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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오늘만 있는 특별한 기회!”

         

       파스텔은 학생회실 한복판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파스텔과 경매 입찰 갈 사람~!”

         

       손! 손!

         

       “일단 나부터! 내가 파스텔인데 파스텔이 빠지면 안 되는 거니까!”

         

       아직 자리가 어색한지 학생회실에 도착해 본인의 책상부터 정리하던 멜리사가 바라봤다.

         

       “놀러 가는 게 아니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만 파스텔과 함께 가는데 놀러 가는 기분이 들지 않을 리 없잖아! 나는 충분히 이해해! 일만 제대로 하면 되지!

       “대단한 자신감.”

         

       멜리사 옆자리의 은발 소녀가 중얼거렸다.

         

       오잉.

         

       “앨시어는 그런 마음이 안 들 거 같아?”

       “응.”

         

       생각할 필요도 없는지 즉답이었다.

         

       “그럼 잘 됐다!”

         

       파스텔은 손뼉을 짝 치며 얼굴이 환해졌다. 후다닥 다가가 앨시어의 팔을 잡고 번쩍 들었다.

         

       “손! 손! 와아, 앨시어가 손을 들었어! 앨시어 당첨!”

       “응? 내가 든 거야?”

         

       앨시어가 다소 당혹스러워했다.

         

       “응! 들었으니까 든 거야! 같이 입찰하러 가자! 사실 일하는 건데 놀러 가는 기분이 들면 좋은 게 아니니까!”

         

       조용히 녹차를 마시며 멍한 정신을 다스리던 엘리가 힐끔 봤다. 그러더니 작게 혼잣말했다.

         

       “또 앞말과 뒷말이 달라.”

         

       파스텔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엘리가 녹차에 동동 떠다니는 잎을 관찰했다. 일은 잠시 미루고 정신 힐링에 열중하는 태도였다.

         

       대신 더스틴이 대답해 줬다.

         

       “또 앞말과 뒷말이 다르다는대.”

         

       엘리가 더스틴을 보더니 한심해했다.

         

       “괜히 끼어들지 말고 일이나 해.”

         

       더스틴이 어리둥절해했다.

         

       “나 뭐 잘못했어?”

       “그건 모르겠지만, 아마도 더스틴이 잘못한 게 맞는 거 같아!”

         

       응응!

         

       “파스텔 너 은근히 나한테 박한 거 알아?”

         

       더스틴이 억울해했다.

         

       하지만 파스텔은 인생 대부분이 억울한 상태였기 때문에 딱히 공감해 주지 않았다.

         

       입학시험 때 대결과 승패 불복 같이 반년 넘게 지난 일로 아직도 뒤끝이 있다던가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착한 파스텔은 친구에게 뒤끝이 있다거나 하지 않아!

         

       선 넘는 행동을 너무 쉽게 용서해 주면 얕잡히고 인기인으로서 공격당하기 쉽다는 계산이 있지도 않아!

         

       누가 봐도 학생회의 청일점인 더스틴이 인기인 파스텔과 너무 친하게 지내면 골목에 끌려가기 딱 좋다는 걸 알아서 적당히 배려해 주는 거라구.

         

       “음, 완벽해.”

         

       멜리사가 잉크통을 정밀하게 수평으로 위치시키더니 자리 정리를 마쳤다.

         

       “백작님과 협상은 잘하고 오셨나요? 경매 담합이 명예로운 행동은 아니지만요.”

       “당연! 당연!”

         

       파스텔은 손가락으로 브이~ 했다.

         

       “상인의 도리가 담긴 명예로운 비밀 계약을 마치고 왔어!”

         

       그것뿐만 아니라 크래프트 상단에 대한 투자 얘기도 있었는데 이건 학생회 업무라고 하긴 애매하니까!

         

       멜리사가 다소 꺼림칙해했다.

         

       “비밀 계약도 명예로운 행동은 아니지만요. 파스텔 당신이 말하는 방식대로라면 불명예가 두 배예요.”

         

       강조하듯 멜리사의 두 손가락이 펼쳐졌다.

         

       허억.

         

       불명예가 두 배.

