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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고, 고양이···”

       

       정유나의 동공이 떨린다.

       그녀는 어째선지 고양이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내뱉었다.

       

       패닉에라도 빠진 건가.

       걱정이 드는 그때.

       한여름이 정유나의 등을 가볍게 내리쳤다.

       

       “정신 차려.”

       

       짝-!

       쓰라린 소리와 함께 정유나의 눈에 생기가 맴돌았다.

       고통이 그녀의 정신을 다잡아준 듯싶었다.

       

       “으, 응. 미안.”

       

       정유나가 살짝 찌푸린 얼굴로 등을 문질렀다.

       그녀의 고통이 내 등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안 아픈가.’

       

       내가 저거 맞았으면 바닥을 나뒹굴었을 텐데.

       혹시나 싶은 마음에 한여름과의 거리를 벌렸다.

       

       “제 등은 때리면 안 돼요···”

       

       “그, 그럼! 언니가 겨울이를 왜 때려!”

       

       “네. 제가 그냥 맞는 걸 싫어해 가지고···”

       

       내 말이 뭔가 이상했던 걸까.

       한여름이 윽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치, 세상에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방금은 언니가 실수했다.”

       

       한여름이 헤헤 웃으며 정유나의 등을 문질렀다.

       내가 쓸데없는 말로 한여름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준 걸지도 몰랐다.

       그녀가 착해서 참아준 거지, 다른 모험가였다면 그 자리에서 뒤통수를 맞았을 게 분명했다.

       나는 다급히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장난으로 때리는 건 괜찮아요.”

       

       “그, 그래? 장난도 싫지 않아?”

       

       “싫진 않아요. 사실 맞는 거보다 맞을 때 생기는 분위기가 싫은 거거든요.”

       

       “분위기라면···”

       

       꿀꺽 어디선가 침 넘기는 소리가 났다.

       누구의 침 삼키는 소리인진 알지 못했다.

       

       “괴롭히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있거든요. 눈초리라든가 그런 건 정말 견디기 힘들어서···”

       

       “아···”

       

       한여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어두운 주제를 꺼내버린 건가.

       가벼운 장난으로 분위기를 바꿔보기로 했다.

       

       “장난이라면 때려도 좋아요. 저 한번 때려볼래요?”

       

       “무, 뭐?!”

       

       “그냥 재미로···”

       

       장난을 치자는데 왜 저리 기겁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겨울아, 언니는 장난으로도 겨울이 안 때릴 거야.”

       

       “음··· 네···”

       

       본인이 그렇다면야 그런 거겠지.

       머쓱함에 손으로 꼬리를 빙빙 둘러 감았다.

       정유나가 입을 열어온 것이 그때였다.

       

       “겨울아, 아까 그거 겨울이 한테 한 말 아니다? 아주 못된 사람이 있어서 그랬어.”

       

       “네.”

       

       당연히 나한테 욕을 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장난을 쳐서 오해를 산듯싶었다.

       

       “되게 나쁜 사람이 있어서 조금 화가 났지 뭐야.”

       

       “엄청 나쁜 사람이었나 보네요.”

       

       “응. 엄청···”

       

       어색한 미소와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

       정유나와 한여름이 나를 보며 그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랑 연관이 있는 사람인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러는 거지?

       

       이유를 물어보려는 찰나에 채주연이 비틀거리며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한여름과 정유나의 몸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으나, 발소리와 특유의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끙··· 남은 기억은 조금만 쉬다가 볼까요, 아니면 내일 볼까요?”

       

       기억을 보다니.

       무슨 기억을 말하는 걸까.

       정유나의 몸 옆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무슨 기억이요?”

       

       “······!”

       

       내가 갑자기 튀어나와 놀랐는지, 채주연이 커피를 마시다 말고 콜록콜록 기침을 내뱉었다.

       뛰어난 모험가도 사레가 들리면 눈물이 나오는 구나.

       새로운 상식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요. 모험가 일로 할 말이 있었거든요.”

       

       “그렇군요.”

       

       “네, 네. 그렇죠.”

       

       무언가 횡설수설하던 채주연의 시선이 내 배를 향했다.

       반사적으로 배를 내려다보았지만, 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오늘따라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이상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러는 건지.

       뒤에서 조용히 있는 소피아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진짜 뭐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태도인데 안 알려준다.

       의문에 찬 꼬리만이 물음표를 띄울 뿐이었다.

       

       

       **

       

       

       내게는 공원의 연못을 관리해야 한다는 임무가 있었다.

       그 대가로 공짜 물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사실 관리라고 해보았자 별거 없었다.

       먼지를 비롯한 오염 물질은 아이템이 알아서 정화해 주었으니까.

       큼직한 쓰레기만 주우면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고등어를 잡아먹어야겠다.

       나는 쓰레기를 주우며 공원을 돌아다녔다.

       

       “왕아!”

       

       천막 근처 잔디밭 위에서 레비나스가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최강의 무덤’이라는 이명이 붙은 장소였다.

       별건 아니고, 보스 뿔토끼의 마석이 묻혀있는 장소였다.

       

       “레비나스 뭐해?”

       

       “최강의 뿔토끼님을 확인하러 왔다!”

       

       “그렇구나.”

       

       보스 뿔토끼의 마석을 묻은 이유는 별거 없었다.

       레비나스가 묻기를 원했던 탓이었다.

       귀중한 마석이었으나, 길드 사람들도 딱히 반발하지 않았다.

       

       “뿔토끼님이 잘 있는지 봐야겠다!”

