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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북부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마차에서 휴고와 의견 교환을 이어갔다.

     

    “아뮬렛 사용은 익숙해졌어?”

     

    “예. 전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휴고가 아뮬렛의 능력으로 임의 생성한 조그마한 상급 저주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플라스크에 담긴 저주는 휴고의 지시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곧 해주와 함께 팟 사라졌다.

     

    황제 때는 비상사태라 처음 만져봤으니 익숙지 않았었지. 역시 휴고만큼 저주를 잘 다루는 사람은 또 없다.

     

    “필요한 아티팩트는 이렇게 생겼어.”

     

    “아뮬렛 홈에 꼭 들어맞게 생겼군요.”

     

    “폭풍석. 이걸 결합하면 최상급 저주도 조종할 수 있게 돼.”

     

    “다만 영혼이 매개라 자아를 가진 점에서 변수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영혼 말인데, 대마녀의 혼이라는 정보는 지금 증언만 있지?”

     

    “그렇지요. 확인된 건 아닙니다.”

     

    “혼이 어떤 인물인지 알 필요도 있나?”

     

    “저주에 대해 상세하게 알수록 조종하기 쉬워집니다.”

     

    “흠.”

     

    신원을 특정할 방법이라면 가장 쉬운 건 지문이지.

     

    의학적인 방법으로는 치열 검사도 있다. 사람의 치열도 지문만큼이나 모양이 다르고 진료기록 따라 특정 짓기 쉽다.

     

    뭐, 이 세상엔 기록이 없으니 써먹을 순 없다. 유전자 검사도 마찬가지지. 미리 검사한 표본이 없을뿐더러 영혼의 유전자를 검사할 방법이 어디 있겠어.

     

     

    꽤 빠른 속도로 이동해서, 고트베르크 후작령에는 열흘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라버니, 어서 오세요!”

     

    아,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뿅뿅 돌아다니는 네리아가 활짝 웃으며 반겨주니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가 없다.

     

    “하하, 키 많이 컸는데 네리아.”

     

    “정말, 오랜만에 뵀는데 놀리기부터 하고. 오라버니 짓궂으셔요.”

     

    뾰루퉁하게 볼을 부풀리니 분위기가 통통 튄다.

     

    흠, 정말 키는 안 컸네.

    분명 성장저해 디버프는 안 걸렸는데.

     

    다만 골격이나 얼굴은 조금씩 성숙해지긴 해서 착각했다.

     

    “라스, 이야기를 들었다. 제도에서 의학을 치유술과 함께 쓴다고 황명이 있었더구나. 대단하구나.”

     

    “별일 아닙니다. 폐하께서 제게 홀딱 반했거든요.”

     

    “정말이냐? 음, 다른 귀족들에게 자랑해야겠군.”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본론을 꺼냈다.

     

    “병력은 준비해놨다. 기사들의 한지 전투를 보조할 축복 특화 치유사 부대 1개 소대, 탐사를 맡을 모험가 부대 2개 분대다. 이쪽 기사까진 필요없느냐?”

     

    “예, 충분합니다. 루트는 어떻습니까?”

     

    바위족이 제국 북서부에 주둔해서 블뤼허 백작령과 충돌했던 반면, 천둥족은 이곳 고트베르크 후작령과 인접한 북부 조금 위쪽에서 주로 활동한다.

     

    아버지에게는 미리 성벽 숲 너머로 탐색을 부탁해놨었다.

     

    “숲의 마물을 피할 루트까지는 찾았으나 그 위의 고산지대는 지금 진입할 수 없다. 눈보라가 강한 시기란다.”

     

    “눈보라라.”

     

    천둥족은 그간 마물 숲에서 가끔 우리 기사단과 충돌하기도 했는데, 자주는 아니었다.

     

    눈보라가 치는 시기가 길어서 지형을 양단하기 때문이었다.

     

    “언제 그칩니까?”

     

    “겨울에만 바람 방향이 바뀌어 치는 눈보라지. 마침 계절이 바뀔 시기니 이틀 후라고 예측된단다.”

     

    “그간 발이 묶이겠군요. 마침 잘 됐습니다. 저희 병력도 이동에 지쳤을 테니 휴식하도록 하지요.”

     

    “오라버니, 그동안 공장을 돌아보시겠어요? 황실 이야기도 해 주시면 더 좋구요!”

     

    “좋아. 같이 가자, 네리아.”

     

    마음 조급하게 가져봐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쉬게 된 거 이틀은 푹 쉬기로 했다.

