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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빅토르는 그렇게 말하며 식탁 위를 가리켰다.

       식탁 위에는 온갖 요리들이 가득했는데, 하나같이 화려한 겉모습을 가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무엇인지 모를 동물이 통째로 구워져 있었는데, 그 크기가 엄청났다.

         

       “한국인은 쌀을 그렇게 좋아한다지? 그래서 쁠롭을 준비했다네.”

         

       빅토르는 그릇 하나를 진성 쪽으로 슬쩍 밀었다. 그릇에는 볶음밥과 비슷해 보이는 것이 가득 담겨있었는데, 보통 한국에서 먹는 쌀과는 달리 길쭉하고 가벼워 보이는 쌀로 만든 볶음밥이었다.

         

       러시아에서는 긴 쌀(длинный рис)이라고 부르는 인디카 품종의 쌀이었다.

         

       “그리고 놀이공원에서 고기를 대접받았으니 나도 고기를 준비했지. 저번에 그것이 카피바라 요리라고 하였지? 나도 똑같은 것을 해줄까 하다가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

         

       빅토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빅토르가, 왕의 운명을 가진 이 빅토르가 그렇게 하기에는 쩨쩨해보인다고 말이야. 고작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 것은 내가, 그리고 이 몸뚱이에 흐르는 러시아인의 피가 용납하지를 않아. 그러니 양 한 마리를 통째로 굽고, 그 안에 내장을 이용해서 만든 특별한 요리를 밀봉해서 채워 넣었지.”

         

       빅토르는 그렇게 말하며 식탁에 통째로 구워진 양의 머리통을 쥐어 잡더니 비틀어 뽑았다. 그러더니 기를 일으켜 날카롭게 만들어 수 초 만에 살점을 모조리 분리해버리곤, 두개골을 그대로 주방 쪽으로 집어 던졌다.

         

       “일단 머리부터 먹지. 몽골에서는 귀한 손님에게는 양 머리부터 주는 풍습이 있다지. 물론 네 녀석이 타타르인은 아니고, 나 역시 타타르인은 아니긴 하지만….”

         

       빅토르는 진성에게 고기의 절반을 덜어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느냐는 뜻이 담긴 표정이었다.

       진성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고기를 입안에 넣었다. 그것은 빅토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할 일을 알고 있다는 표현이었으며,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을 때 반드시 비극이 터지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몽골.

       파괴와 정복의 화신.

         

       순종하는 이에게는 좋은 대우를.

       반항하는 이에게는 끔찍한 보복을.

         

       회귀 전의 빅토르는 칸의 화신이 아닐까 싶은 행보를 보였다.

       위대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러시아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포부 아래 수많은 군사를 움직여 주변국을 점령하였고, 제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끔찍한 학살도 거침없이 자행했다. 순종하면 러시아 사람으로 인정을 해주되, 단 한 번이라도 반항한다면 ‘특별 관리’와 함께 러시아인으로서 온전히 편입될 수 있도록 ‘특별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만약 저항군이 일어나거나, 반란이 일어나면….

         

       아예 도시를 갈아버렸다.

         

       옛날 몽골의 칸이 그러하였듯, 아예 반란의 씨를 말려버렸다.

       그리고 그 방법은 화끈하기 그지없었다.

         

       핵.

         

       소련 시절에 잔뜩 만들어두었던 핵탄두를 모조리 처분하겠다는 듯, 거침없이 터뜨리고 다녔다.

         

       물론 처음부터 핵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전쟁 초기에는 핵을 사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눈치를 본 것이기도 하였으며, 생화학 무기를 잔뜩 가지고 있던 ‘붉은 국가 연합’과 치킨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붉은 국가 연합이 러시아 특수 부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세균 병기를 사용했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러시아는 망설임 없이 핵무기의 봉인을 풀어버렸다.

         

       그리고….

         

       퍼-엉.

         

       지구에 거대한 버섯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대가 밀집한 곳?

       핵이 떨어졌다.

         

       대규모 주술 의식이 벌어진다?

       핵으로 제단과 재료, 주술사를 모조리 날려버렸다.

         

       마공학 연구소?

       일단 스파이를 보내고, 도저히 이빨도 들이밀 수 없을 정도로 보안이 엄중하다 싶으면 그냥 특수 부대를 파견해서 핵 가방을 터뜨려버렸다.

         

       당연히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국가의 제재가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제재라는 것도 내가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고, 남에게 참견하는 것도 내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전 세계가 광기에 휩쓸린 상태였기에 러시아에 참견할 수 있는 강한 국가가 없었다.

