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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120화. 익숙한 손님 ( 3 )

       

       

       

       

       

       “…뭐지?”

       

       

       스스로 상태이상을 이겨낸 프리가의 공격이 계속 이어진다. 한 대, 두 대.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착실하게 도끼의 스택이 쌓여가고, 디버프를 받은 고룡의 피통도 큼직하게 깎인다.

       

       

       – 콰쾅!

       

       – 《——————!!!》

       

       

       ‘쇠약의 손길’로 방어력과 공격력, 민첩이 크게 낮아진 서리고룡은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쳐맞았다.

       

       – 챠킹! 챠킹! 챠킹!

       

       도끼질 한 번에 스택 하나. 화면 옆에 표시된 스택이 정직하게 올라간다. 프리가한테 따로 버프를 주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서리고룡을 때려잡을 기세다.

       워낙 혼자서 서리고룡을 밀어붙이니까 약화된 버전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일리가 있는 추측이다.

       

       

       ‘설마 보스전 스펙을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겠지. 개발자들도 대가리가 있으면 그런 생각은 했을 거야.’

       

       

       근거로 서리고룡은 나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브레스도 뿜지 않고 있었다. 일단 브레스만 없어도 충분히 할 만했다.

       프리가의 무기 특성상 붙어서 딜을 넣어야 하는데, 브레스를 쓰면 아무것도 못 하고 얻어맞기 십상이니까.

       

       

       “아니, 그래서… 상태이상은 왜 풀린 거야?”

       

       

       악마 토벌전에서 한스도 상태이상에 걸렸었지만, 혼자서 상태이상을 풀지는 않았다.

       

       상태이상이 풀리기는 했지만 그건 ‘용기의 룬’ 효과였고, 프리가처럼 ‘이겨냈다.’ 라는 메시지를 띄우지는 않았다.

       아마 ‘극복했다.’라는 문구였던 걸로 기억한다.

       

       

       ‘둘 사이에 뭔가 발동 조건이 다른가…?’

       

       

       이겨냈다, 극복했다… 둘 다 비슷한 단어 아닌가 싶은데, 뭔가 미묘한 차이가 있나?

       한스처럼 룬이나 아이템 효과로 상태이상이 풀리면 ‘극복’이고, 프리가처럼 스스로 풀어내면 ‘이겨냄’ 이렇게 판정이 나오는 건가?

       

       일단은 프리가가 어떻게 자력으로 상태이상을 풀어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미리 알아둬야, 나중에 상태이상을 거는 몬스터에 대비하기 용이할 것이다. 

       

       

       ‘저항력이나 정신력 수치 같은 게 따로 있나? 아니면 상대가 용이라서 용 사냥꾼의 숨겨진 효과? 직업이 야만전사라서 악으로 깡으로 이겨냈나?’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무수히 떠오르는 가능성을 생각하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단은 프리가의 시련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차킹! 차킹!

       

       잠깐 딴 생각하는 사이 화면 옆에서 일곱 개의 글자가 반짝거렸다. 그 짧은 사이에 프리가가 일곱 대를 때리면서 스택을 모두 채운 모양.

       디버프 걸어둔 걸 생각해도 너무 빠른 속도다.

       

       

       ‘서리 고룡이 이렇게 쉬운 녀석이 아니었는데?’

       

       

       약화된 버전의 서리고룡이 확실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프리가 혼자서 잡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 “차아앗!”

       

       화면 속 프리가는 의기양양하게 도끼를 휘두르며 서리고룡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거 약화된 버전이야…’

       

       

       서리고룡이 브레스도 안 쏘고, 날지도 않는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밸런스 패치가 들어간 거다.

       비유하자면, 상대의 손과 발을 묶고 축구 대결을 하는 꼴이랄까.

       

       – 카가각!

       

       그것도 모르고 힘차게 도끼를 휘두르는 프리가의 모습이란.

       

       

       ‘그래… 잡았으면 그걸로 된 거지.’

       

       

       상대가 좀 많이 약화된 버전이긴 하지만… 

       

       

       

       

       

              * * * * *

       

       

       

       

       

       뚝 뚝-

       

       길게 찢어진 팔의 상처를 따라 붉은 핏방울이 떨어진다. 파르르 떨려오는 팔.

       도끼의 끝이 가늘게 떨리며 그녀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손에 쥔 숫돌은 놓치지 않았다.