         

       분홍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그럼 불불명예명예인 거야? 화르륵화르륵 명예명예! 화르륵 친구는 다 타면 전부 날아가니 남은 건 명예명예네!”

         

       우왕.

         

       명예로운 파스텔.

         

       “왜 그게 그렇게 되나요.”

         

       멜리사가 어이없어했다.

         

       녹차를 다 마신 엘리가 잔을 정리했다.

         

       “명예롭건 명예롭지 않건 이제 일하자. 오늘 오전 동안 경매 담합에 제국은행이 감정적으로 불복했을 경우를 검토할 거야.”

       “어떤 부분인가요?”

       “천재지변이 있을 시 주관사와 입찰인들의 합의 하에 경매를 미루거나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하는 시나리오.”

         

       엘리가 준비한 문서를 나눠줬다.

         

       “제국은행이 낙찰된 매물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버티는 거지. 천재지변이 있으니 경매를 취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천재지변의 유무는 법정에서 가려야 할 테고, 그러면 재판 동안 부도된 상단이 주인 없이 붕 뜨며 보유 자산이 점점 망가지게 될 거야. 철도 상단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기 전에 정상화해야 하는 우리로선 낙찰가와 별개로 제국은행에게 적당한 값을 줘야겠지.”

       “담합한 저희도 잘한 건 아니지만 그건 너무 치졸한 대응 아닌가요? 정말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요?”

       “대귀족 상대로 안 그럴 거라 확인하긴 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검토는 필요한 사안이라 생각했어. 그렇지, 파스텔?”

       “응! 적극 공감! 열심히들 일해!”

         

       파스텔은 자기 자기로 쫑쫑 걸어갔다.

         

       너는 일하냐는 의미가 담긴 시선이 쏠렸지만 모른 척하고 종이를 꺼냈다.

         

       종이종이~.

         

       종이가 착착 접혀 비행기가 됐다.

         

       파스텔은 종이비행기를 들어 올렸다.

         

       “종이비행기~!”

         

       숙련된 조종사는 비행기를 순식간에 접어요!

         

       손에 들린 종이비행기가 곡예를 펼쳤다.

         

       “슈우웅!”

         

       엘리가 그 광경을 복잡미묘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뭔가 깨달은 듯 깊게 고심하더니 눈을 감았다 떴다.

         

       “그게, 그런……?”

         

       엘리는 어째 살짝 영혼 빠진 눈동자로 변했다.

         

       “내용들 읽고 있어. 난 잠시 녹차 한 잔만 더 마실게.”

       “그러세요.”

         

       일하자고 해놓고 바로 쉬겠다는 상관의 발언을 선선히 긍정해 준 멜리사가 파스텔에게 단호히 말해왔다.

         

       “업무를 잘 알지 못하는 신입으로서 업무 분위기에 참견하긴 그렇지만, 계속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제가 말할게요. 아랫사람이 일하는데 혼자만 노는 건 좋지 않아요. 자리에 걸맞은 모범을 보이는 게 어떨까요?”

         

       허억.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노는 걸 들켰나 봐!

         

       “이건이건!”

         

       팔을 허둥댔다.

         

       “신입은 이해하기 어려운 고도의 업무 작업이야!”

         

       진짜임!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 건 더 좋지 않아요. 제가 학생회 업무는 아직 미숙하지만 그게 노는 거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신입 멜리사는 단호했다.

         

       멜리사 너무 똑똑해애!

         

       애들 회의하는 동안 혼자만 놀려던 파스텔을 단번에 간파……!

         

       파스텔은 양팔을 허둥댔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슈퍼 울트라 고도의 업무라구! 나 같은 엘리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신입은 이해할 수 없는 거야!

         

       멜리사가 코웃음 쳤다.

       “또또 변명인가요. 제가 사회 경험이 부족하긴 해도 확실히 알 수 있어요. 단언해 드릴게요.”

         

       멜리사가 조곤조곤 말했다.

         

       “그건, 업무가, 아니에요.”

         

       허억.

         

       “업무 중에 노는 건 모범이 되지 못해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더 나쁘죠.”

         

       파스텔은 힘이 빠졌다.

         

       신입이 너무 똑똑해.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파스텔이 가장 많이 논다는 사실을 간파해 버렸어.

