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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평소에 꽃의 이름을 외우고 다니지는 않았다.

        

       유명해서 일상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꽃들, 그러니까 벚꽃이나 장미, 튤립이나 카네이션, 개나리 같은 것은 알고 있어도 그 외의 꽃들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꽃 보는 것을 좋아하긴 했다. 일부러 찾아가서 보지는 않아도 가끔 걷다 보이는 꽃집 앞에 놓인 화려한 꽃을 나도 모르게 보는 경우는 있었다. 굳이 사야겠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부모님께 드릴 카네이션 정도나 몇 번 사본 정도였다.

        

       그렇기에, 나는 꽃밭에 있는 꽃의 이름은 거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좋았다. 꽃들은 예뻤으니까.

        

       찰칵.

        

       그런 소리가 들려서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소희가 나를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어, 아, 그냥, 예뻐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희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 민망하다는 듯 핸드폰을 내렸다.

        

       나야 뭐, 찍히는 게 싫은 건 아닌데.

        

       지난번에 기사에 떴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이 몰래 찍는 것을 꺼릴 뿐이지, 나와 친한 사람들이 내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뭐, 몰래 찍는 게 싫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는 거지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찍는 건 싫어.

        

       내 안의 사라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미약한 두려움이었다.

        

       ……그럼, 다음부터는 그것도 조심해야겠다.

        

       내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소희는 뭐라고 생각했는지, 얼른 방금 찍은 사진을 골라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사진에는 꽃밭 앞에 쪼그려 앉아 이름 모를 꽃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내가, 사라가 찍혀있었다.

        

       확실히 그림이 된다. 햇살 좋고 맑은 날씨라 그런지 사진이 굉장히 화사하게 찍혔다.

        

       “어때, 괜찮지?”

        

       소희가 확인하듯 물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수아가 손뼉을 짝 치면서 말했다.

        

       “그럼, 다 같이 사진이라도 찍자. 우리, 지금까지 다 같이 사진 찍어본 적이 없으니까.”

        

       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매일 같이 몰려다닌 것 치고는, 우리는 사진을 자주 찍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거 좋네.”

        

       하늘이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나는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다 같이 찍자.”

        

       *

        

       보통 이런 말이 나오면 항상 그렇듯, 사진은 한 장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 눈치를 보느라 사진을 찍지 않기라도 했던 건지, 소희, 수아, 하늘이는 모두 내 옆에서 한 장씩 사진을 찍기를 바랐다.

        

       “그럼,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양혜인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스마트폰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셀카처럼 직접 들고 촬영하는 사진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양혜인이 찍어주었다.

        

       나를 가운데 두고 함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고, 자리를 바꿔서 한 번 더 찍고, 모두 한 장씩 다 촬영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만족한 모양이었다.

        

       뭐, 여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열심히 찍겠지만. 내가 허락했으니까.

        

       다행히도 사라는 사진 찍는 것에 불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

        

       다만, 다 찍고 자리를 옮기려는데 묘하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 들렀다가 자리를 떠나려고 일어나고 보니 주머니가 허전한 것 같은,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

        

       나는 그 기분의 정체를, 꽃밭 언저리까지 나오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양혜인 씨는 사진 안 찍어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불쑥 그렇게 물어보자, 일행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

        

       양혜인이 조금 뻣뻣하게 나를 보았다. 나보다 키가 큰 양혜인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니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실제로는 나와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용주와 고용인의 사이였고.

        

       아, 그래, 이름으로 부른 것은 처음이던가.

        

       이름으로 부르기 어색해서, 아예 부르지 않는 것을 택했던 나였다. 가끔 부를 때는 ‘메이드’라고 불렀고.

        

       그런데 그렇다고 밖에서까지 그렇게 부를 수도 없잖아.

        

       따지고 보면 소희도 내 전속 메이드였고.

        

       “……안 찍을 거예요?”

        

       내 물음에, 양혜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찍겠습니다.”

        

       어째서인지 조금은 긴장한 목소리였다.

        

       *

        

       놀랍게도, 산을 그대로 깎아 만든 놀이공원은 아직도 더 올라갈 만한 곳이 남아있었다.

        

       이 놀이공원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불릴 수 있는 관람차는 안 그래도 비교적 높은 곳에 있는 꽃밭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었다. 하긴, 이해는 간다. 관람차 같은 건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더 시야가 탁 트이는 법이니까.

        

       이렇게 날씨가 맑은데 관람차 한 번 타보지 않는 것은 놀이공원에 대한 실례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살던 곳에서 이곳에 있던 놀이공원의 관람차는 노후화로 가동이 중지되었지만, 이쪽 세계는 아닌 모양이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기존에 있던 것을 철거하고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다시 만들었다나. 그룹에 돈이 많으니 이런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양이다.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은 당연히 엄청나게 많았고, 관람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도 한가득이었다.

        

       그나마 끊임없이 사람이 타고 내렸기에 기다리는 사람의 수에 비해서는 꽤 빠르게 탈 수 있었다.