       

       

       “흐…”

       

       

       프리가는 입꼬리를 삐뚜스름하게 말아 올렸다. 전투의 열기로 점차 피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힐끗.

       

       슬쩍 경기장 바깥을 흘겨보자, 이스칼이 안절부절못하며 그녀를 걱정하는 것이 보였다.

       

       

       ‘참나, 누가 누구를…’

       

       

       수천수만의 사람들 앞에서 벌벌 떠는 꼴을 보이고, 저 얼간이가 감히 자신을 걱정할 정도로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고룡의 저 엿같은 문양 때문에 참 흉한 꼴을 많이도 보였으니, 그 빚을 톡톡하게 받아내야 한다.

       

       프리가의 눈이 서릿발처럼 내려앉았다. 

       이제 저 뼈다귀를 저승으로 보내버릴 시간이다.

       

       우우웅-!

       

       용 사냥꾼의 도끼가 울부짖는다. 

       

       사냥, 사냥의 시간이다. 

       용을 사냥하라.

       

       프리가는 기꺼이 도끼의 바람대로 움직였다.

       

       타탓-

       

       앞으로 땅을 박차며 뛰어든다.

       

       고룡의 발톱이 머리 위로 날아들지만 느리다. 프리가에 비하면 저 발톱은 너무나 느렸다.

       카가각! 도끼가 바위 부수는 소리를 내며 고룡을 후려쳤다. 깊숙이 틀어박힌 도끼를 따라 고룡의 몸이 휘청 흔들린다. 

       

       

       ——————!!

       

       

       고룡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렇게 감미로운 소리가 또 있을까! 프리가의 귀에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황홀했다.

       자신을 엿 먹이던 상대의 비명은 언제나 짜릿했으니.

       

       팟ㅡ

       

       도낏 자루의 두 번째 글자가 반짝인다. 앞으로 다섯 개.

       

       

       ——————!!

       

       

       서리고룡이 고통과 분노로 점철된 괴성을 토해낸다. 넝마자락 같은 날개를 펄럭이다가, 서서히 날갯짓을 멈춘다.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 자세를 취하더니 어정쩡하게 멈춰선 서리고룡.

       

       프리가는 그 틈을 노려 앞으로 뛰어들었다.

       

       촤아악!

       

       고룡이 몸을 회전시키며 거대한 꼬리로 땅을 쓸었다. 그녀를 통째로 뭉개버리겠다는 듯 덮쳐오는 고룡의 꼬리.

       

       

       “흣!”

       

       카각!

       

       높이 뛰어오른 프리가는 도끼를 옆으로 잡았다. 널찍한 도끼의 옆면으로 꼬리의 힘을 흘린다. 흘려낸 힘으로 공중에서 몸을 한 번 더 띄운다. 

       

       상대방의 힘을 흘려내고, 흘려낸 힘을 추진력으로 삼는 방법.

       이스칼이 프리가와 대련할 때 자주 써먹던 방식이다. 

       

       한 편의 곡예처럼 공중을 박찬 프리가의 도끼가 허공을 가른다. 

       

       콰앙!

       

       고룡의 가슴뼈를 강하게 후려친 도끼. 공교롭게도 그 옛날 프리가가 구멍을 만들었던 곳 바로 근처다.

       

       

       “야, 여기 구멍 한번 더 낸다?”

       

       

       도끼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고룡의 가슴뼈를 두들긴다.

       

       카가각! 콰쾅!

       

       폭풍처럼 몰아치는 도끼. 고룡이 크게 울부짖으며 발톱을 휘둘렀다.

       

       

       ——————!!

       

       “후, 후우…”

       

       

       프리가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고룡을 살폈다. 녀석의 상태… 아까부터 느꼈지만 뭔가 이상했다.

       

       

       ‘저 새끼, 왜 불꽃을 안 뿜는 거야?’

        

       

       지독할 정도로 뜨겁고 강력한 고룡의 숨결.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던가. 프리가는 계속해서 고룡의 가슴팍을 주시하며, 그 망할 불꽃의 숨결을 주의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 불꽃을 뿜지 않는 고룡.

       

       그것뿐만 아니라, 고룡은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날려다가 멈췄다. 마치 날면 안 된다는 듯이. 

       

       

       ‘꼴에 시련이라고, 녀석한테 주박이라도 걸어뒀나?’

