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0

       

       

       

       

       커피의 효과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면 더 빨리, 깊게 잠이 들기 때문일까.

       

       아르는 평소보다도 더 빨리 꿈나라에 빠져든 것 같았다. 

       

       꼬옥.

       

       아르는 안긴 채로 내 옷자락을 쥐고, 발가락을 이따금씩 꼬물거렸다. 

       

       새근새근 숨을 쉴 때마다 아르의 살짝 뚠뚠한 배가 부풀었다가 잦아들었다.

       배가 부풀 때마다 맞닿아 있는 내 배에 아르의 고동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뀨웅…. 온됴니….”

       

       엉덩이를 토닥여 주던 손을 빼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아르가 꿍얼거렸다. 

       나는 얼른 다시 엉덩이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헤헤….”

       

       아르는 꿈속에서도 엉덩이 토닥임을 받고 있는지 만족스럽게 입을 헤 벌리며 웃었다.

       

       나는 아르의 엉덩이를 가볍게 잡고 끌어올렸다.

       아르의 덩치가 커져서 이제 엉덩이를 편하게 토닥여 주려면 아르의 머리가 내 목 부근까지 오게 되었다. 

       

       “뀨….”

       

       아르는 자연스럽게 내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좋구나….’

       

       이게 행복이지, 행복.

       

       그렇게 아르를 안고 한동안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 있자, 어느새 목욕을 마친 실비아가 방으로 들어왔다. 

       

       “와…. 레온 씨 혼자 그렇게 행복하기 있기예요?”

       

       찰떡처럼 붙어 있는 우리를 보고 실비아는 잽싸게 달려와서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아르를 양쪽에서 꽈악 안자, 아르는 그새 꿈이 바뀌었는지 중얼거렸다. 

       

       “레온…. 아르 쌘두위치 대써….”

       

       그 말에 나와 실비아는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

       

       “뀨우우웅! 잘 쟈따!”

       

       다음날 아침, 아르는 피로가 완벽하게 풀렸는지 기분 좋은 기지개를 쭉 켰다. 

       

       이제는 꽤 늠름한 아르의 꼬리가 기지개와 함께 쭈욱 펴지더니, 곧 침대보를 팡팡 두드렸다. 

       

       “레온, 오늘 거기 가는 고야? 레드 드래곤?”

       “응. 혹시라도 헤카르테교가 먼저 레드 드래곤과 접촉하기 전에 빨리 가야지.”

       

       정보 길드에 레드 드래곤 레어의 위치 조사를 의뢰한 지부는 이미 그 간부진이 우리에게 싹 쓸린 상태다.

       

       ‘하지만, 놈들이 알아낸 정보는 여전히 지부 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야.’

       

       간부진이 죽고 지부 하나가 와해되었더라도, 그 안에 있던 잔당들은 또 다시 다른 지역에 있는 지부로 옮겨 갔을 터.

       

       그 과정에서 만약 레드 드래곤 레어의 위치 정보까지 같이 옮겨 갔다면?

       

       ‘다른 지부 놈들이 먼저 레드 드래곤을 만나러 갈 수도 있다.’

       

       만약 헤카르테교 놈들이 레드 드래곤을 깨워, ‘어떤 인간이 당신의 유물을 훔쳐갔다’, 그리고 ‘그 인간은 지금 남부 도시에 머물고 있다’라고 일러바친다면.

       

       ‘그럼 유물을 우리가 가지고 나온 의미가 없어지게 될 수도 있어.’

       

       그러니 가능하다면 오늘 아침을 먹자마자 출발하는 게 좋을 것이다. 

       

       “와아! 드래곤 만난다, 히히.”

       

       아르는 뭔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동족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렌 모양이었다. 

       

       “아르야, 기대 되는 건 이해하지만 조심해야 돼.”

       “조심해야 대?”

       “응. 레드 드래곤은 굉장히 성격이 난폭해서, 심기를 거스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

       

       애초에 레드 드래곤이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나올지도 미지수다. 

       

       ‘아무리 아르를 데리고 간다지만, 내가 겪은 레드 드래곤의 성격으로 볼 땐 위험하기 짝이 없어.’

       

       사실 레드 드래곤이 동족을 어떤 스탠스로 대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내게 없다. 

       

       ‘그야 당연한 소리지. 「레키온 사가」에서 드래곤으로 플레이를 해 본 적이 있어야 그걸 알 거 아냐.’

       

       인간으로밖에 레드 드래곤을 못 만나 봤으니 알 턱이 없었다.

       

       ‘데이터가 없어.’

