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0


    ​
    ​
    회색빛 방안,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침대 위에 아이리스, 노아, 제스, 네로, 릴리가 사지가 묶인 채 누워있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고 목에는 마력을 차단하는 마도구 목줄이 매어져 있었다.
    ​
    ​
    ‘전부 나 때문이야..’
    ​
    ​
    릴리의 볼을 타고 몇 번째인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
    ​
    ‘내가 인질로 잡히지만 않았어도…’
    ​
    ​
    붉은 여왕이라 불리던 제스, 투기장을 붕괴시킨 아이리스, 각성까지 하여 몇 배는 강해진 노아, 그런 노아에게 오랜 시간 훈련받은 네로.
    ​
    ​
    모두가 쉽사리 적에게 잡힌 건 릴리가 인질로 잡혔다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
    ​
    “호오, 팔다리 하나쯤은 날아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쩡하군.”
    ​
    ​
    끝이 살짝 말린 콧수염을 가진 남자가 조용히 실험실 안에 나타났다. 그들이 묶여있는 침대 옆에 서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연구원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
    ​
    “그만큼 질이 뛰어납니다. 전부 어디 가서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재료들입니다.”
    “결함품이라고는 해도, 전투 병기와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재료들이니. 당연한 결과야.”
    ​
    ​
    콧수염의 남자는 이를 내보이며 씩 웃어 보였다.
    ​
    ​
    “운이 좋군, 아주 좋아. 실험 막바지에 이런 고급 재료들이 들어오다니.”
    ​
    ​
    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스의 침대 끄트머리를 피아노 치듯 두드렸다. 그러자 제스의 동공이 수축하였다.
    ​
    ​
    “크르릉..”
    ​
    ​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자 남자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마치 싱싱한 야채나 생선을 보는 주부의 시선과 비슷했다.
    ​
    ​
    제스를 내려다보며 히죽히죽 웃던 콧수염의 남자는 이내 몸을 휙 돌려 다른 연구원에게 물었다.
    ​
    ​
    “폐기된 실험체의 수는 몇이나 되지?”
    “못해도 열 마리는 넘습니다.”
    ​
    ​
    그 말에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
    “열 마리 모두 이것들의 손에 폐기된 게 맞아?”
    “예, 맞습니다.”
    “허어…”
    ​
    ​
    남자는 첫사랑을 마주한 사람처럼 볼을 벌겋게 붉혔다. 흥분으로 수염이 이리저리 씰룩거렸다.
    ​
    ​
    그들이 연구하는 것은 한 마리가 제국의 기사보다 강한 전투 병기였다. 
    ​
    ​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사급의 전투 병기. 말로만 들어도 피 냄새가 진득하게 흐르는 말이었다.
    ​
    ​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선 온갖 시행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 중에 만들어진 결함품이 생겨났고, 노아 일행은 그런 결함품과 전투를 치렀다.
    ​
    ​
    아무리 결함품이라고 해도 제국의 기사급의 결과물.
    ​
    ​
    조금 애를 먹긴 하겠지만, 처참하게 질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결함품의 개수였다. 
    ​
    ​
    ‘그 끔찍한 것들이 결함품이었다고?’
    ​
    ​
    노아는 물결처럼 끝없이 밀려오던 끔찍한 생물을 떠올렸다. 수인, 몬스터, 인간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던 ‘그것’은 네스트의 간부들 정도는 한 손으로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
    ​
    그들이 붙잡힌 건 릴리가 인질로 잡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끝없이 밀려오던 그 생물 때문이었다.
    ​
    ​
    노아는 재갈을 깨물며 생각했다.
    ​
    ​
    ‘이대로 순순히 실험체가 되어줄 순 없어.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
    ​
    노아가 그리 생각하며 눈을 빛내자,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남자가 노아에게 다가왔다.
    ​
    ​
    “흐, 눈빛이 꺾이지 않을 걸 보니. 여기서 벗어날 생각을 하나 보군.”
    “…!”
    “하지만 그런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
    ​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 남자의 눈은 광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
    “직접 싸워봤으니 더 잘 알겠지! 마왕군의 최종병기가 될 ‘인비젤’의 강함을! 너희들의 피는 한 방울까지 전부 마왕군의 최종 병기에 사용될 거다!”
    ​
    ​