         

       설마 나 앞으론 빈둥빈둥 파스텔이 될 수 없는 거야?

         

       전력 진심 업무 모드로 살아야 하는 거야?

         

       “으아아!”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건 벚꽃벚꽃 파스텔이 아니라구우!”

         

       매일 하얗거나 분홍인 옷만 입고 다니는 것만큼 중요한 포인트인데에!

         

       애초에 벚꽃은 일 안 하고 살잖아!

         

       나도 권력만 얻고 일은 안 하고 싶어……!

         

       햇빛 아래서 광합성만 할래……!

         

       “그런 거에 연연할 필요 없이 당신은 이미 벚꽃 같아요.”

         

       멜리사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업무 중에 논 사실을 사과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상관으로서 모범을 보이는 거예요.”

         

       으아.

         

       너무 맞는 말.

         

       파스텔은 슬퍼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얘들아. 사실 변명이었어. 파스텔은 일 안 하고 종이비행기 날리며 노는 친구야.”

         

       여태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해.

         

       “잘했어요. 할 수 있잖아요.”

         

       멜리사가 뿌듯해했다.

         

       냉철한 이성과 탁월한 지식으로 직장의 구태의연한 악습을 깬 신입사원 같은 반응이다.

         

       엘리가 광경을 멍하니 봤다.

         

       물음표 가득한 얼굴이었다.

         

         

         

       #

         

         

         

       두근두근 경매 입찰.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연회장은 연회가 끝나자 금방 경매 장소로 변신했다.

         

       육류 같은 무거운 식사류가 치워지고 간단한 디저트가 그 자리를 채웠다. 신사숙녀가 와인잔을 하나씩 들자 여기가 곧 경매소였다.

         

       정장 차림의 파스텔은 지정된 원형 테이블의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열린 와인병에 시선을 주다가 어차피 놀릴 악마님도 없고 비즈니스 중에 취할 이유도 없어서 관심을 껐다.

         

       “배신하진 않을까?”

         

       멜리사의 간섭에 세미 드레스로 차려입은 앨시어가 와인의 향을 맡다가 물어왔다.

         

       다소 의외인 질문이었다.

         

       부탁하면 명령받은 것처럼 도와주기만 할 뿐 자기 일 아니라는 느낌으로 지내더니 관심을 주는 걸 보면 일하며 학생회에 소속감이라도 생겼나 보다.

         

       “글쎄.”

         

       행정 직원이 파스텔이 입찰가를 적어 놓은 편지 봉투를 들고 연단으로 향했다. 편지 봉투가 제국은행의 진행자에게 건네졌다.

         

       서로 입찰가를 적어 놓고 높게 적은 사람이 낙찰받는 봉인 입찰 방식이었다.

         

       “매케나스 백작이 우리와 담합했던 금액보다 조금만 높게 적어도 끝이잖아. 제국은행과의 약속은 지키면서 금액은 더 이득일 테니까. 상인이라면 먼저 한 약속을 지키는 게 상도의에 맞긴 하고.”

       “비밀 계약이라 막판에 배신할 수 있긴 해.”

         

       회사 측 인원도 나와 편지 봉투를 전했다.

         

       진행자가 구경나온 신사숙녀를 위한 분위기 띄우기 발언을 몇 차례 하더니 입찰가 공개를 시작했다.

         

       “그런데.”

         

       회사 측 편지 봉투가 먼저 열리고 진행자가 종이를 꺼냈다.

         

       “배신은 성공보다 후속 처리가 중요해.”

         

       입찰가를 크게 외치려던 진행자가 숫자를 읽으려다 그대로 굳었다.

         

       “그냥 그렇다고.”

         

       진행자의 눈동자가 확인하듯 회사 측과 제국은행 측을 보더니 이쪽을 향했다.

         

       떨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 금화 0개.

         

       신사숙녀의 시선이 진행자처럼 떠돌다가 크래프트를 향했다.

         

       소녀는 미소 지었다. 양손을 들고 조용히 손뼉 쳤다.

         

       정적 어린 혼란 속에서 손뼉 소리만이 울렸다.

         

       “입찰가에 제로는 적을 수 없다는 규정이 생기겠네.”

         

       평온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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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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