       

       

       어찌 됐든 프리가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고룡이 하늘을 날면서 숨결을 뱉으면, 도끼라도 던지면서 싸워야 했을 노릇이니까.

       

       츠팟 츠팟-

       

       도낏자루에 새겨진 다섯 개의 글자가 반짝인다. 앞으로 남은 글자는 두 개.

       고룡의 몸에서 꿈틀거리는 망령들은 여전히 그녀의 눈을 현혹하며 정신을 어지럽히려 했지만-

       

       꾸욱.

       

       손에 움켜쥔 숫돌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흔들리지 말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알고 있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과거의 상처, 망령, 흉터. 그 모든 것들은 과거의 주박이고, 프리가 스스로를 묶어두는 목줄.

       그녀를 묶어둔 것도 그녀의 의지였고, 풀 수 있는 것도 오롯이 그녀밖에 없었다.

       

       차륵ㅡ

       

       어쩐지 사슬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무거운 사슬이 찰랑거리는 소리.

       오랫동안 스스로를 괴롭히던 사슬을 이제는 벗어던질 시간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감히 사슬 따위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타탓-

       

       ——————!!

       

       고룡의 발톱이 프리가를 향해 쏟아진다. 날카로운 발톱이 프리가의 살점을 찢고, 뼈를 부수기 위해 달려든다. 

       허공을 가르며 쇄도하는 발톱이 프리가를 촘촘하게 에워쌌다.

       

       사아아.

       

       살랑이는 바람이 프리가의 발을 감싸며 등을 떠밀었다. 한결 더 가벼워진 몸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찰그락.

       

       사슬 소리가 들려온다. 기억의 족쇄 소리.

       

       

       “크읏…!”

       

       

       모난 숫돌 조각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눈앞에 일렁이는 망령의 얼굴.

       차가운 북부의 눈보라 속에서 눈을 감았고, 프리가의 마음속에 묻은 사람들.

       

       스스로 묶은 기억들을 이제는 떠나보낸다.

       

       용 사냥꾼의 도끼가 울부짖으며 고룡을 후려친다.

       

       콰캉!

       

       ——————!!

       

       쩌적.

       

       고룡의 비명 소리가 울리고, 프리가의 귓가에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것은 고룡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사슬이 부서지는 소리였을까.

       

       한 번 더- 다시 한번 더.

       

       도끼가 맹렬하게 울부짖는다. 고룡의 몸에 새겨진 문양을 부술수록,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망령들의 얼굴도 희미해진다.

       

       갓 태어난 자식을 자랑하던 부하의 얼굴도, 술을 싫어하던 녀석의 얼굴도. 말수가 적고 과묵하던 녀석도.

       냉기를 휘감은 투명한 얼굴들이 사라져간다.

       

       

       “큿…!”

       

       

       말없이 그녀를 향해 웃으며 사라진다.

       홀연하게, 홀가분하게.

       

       문득 프리가는 눈앞이 흐려진다고 느꼈다. 땀이 들어간 걸까. 눈을 닦고 또 닦아도, 끊임없이 앞이 흐려졌다.

       앞이 흐려지는 만큼 손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를 향해 웃으며 사라지는 저 얼굴들을 보며 무언가 터져 나올 것 같았으니까.

       

       차킷.

       

       도끼의 글자들이 빛나며,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제 그만 끝낼 시간이다.

       

       프리가는 도끼를 움켜쥐고 뛰어들었다. 고룡을 향해, 그녀의 사슬을 향해.

       

       

       “흐아아아!!”

       

       

       도끼의 궤적을 따라 일곱 개의 문자가 떠오르며 눈부신 원을 만들어낸다. 눈부신 황금빛이 도끼를 감싸 안고, 원을 통과하는 도끼의 힘이 폭발적으로 빨라진다.

       

       콰아아아아ㅡ!

       

       도끼는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고룡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고ㅡ

       

       콰아아아앙ㅡ!!!

       

       ——————!!! ——————!!! …..

       

       

       고룡의 거대한 뼈가 천천히 무너졌다.

       

       그리고.

       

       프리가는 불현듯, 누군가 그녀에게 속삭인다고 느꼈다.

       

       

       “하…”

       

       – ….안녕히…

       

       

       고룡의 뼈가 서서히 흩어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가 되어, 부질없이 흩날린다.

       프리가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녀는 문득.

       

       숨을 쉬기 굉장히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작가..!! 가 되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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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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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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