    남자는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치다가 이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나긋한 톤으로 말했다.
    ​
    ​
    “아아 -.. 이제 알겠지? 너희들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인지.”
    ​
    ​
    노아는 치밀어오르는 구역감을 참으며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더러운 남자의 눈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
    ​
    흥이 오를 대로 오른 남자는 흥얼거리듯 실험체 ‘인비젤’의 위대함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
    ​
    “심장을 찔러도, 머리를 베어내도 죽지 않으며 어떠한 무기든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지. 그런데도 이지가 없어 충성스럽지!”
    ​
    ​
    남자의 말이 이어질수록 방 안에 있던 다른 연구원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그들의 앞에 놓인 영광의 길을 상상하니 잔뜩 흥분된 탓이다.
    ​
    ​
    “그런 명예로운 -…”
    ​
    ​
    남자가 몇번째 인지 모를 찬양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
    ​
    쾅!
    ​
    ​
    굳게 닫혀있던 실험실 문이 우그러질 정도로 거칠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건 피투성이가 된 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연구원이었다.
    ​
    ​
    “…! 뭐야, 무슨 일이야!?”
    ​
    ​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남자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
    ​
    “도, 도망 -…커흑..”
    ​
    ​
    연구원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위로 넘어간 눈동자와 미동도 없는 몸. 그는 그대로 숨이 끊어져 버렸다.
    ​
    ​
    실험실 안 분위기가 영안실처럼 싸늘해졌다.
    ​
    ​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장 알아 와!”
    “예!”
    ​
    ​
    그들은 노아 일행을 버려둔 채 일사불란하게 실험실을 빠져나갔다. 콧수염 남자 또한 그들의 뒤를 따라 실험실을 빠져나갔다. 
    ​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
    ​
    ​
    “으아아악!”
    “가, 가까이 오지마! 끄아악!”
    ​
    ​
    부서진 문 너머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사지가 묶인 일행은 마른침을 삼키며 잔혹한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
    ​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
    “아이참, 여기도 아닌가?”
    ​
    ​
    웬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이들이 시선을 굴려 막 방 안으로 들어온 이를 살펴보았다. 데이트라도 가는지 청초하게 맞춰 입은 옷, 허리까지 내려오는 남색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
    ​
    ​
    아름답게 생긴 여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문제는 여자의 주먹이 피로 범벅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
    ​
    “힝… 늦으면 안 되는데. 얼룩도 안 지워지고.”
    ​
    ​
    여자는 작은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제 옷에 튄 핏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잘 닦이지 않자 울상을 지었다.
    ​
    ​
    “앗! 여기 다른 사람들이 계시네! 왜 묶여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
    ​
    그리 말한 여자는 노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
    ​
    “저기 부천역까지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
    ​
    이해할 수 없는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노아의 뇌는 작동을 멈췄다.
    ​
    ​
    “아, 혹시 모르시나요? 끙… 어쩌지..”
    “으읍! 아웁!”
    ​
    ​
    어찌 되었든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저 여자를 통하는 방법밖에 없었기에 노아는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여자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
    ​
    “앗! 그러고 보니 입이 막혀계시네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
    ​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동그랗게 말아쥔 주먹으로 침대 모서리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
   
