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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0

   EP.120

     

   크레센도는 꿈을 꿨다.

     

   「크와아아앙!」

     

   자신이 둥지를 삼은 호수의 밑바닥에서 사냥을 하는 꿈.

     

   호수에는 크레센도를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살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창공의 왕이라 불리는 와이번은 나름대로 최상위 포식자에 가까웠다.

   게다가 오랜 세월을 살며 격이 오르니 겉으로 보기에는 드래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녀석을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더 이상 없어진 것이다.

     

   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잘 수 있는 삶.

   애초에 호수에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었으니 그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냠!」

     

   녀석은 저장해 둔 물고기와 어패류를 먹으며 여가생활을 유유자적 즐겼다.

   최근에 화리라고 불리는 이상하게 따뜻한 물고기와 자패라고 불리는 차가운 조개를 새로운 별미로 발견한 상황이라 그것 또한 즐거웠다.

     

   하지만.

     

   쿠구구……

     

   「응?」

     

   녀석은 식사를 하는 와중에 호수가 흔들린다는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물속이었기에 흔들려 봐야 호수 바닥에서 자라고 있는 수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것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밖에 무슨 일이 있나?」

     

   크레센도는 잔뜩 웅크리고 있던 날개를 파닥거리며 수영하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지만 밖의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와이번인 자신의 영역이라 감히 몬스터들이 다가올 엄두도 못 내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것 또한 혹시 모를 일.

   지난번처럼 인간들이 찾아왔을지도 모르고 그걸 보고 오크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를……

     

   「……어?」

     

   갑작스러운 기억에 크레센도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인간의 몸. 호수에서 오래 살다 보니 언제부턴가 그냥 의태가 가능하게 된 인간형의 모습이었다.

     

   쏴아아-!

     

   「어어…어?!」

     

   언제부턴가 밑바닥이 사라진 호수의 심연이 크레센도의 시야를 장악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과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공포.

     

   본체가 아닌 인간의 모습은 생각보다 컨트롤이 어려웠고 녀석은 자신을 끌어당기는 무형의 기운에 호수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

     

   -으아아악!

     

   그렇게 크레센도가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첫 광경은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이었다.

     

   -……나 기절했던 거야?

     

   하늘에서부터 수직으로 떨어지며 마왕에게 공격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돌진을 했던 기억까지는 있었다.

   하지만 마왕이 크레센도의 비늘을 잡고 돌바닥에 내동댕이쳤던 기억은 옆구리에 뜯어진 두 가닥의 비늘을 보지 못했다면 평생 기억하지 못할 뻔했다.

     

   -힝, 아파……

     

   피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피부가 갈라진 것처럼 계속해서 따끔따끔했다.

   자세히 보니 웬만한 광물과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튼튼한 비늘 두 가닥이 속절없이 뜯어져 있었다.

     

   애초에 그런 방어 수단이 온몸을 도배하고 있었기에 다쳐본 적도 거의 없는 몸. 그러니 녀석이 엄살을 떠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녀석이 비늘이 떨어진 자리가 신경 쓰이는지 입김을 후후 불며 고통을 달랜다.

   그러던 중, 녀석의 눈앞에 평생 본 적 없었던 낯선 무언가가 공중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띠링.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임무가 도착했다는 말.

   글자라는 것을 배워 본 적도 없었고 배우려고 해 본 적도 없던 녀석이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읽어졌다.

     

   —

   『마왕 후보』

     

   주제 : 증명

   난이도 : ?

     

   설명 : 5층을 지배하던 마왕이 모종의 이유로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그래서 5층을 관리하던 한 성좌는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마왕의 후보를 찾고자 합니다.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자신을 증명하십시오. 생존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신은 마왕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임무 : 생존 / 마왕성의 침입자 처단 [308/308]

   제한 : 마왕성에 있던 몬스터

     

   보상 : 격의 상승 / 마왕의 자리

   – 생존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해집니다.

   – 플레이어를 죽일수록 강해집니다.

   (※ 단, 임무를 수락하는 경우에 도중에 사망해도 모든 플레이어가 떠난 뒤, 다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실패 페널티 : 성좌가 내렸던 ‘권능’을 상실합니다.