         

       일본은 한국과 전쟁을 했고, 중국은 세상이 혼란한 것은 중화에 천명이 돌아왔다는 것이라는 말을 지껄이면서 정복 전쟁을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동독 지역에서 다시 나치즘이 부활해 세를 불렸으며, 프랑스에서는 다시 왕을 옹립하고 하나가 되어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미친 집단이 등장해서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다.

         

       벨기에는 한 인종차별 사건을 계기로 내전이 발발했고, 이탈리아는 북부의 독립 선언과 함께 북부와 남부가 내전에 돌입해버렸다. 그리고 영국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인지 온 나라를 들쑤시고 다녔고, 그 들쑤시는 과정에서 수많은 불씨가 터져 나오며 수많은 갈등이 만들어졌다.

         

       미국 역시 러시아에 참견할 여유는 없었다.

         

       웬 미치광이 마법사가 ‘사람은 마음이 없고 오직 법만을 진리로 여기는 기계의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 오직 머리 위에 기계 하나만을 두고 살아간다면 인류는 모두가 하나가 되고 전쟁도 분쟁도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이룩하여 무궁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매사추세츠주(州)를 점령하려 하고.

       텍사스, 앨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미합중국에서 탈퇴하고 신 남부연맹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곳곳에서 인종차별 사건이 터지며 문제를 일으키고.

       하와이에서 왕족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외치며 비밀리에 키워온 사병으로 하와이를 점령한 후 독립을 선언하곤 중국과 접선했다.

         

       게다가 미국을 공격해서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미국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고, 나는 미국의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라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자랑하고 싶은 미치광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에 테러를 시도하기까지 했으니.

         

       러시아에 손을 뻗을 여유는 조금도 없었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광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낫기는커녕 점점 커져만 갔다.

       윤리와 도덕은 개나 줘버린 마법사들이 생체 실험을 자행하고, 온갖 끔찍한 실험들이 실패하거나 유출되며 전 세계적으로 타격을 입히고, 인간과 침팬지를 교배시켜 만드는 휴먼지(Humanzee)로 군대를 만들어 나라를 전복하려고 하는 미친놈도 나타났으며, 이 광기의 물결 속에서 죽어 나간 인간들이 원념이 모여 악귀와 악령이 되어 떠돌아다녔다.

         

       나중에 가서는 남극과 북극의 마법사들이 지구에 빙하기를 불러오려고 하지를 않나,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신 나간 놈이 인공위성을 모두 지구에 떨어뜨리려 하지를 않나, 기록 속으로 사라져버린 용이나 요정 같은 존재들을 부활시키겠다며 난리를 치다가 웬 괴물을 만들지를 않나.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지옥 속에서 빅토르는 오래.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권력을 쥐었다.

         

       본래 전쟁과 같은 혼란 속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힘을 얻는 법.

         

       빅토르에게는 충분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거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성정은 결단력으로 포장되었고, 권위적인 태도는 혼란 상황에서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매력이 되었다.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단점이라고 볼 수 있었으나, 영토를 넓히고 일반 시민들의 주머니를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냄에 따라 장점으로 탈바꿈하였다.

         

       하지만….

         

       ‘핵은 만능이나, 유적을 파괴하고 기록을 없앤다.’

         

       누군가에게 장점이 모두에게 장점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진성에게 있어서 핵이라는 것은 참으로 증오스러운 물건이었다.

       그가 알지 못했을 주술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을지도 모르는 유적과 기록들이 모조리 파괴되었으니까.

         

       ‘게다가 그냥 핵도 아니고, 지하에 처박혀서 땅을 뒤집어버리는 녀석을 사용했지.’

         

       차라리 그냥 핵을 사용했다면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유적과 기록은 멀쩡했으리라. 아니, 멀쩡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는 남아 그의 주술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러시아가 사용한 핵은 특제.

       땅 깊숙한 곳에 벙커를 만들고, 지하 깊숙한 곳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는 데 익숙한 공산권 국가를 타격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었다.

       러시아가 쏜 핵은 벙커 버스터처럼 지하까지 내려꽂혔다. 그리고 지하에서 터져나가며 땅 자체를 뒤집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실제 지하에 있는 벙커들도 터지고, 죄 없이 가만히 있었던 유적도 같이 터져나갔다.

         

       그래.

       산산조각으로.

       흔적도 없이.

         

       “자네는 위대한 대통령이 될 것이네. 그리고 내 조언을 따른다면 넓은 영토, 많은 백성, 그리고 온전한 재물로 러시아를 다시 한번 우뚝 서게 만들겠지.”

         

       진성은 그 끔찍한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유적과 주술의 소실은 막아야만 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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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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