    “에잇!”
    ​
    ​
    와장창!
    ​
    ​
    …침대를 포함한 구속구가 전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어졌다. 노아는 멍한 얼굴로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
    ​
    “저, 그럼 이제 부천역은 어뜨으…”
    ​
    ​
    말을 잇던 여자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노아는 경악한 표정으로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
    ​
    촤아아악 -.
    ​
    ​
    여자는 바닥에 물을 쏟기라도 한 것처럼 액체가 되어 바닥에 퍼져버렸다. 개그 주민의 피를 견디지 못하고 몸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
    ​
    “이건..”
    ​
    ​
    흘러내린 여자의 형태가 어딘가 매우 익숙했다. 그들이 상대했던 ‘결함품’이 죽었을 때 눈앞에 있는 여자처럼 액체가 되어 흘러내렸었다.
    ​
    ​
    ‘큰.. 일날 뻔했군.’
    ​
    ​
    노아는 그제야 이해할 수 없었던 여자가 실험 결과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
    ​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해.’
    ​
    ​
    어째서 여자의 형태였는지, 어째서 자신을 도와준 건지, 갑자기 죽어버린 이유는 뭔지.
    ​
    ​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노아는 다급히 침대에 묶여있는 이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
    ​
    ***
    ​
    ​
    그 시각 리안은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후 노아를 찾아 연구소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
    ​
    “여긴 또 어디지..”
    ​
    ​
    연구소가 뒤집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리안이 대놓고 돌아다녀도 연구원들과 마주칠 일은 없었다.
    ​
    ​
    그만큼 리안의 피를 먹은 실험체들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리안은 이곳이 어디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
    ​
    리안은 우선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연구원 하나를 붙잡아 마검과 미팅을 시켜줄 생각이었다. 
    ​
    ​
    [ 파트너, 저쪽 문 안에서 여러 기척이 느껴진다. ]
    ​
    ​
    리안은 마검이 가리킨 쪽을 향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몸이 멈칫했다.
    ​
    ​
    ‘..가르간도아 꼭 그래야겠어?’
    [ 여기서 나가면 언제 활약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 않나! 기회가 될 때 나의 멋진 모습을… 크흠, 그대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
    ​
    ​
    몸이 멈칫한 이유는 자이언트 거미때처럼 멋들어진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 주도권이 뺏긴 탓이었다. 리안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주도권을 회수할 수 있지만 마검이 찡찡거릴 각을 잡기 시작했기에 한숨을 쉬며 주도권을 그대로 두었다.
    ​
    ​
    그러자 마검이 신이 나선 리안의 몸을 손끝, 발끝 하나하나 세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마검은 온갖 사람의 손을 거쳐왔고, 그들 중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이들도 꽤 많았다. 
    ​
    ​
    그때의 기억 덕분에 리안은 명문가의 도련님처럼 움직임 하나하나에 품위가 깃들었다. 은은하게 지어지는 미소 또한 항상 가면을 쓰고 웃는 귀족의 것과 동일했다.
    ​
    ​
    달칵.
    ​
    ​
    연구원이 급하게 뛰쳐나가느라 잠기지 않은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리안이 안으로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
    ​
    “…! 누구세…요?”
    ​
    ​
    안에서 잡일을 처리하던 조수들이 리안을 보고 침입자인 줄 알고 소리치려다가, 딱 봐도 고귀한 신분으로 보이는 모습에 새끼 양처럼 떨어댔다.
    ​
    ​
    조수들만큼 놀란 이가 한 명 있었다.
    ​
    ​
    ‘가, 각하?’
    ​
    ​
    유리방 안에 갇혀있던 공작가의 기사가 리안의 얼굴을 보곤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현재 날뛰고 있는 실험체들은 나중에 언급되겠지만, 무시무시하게 강한 전투 병기들 입니다. 나라 정도는 가뿐하게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죠.
하지만 이젠 개그화 되어버린…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회색빛 방안,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침대 위에 아이리스, 노아, 제스, 네로, 릴리가 사지가 묶인 채 누워있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고 목에는 마력을 차단하는 마도구 목줄이 매어져 있었다.