     

     

     

    ***

     

     

     

    “1년 만에 오는데 벌써 꽤 지어졌네요.”

     

    “건물은 항상 기초공사가 제일 오래 걸리죠. 이제 순식간에 올라갈 거예요. 약제사 교육도 순조롭구요.”

     

    뚱땅뚱땅 지어지는 공장을 보며 네리아가 당당하게 어깨를 쭉 폈다.

     

    앰브로시아도 그렇고, 키가 작은 친구들은 저렇게 가슴을 강조하는 자세를 좋아하나.

     

    “과연, 이만하면 제국 전역에 공급할 약재도 무리 없이 생산할 수 있겠소.”

     

    현장에 선객이 있었다.

     

    파티에서 내가 목숨을 구하기도 했고 우리 가문에 투자를 많이 하기도 한 서부 공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귀인을 뵙는군요. 오랜만입니다, 공작님.”

     

    “고트베르크 선생! 요즘 황실에서 가장 떠오르는 쾌남 아니오. 활약은 꾸준히 전해 듣고 있소.”

     

    공작은 사업도 확인하고 아버지와 친목도 다질 겸 종종 후작가를 방문하는 모양이다.

     

    “황제가 의학을 인정한 덕에 고트베르크 가문이 다음 세대에 떠오를 신예로 귀족가에서 아주 유명하오. 아스피린도 소화제도 한 번 사용해본 사람은 다시 찾을 수밖에 없지. 우리 가문이 먼저 연을 맺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소.”

     

    “저희야말로 공작 각하를 만날 수 있어 천운이었습니다.”

     

    우리 가문에 초기 투자를 한 공작은 꽤 재미를 보긴 할 터였다. 월광궁도 마찬가지고.

     

    계약 구조는 미리 손썼기 때문에 수익이 안정화되면 가문의 지분만으로 돌리게 된다.

     

    “하하, 잘 됐지. 아주 잘 됐어.”

     

    공작은 말과 다르게 얼굴에 근심이 새겨져 조금은 핼쓱한 행색이었다.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개인적인 일이오. 으음… 도무지 결론이 안 나는 일이니 원.”

     

    그가 한숨을 쉬더니 불현듯 생각을 떠올리며 내게 물었다.

     

    “아, 신체에 통달하신 선생이니 한 가지 여쭤보겠소만.”

     

    공작이 내게 귓속말을 했다.

     

    “혹시 부모와 자식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없소?”

     

    그 질문으로 단번에 상황이 이해됐다.

    부인께서 과거의 외도 정황이 있으셨구만.

     

    공작의 딸은 프레다 공녀, 아셀라 만큼이나 기가 드센 정신 나간 여자다.

     

    “가능은 합니다만.”

     

    “오오, 정말이오?!”

     

    둘 다 채혈해서 내가 유전자를 비교하면 되긴 하지만, 솔직히 귀찮았다.

     

    무엇보다 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으로 채혈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고.

     

    모발만으로 환자를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는 스킬은 내게도 없으니까.

     

    무엇보다 원리를 대략이라도 설명해서 공작이 이해해야 의미가 있다.

     

    아직은 이르지, 아직은.

     

    ‘피로 검사할 수 있는 유전자가 아니면.’

     

    이 세상에는 본인을 특정할 수 있는 요소가 피나 지문, 치열 이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마나다.

     

    생명이라면 미약하게라도 몸에 혈관처럼 마력회로를 가지고 있고, 그를 통해 마나를 순환하고 있다.

     

    마나는 땀처럼 상시로 몸 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온다.

     

    각자 가진 마나의 종류나 특성은 모두 달라서 분석하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

     

    ‘마나로 유전이라 치면 친자확인은 될 것 같은데?’

     

    요즘 너무 저주니 수술이니 일에만 집중했었지.

     

    잠깐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는 재밌는 주제가 아닐까 싶었다.

     

    “짐작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공작부인과 공녀께서도 여기 와 계십니까?”

     

    “아, 그렇소.”

     

    “세 분의 마나 샘플을 채취하겠습니다. 그걸로 연구해 보지요.”

     

    “그, 꼭 내 이야기였단 건 아니고… 아니 뭐, 해주겠다면 거절하진 않겠소만…”

     

    공작은 머리를 긁적였지만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이 사람도 나름 공작령을 운영하는 대사업가이자 큰 부대를 움직여 왕국과 싸우는 지휘관인데, 가족 문제에는 꼼짝없었다.

     

     

     

    “선생님, 됐습니다.”

