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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사신의 손놀림 한 번에 마차의 절반이 뜯겨나갔다.

         

       엘라는 머리를 감싸고 몸을 숙였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부서진 파편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예상했던 마귀의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떠서 위를 올려다봤다.

         

       마귀의 손톱을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아.”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그녀는 탄성을 내뱉었다.

         

       마차 트렁크에 비죽 튀어나와 있는 회색의 돌덩어리.

       그것은 한때 사람이었던 것이다.

         

       메리사.

       예전에 원더스타인에게 대들었다가 돌로 변해버린 단원이었다.

         

       엘라는 몇 번이나 그녀를 원상태로 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원더스타인은 그럴 수 없다고 번번이 그녀의 청을 거절했다.

         

       루즈를 떠나기 얼마 전에도 그는 마찬가지의 대답을 돌려주었다.

         

       사람이 바뀌기는 개뿔이.

       그의 친절은 어디까지나 목적을 위한 것일 뿐이다.

       자신에게 방해될 것 같은 자에게는 가차 없었다.

         

       “돌이 된 인간이라……. 흥미롭군요.”

         

       사신은 자신의 손톱을 막아낸 대상을 바라보며 웃었다.

         

       엘라는 그 사이 재빨리 마차에서 떨어졌다.

         

       사신은 도망치는 그녀와 굳어있는 메리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헷갈렸군요.”

         

       그는 가만히 굳어있는 메리사를 내버려 두고 엘라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 얼음 그물이 찌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라나더니, 그녀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윽!”

         

       엘라는 앞으로 꽈당 넘어졌다.

       사방에서 자라난 얼음들이 그녀의 몸을 단단하게 옭아맸다.

         

       “하아, 하아…….”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목을 간신히 젖혀서 뒤를 돌아봤다.

       사신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으으…….”

         

       그녀는 손바닥이 찢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기었다.

       그러나 고작 몇 센티미터만 나아갔을 뿐이었다.

         

       사신이 그녀의 앞에 섰다.

         

       그 순간, 그녀의 품에서 두 줄기 빛이 튀어 나왔다.

         

       “아, 안 돼!”

         

       엘라가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그녀가 기르는 동물들이었다.

       비둘기 구돌이와 생쥐 찍순이.

         

       “구구구!”

       “찍찍!”

         

       주인의 위험을 감지한 둘이 기세 좋게 사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둘은 그에게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가 눈짓 한 번 하자 둘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음 덩어리에 갇힌 둘은 바닥을 뒹굴었다.

         

       “얘, 얘들아…….”

         

       엘라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온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그녀를 지키려다 그들이 저런 꼴이 되고 말았다.

         

       투구 아래로 드러난 사신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에 따라 엘라의 얼굴과 머리카락에도 얼음이 쩍쩍 달라붙었다.

         

       그녀는 절망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팔입니까, 다리입니까. 무엇부터 뜯어드릴까요?”

         

       죽음을 앞둔 순간.

       그녀의 머리에 떠오른 얼굴은 얄궂게도 스승님도, 학교 친구들도, 상상 속에 그리던 엄마도 아니었다.

         

       환하게 웃는 금발의 남자.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의 얼굴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개자식.’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도 그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우리 엘라 양이 어쩌구.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어쩌구.

         

       하여간 입만 살아서는…….

       정작 필요할 때는 있지도 않고…….

         

       도대체 어디 간 거야.

       함께 서커스 그랑프리에 오르자고 했잖아.

       아직 2년이나 남았단 말이야.

         

       사신이 팔을 들었다.

       이제는 그와 그녀 사이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

       그가 손톱을 내리쳤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애증이 섞인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원더스타인…….”

         

       쿵.

       커다란 충격이 땅을 울렸다.

       얼음이 새하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엘라는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파편들을 느꼈다.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앞을 막고 있었다.

       따뜻한 망토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올려다봤다.

         

       달빛이 은은하게 내리비췄다.

       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 사이로.

       너무나 미운, 동시에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 그녀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엘라 양,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원더스타인.

       그녀의 무대 진행 파트너이자 그들의 단장.

       그가 왔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뭐하다 왔냐고 따지고 싶었다.

       막 입을 떼려는 순간, 엘라는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가 지난 수개월 동안 한 시도 손에서 떼놓은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가 찻잔으로 쓰는 보온병의 뚜껑이었다.

       그곳에서는 갓 따라 마신 듯 김이 나오고 있었다.

         

       이 위급한 상황에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그것을 보는 순간 반가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엘라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는 것을 느꼈다.

         

       “이……이…….”

         

       그녀는 있는 힘껏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렸다.

         

       툭.

       하지만 그녀의 몸이 얼어붙어 있던 탓에 그것은 토닥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행동에 의아한 미소를 지었다.

         

       “엘라 양?”

       “이……나쁜…….”

         

       입도 얼어붙어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입밖에 내뱉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개……새끼…….”

       “엘라 양…….”

         

       원더스타인은 그런 그녀의 반응도 즐거운지 웃음을 터뜨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겠죠.”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 게 아주 많았다.

         

       마야는 어디 간 건지.

       도대체 이 마을에서 뭔 일이 일어난 건지.

       또, 저주 역병이라는 건 도대체 뭔지.

