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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머릿속으로 릴리스의 기분을 풀어줄 방법을 조용히 생각해낸 에단.

         

        그런 그가 본격적인 행동에 옮기기 전 가장 먼저 한 것은, 같은 방을 쓰는 이사벨을 먼저 사용인실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아무리 지금 이사벨이 자신과 릴리스의 전속 메이드 위치를 맡고 있다고 한들, 그녀에게 두 사람의 ‘밤일’까지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이사벨.”

         

        “네, 도련님.”

         

        “릴리스의 기분은 내가 위로해줄 테니, 오늘은 일찍 방에 들어가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어떤가?”

         

        “…네?”

         

        “…그, 가능하면 사용인실 밖으로는 늦은 밤까지 나오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군.”

         

        “아….”

         

         

        오랜 메이드 생활 덕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빠른 것은 물론이고, 에단과 릴리스의 관계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으니.

         

        에단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어렴풋이 알아챈 그녀는 인사와 함께 사용인실로 들어갈 뿐이었다.

         

         

        “네, 도련님. 그럼 저는 지금부터 내일 아침 기상 시각까지 제 방에서 숙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사벨.”

         

        “부디, 릴리스와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철컥.

         

        “…….”

         

         

        취침 인사와 함께 조용히 먼저 사용인실로 들어가는 바닐라 색 머리의 메이드.

         

        마치 이후 자신이 하게 될 일을 들키게 된 것만 같아 부끄러워진 에단이었으나, 그와 별개로 눈치 좋은 이사벨에게는 적지 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 여전히 우울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릴리스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우울한 기분으로 쓰러져 있는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한 이 방법이 잘 먹힐지는 그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눈에 보였던 그 순간의 릴리스는 좀처럼 보지 못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만약 그것으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면 철없는 블랙우드 가문의 공자가 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자신의 이 행동으로 인해 릴리스에게 이전과 같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뿐.

         

        그렇기에 에단은 최대한 릴리스가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방식으로 그녀에게 허락을 받는 것부터 시작했다.

         

        릴리스의 우울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한 행동으로 인해 도리어 그녀가 자신에게 악감정을 갖게 되면, 기분을 풀어주기는커녕 상황만 더욱 나빠질 테니까.

         

         

        “릴리스.”

         

        “…아, 에단 도련님. 지금 주무실 예정입니까?”

         

        “아니, 잠보다도 중요한 이야기를 릴리스에게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서.”

         

        “네?”

         

         

        자신이 무슨 말을 할 건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그녀에게 에단은 긴장된 마음을 다잡았고.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은 릴리스를 향해 몸을 낮춰 바짝 엎드렸다.

         

         

        “에, 에단 도련님?!”

         

        “릴리스, 부탁할게!”

         

        “자, 잠시만요, 에단 도련님! 블랙우드 가문의 공자씩이나 되는 분이 전속 메이드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시면….”

         

        “이렇게 부탁할게, 릴리스! 오늘 밤에 딱 1분만 만지게 해줘!”

         

        “당장 일어나시……네?”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가슴을 만지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반문하는 릴리스의 반응.

         

        그리고 그녀의 그 반응이 경멸로 바뀌기까지는 수 초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정말 딱 1분이면 돼! 오늘 딱 한 번만….”

         

        “제정신입니까, 에단 도련님?”

         

        “그….”

         

        “…정말이지 실망했습니다. 제가 분명히 가슴을 만지게 해드리는 건, 에단 도련님께서 해럴드 주인님에게 한 판을 따내셨을 때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렸을 텐데요.”

         

        “…….”

         

        “아카데미에 온 지 2주일 만에 자제력이 없어지신 겁니까? 설마 에단 도련님께서 그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짐승이라고는…차마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릴리스의 차가운 경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으니.

         

        에단은 최대한 그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고 가슴을 만질 수 있도록 나름의 논리력을 설파했다.

         

         

        “두, 두 판을 따낼게!”

         

        “……네?”

         

        “다, 다음에 있을 아버지와의 대련에서, 총 두 판을 따겠다고!”

         

        “…두 판이요?”

         

        “릴리스가 내게 가슴을 만지게 해주는 조건이, 내가 아버지에게 한 판을 따낼 때마다 주는 거니까. 그리고 마법검술의 기초 수업을 듣다 보면 조만간 아버지와 대련할 기회가 생길 테니, 적어도 한 학기 동안 못해도 열 번 정도는 검을 나눌 기회가 생길 거고.”

         

        “…어디 한 번 계속 지껄, 아니, 계속 말씀해 보시죠.”

         

        “아직은 아버지와 대련할 기회가 없어서 판을 따내지 못했지만, 당장 다음 주부터는 매주 아버지와 대련을 붙을 날짜가 돌아올 거야. 그러니 앞으로 돌아오는 기간 동안 합산해서 두 판을 따낼 테니까. 지금 한 번만 만지게 해줘, 릴리스.”

         

        “…….”

         

         

        필사적인 설득을 한 후 다시 바닥에서 고개를 숙여 릴리스의 대답을 기다리는 에단.

         

        자신이 생각해도 억지스러운 요구라는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릴리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며 가슴을 만져주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으니.

