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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기억이라는 것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이어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보다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종류, 그 기억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자기 인생에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일수록 쉽게 잊을 수 없는 거겠지.

        

       이 아이들에게는 내가 그런 위치에 있는 거겠지.

        

       이야기가 길어지고, 계속 로비에만 있기에는 조금 그래서, 우리는 모두 건물의 식당으로 몰려갔다.

        

       식당에서는 다른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드문드문 식사하고 있었다. 그래도 장소가 꽤 넓어서, 우리가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도 그 사람들을 쫓아낼 필요는 없었다.

        

       이쪽을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어도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는 있는 모양인지 억지로 참견하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교육을 잘 받고 자란 사람들이라는 소리겠지.

        

       그 사람들이 일어나려는 것을 클레어가 손짓으로 막았다. 우리는 서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식당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고도 한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나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듯,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고아원에서 교육받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레이스 가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을 선별하고…… 물론 그중에 단 한 사람도 그레이스 가를 벗어나려고 생각했던 아이는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그런 곳에서 보냈기에, 이렇게 얼어 죽을 일 없이, 굶어 죽을 일 없이, 누구한테 맞지도 않고 살 수 있는 장소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렇게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서, 아이들은 눈에 조금씩 기대감 어린 시선을 담아 나를 보았다.

        

       아마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음.

        

       미안하지만, 당장은 들려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그저 입을 다문 채 아이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을 뿐이었다.

        

       내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지기라도 했을까. 아니면 아이들의 그 이야깃거리도 계속해서 퍼내다 보니 바닥을 보이게 된 것일까.

        

       이야기 소리는 시간일 갈수록 서서히 줄어들어서,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 때쯤에는 우리 사이에서도 오갈 만한 이야기가 완전히 떨어져 버렸다.

        

       “…….”

        

       “…….”

        

       잠깐 침묵이 흘렀다.

        

       앨리스는 어째서인지 내 눈치를 보고 있었고, 클레어도 내가 무슨 말을 꺼내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내 앞에서 솔직하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 아이들에게, 나도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사실은 탈출하던 때, 너희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너희들에게 나의 음식을 나누어주었던 건 앞으로 길게 살지 못할 아이들에게 보일 수 있었던 값싼 동정이었다는 말을, 나는 나를 은인으로 생각하는 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을까.

        

       …….

        

       아니, 당연히 그렇게는 못 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아주 잠깐 이어진 침묵 끝에,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

        

       다니엘이었다.

        

       식당에서 들리는 소음이라고는 아이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나던 부스럭거리는 소리, 작은 숨소리, 그리고 부엌 쪽에서 조금씩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래서 딱 한 마디긴 했지만 다니엘이 꺼낸 말소리는 매우 크게 들렸다. 평소라면 자칫 못 들었을 작은 소리였는데도.

        

       자기 쪽으로 시선이 한 번에 확 몰리자, 다니엘은 당황한 듯 보였다. 얼굴이 금방 붉게 물들었다.

        

       아직 집사로서의 교육이 조금은 부족한 모양이다. 집사정도 되는 사람이 표정이 저렇게 쉽게 드러나서는 안될 텐데.

        

       하긴 다니엘은 아직 어렸으니까. 지금 일하시는 분도 그렇게 금방 그만두실 것 같지도 않고. 배울 시간이야 많을 것이다.

        

       ……혹시라도, 전쟁이 터져서 전장에 총알받이로 끌려가지만 않는다면.

        

       “한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다니엘은 곧 용기를 되찾고 그렇게 물었다. 여전히 얼굴은 조금 붉었고, 눈은 떨리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궁금한 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다니엘에게서 나에게로 다시 옮겨왔다.

        

       아직 질문을 듣지는 못했지만, 내가 대답해줄지 무척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 물어보십시오.”

        

       너무 민감한 문제라면 대답해주지 못하겠지만,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 버리면…… 내가 이 아이들을 다시 만난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답했다.

        

       그래도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대답해주고 싶었으니까.

        

       “……혹시, 그 머리카락은,”

        

       다니엘은 말하다가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처음부터, 그렇게 짧으셨습니까?”

        

       아이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애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머리카락이 무척 길었을 거다. 고아원에 있을 때는 머리카락을 자를만한 도구 자체가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 노파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긴 쪽이 낫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팔려나간 다음 마음껏 머리 모양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소유주의 마음에 따라서.

        

       “어린 시절에는, 길었습니다.”

        

       황궁에서 지내게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을 짧게 정리해버리긴 했지만.

        

       “혹시, 어째서 자른 것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불편했다.

        

       포니테일을 할까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아침마다 일어나 씻은 뒤 머리를 묶는다는 행위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머리가 길면 그만큼 마르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저는 활동적인 일을 많이 하니까요.”

        

       “아…….”

        

       그것보다 더 깊은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나의 담백한 대답에 다니엘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나는 괜히 손을 들어서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아침마다 만지는 머리카락이었지만, 정말 내 머리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었다.

        

       “기르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까?”

        

       내가 다니엘에게 그렇게 물어보자, 다니엘의 붉어졌던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다니엘은,

        

       “지, 지금도……”

        

       하고 웅얼웅얼 대답했다. 뒷부분은 목소리가 뭉개져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 어울린다는 대답이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황녀한테 ‘그 머리 안 어울리니까 바꿔보세요’하고 할 사람도 얼마 없기는 하지만.

        

       *

        

       편지에 쓰여있었던 말대로, 그레이스 영지는 평화롭고 좋은 곳이었다. 바쁜 도시 한가운데서 아주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와도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멀리서 소음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중간에 차단막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여름의 습한 공기를 뚫고 들어오는 소음들은 다른 세상의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아니면 내가 기억하고 있던 아이들이 여기서 그대로 다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내 멋대로 마음을 놓아 버린 것일 수도 있고.

        

       “머리카락.”

        

       잔디밭이 보이는 그늘진 곳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그 초록빛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옆에 있던 앨리스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앨리스는 여전히 앞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길러볼 생각이야?”

        

       “……글쎄요.”

        

       “긴 머리도 언니한테는 어울릴 것 같은데.”

        

       앨리스의 반대 방향에서 클레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길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넓게 펼쳐진 시선의 끝에 붉은 벽돌 건물이 몇 개나 보였다. 그레이스 영지 바깥쪽에선 여전히 도시가 공장처럼 철컥철컥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래,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긴 머리카락을 기르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적어도, 지금 내 양옆에 있는 아이들이나—

        

       내가 좋아했던 모든 등장인물이 본편 완결 시점에서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그리고, 여기서 지내고 있는, 내가 충동적으로 구해낸 그 아이들도 모두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내가 더 시간을 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한 다음에, 천천히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기껏 길게 길러놨는데, 시간을 돌리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기르게 되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으니까.

        

       “언제 언니가 머리카락을 기르게 되면, 내가 예쁘게 묶는 방법을 알려줄게.”

        

       매일 포니테일을 하고 다니며 머리 묶는 달인이 되어버린 클레어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실비아는 그냥 생머리가 나아. 예쁜 머릿결을 굳이 묶어서 상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

        

       앨리스가 반박했다.

        

       “언니는 뛰어다닐 일이 많으니까—”

        

       “오히려 황녀답게 기품있는 머리를—”

        

       두 사람은 곧 나를 가운데 둔 채로 티격태격 말싸움하기 시작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우는 게 꼭 자매 같네.

        

       언젠가, ‘그땐 그랬었지’ 하면서 이날을 다시 기억할 날이 오게 될까.

        

       ……그렇게 되도록 노력은 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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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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