 이런 눈에 띄는 차량을 운전해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숲지기라면 이런 업무용 차량 말고도 자가용을 따로 두는 것이 보통 아니던가?

     

    그는 타고 내렸더니 숲지기들에게 둘러싸여 연행 당한다거나,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으니, 뒷좌석이 찰칵 열리며 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보게 되는 군, 반갑네.”

     

    그녀는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얼핏 그 모습은 반가운 것을 나타내는 어린아이의 웃음같이 보였지만, 서드에게 그것은 마치 포식자의 웃음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의 심장이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웃음엔 위험이 섞여있다고, 그녀에게 거부한다면 끔찍한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

     

    도대체 그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저번에 봤을 때와는 또 전혀 다른 느낌이 되어있지 않은가.

    위압감은 오히려 덜하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녀의 본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휘어잡을 듯 강력하고, 압도적이며, 초월적인…….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느낌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일단 타지.”

     

    그녀는 얼른 타라는 듯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쳤다.

     

    “……아, 그러, 그러지.”

     

    역시, 자신에게는 처음부터 선택지란 없었던 것이다.

     

    ——-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어서 미안하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본래는 전화로 미리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정말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어내는 소녀의 모습에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당장에 그 질문아닌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곧장 입을 열었다.

     

    “그 번호는 내 번호가 아냐.”

     

    휴대폰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지, 행적을 남기는 것은 앞으로도 경계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연락을 취한 것도 자신의 휴대폰이 아니었고 말이다.

    그건 마지막 의뢰장소에서 주워 온 휴대폰 중 하나였다.

     

    “그런가? 그럼 그 번호는…….”

    “누구한테 잠깐 빌렸어.”

     

    당사자에겐 의사를 묻지도, 돌려주지 않았지만.

    준다해도 어차피 받지도 못 할 텐데, 뭐 어떤가.

     

    “아하, 그랬군, 혹시 휴대폰이 없는 건가?”

    “지금은 그렇지. 뭐, 연락 올 사람도 없고 말이야.”

    “음, 그런가.”

     

    뭐, 휴대폰이 필요 없는 사람도 있겠지 싶었다.

    요즘 문명에 물든 루크로서는 이제 휴대폰이 없으면 좀 답답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 옛날에도 마땅한 연락책 따위 없이 잘만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고.

    서드는 그런 류의 사람인가보다.

     

    ‘사람이 매우 내성적인 성격인가보군. 뭐, 서클 마법사라면 무리도 아니지.’

     

    실제로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서로 교류없이 지내곤 한다.

    평범한 마법사들은 단지 마법을 공부하는 것에 매진할 시간도 부족하니까.

     

    사실, 루크는 마법사치고는 굉장히 외적인 편에 속한다.

    말 그대로 청년기에 이미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으로 깨달음을 얻어낼 수 없는 수준까지 성장했고, 덕분에 남들처럼 공부를 하는데 일생 대부분을 바치지 않았으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발로 뛰며 알아보는 것을 선호하는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도 마법사중에 가장 외향적이라는 이야기일 뿐이라, 정말로 외향적인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그도 결국 인간관계에서 행복보다는 피로함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이기도 하니,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이해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루크의 대답에 서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당장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은 모양이군.

     

    “뭐, 근황이야기나 좀 하지. 이전에 비해 낯색이 많이 좋아졌군. 꽤 살만 한 모양이야.”

     

    “그렇기는 하지.”

     

    약을 더 이상 먹을 필요가 없어졌으니 망가진 장기가 서서히 제 모습을 되찾는 과정에서 혈색이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거 참 다행이로군,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참 기분이 좋아.”

     

    소녀는 그를 바라보며 또 한차례 웃었다.

     

    설마,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저런 말을 꺼낼 리는 없겠지.

    그렇다면 한가지다.

     

    ‘영악하군, 이미 자신이 입힌 은혜에 대해 상기시키는 건가.’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는 이미 목숨을 빚진상태, 게다가 목숨줄을 붙잡힌 상태나 다름없다.

    소녀의 능력은 그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자신을 처리하는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고도 들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그녀는 혼자도 아니다.

