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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으웁…!!”

         

         구역질을 억지로 참는 신음, 과한 두뇌 혹사로 인한 부작용이 안 가셨는지 헐떡이는 숨소리.

         자신이 만들어낸 토사물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지탱해보겠다고 후들거리는 팔이 안쓰럽다.

         

         누가 보더라도. 쌍둥이들의 상태는 정말 여러모로 안 좋아 보였다.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일방적인 분노면 몰라도 갈등이란 건 상대방 쪽에서 뭔가 돌아오는 게 있어야 완성되는 법.

         난데없는 삿대질에도 1팀은 별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 그건 발작에 가까운 히스테리였다.

         

         “……웨엑!!”

         

         또 한바탕 위액을 게워낸 후, 서로의 어깨에 의지해서 간신히 일어선 그들은 관객들이 내막을 궁금해하거나 말거나 레오나르 경에게 고함을 질렀다.

         

         “유령 대가리 씨…! 심판!! 씹, 저 새끼들… 부정행위를 저질렀어!”

         

         “…부정?”

         

         제대로 된 자기소개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탓에 부르는 사람과 경우마다 호칭이 해괴하게 바뀌는 레오나르 경이 삐딱하게 머리를 기울였다. 저렇게 불리느니 차라리 확실하게 정정해줄 법도 하나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게다가 호출당하는 순간부터 멀쩡하게 출력되던 오페라 가면이 귀찮다는 듯이 화면 구석에 처박힌 채로 찡그린 표정을 지은 게 우습기까지 했다. 그나마 묵과하기 힘든 단어를 듣고는 뒤늦게나마 흥미를 보인 게 다행이라 할까?

         

         어쩌면 진행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진 걸지도 모르겠고.

         

         “으웁…. 큭, 이번엔 딱히 트집 같은 게 아니라…! 십새끼들이 접속 단자에 패킷 변조망을 깔아 논 걸로도 모자라서 씨발 금고 안에는 사이버웨어 오염용 바이러스까지 심어 놨다고!!”

         “…그것도 심지어 작정하고 개발했는지, 우리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도 위험한 물건이야!”

         

         “허…?”

         

         그 외침을 듣고는 나도 그들의 떨리는 신체를 다시 관찰했다.

         

         단순히 자존심이 걸린 작업이라 지나칠 정도로 집중한 탓에, 팔과 다리에 경련이 오고 평형 감각이 흐트러져서 멀미라도 하는 줄 알았거늘.

         

         망막에 무슨 개판이 벌어졌는지,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듯 연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동공.

         침이 줄줄 흐르는 입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반고리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는 몸체.

         

         재수는 좀 없을지언정 깔끔했던 외형이 순식간에 어디 마약 중독자라고 내놔도 그럴싸하게 보이게 변해버렸으니, 말마따나 뭔가 끔찍하고 지독한 것에 노출된 건 분명했다.

         

         그… 절대, 새삼스레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어떤 도시를 불문하고, 이 세계는 출원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프로그램이나 악성 코드가 불법이다.

         

         보관하는 건 물론 어떤 방식으로든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그러니까 감염된 상태를 바로 자진신고 하지 않는 걸로도 벌금이 부과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정작 그걸 개발하는 이 작자들에게 준법 정신이란 게 존재하긴 하냐고 묻는 건 다른 얘기긴 한데 어쨌든.

         

         게임 플레이 도중에 입수할 수 있는 세계관과 관련된 메모리 카드에 따르면, 과거에 공용 네트워크에 풀어놓아진 채로도 소멸하지 않은 재앙급 바이러스가 있어서 그레이 구(Grey goo; 자가복제가 가능한 나노 봇에 의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가설) 시나리오 마냥 거주민들 강제 이사시키고 메트로폴리스 하나를 통째로 폐쇄한 역사까지 있었다.

         

         사회 전반을 유지하는 기업은 당연히 기겁, 보통 그걸 유용하는 입장인 사이버 엔지니어 직군들에게도 여러모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고.

         

         그렇게 호스트-숙주-가 되는 네트워크나 단말기 환경에 따라서는 자연 사멸, 조기 진압은 고사하고 자체적인 변이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위험한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만큼 조심스럽게 쓰는 게 일반적인데.

         

         아무리 저게 폐쇄된 생태계라고 해도.

         나처럼 제한된 환경에서만 활동할 수 있게 조건을 달거나, 접속을 끊을 때 깔끔하게 회수하기는커녕. 다짜고짜 그걸 경쟁자들 좆 되보라고 심어 놓는다고? 진짜로…?

         

         “……Idiot.”

         

         장갑 낀 손을 뻗어서 안구 아랫부분을 까본다든가, 군데군데 뿌려진 피의 상태를 점검한다던가 하는 걸로 상태를 확인.

         성대가 남아있었다면 한숨을 쉬지 않았을까 싶은 말투로 중얼거린 그가 두 사람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과연 우리의 신경질적인 재판관은 이런 경우에도 대응하는 매뉴얼도 준비해 놨을까 기대했지만.

         

         “…거기, 1번 녀석들!! 9번의 증언처럼 금고를 변조한 사실을 인정하나?”

         

         곧이어 금고에 머리를 처박아야 할 다른 사람들도 들을 수 있도록 레오나르 경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적어도 추궁하는 쪽이던, 변명하는 쪽이던 조금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상상보다 더했다.

         

         “…….”

         

         1번을 비롯한 무리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걸로 불쌍한 해커 쌍둥이의 속을 한번 더 뒤집어 놓았으며.