       

       레드 드래곤이 아르를 우호적으로 대할 가능성도 있지만, 정확히 그만큼 적대적으로 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최선은….

       

       “웬만하면 우리는 레드 드래곤의 잠을 깨우지 않고 유물만 두고 갈 거야.”

       

       몰래 가서 파이어 브레이슬릿만 원위치에 두고 가는 것!

       

       그렇게 하면 헤카르테교가 아무리 입을 털어 봐야 도둑맞은 게 없는데 레드 드래곤이 굳이 대륙 남부를 초토화시킬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우리가 유물을 두고 간 이후 헤카르테교가 찾아올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헤카르테교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더라도 원위치에 둔 유물을 다시 빼돌리는 짓을 할 리는 없지.’

       

       만에 하나 현행범으로 발각되는 순간 헤카르테교 전체가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레드 드래곤, 난포캐?”

       “무서운 드래곤이니까 조용히 레어 구경만 좀 하다가 간다는 생각으로. 알겠지?”

       “우응…! 무써운 드래곤이며는 어쩔 수 업찌….”

       

       아르는 아주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아르의 실망한 표정을 보니 조금 가슴이 아려 왔다. 

       

       ‘하긴, 얼마나 기대했겠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드래곤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천 년 동안 자다가 일어났더니 인간이 나 혼자밖에 없는 셈이 아닌가. 

       

       깨어나고 처음으로 같은 인간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설렜는데 얘기도 못 해 보고 자는 모습만 보고 얼른 나와야 하다니, 실망을 안 하는 게 힘들 것이다.

       

       설사 그 인간이 아주 성격이 불 같다고 해도, 인사 한 번 정도는 나누고 싶겠지.

       

       ‘나라도 아르가 쓸쓸하지 않도록 더 잘해 줘야겠어.’

       

       나는 애정을 담아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 아르야. 그럼 출발하기 전에 아침 든든하게 먹고 갈까?”

       

       다행히, 아르는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할 생각에 밝아진 표정으로 방방 뛰었다. 

       

       ***

       

       호텔의 조식 뷔페는 저녁과 메뉴가 조금 달랐지만, 여전히 호화로웠다. 

       

       인간 폼으로 변한 아르는 부지런히 음식을 담아 와서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아보카도 머글래!”

       “아보카도가 아니라 아포가토란다, 아르야.”

       “어쨌든! 히히.”

       

       이제는 곧잘 아이스크림을 예쁘게 퍼 와서 따끈한 커피를 익숙한 손놀림으로 부었다. 

       

       “히잉, 아빠. 초코 아이스크림에 커피는 잘 안 어울리는 거 가타.”

       “하하. 아포가토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최고지.”

       “다음엔 딸기 아이스크림으로 해 볼래!”

       

       역시 모험심이 강한 아이다. 

       

       여튼, 아침까지 배부르게 먹은 우리는 일단 짐을 챙겨 퇴실했다. 

       

       우웅-

       

       아르가 만들어 준 아공간에 대부분의 짐을 넣을 수 있었다.

       어차피 들여 올 때도 실비아가 블링크로 가져온 거라, 나갈 때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그럼 출발할게요.”

       “우아, 엄마가 말 직접 모는 거야? 멋있어!”

       

       우리는 실비아가 직접 모는 마차를 타고 로멜드를 벗어나, 정보 길드에서 알려 준 레드 드래곤 레어의 위치 정보를 추적했다. 

       

       레어가 있는 곳은 대륙 남서부의 하르호후 산이었다. 

       

       ‘하르호후 산. 발음도 어렵네.’

       

       아공간에 짐을 모두 넣어 마차가 굉장히 가벼웠고, 따라서 말들도 신이 난 것처럼 빠르게 달렸다. 

       

       그렇게 속도를 충분히 냈는데도, 그리고 중간에 만나는 마물을 전부 처리하면서 거의 직선 거리로 갔는데도 하르호후 산까지는 꼬박 삼 일이 걸렸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도착해써?”

       

       산골짜기에 진입하며 인간 폼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 아르는 드래곤으로 돌아와 있었다. 

       

       “응. 그런데 이제 결계 위치를 찾아야 하는데….”

       

       정보 길드가 알려 준 위치 정보는 대략적인 참고 자료일 뿐.

       

       이걸 알고 있어도 결계의 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어디 있는지만 안다고 들어갈 수 있으면 별의별 동물, 사람, 마물이 다 찾아올 수 있게.’

       

       물론 결계를 안 쳐 놔도 감히 드래곤의 레어에 찾아와 심기를 거스르려는 존재는 없겠지만, 방해 받는 걸 싫어하는 드래곤은 특히 동면에 들 때는 결계를 촘촘하게 쳐 놓는다. 