        

       이번에 함께 타게 된 것은 하늘이였다.

        

       양혜인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 그렇게 서서 기다리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한 내가 같이 타자고 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또 두 팀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관람차에 탈 수 있는 적정 인원은 네 명이었기에 다섯 명인 우리는 세 명, 두 명으로 찢어지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가 양혜인 쪽으로 가는 편이 덜 불편할까 싶기는 했지만, 어째서인지 일행은 반드시 내가 두 명인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찢어지게 되었다.

        

       이번에 팀을 나누는 방법은 손바닥 뒤집기.

        

       그렇게 나와 하늘이가 한 곳에 타게 된 것이다.

        

       “…….”

        

       “…….”

        

       음.

        

       막상 둘이 타니까 조금 어색하다.

        

       좁은 관람차 안에 마주 보고 앉아 있는데, 막상 이렇게 있으니 조금 어색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우리는 같이 영화나 TV를 본 적도 없다. 서로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함께 다니면서 노는 사이가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아니, 한가지, 우리 둘끼리만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사실 내가 지금 상황을 조금 어색하게 느끼고 있는 이유가 그거였고.

        

       하늘이는 내가 ‘사라’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확히는, 나를 ‘기억’이 아니라 ‘다른 인격’으로 대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단둘이 나누었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였으니, 여기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사라’는, 아직 같이 있어?”

        

       그렇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하늘이가 그렇게 물었다.

        

       창밖으로 가 있던 시선을 돌리니, 하늘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응, 아직 같이 있어.”

        

       어색한 상황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렇구나.”

        

       하늘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옆자리로 가도 될까?”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응? 그야 당연히…….”

        

       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다시 한번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언짢음에 당황했다.

        

       어…… 사라가 왜 하늘이의 말을 듣고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하지만 내가 그 감정에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하늘이는 이미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내 ‘바로’ 옆에.

        

       바싹 붙어서.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야.”

        

       “으, 응.”

        

       하늘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어깨와 어깨가 바로 맞닿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코가 스치지 않을 정도로.

        

       “사라의 기억은 강렬한 감정을 느낄 때 바뀌잖아?”

        

       “그, 그렇, 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나야 편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사라의 가장 강한 감정은 유진 그룹의 회장님과 만나서 나오고.”

        

       “어…… 그런데…….”

        

       하늘이는 말하는 내내 더 내 쪽으로 바싹 붙었다. 창밖으로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기에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슴 속의 언짢은 기분이 점점 더 증폭되었다.

        

       사라는 사실 다른 사람의 신체접촉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걸까?

        

       하늘이의 한쪽 팔이 내 등 뒤를 가로질렀다. 다른 한쪽 팔은 내 앞쪽으로.

        

       하늘이는 내 쪽으로 몸을 바싹 붙이고 양팔로 나를 가두듯이 끌어안고 있었다.

        

       “저, 저기, 하늘아?”

        

       “그래서, 내가 생각해봤는데, 너희 둘의 인격을 바꾸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어?”

        

       그 한마디에, 부끄러움이 확 사라졌다.

        

       그 모든 감정을 날려버릴 만큼 충격적인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다가, 그대로 하늘이와 입술이 닿을 뻔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하늘이가, 바로 내 코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 그, 흐…….”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인격이 바뀌는 거라면,”

        

       하늘이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나에게 숨이 와 닿았다. 얼굴이 너무 바싹 달라붙어 있어서, 나는 거의 하늘이의 깊은 두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그 강렬한 감정을 만들어주면 되는 게 아닐까?”

        

       가슴 속에서, 사라의 언짢음이 거의 극한까지 증폭되었다.

        

       “아, 아흫…… 잠깐…….”

        

       하늘이의 얼굴이 나에게 더 가깝게 다가온다.

        

       다시 한번, 우리들의 숨이 섞이고—

        

       *

        

       —나는, 내가 원치도 않는 순간에 나의 몸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

        

       “…….”

        

       그 사람에게 다가가던 유하늘의 얼굴이 딱 멈추었다.

        

       “……너구나.”

        

       내 몸에 감겨있던 손이 스륵 풀렸다. 유하늘은 순식간에 나에게서 떨어져서 거리를 벌렸다. 신체접촉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 핑계로 입맞춤이라도 하려고 한 거야?”

        

       “……아니, 정말로 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돼서 실망했겠네.”

        

       “…….”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정말로 실망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놀랐다. 내가 저 애랑 그렇게 붙어 앉았던 것이, 나에게 있어서 ‘강렬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매개체가 되었을 줄이야.

        

       ……그 ‘감정’이, 그 사람이 하늘이에게 가진 것과는 다른 종류이긴 했지만.

        

       하늘이와 붙어 앉을 때마다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은 설렘과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유하늘과 붙어 앉았을 때 느낀 감정은 ……과 부끄러움이었다.

        

       감정의 방향은 내면을 향하고 있었고.

        

       “…….”

        

       “…….”

        

       본의 아니게 다른 방법을 찾아내 버린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반대편만 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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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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