         

         “흠. 안 했다는군.”

         

         그 꼬라지를 본 심판께서는 무려 화면 하단부를 턱 쓰다듬듯이 만지작거리더니. 행여나 시야가 불안정한 그들이 대답을 못 봤을라, 부정의 의사표현까지 낭랑하게 전달해주는 걸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저혈압을 완치시켜 주셨다.

         

         “….”

         “…….”

         

         …그걸로 끝? 아니, 저기요. 야.

         

         “씨…발? 아저씨! 그게 무슨 미친 개소리야?! 쟤들이 후속주자를 엿 먹이려고 함정을 깔았다니까!”

         “접속하는 시늉이라도 좀 해봐! 금고 자체 보안이랑 전혀 다른 게 붙어있다고…!”

         

         “그리고 당사자들은 부정했지. 또한 너희와 나머지 참가자들은 원하던 전용 장비까지 무사히 전달받았고.”

         

         ““읏…!””

         

         무심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지적에 목이 움츠려진다.

         

         만약 둘의 순서가 훨씬 뒤쪽이었다면 말을 꺼내지 않았을 지도 모르고, 도중에 다른 팀이 짐을 가져다 달라고 먼저 부탁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고의적으로 격차를 만들려 했던 건 사실이기에 그 점을 적나라하게 꼬집히자 쌍둥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위에 있다는 고객도 우리 실력을 보려고 온 거 아니야?! 그걸 위한 요구와 이딴 방해공작은 다르지!”

         

         허나 그대로 물러나기엔 영 찝찝했는지 하나가 레오나르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그 말을 들은 그는 나름 합당한 반론이라고 수긍한 후, 세상 부드럽게 책임을 회피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게지?

         

         “”어?””

         

         “무슨 발달장애라도 있나? 그 반대급부로 사이버 공학 관련한 재능만 개화해서 이 자리에 왔다던가?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나! 난 너희들의 당락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음….”

         

         설마 무슨 수를 쓰던 결과만 보여주면 되다는 걸까?

         불길한. 음흉한 상상을 하는 일부 인간들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몇몇은 아예 허리춤을 더듬었다.

         

         어허, 제로 자극하지 마 이 인간들아…!

         

         “후우.”

         

         허나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것처럼 좌중을 쓱 둘러본 그는 신경질적으로 단상에 있던 마이크를 잡아채서 본인의 스피커에 가져다 댔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총질하라는 게 아니다. 단지, 너희들이 이 자리에서 마켓 측의 규제없이 손댈 수 있는 건….”

         

         쾅쾅—!!

         

         “오직 이 금고뿐이라는 거다.”

         

         모두가 침묵하는 와중 자료 금고를 거칠게 두들기는 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시발, 굉장히 싸한 공기가 광장에 내려앉은 것 같은데 이거 맞나? 그러니까 금고에는 무슨 헛수작을 부려도 묵인한다고?

         

         “이건 안 좋은데…? 귀염둥이, 부끄럼쟁이. 혹시 괜찮은 대책 같은 거 있어?”

         “…몰라. 난 직접 만져봐야 알아.”

         “지… 지금 고민해 봤자, 아마 몇 팀만 지나가면….”

         

         지금부터 일어날 참사를 직감한듯, 어색하게 굳은 마리나가 급하게 귀엣말을 해왔지만 돌려줄 대답도 마땅치 않았다.

         

         당장 저기 깔린 게 금고 보안 시스템을 제외하고도 사이버웨어 전용 바이러스에 무슨 데이터 변조 프로그램이라 했지. 우리 차례까지 왔을 때, 매콤한 양념이 얼마나 추가됐을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좋아. 그딴 식으로 돌아가는 구조라면.””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더니, 이내 흉악한 미소를 띄운 해커 남매가 금고로 다가갔다.

         아, 얘들. 신체를 직접 연결하는 타입이 아니라 그런지, 단말기가 그대로 붙어있는 상태라고 아직 금고가 안 닫혔네.

         

         어… 음… 친구들?

         화가 많이 난 게 나나 마리나 탓이라면 사과할 테니까, 그래도 최소한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좀 가져보는 게….

         

         “이봐?! 쌍둥이들…! 지랄하지 마!”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어차피 앞 새끼들보다 니들이 더 빨랐잖아!”

         “……에미, 기권할까?”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야유를 퍼부어봐도 달라질 건 없었다.

         담당자가 냅다 공인해버렸으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조차 없는. 확대 해석하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그들을 막으려면 물리적으로 제압해야 했는데 그건 하지 말라고 못박혔기에.

         

         지직…! 치직!

         

         대체 무슨 악성 데이터를 꽉꽉 눌러 담았는지 데이터를 전송받는 금고에서 파지직거리는 스파크가 튀고 외부 센서등이 마구 깜빡인다.

         

         그에 따라 발생한 역광으로 음영이 진 그들의 얼굴은… 묘한 흥분으로 꿈틀대고 있었으니.

         

         허허. 그래, 언제 이런 통제된 환경에서 불장난을 해보겠냐 마음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이 망할 놈들.

                                                            

         “우리가 먼저 시작한 개싸움은 아니지만…!” “이렇게 이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철컹!!

         

         단자가 거의 튕겨지듯 뽑혀 나가자 금고의 불빛이 잠금 상태를 의미하는 적색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아마 업계 역사를 찾아봐도 유례없이 추잡한 진흙탕 싸움의 막이 올라가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진짜로)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GAMBIT _ (Lecif) 님의 50코인 후원과 과분한 감상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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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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