       

       레어 코앞까지 오는 데에 3일이 걸렸지만, 운이 좋지 않다면 들어가기까지도 3일이 걸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일단 주변을 탐색하면서 결계 입구로 활용할 만한 오브젝트가 있는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레온, 아르가 찾아 보까?”

       “응? 아르가?”

       “우응! 아르 왠지 금방 찾을 수 이쓸 거 가타!”

       

       아르는 말을 마치자마자 날개를 펄럭였다. 

       

       후욱-

       

       아르는 금세 산 위로 떠올라, 비행을 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르의 표정은 굉장히 신나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비행하는 건 처음이네.’

       

       VVIP실이라 넓다고는 해도 호텔 방 안에서만 날아 보다가, 이런 공기 좋은 산에서 비행을 하니 신이 날 수밖에.

       

       무리하지 말고 내려와도 된다고 말하려던 나는 아르가 마음껏 비행을 즐기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레드 드래곤 결계야 어차피 두리번거리면서 찾는다고 금방 찾아지는 것도 아니….

       

       “레온! 찾아써!”

       

       …이게 찾아지네.

       

       ***

       

       우웅.

       우웅.

       우웅.

       

       아르가 찾은 결계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울창한 녹색 숲이었던 산은 마치 오래된 화산처럼 척박한 산으로 탈바꿈했다. 

       

       “저긴가.”

       

       누가 봐도 드래곤이 잠들어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동굴의 입구가 저 앞에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아르야, 그거.”

       “우응.”

       

       작은 목소리로 아르를 부르자, 아르가 아공간 안에서 팔찌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레드 드래곤의 유물, 파이어 브레이슬릿이었다. 

       

       ‘엄청 긴장되네.’

       

       실비아의 마법으로 기척을 감추었음에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팔찌를 쥔 손이 떨렸다. 

       

       ‘잘못하면 여기서 끝장날 수도 있어.’

       

       하지만 이걸 돌려주지 않으면 용사와 드래곤이 대립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레어 안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

       “……!”

       

       레어 가운데에 잠든, 거대한 레드 드래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쪽으로 레드 드래곤이 유물과 각종 보석 등을 모아 놓은 보물상자들이 보였다.

       

       ‘다행이야…. 잘 잠들어 있어.’

       

       나는 아르와 실비아에게 고갯짓을 하고,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쥔 채 천천히 보물상자 쪽으로 움직였다. 

       

       쉬익.

       

       레드 드래곤이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후욱 뿜어져 나왔다.

       

       ‘가까이서 실제로 보니까 진짜 더 장난 아니네.’

       

       나는 애써 레드 드래곤 쪽을 보지 않은 채, 보물 상자 쪽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나마 열려 있는 보물 상자 안에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휴우.’

       

       성공이다!

       

       이제 이곳을 안전하게 빠져나가기만 하면 미션 완료.

       

       나는 기쁜 마음에 아르와 실비아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응?’

       

       그런데 아르와 실비아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왜 그래요, 실비아 씨? 왜 그래, 아르야?”

       

       나는 속삭이듯 물었다. 

       

       “레온 씨…. 뒤….”

       

       아르와 실비아는 동시에 내 뒤를 가리켰다. 

       

       “헉.”

       

       쿠구구구구….

       

       나는 놀란 나머지 숨을 멈추었다. 

       

       붉은 비늘을 가진 레드 드래곤.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룡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웬 놈들이 감히 내 레어에 찾아왔느냐.”

       

       말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마치 마나 폭풍이 일어나듯 동굴 전체가 울렸다. 

       거대한 레드 드래곤의, 세로로 찢어진 노란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조졌다.’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게 몇천 년을 살아 온 고룡….’

       

       게임 화면으로 볼 때는 알 수 없었던 존재 자체의 압박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도, 도망이라도.’

       

       나는 온 힘을 쥐어짜 다리를 움직였다. 

       고개를 돌려 아르와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실비아는 그나마 비교적 멀쩡해 보였지만, 역시 긴장해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아르는 이미 완전히 겁에 질려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 

       

       “쀼….”

       

       레드 드래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잠을 깨운 대가를….”

       “뿌, 뿌에에에에엥!!”

       “으응…?”

       

       그 순간, 울먹거리던 아르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뿌에에에엥!”

       

       닭똥 같은 눈물이 쉴 새 없이 아르의 눈에서 똑똑 흘러내렸다.

       

       “…….”

       

       레드 드래곤은 그런 아르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말했다. 

       

       “…카르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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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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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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