‘전부 나 때문이야..’

릴리의 볼을 타고 몇 번째인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인질로 잡히지만 않았어도…’

붉은 여왕이라 불리던 제스, 투기장을 붕괴시킨 아이리스, 각성까지 하여 몇 배는 강해진 노아, 그런 노아에게 오랜 시간 훈련받은 네로.

모두가 쉽사리 적에게 잡힌 건 릴리가 인질로 잡혔다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호오, 팔다리 하나쯤은 날아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쩡하군.”

끝이 살짝 말린 콧수염을 가진 남자가 조용히 실험실 안에 나타났다. 그들이 묶여있는 침대 옆에 서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연구원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질이 뛰어납니다. 전부 어디 가서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재료들입니다.”

“결함품이라고는 해도, 전투 병기와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재료들이니. 당연한 결과야.”

콧수염의 남자는 이를 내보이며 씩 웃어 보였다.

“운이 좋군, 아주 좋아. 실험 막바지에 이런 고급 재료들이 들어오다니.”

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스의 침대 끄트머리를 피아노 치듯 두드렸다. 그러자 제스의 동공이 수축하였다.

“크르릉..”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자 남자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마치 싱싱한 야채나 생선을 보는 주부의 시선과 비슷했다.

제스를 내려다보며 히죽히죽 웃던 콧수염의 남자는 이내 몸을 휙 돌려 다른 연구원에게 물었다.

“폐기된 실험체의 수는 몇이나 되지?”

“못해도 열 마리는 넘습니다.”

그 말에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열 마리 모두 이것들의 손에 폐기된 게 맞아?”

“예, 맞습니다.”

“허어…”

남자는 첫사랑을 마주한 사람처럼 볼을 벌겋게 붉혔다. 흥분으로 수염이 이리저리 씰룩거렸다.

그들이 연구하는 것은 한 마리가 제국의 기사보다 강한 전투 병기였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사급의 전투 병기. 말로만 들어도 피 냄새가 진득하게 흐르는 말이었다.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선 온갖 시행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 중에 만들어진 결함품이 생겨났고, 노아 일행은 그런 결함품과 전투를 치렀다.

아무리 결함품이라고 해도 제국의 기사급의 결과물.

조금 애를 먹긴 하겠지만, 처참하게 질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결함품의 개수였다.

‘그 끔찍한 것들이 결함품이었다고?’

노아는 물결처럼 끝없이 밀려오던 끔찍한 생물을 떠올렸다. 수인, 몬스터, 인간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던 ‘그것’은 네스트의 간부들 정도는 한 손으로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그들이 붙잡힌 건 릴리가 인질로 잡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끝없이 밀려오던 그 생물 때문이었다.

노아는 재갈을 깨물며 생각했다.

‘이대로 순순히 실험체가 되어줄 순 없어.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노아가 그리 생각하며 눈을 빛내자,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남자가 노아에게 다가왔다.

“흐, 눈빛이 꺾이지 않을 걸 보니. 여기서 벗어날 생각을 하나 보군.”

“…!”

“하지만 그런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 남자의 눈은 광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직접 싸워봤으니 더 잘 알겠지! 마왕군의 최종병기가 될 ‘인비젤’의 강함을! 너희들의 피는 한 방울까지 전부 마왕군의 최종 병기에 사용될 거다!”

남자는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치다가 이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나긋한 톤으로 말했다.

“아아 -.. 이제 알겠지? 너희들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인지.”

노아는 치밀어오르는 구역감을 참으며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더러운 남자의 눈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흥이 오를 대로 오른 남자는 흥얼거리듯 실험체 ‘인비젤’의 위대함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심장을 찔러도, 머리를 베어내도 죽지 않으며 어떠한 무기든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지. 그런데도 이지가 없어 충성스럽지!”

남자의 말이 이어질수록 방 안에 있던 다른 연구원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그들의 앞에 놓인 영광의 길을 상상하니 잔뜩 흥분된 탓이다.

“그런 명예로운 -…”

남자가 몇번째 인지 모를 찬양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쾅!

굳게 닫혀있던 실험실 문이 우그러질 정도로 거칠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건 피투성이가 된 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연구원이었다.

“…! 뭐야, 무슨 일이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남자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도, 도망 -…커흑..”

연구원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위로 넘어간 눈동자와 미동도 없는 몸. 그는 그대로 숨이 끊어져 버렸다.

실험실 안 분위기가 영안실처럼 싸늘해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장 알아 와!”

“예!”

그들은 노아 일행을 버려둔 채 일사불란하게 실험실을 빠져나갔다. 콧수염 남자 또한 그들의 뒤를 따라 실험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으아아악!”