     

    유전자 검사의 이론을 설명했더니 휴고가 몇 시간 만에 결과를 만들어왔다.

     

    “빠른데.”

     

    “마침 돌프 영상의가 마나 검사를 연구하고 있던 지라 도움을 받았습니다.”

     

    “좀 치는데, 돌프.”

     

    돌프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했다.

    평소 내 촬영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 장비도 관리하는 의사다.

     

    “그래, 결과가 어떻든?”

     

    “일치합니다. 서부 공작과 공녀는 친자 관계가 확실합니다.”

     

    휴고가 내게 그래프를 보여줬다.

     

    삐쭉빼쭉한 선이 많이 그어져 대조된 표다.

    마나에도 유전자처럼 주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상당히 많이 담겨있었다.

     

    성별을 알 수 있는 XY 염색체는 없지만 뭐.

     

    이를테면 4대 원소 중 어느 속성인지, 각 속성 중 무엇을 더 깊게 타고 났는지.

     

    명도도 있어서 밝고 어두운 정도, 자연 친화력, 감응력, 변성력, 안정성 등등.

     

    각 요소를 마나유전자라고 표현하자면.

     

    자식에게서 양쪽 부모에게 없는 마나유전자가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다.

     

    여기도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양쪽이 결합해 실제로는 새로운 형질이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마나량이 적은 부모 사이에서도 초대형 탱크를 가진 자식이 나올 수 있단 뜻이었다.

     

    꽤 재밌네.

     

    “공작은 한숨 덜겠네. 대충 인증서처럼 써서 줘. 내가 도장 찍어서 발급하지 뭐.”

     

    황실 내의원 공식 문서긴 하니 이러면 효력도 있겠지.

     

     

     

    소식과 함께 문서를 몰래 가져다주니 공작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가, 프레다는 역시 내 딸이었군! 하긴 저 정신 나간 애가 누구 자식이겠소. 내가 안고 가야 할 업보지. 원, 망할 여편네. 사람 심장 떨어지게 하기는.”

     

    최근 부부싸움 중에 아내가 거짓말로 협박이라도 했던 걸까.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딸 데리고 나가 버린다? 쟤 니 자식 아닌 것도 모르지? 같은 느낌으로.

     

    뭐, 나름 보람찬 쉬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존경하는 고트베르크 의사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친자를 감별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셨다 들었습니다. 도움을 주신다면 반드시 사례하여…

     

    ―…가능하신 시간만 알려주신다면 당장이라도 직접 찾아뵙겠으며, 사례금은…

     

    다음날 전서구가 우르르 날아들었다.

     

    그새 공작이 귀족가에 소문을 낸 모양이다.

     

    “허, 참.”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휴고의 질문에 나는 편지를 치워버렸다.

     

    “나중에 가문에서 친자검사 서비스라도 시작하지 뭐. 그건 여기 치유사들에게 맡겨놓을 일이고.”

     

    나는 최북단 성벽에 올라 멀리 숲 너머 산맥을 바라보았다.

     

    “슬슬 눈보라가 그친다. 출정 준비하자.”

     

     

     

    ***

     

     

     

    “…윽.”

     

    신음을 흘리며 아셀라가 눈을 떴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침대는 뽀송했다. 밤새 보필한 사람이 있었다.

     

    “라스?”

     

    약 기운에 몽롱한 아셀라는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라스가 아니라 시녀장이었다.

     

    “황녀님, 정신이 드시는지요.”

     

    “루시구나. 몇 시야? 일어날게.”

     

    “기상 전에 수분을 섭취와 진료가 필요하시다고 주치의 선생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그랬구나. 후, 알았어.”

     

    아셀라는 라스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서 한숨을 쉬었다.

     

    그에게 너무 화를 냈다.

     

    그의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이 꼴이다.

     

    라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들어야겠다.

     

    조금 차분해진 지금이라면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도 있었다.

     

    달칵, 문이 열리고 대기하던 주치의가 진료를 위해 들어왔다.

     

    “저, 전하아… 시, 실례합니다아….”

     

    하지만 들어온 건 라스가 아니라 클로에였다.

     

    그녀를 본 아셀라가 눈매를 찌푸렸다.

     

    “라스는?”

     

    “그, 그게…”

     

    “라스는 어디 갔어?”

     

    시녀장이 침착하게 그녀의 의문에 대답을 올렸다.

     

    “…뭐?”

     

    이야기를 들은 아셀라의 눈동자가 떨린다.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파르르 떨고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공개독자님 후원과 정주행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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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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