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1

       ​

        허창(許昌).

        ​

        한때 후한의 수도였던 곳.

        ​

        하남의 중심에 가깝게 위치한 도시이며, 상업이 발달한 도시.

        ​

        “허창은 물류가 모이는 도시라 물가가 높기로 유명하다던데.”

        ​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그래서 하루 묵어가기도 어려운 곳이라고…”

        ​

        돈이 없지는 않은데…

        ​

        거의 보름가량을 이곳에서 묵으면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겠네.

        ​

        “좋은 객잔에 들어가기는 힘들겠군.”

        ​

        “그래도 외곽으로 가면 저렴한 곳이 있지 않을까요?”

        ​

        “이런 도시는 외곽도 비싸.”

        ​

        혜령이의 말대로 외곽에 있는 객잔을 찾는 게 좋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물가라는 게 한 도시에서 어딘 싸고 어딘 비싸고 할 수가 없지.

        ​

        그래도 무한만큼 물가가 비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수백 년 전이면 모를까, 지금의 허창은 옛날의 유명세에 비하면 다소 빛이 바랜 도시였으니까.

        ​

        “일단 내려가자. 허창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야 할 테니. 묵을 곳은…상황에 따라선 방 두 개를 잡는 건 어렵겠군.”

        ​

        의도한 건 아니지만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

        여기가 어디냐.

        ​

        바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기원전부터 튀어나온 중원 아닌가. 부부가 아닌 이상에야 남녀가 같은 방을 쓰면 말이 나오는 법.

        ​

        이런 걸 지적할 만하건만, 혜령이는 같은 방을 쓴다는 말에 기대감에 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

        “아저씨…”

        ​

        “무슨 생각은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러지 마라. 아직은 일러.”

        ​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일을 치를 생각은 없다. 재수 없으면 미망인 하나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

        내가 전쟁터에서 남편 잃은 여자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니 그런 일을 섣불리 벌일 수는 없었다.

        ​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확신하는 것은 그저 오만함일 뿐이니.

        ​

        “알았어요.”

        ​

        “응석 부리는 정도라면 괜찮지만 그 이상은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면…알았지?”

       

        “…저도 있습니다.”

        ​

        “그래.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니…”

        ​

        그렇다고 목경이 째려보진 말고. 목경이도 어색해하잖아. 나는 혜령이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주곤 허창을 향해 나아갔다.

        ​

        최대한 이른 시간에 도착해야 숙소를 구할 수 있을 테니.

        ​

        “자, 가자.”

        ​

        두 사람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나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사람이 엄청 많아요!”

        ​

        “하남의 물류가 모이는 곳이니까.”

        ​

        “무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적은 걸 보니, 이 근처에는 무가가 없는 모양입니다.”

        ​

        목경이의 말대로, 길거리에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무림인이 이곳에 올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인가.

        ​

        보이는 무인들도 대부분 상인의 호위무사들뿐이니, 우리 같은 무인은 이곳에 올 일이 별로 없다고 봐야 했다.

        ​

        “…여기 물가가 일반적인 무림인은 못 견뎌.”

        ​

        우리는 이런저런 일로 평범한 무림인치고는 부유한 편에 속하지만, 무림인이라는 게 유명한 세가의 자식이나 상가의 자식이 아니면 돈이 많을 수가 없는 직업.

        ​

        세가의 경우도 지방 호족 출신이라 지주 노릇으로 돈을 벌든가, 아니면 아예 상단을 만들어서 그걸로 돈을 벌든가.

        ​

        아니면 구파일방처럼 기부금을 받든가.

        ​

        그래서 오대세가를 제외하면 정파가 돈이 많은 집단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

        그래도 범죄자 출신이 많은 사파쪽이나 아예 자체적으로 신도를 굴려 없는 돈도 쥐어짜 내는 마교에 비하면 낫기는 하겠지.

        ​

        “저, 정말이네요. 여기 당호로가 무한보다 비싸요!”

        ​

        “그걸 당호로를 보고 확인하는 너도 정말 어지간하구나.”

        ​

        얼마나 단 음식에 미쳐있는 거야. 팽가에서 후식으로 내놓은 당과에도 눈을 빛내더니.

        ​

        “하지만 당호로는 맛있단 말이에요.”

        ​

        “알았으니까 일단 움직이자.”

        ​

        “네에~”

        ​

        우리는 계속해서 허창 시내를 돌아다녔다. 아쉬운 점은 그렇게 돌아다니는 동안 사람이 붐비지 않는 객잔은 찾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

        그나마도 건물 외관이 화려한 게 노골적으로 부유한 사람만 받겠다는 의도가 엿보여서 우리는 점점 더 외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은공. 이대로 잘 곳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

        “맞아요. 우리 노숙해야 하는 거 아니겠죠?”

       

        “글쎄.”

        ​

        나는 푹 눌러쓴 삿갓을 만지작거렸다.

        ​

        내 생각이 맞고 일이 잘 처리됐다면, 이렇게 돌아다니기만 하는 게 제일 좋은 숙소를 구하는 방법일 텐데.

        ​

        그렇게 생각한 찰나, 내 어깨에 왜소한 몸집의 남성이 살짝 부딪혔다.

        ​

        “아이고 나으리. 죄송합니다. 쇤네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자연스럽게 잡힌 손바닥. 손바닥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

        “아이고, 나으리…감사합니다.”