   —

     

   몇 번을 거듭 읽어봐도 이상한 내용이었다.

   플레이어들과 굳이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누군가의 메시지.

     

   그리고 그들을 죽이고 오래 살아남을수록 강한 힘을 얻고 이른바 ‘마왕’이라는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가 복잡하게도 적혀있었다.

     

   -……

     

   크레센도는 그래도 혹시나 자신이 빼먹은 내용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메시지를 다시 정독했다. 그 이유는.

     

   -이딴 걸 왜 해?

     

   녀석의 기준으로 이 임무를 받아들여 이득이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그런 괴물하고 싸우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녀석의 머리를 스쳐 가는 한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강한 인간.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존재도 감히 그 인간의 집요함과 강함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마왕?

     

   크레센도는 이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보낸 누군가에게 개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자신을 메쳐서 바닥에 내리꽂아 버린 그 시꺼먼 놈도 절대 김시인이라는 그 괴물을 이길 수는 없다.

     

   탑의 꼭대기에 구멍을 뚫을 때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전력(全力).

   크레센도가 마왕을 오래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김시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띠링.

     

   크레센도가 임무를 수락하지 않으니 거슬리는 알림이 다시 한 번 들려온다.

     

   -거절할래 나는.

     

   [임무를 거절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임무의 거절은 실패로 간주됩니다. 정말 거절하시겠습니까?]

     

   -응

     

   [임무를 거절하셨습니다.]

     

   [탑의 5층에 내려진 ‘불멸의 권능’을 잃었습니다.]

   [앞으로 사망하게 된다면 그것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삶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5층을 지배하던 성좌의 영향력을 벗어납니다.]

   [앞으로 성좌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돌보십시오.]

     

   [당신은……

     

   눈앞에 떠오르는 무수한 메시지에 크레센도는 손을 내저으며 그것들을 이리저리 치워 버렸다.

     

   애초에 불사불멸 따위를 기대하며 살던 삶이 아니었다.

   게다가 성좌라는 작자는 지금까지 도대체 뭘 해준 게 있다고 이제 와서 생색을 이렇게까지 내는 건가 싶기도 하다.

     

   -죽을 때 되면 죽는 거지…… 뭘 새삼스럽게.

     

   녀석의 기준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저주였다.

   그저 아픈 것이 싫고 싸우는 게 싫어서 조용히 살던 삶.

     

   만약 크레센도가 강해지는 것을 바랐고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기를 바랐다면 마왕성 옆에 있는 호수에 짱박혀서 쥐 죽은 듯이 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체 상태로 기절했던 덕에 현재 크레센도의 눈에는 들판의 상황들이 훨씬 구체적으로 잘 들어오는 중이었다.

     

   어마어마한 화기(火氣)가 들판의 한 면을 시원하게 덮어 버린다.

   김시인과 잠시 대치를 했을 때, ‘이건 맞으면 진짜 아프겠다.’ 싶어서 항복을 하게 만든 그 불꽃.

     

   -쯧쯧. 바보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크레센도는 플레이어들에게 덤비는 몬스터들을 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

     

   화아아악!!!

     

   몸에서 쇠를 녹일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화기가 피어올랐다.

   땅에서 자연발화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한가민이 질겁하며 짧게 신음을 흘렸다.

     

   “아니, 이게 무슨……”

   “앗 뜨거!”

     

   옆에 있던 토끼가 호들갑을 떨며 후다닥 뒷걸음질 친다.

   과하게 방정맞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찰나, 한가민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보니 지금 나의 상태가 생각보다 위협적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격이 올라서 강해진 건가?’

     

   마왕을 이긴 이후에 뭔가 몸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몸도 가벼워진 것 같았고 마왕을 상대하며 소모했던 마력에 대한 피로 또한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확실히 힘을 써 보기 전에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5층의 마왕을 쓰러뜨렸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강해졌을 거라는 것도 우스웠으니 말이다.

     

   “천호 씨!”

   “예!”

     

   나의 외침에 이곳으로 전력질주를 하던 남궁천호가 빠르게 수인을 맺기 시작한다.