       

       팍팍팍팍-!

       레비나스가 뿔토끼처럼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흙먼지에 눈을 질끈 감았다.

       

       “레, 레비나스 무덤은 함부로 파헤치면 안 되는 거야.”

       

       “뿔토끼님인데···?”

       

       나를 올려다본 레비나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모르겠다는 그 태도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음··· 뿔토끼님은 괜찮으려나···?”

       

       뿔토끼님은 뭔가 다른가?

       조금 전까지 상식의 부재를 논하던 나인지라 함부로 제지하기가 힘들었다.

       

       “응! 뿔토끼님은 괜찮다!”

       

       레비나스가 다시금 땅을 파기 시작했다.

       

       팍팍팍-!

       땅 파는 속도만큼은 가히 길드의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레비나스의 식물 성장 능력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레비나스가 땅 속성인가?’

       

       땅을 잘 파고 식물도 잘 키운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나중에 한번 길드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레비나스가 대뜸 땅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찾았다!”

       

       그녀가 땅속에서 꺼낸 보스 뿔토끼의 마석이었다.

       희고 투명한 마석에서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응?’

       

       보스 뿔토끼의 마석은 마나를 완벽히 차단하는데, 왜 저리 영롱한 기운이 새어나오는 거지?

       조심스레 마석을 향해 다가가는 순간, 마석에서 빛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불길한 빛이 아닌, 천사가 강림하는듯한 찬란한 빛줄기였다.

       

       “으앗!”

       

       환한 빛무리에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레비나스를 향해 달려들어야 하나 고민했으나,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절대로 불길한 기운은 아니었으니까.

       악령의 마석을 만져본 적이 있는지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우아아아!”

       

       레비나스의 감격 어린 비명과 포근하게 감싸주는 빛무리의 마력.

       모든 끝난 후에 빛을 잃어버린 마석과 레비나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 레비나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빛무리로 찌푸려진 미간을 뜨고 레비나스의 상태를 살폈다.

       

       “우아?”

       

       다행스럽게도 레비나스는 평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 한가지 하얀 ‘뿔’을 제외하고는.

       

       “레비나스, 뿔이 자랐는데···?”

       

       길고 뾰족한 뿔이 성인 남성 손가락보다 컸다.

       내 배를 꿰뚫었던 뿔토끼의 뿔보다 날카로웠다.

       

       “보스 뿔토끼님이 레비나스에게 은혜를 내렸다···!”

       

       “은혜야?”

       

       “응! 레비나스의 뿔이 커졌다! 레비나스는 이제 굉장한 뿔토끼야!”

       

       굉장한 뿔토끼라니.

       뭔가 굉장해 보이긴 했다.

       문제는 뿔이 커진 만큼 다양한 골칫거리들이 생긴다는 거였다.

       

       “레비나스 뿔 다시 작게 못해?”

       

       “왜 작게 하냐?! 레비나스는 뿔 큰 게 좋다!”

       

       “응. 뿔 크면 멋있긴 한데, 안기는 걸 못 하잖아.”

       

       품에 얼굴을 파묻어 안기는 걸 좋아하는 레비나스였다.

       그러나 지금의 뿔 크기로는 도무지 안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함부로 안겼다간 큰 뿔로 배를 꿰뚫고 말 테지.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몸이 으슬거렸다.

       

       “헉···!”

       

       레비나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손끝으로 제 뿔을 콕콕 눌러보더니,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어, 어떡하냐? 레비나스 이제 큰 뿔 싫다···!”

       

       “작게 하는 법 몰라?”

       

       “모른다! 왕아! 레비나스 살려주라!”

       

       포옹이 안 되는 게 살려달라고 할 정도인가.

       확실히, 레비나스한테는 인생의 전부가 걸린 큰일이기는 했다.

       

       “레비나스 뿔을 작게 만든다고 생각해 봐.”

       

       “작게?”

       

       “응. 저번에도 뿔이 막 작아지고 뭉툭해지고 하던데.”

       

       “그, 그랬냐?”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인가.

       그래도 지금 기댈 수 있는 건 레비나스의 조절 능력밖에 없었다.

       레비나스도 이를 깨달았는지 기도하듯 손깍지를 끼고 눈을 꼭 감았다.

       

       “뿔이 작아지는 상상을 해봐.”

       

       “작아지는 상상!”

       

       “아니면 에너지를 막 뿜어내서 기운이 다한 뿔을 상상해 보거나.”

       

       “기운이 빠지는 상상!”

       

       레비나스의 고운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녀의 손등을 붙잡아 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 별것 아닌 붙잡음이 도움이 되었을까?

       

       화아악-!

       

       레비나스의 뿔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아아!”

       

       “으악.”

       

       레비나스의 뿔에서 빛과 함께 마나가 흘러나왔다.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따듯한 마나였다.

       

       대체 레비나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눈을 감으며 마나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십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

       마나가 전부 빠져나가고, 레비나스의 뿔이 작아졌다.

       

       “왕아, 방금 뭐였냐···?”

       

       “그, 글쎄···?”

       

       원래대로 돌아온 레비나스의 뿔에 안도하다가, 이질적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천막 옆에 심어놓은 당근이 커졌다.

       크기가 얼만했냐면, 줄기 부분이 천막의 천장보다 높이 올라가 있을 정도였다.

       

       “허어어억!”

       

       레비나스가 경악을 내뱉었다.

       소름이 돋았는지 귀의 털이 삐죽삐죽 솟아올라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거대한 당근… 줄여서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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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P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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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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