        ​

        남성은 곧 인파에 섞여 사라졌다. 나는 그 상태로 인적이 드문 곧까지 이동한 다음, 조심스럽게 남성이 건넨 쪽지를 열어보았다.

        ​

        “시로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거든 죽어도 쉬지 아니하리로다(語不驚人死不休)…라. 뭔소리야?”

        ​

        시인가?

        ​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목경이가 쪽지의 내용을 해설해주었다.

        ​

        “두보의 시입니다.”

        ​

        “이 시랑 관련된 객잔을 찾으면 되는 건가.”

        ​

        “아마 자미(子美)라는 이름을 쓰고 있을 듯합니다. 호나 이름을 객잔의 이름으로 쓰기엔 꺼림칙하니 말입니다.”

        ​

        그런가?

        ​

        나는 이런 건 잘 모르니까 목경이 말을 따르면 되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으니, 혜령이가 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기며 물었다.

        ​

        “아저씨, 방금 그 사람은…”

        ​

        “하오문이야.”

        ​

        “하오문이요…?”

        ​

        하오문이라는 말에 혜령이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

        여기서 갑자기 하오문이 나오니 당황스럽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

        당장 무한지부에 있는 지부장이 하오문주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을 테고, 하오문이 내 이동 경로를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 허창에 오면 알아서 숙소를 제공할 거라는 추측이었다.

        ​

        …틀리면 아주 곤란해졌겠지만 맞았으니 된 게 아닐까.

        ​

        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자미라는 이름이 붙은 객잔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

        다행스럽게도 객잔은 쪽지를 몰래 받은 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중심부에 있는 화려한 객잔보다는 덜해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객잔이었다.

        ​

        적당히 눈에 띄지 않는 위치기도 하고.

        ​

        “여기서 묵는 거예요?”

        ​

        “좋은 객잔이군요.”

        ​

        “이래서 인맥이 중요한 거지.”

        ​

        사람이 많지만, 자리 몇 개 정도는 있는 객잔. 적당히 붐비는 객잔 구석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조용히 다가오는 점소이…가 아닌 객잔 주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을 쳐다보았다.

        ​

        그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

        “사자검협이십니까…?”

        ​

        “맞는데.”

        ​

        “안내를 받으신 모양입니다.”

        ​

        “아, 그렇지.”

        ​

        나는 쪽지를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그 쪽지를 확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

        “비용은 하오문주께서 내셨으니, 일이 벌어질 때까지 푹 쉬시면 됩니다.”

        ​

        “통이 크시군.”

        ​

        “고용하는 입장이지 않습니까. 귀한 분에게 대접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비밀리에 진행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좀 더 좋은 곳으로 모셨을 겁니다.”

        ​

        “이 정도면 충분해.”

        ​

        “다행입니다. 그럼 식사를 차려드릴 테니 드시고 나면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고맙게 받지.”

        ​

        “그럼…”

        ​

        객잔 주인이 떠나가고, 점소이가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

        하나같이 양도 질도 훌륭한 요리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

        ————————

        ​

        허창에서의 나날은 평온하게 흘러갔다.

        ​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외출을 삼가하는 것도 있었지만, 방 안에서 명상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얻은 경험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쓰느라 바쁜 것도 있었다.

        ​

        삼보검결.

        ​

        무한에서 하남까지 경공을 쓰며 얻은 시행착오.

        ​

        태허진인이 내린 가르침을 검술에 녹여내는 것.

        ​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작업이었기에, 필연적으로 방 구석에서 명상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니면 자미객잔 지하에 숨겨진 공간에서 애들과 비무를 하거나.

        ​

        “아저씨 너무 강해요!”

        ​

        “그야 경지 차이가 펭귄과 독수리만큼 벌어져 있으니 당연하지.”

        ​

        “그 펭귄이 뭔데 저한테 붙이는 거예요?!”

        ​

        사진이 있었다면 바로 보여줬을 텐데. 나는 팔을 파닥이며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혜령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

        “귀엽게 생긴 놈 있어.”

        ​

        “귀엽게…”

        ​

        얼굴 녹는 거 봐라. 

        ​

        나는 헤실거리는 혜령이를 내버려 두고 목경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

        “목경아. 다음은 너다.”

        ​

        “연전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

        “별로 안 힘드니까 괜찮다.”

        ​

        혜령이가 아무리 또래보다 실력이 좋다지만 기껏해야 일류. 요 근래 나와 비무를 하면서 실력이 꽤 좋아졌다지만 나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

        당장 혜령이 수준의 무인 백 명이 달려들어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게 초절정이니까. 괜히 무림에서 초절정의 무인들에게 거창한 별호를 달아주는 게 아니다.

        ​

        “혜령아. 저기 구석에 가서 웃고 있으렴.”

        ​

        “네!”

        ​

        혜령이는 산뜻한 걸음걸이로 구석으로 이동했다.

        ​

        나와 목경이는 비무를 시작할 환경이 갖춰지자 서로를 향해 포권을 했다.

        ​

        “한 수 배우겠습니다.”

        ​

        “한 수 가르쳐주지.”

        ​

        초절정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은 자와 넘지 못한 자.

        ​

        나와 목경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을 뽑아 들고 기수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생각해보니 이번 에피소드 주인공 일행 이동거리가 한반도 직선거리로 찍고오는 수준인게…?
    다음화 보기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