   바람 한 점 없던 들판에 불기 시작하는 작은 산들바람. 이윽고 그 바람이 플레이어들이 있던 바닥을 강하게 밀어내며 사람들의 장거리 도약을 성공시켰다.

     

   “흐읍!”

     

   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친 것을 본 뒤, 천천히 검을 들었다.

   무명검의 검신이 마력을 받아 붉다 못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하자 나의 주변으로도 뜨거운 기운이 뿜어진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검을 뒤로 당겼다.

     

   마력이 압축되기 시작하자 묵직해지는 검.

   

   공기가 불탄다.

   땅이 타오르고 나의 발아래에 둥근 모양의 오라가 피어오르며 마치 불구덩이에 들어온 것만 같은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광역기는 이거지…!”

     

   나는 박조철과 그 일행들이 모두 나의 뒤로 물러선 것을 확인한 후, 검을 힘껏 밀며 익숙한 초식을 펼쳤다.

     

   남해삼십육검 제일식

   격랑수검 激浪水劍

     

   무림에서 보고 겪었던 무공 중에서 가장 넓은 범위를 집어삼킬 수 있는 기술.

   나의 검에서 뿜어진 시뻘건 불꽃이 해안가의 파도마냥 거칠게 퍼지기 시작한다.

     

   화르르륵!!!

     

   나의 일검에 맞은 최전방의 고블린과 오크들이 까맣게 불타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였을 뿐. 사천 마리에 달하는 모든 괴물을 집어삼키기에 한 번의 검은 아쉬운 감이 있었다.

     

   남해삼십육검 제이식

   파랑격류검 波浪激流劍

     

   그렇게 이어진 두 번째 초식.

   처음 피어오른 초식의 뒤를 쫓던 불의 파도는 격랑수검 보다 한 층 더 높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쿠에엑!

   -쿠워어어억!!!

     

   불의 파도를 겨우 버텨 낸 오우거와 싸이클롭스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거대한 장벽에 잡아먹힌다.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어 버린 몬스터 군단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플레이어들은 호기심에 괴물들이 쓸려가는 광경을 구경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지만 감히 고개를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에라도 녹아버릴 것 같은 열기.

   등 뒤로 느껴지는 기운만 해도 이 지경인데, 직접 그것을 목도한다면 눈에 타격을 입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검은 끝나지 않았다.

     

   -키에에엑!

   -피르르륵!

     

   와이번과 하피. 그 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괴물들이 날아오던 방향을 그대로 선회하며 도주를 선택했다.

     

   철컥.

     

   나는 검을 검집에 넣으며 살며시 오른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월광검법 제사식 月光劍法 第四式

     

   문뜩 마력을 이해한 이후로 이렇게 마구잡이로 무공을 펼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싶다.

   단언컨대 나는 늘 생존을 위해 늘 힘을 비축했었고 모든 길에서 최선을 찾기 위해 수십, 수백 가지 방법 모색했었다.

     

   ‘살고 싶었으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목숨을 걸고 함께 탑을 오르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고 그 이전에 꾸역꾸역 버티기만 했던 삶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았다.

     

   반월참 半月斬

     

   차아앙!

     

   하늘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던 와이번들.

   어느 순간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이 놈들을 향해 있다.

     

   나의 몸에 압축되어 있던 마력이 양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늘 아래 거대한 반월을 그린다.

     

   “우와아아……”

   “이게……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의 옆으로 다가온 토끼가 불타오르는 하늘을 보며 침음했고 그 뒤를 따라 고개를 든 플레이어들이 터무니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시원하다.

     

   들판에는 이미 열기가 가득했지만 나의 속은 마치 모든 울분을 검에 담아 하늘에 터트린 것처럼 개운했다.

     

   “그래…”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하늘을 장악한 붉은 달 아래.

     

   열화의 호흡을 품 안에 정리해 넣으며 뻗었던 나의 검을 갈무리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오늘 조회수가 많이 올라서 뭔가 했는데 노벨픽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글 맛이 잘 맞으신 독자님들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작품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집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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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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