“가, 가까이 오지마! 끄아악!”

부서진 문 너머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사지가 묶인 일행은 마른침을 삼키며 잔혹한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참, 여기도 아닌가?”

웬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이들이 시선을 굴려 막 방 안으로 들어온 이를 살펴보았다. 데이트라도 가는지 청초하게 맞춰 입은 옷, 허리까지 내려오는 남색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

아름답게 생긴 여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문제는 여자의 주먹이 피로 범벅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힝… 늦으면 안 되는데. 얼룩도 안 지워지고.”

여자는 작은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제 옷에 튄 핏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잘 닦이지 않자 울상을 지었다.

“앗! 여기 다른 사람들이 계시네! 왜 묶여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그리 말한 여자는 노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기 부천역까지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이해할 수 없는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노아의 뇌는 작동을 멈췄다.

“아, 혹시 모르시나요? 끙… 어쩌지..”

“으읍! 아웁!”

어찌 되었든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저 여자를 통하는 방법밖에 없었기에 노아는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여자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앗! 그러고 보니 입이 막혀계시네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동그랗게 말아쥔 주먹으로 침대 모서리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에잇!”

와장창!

…침대를 포함한 구속구가 전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어졌다. 노아는 멍한 얼굴로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저, 그럼 이제 부천역은 어뜨으…”

말을 잇던 여자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노아는 경악한 표정으로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촤아아악 -.

여자는 바닥에 물을 쏟기라도 한 것처럼 액체가 되어 바닥에 퍼져버렸다. 개그 주민의 피를 견디지 못하고 몸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건..”

흘러내린 여자의 형태가 어딘가 매우 익숙했다. 그들이 상대했던 ‘결함품’이 죽었을 때 눈앞에 있는 여자처럼 액체가 되어 흘러내렸었다.

‘큰.. 일날 뻔했군.’

노아는 그제야 이해할 수 없었던 여자가 실험 결과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해.’

어째서 여자의 형태였는지, 어째서 자신을 도와준 건지, 갑자기 죽어버린 이유는 뭔지.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노아는 다급히 침대에 묶여있는 이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

그 시각 리안은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후 노아를 찾아 연구소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여긴 또 어디지..”

연구소가 뒤집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리안이 대놓고 돌아다녀도 연구원들과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만큼 리안의 피를 먹은 실험체들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리안은 이곳이 어디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리안은 우선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연구원 하나를 붙잡아 마검과 미팅을 시켜줄 생각이었다.

[ 파트너, 저쪽 문 안에서 여러 기척이 느껴진다. ]

리안은 마검이 가리킨 쪽을 향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몸이 멈칫했다.

‘..가르간도아 꼭 그래야겠어?’

[ 여기서 나가면 언제 활약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 않나! 기회가 될 때 나의 멋진 모습을… 크흠, 그대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

몸이 멈칫한 이유는 자이언트 거미때처럼 멋들어진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 주도권이 뺏긴 탓이었다. 리안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주도권을 회수할 수 있지만 마검이 찡찡거릴 각을 잡기 시작했기에 한숨을 쉬며 주도권을 그대로 두었다.

그러자 마검이 신이 나선 리안의 몸을 손끝, 발끝 하나하나 세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검은 온갖 사람의 손을 거쳐왔고, 그들 중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이들도 꽤 많았다.

그때의 기억 덕분에 리안은 명문가의 도련님처럼 움직임 하나하나에 품위가 깃들었다. 은은하게 지어지는 미소 또한 항상 가면을 쓰고 웃는 귀족의 것과 동일했다.

달칵.

연구원이 급하게 뛰쳐나가느라 잠기지 않은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리안이 안으로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 누구세…요?”

안에서 잡일을 처리하던 조수들이 리안을 보고 침입자인 줄 알고 소리치려다가, 딱 봐도 고귀한 신분으로 보이는 모습에 새끼 양처럼 떨어댔다.

조수들만큼 놀란 이가 한 명 있었다.

‘가, 각하?’

유리방 안에 갇혀있던 공작가의 기사가 리안의 얼굴을 보곤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