    지금 이 차를 운전하는 여자는 루크 숲의 숲지기.

     

    당장 저 숲지기의 무력은 당장 그 ‘프로이튼’을 파헤치면서도 멀쩡하다는 사실이 충분히 반증한다.

    게다가 과거에 이야기 할 때를 떠올려보면 이미 ‘프로이튼’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 데다, 신분까지 숨겨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다.

     

    그런 그녀가 백미러로 뒤쪽을 확인 할 때마다 미묘하게 눈이 맞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다.

    백미러로는 그녀의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는 터라 그녀의 표정을 확인 할 수야 없었지만, 분명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겠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연다.

     

    “날 부른 이유가 뭐지?”

     

    루크는 오히려 호탕하게 웃어버리며 말했다.

     

    “하하하! 친구를 보는데 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가!”

     

    “친구…….라고? 내가 언제부ㅌ…….”

     

    서드는 잠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친구였냐고 묻고 싶었지만, 루크가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예르나! 날씨도 좋은데, 이 친구랑 밖에서 잠깐 좀 걸어도 되겠나? 단 둘이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뭐? 잠깐.”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그는 몸을 굳혔다.

     

    ‘이 압박감은……. 살기……?’

     

    뭔가 말실수를 한건가?

    그는 하려던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예르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크는 곧바로 차의 문을 열어 보온병을 챙기고 숲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서드도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멀리 가진 마, 알겠지?”

     

    그 말에, 루크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반드시 그대가 잘 보이는 곳에 있겠네!”

     

    ———

    “자, 마시게. 피로 회복에 좋은 차라네.”

     

    “음…. 고마워.”

     

    그는 보온병뚜껑에 담겨진 정체모를 차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피곤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루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예르나의 앞에서는 용건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당연하지 않나, 이제부터 이 ‘친구’의 피를 좀 빼려고 부른 것 뿐이라 말할 수는 없으니까.

    마법에 필요하다고 말해도 흑마법이라서 말하기 불편한 부분도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흑마법에 대한 인상은 결코 좋지 않으니까.

    그런 걸 대체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도 없다.

    딱히 그런 이야기는 예르나에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때 흑마법에 손대지만 않았으면 100살쯤에 영약신세를 지게 될 일은 없었을지도.’

     

    그리 생각하니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또 지금 이렇게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면 인생사는 역시 알 수 없는 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안하군, 그녀에겐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가 좀 거북해서 말이지.”

     

    “알고 있어.”

     

    그렇게 차에서 내려 근처 나무에 등을 기댄 루크와 그런 루크를 경직된 자세로 내려보는 그.

     

    “자, 이제 둘이 되었으니 뭐든 자유롭게 물어보게. 아까부터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던데.”

     

    그는 조용히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야기에 앞서.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지?”

     

    “넌 ‘시설’에 있었나?”

     

    그의 질문에 루크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시설이라, 그러고보니 그런 곳이 있었다.

    과거엔 수도원이라고 불렀다마는, 요즘에는 그런 곳을 ‘시설’이라고 부르곤 했지.

    루크는 예르나가 자신을 숲 속에서 발견한 이후 자신을 좋은 시설로 보내기 위해 한동안 분투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결국 예르나 본인이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흐지부지되기는 했다만, 시설이라면 그런 것 밖에 모르는 루크는 당연히 ‘보육시설’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음, 나는 예르나의 덕분에 시설엔 가지 않았다네.”

     

    “설마, 그 엘프가?”

     

    그는 과도하게 놀란 모습이었다.

    엘프가 자신의 보호자라는 사실이 그렇게 충격적인가?

    ……설마, 모녀관계로 봤을 리는 없을 텐데.

     

    “대체 왜 그렇게 놀라지? 그게 그렇게 의외인가?”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금 놀라서 말이지.”

     

    뭐, 예르나의 나이에 흔쾌히 보호자를 자처한 것이 놀라운 것이기는 하다.

    그 나이에 그 숲지기로 있던 경력이 그토록 길다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 시대에서 보통 엘프들이 진지하게 직업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는 인간보다 10~20년정도 늦으니까.