         

        에단은 죄인이 된 심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릴리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반대로 릴리스는 침대 위에서 턱을 쓰다듬으며 나름의 계산에 들어간 상태였다.

         

         

        ‘한 판에 한 번씩 만지게 해주던 걸, 두 판에 한 번으로 요구하는 거니까, 딱히 손해 볼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에단 실력이라면 학기 도중 두 판 정도는 당연히 따낼 실력이기는 한데….’

         

         

        에단의 제안을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지금 만지게 해주는 것과 거절하는 것에 대한 손익 계산에 들어가 버린 릴리스였으니.

         

        어느새 다짜고짜 가슴을 만지게 해달라고 요구한 에단에게 가진 불쾌감은 어느새 뒷전이 되어버린 채, 냉정하게 자신의 이득을 계산하는 모습의 전속 메이드였고.

         

        바닥에 엎드려서 지금이라도 잘못 생각했다며 철회할지를 고민하는 에단에게 한 차례 질문을 건네었다.

         

         

        “…주인님에게 두 판을 따낼 자신은, 확실히 있으신 건가요?”

         

        “으, 응…! 당연하지!”

         

        “그렇다면 왜 판을 따고 제 가슴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굳이 배에 달하는 빚을 달하면서까지 지금 제 가슴을 만지겠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그건….”

         

         

        릴리스의 기분이 오늘따라 너무나도 우울한 것 같으니까, 그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만지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틀림없이 릴리스의 반감을 사게 될 터였으며, 애초에 만지게 해주겠다는 허락조차 해주지 않았을 것 같았기에.

         

        만약 그것으로 허락해준다면 자신이 가슴을 만져지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여자인 릴리스는 당연히 자신의 욕구를 은밀히 감춰낼 터였다.

         

        그로 인해 자신을 더욱 경멸하게 되리라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그런 그녀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에단은 조금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릴리스의 감정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저 자신이 만지고 싶어서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저, 정말로, 이제는 못 참을 것 같아서….”

         

        “네?”

         

        “저, 저택 안에서 다른 방을 쓰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 지금은 릴리스가 매일 같은 침대에서 같이 자고 깨는 상황이잖아. 게다가 한창 자는 도중에 잠버릇으로 내 몸에 붙어오기나 하고. 매일같이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

         

        “그래서 다음에 한 판을 따낼 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야….”

         

         

        거짓말. 그것도 약간의 진심이 섞인 거짓말을 통해 핑계를 만들어낸 에단.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생각난 내용을 뱉어낸 에단이었으나, 그는 자신이 그 말을 꺼내자마자 곧바로 후회했다.

         

        막상 입으로 내뱉고 나니 너무나도 한창때 남자아이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처럼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지금까지 릴리스의 앞에서 다른 부분에서만큼은 최대한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한 에단이었으나, 방금 자신이 한 행동은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추잡스러운 행동이었고.

         

        한층 머리가 차가워지고 나서야 에단은 자신이 방금까지 한 행동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여, 역시 안 되는구나?! 그, 그럼 그냥 없었던 일로 해도….”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요동치는 머릿속에서 릴리스에게 미움받지 않고 싶다는 감정이 다시금 그 크기를 키워나가고, 뒤늦게나마 자신이 꺼낸 추한 행위를 수습하려는 에단이었으나.

         

        여러 의미로 20대 초반 남자아이의 성욕을 잘 알고 있었던 릴리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히려 환멸이 아닌 긍정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두 판, 확실하게 따내셔야 합니다.”

         

        “…으, 으응?”

         

        “방금 에단 도련님의 입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해럴드 주인님에게 앞으로 두 판을 더 따낼 테니, 지금 저에게 가슴을 만지게 해달라고 요구하신 것 아닙니까?”

         

        “…그, 그렇지. 근데 릴리스가 기분 나쁘면 거절해도….”

         

        “…이번 한 번만입니다.”

         

        “……응?”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떨어진 릴리스의 허락에 에단이 순간 바보 같은 표정으로 되물었고.

         

        그런 에단을 향해 릴리스는 다시 한번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돌려줄 뿐이었다.

         

         

        “이번 한 번만이라고 했습니다, 에단 도련님. 만약 다음에도 욕구를 참지 못하고 만지게 해달라는 등의 말씀을 꺼내신다면, 그때는 단호하게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에단 도련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단 도련님 또한 한창때의 남성분이시니, 제가 매일 밤 옆자리에 잠들어 있다는 것에 흥분하시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니까요.”

         

        “…….”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유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한 번까지는 제가 에단 도련님의 갑작스러운 요구를 들어드리겠습니다만…. 다음부터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확실하게 배우셔야 하실 겁니다.”

         

        “고, 고마워, 릴리스.”

         

         

        비록 서로의 본심을 숨기느라 먼 길을 돌아오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가슴을 만지는 것을 허락해 준 릴리스였고.

         

        조금 갑작스러운 결과이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밤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본심을 숨기고, 상대의 본심을 착각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그 관계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이번 편을 꾸금으로 하려다가, 자연스러운 상황 조성을 위한 이야기를 넣다 보니 한 화를 더 소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음 편이 꾸금이고, 오늘은 연참입니다. 다음 편은 늘 올리던 대로 자정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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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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