     

    사실 그가 놀란 부분은 ‘숲지기’가 ‘암살자’의 보호를 맡는다는 사실이 놀란 것이었지만.

     

    루크는 그에게 되물었다.

     

    “내게 시설에 관해 묻는다면 역시 그대는 시설에서 나온 것이겠지.”

    “그래. 다시 말해 뭐하겠어.”

    “음.”

     

    그렇겠지, 제대로 된 보호자가 있었다면 그런 데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루크는 연민과 함께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예르나가 없었다면 자신이 가게 됐을지도 모르는 장소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대, 시설에서의 일들은 지금도 기억하나? 어땠지?”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기억은 이제 가물가물해. 서클의 후유증인 것 같다. 옛날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어.”

    “아쉽게 됐군.”

     

    역시, 후유증이 없을 수는 없었나.

    기억상실이라……. 뭐, 가장 흔한 후유증이기는 하다.

    그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것은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니 제쳐두기로 한다.

     

    “그래서 날 부른 진짜 이유는 뭐지?”

     

    “아, 그것 말이지.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한다네.”

     

    “무슨 제안?”

     

    “내게 마법을 배우게. 그대도 1서클로는 뭔가 아쉽지 않나?”

     

    “……대가는?”

     

    루크는 혹시 차 안에서 예르나가 들을까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대가는 그대의 피 한 컵. 어떤가? 내게 피 한 컵을 준다면, 내가 그대의 서클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지. 그대에게도 해가 되는 제안은 아닐 터.”

     

    실로 그렇지않나, 그 옛날기준으로도 피를 좀 뺀다고 2서클이 될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이 경우엔 조금 특별해서 그는 드래곤의 성분이 녹아있는 특수한 혈액이라는 점이 다르기는 해도 말이다.

     

    허나 그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피, 방금 피라고 했나?”

     

    그럴 수 밖에 없다.

    ‘피 한 컵.’은 서클러들의 은어로서, 영원한 충성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피는 마법적으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피 한 컵을 바침으로 자신의 충심을 증명하는 의식도 존재하지만, 단체에 속한 적 없는 그로선 처음으로 겪는 제안이기도 했다.

     

    ‘피 한 컵을 바친다라…….’

     

    생각해보면 정말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인 것 같았다.

    잃어버린 능력도 되찾게 해주고, 그녀의 야망에도 어울려줄 수 있다면야.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되묻는다.

     

    “그리 싫은가?”

     

    “아니, 아니야.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해본 적이 있나?”

     

    “당연하지. 피 빼는 일이야 수도 없이 많이 해봤다네. 한 컵 빼는 정도는 눈감고도 가능해.”

     

    루크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가져온 보온병의 내용물을 바닥에 몽땅 버리곤 말했다.

     

    “그럼, 손목을 좀 여기에 대어주겠나?”

     

    “……선처를 바라지.”

     

    서드는 당황했다.

    보통 그 자리에서 바로 피를 빼나?

    경험이 없으니 알 턱이 있나. 경험이 많다니 믿어볼 수 밖에.

     

    ——

     

    잠시 후, 차로 돌아오는 루크와 서드를 바라보던 예르나는 한결 편해진 표정의 루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야기는 어땠어? 기분은 좀 나아?”

     

    피를 빼는 장면은 루크가 마법으로 자아낸 환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기에 예르나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녀가 보기엔 그저 숲의 나무에 기댄 채, 풍경을 보며 단 둘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그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예르나.”

     

    용인의 피를 얻었으니 재료의 고민은 덜었다.

    앞으로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만나기로 했으니 재료 수급에 문제는 없겠지.

     

    루크는 만족한 웃음을 지어내며 서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정말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아. 그렇지?”

    “그렇습니다.”

    “좋아. 앞으로도 자주자주 만나세나.”

    “알겠습니다.”

     

    예르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드, 뭔가 말투가 좀 바뀐 것 같네요? 괜찮아요?”

    “……혹시 제 말투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그게 훨씬 듣기 좋네요. 계속 그렇게 해줘요.”

    “알겠습니다.”

    “…….”

     

    어색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생략된 중간과정은 환장할 착각들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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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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