       단원들을 끌어모은 것과 그것이 관계가 있는지.

       그녀의 고향에는 무슨 짓을 한 건지.

         

       지금이라도 당장 질문을 쏟아붓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그녀의 뺨에 닿자 말문이 턱 막혔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상황을 정리하고 나서 하죠.”

         

       원더스타인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얼굴과 머리카락에 붙은 얼음을 털어주었다.

       그의 따뜻한 손길이 닿자 얼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엘라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천천히 끄덕였다.

         

       “……알았……어.”

         

       그는 그녀를 조금 떨어진 곳에 두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사신이 자신의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제법이군요. 제 팔을 쳐내다니. 끼끼, 오늘은 즐거운 날이군요. 인간 중에 저를 즐겁게 해 주는 강자들이…….”

       “이봐요, 사신.”

         

       원더스타인이 그를 불렀다.

       그는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사신, 누아-자카누바.

         

       “설마 그게 전력인 건 아니죠?”

         

       그것은 도발이었다.

       감히 인간이 고위 마귀에게 왜 이리 약하냐고 이죽대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누아-자카누바의 얼굴이 굳어졌다 펴졌다.

         

       “끼히히, 오만하기 짝이 없군요, 인간 주제에. 아무렴! 아까는 살짝 긁어준 거였습니다. 소중한 장난감을 한 번에 망가뜨릴 수는 없잖아요.”

         

       그는 두 팔로 땅을 짚었다.

       그는 두 다리를 굽히며 몸을 튕길 준비를 했다.

         

       저 건방진 인간을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짓이겨줄 생각이었다.

         

       “이것도 막아보시죠!”

         

       사신이 땅을 박차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전력을 다해 손톱을 휘둘렀다.

         

       엘라는 피하라고 고함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목이 얼어있는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다른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

         

       원더스타인의 입에 걸린 자신만만한 미소.

       그것을 보니 안심이 됐다.

         

       쿵.

       사신의 몸이 원더스타인과 충돌했다.

         

       그는 땅에 몇 미터나 되는 궤적을 남기며 뒤로 밀려났다.

         

       사신은 전율했다.

       그는 아예 그를 100미터 이상 날려버릴 기세로 달려든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몇 미터라고?

         

       그는 자신의 팔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힘을 느꼈다.

         

       마치 산에 가로막힌 것 같은 이 기분은……?

         

       먼지구름이 걷혔다.

       사신은 눈앞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멀쩡히 서서 한 손으로 자신이 휘두른 팔을 붙들고 있었다.

         

       그의 팔에서 느껴지는 힘은 분명 그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런……이게……무슨……. 인간이……?”

         

       떠듬떠듬 말을 내뱉는 사신을 향해 원더스타인은 미소를 지었다.

         

       “내 단원들을 잘도 괴롭혔더군요. 각오는 되어 있습니까?”

         

       그의 반대편 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사신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기에는 그의 공격을 막은 것과 같은 힘이 실려 있었다.

         

       “잠깐……!”

         

       원더스타인의 팔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의 주먹은 사신의 복부에 정통으로 꽂혔다.

         

       “끼긱……?”

         

       그의 허리가 기이한 각도로 우지직 소리는 내며 구부러졌다.

       그의 몸이 포탄처럼 땅을 헤집고 날아갔다.

         

       콰과과.

       흙과 돌이 해일처럼 치솟았다.

       수십 미터 길이의 도랑이 만들어졌다.

         

       중간에 튕겨 나간 사신의 몸은 마을 반대편에 있는 절벽에 처박혔다.

         

       쿠궁. 쿠르르.

         

       폭약이라도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언덕을 뒤흔들었다.

       거대한 절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제목: TT3 완전 공략-사신 편

       게시자: 토치 댄서

         

       안녕하십니까?

       토치 댄서입니다.

         

       오늘은 시리즈 전통의 사신 공략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TT3에서의 사신의 출몰 조건은 이전 시리즈와 같습니다.

       바로 한 스테이지에서 6시간 6분 6초 동안 세이브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맵 한구석이 일그러지면서 사신이 출현합니다.

         

       사신은 과거 오락실게임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현재와 같은 인터넷망이 없었기 때문에 버그가 한 번 터지면 개발사에서 디스켓을 들고 전국의 오락실을 순회해서 게임을 고쳐야 했습니다.

         

       매달 갱신되는 전국 순위는 게이머들에게 민감한 주제였죠.

       누군가 버그를 사용해서 점수를 부풀리면 게이머들이 게임사로 집단 항의 서한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개발사는 아예 처음부터 버그를 이용한 점수 노가다를 할 수 없도록, 플레이어가 시간을 끌면 무적 판정 몬스터가 출현하게 했습니다.

         

       통칭 ‘사신’입니다.

       플레이어 보고 대놓고 죽으라고 만들어둔 존재죠.

         

       그 때문인지 TTT의 사신도 시리즈마다 흉악한 성능을 자랑해왔습니다.

       공략 난이도만 보면 최종 보스인 원더스타인 이상이죠.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무려 6시간 넘게 세이브를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출몰 조건입니다.

         

       재도전한다고 해도, 6시간이나 손 놓고 있으면 컨트롤 감각이나 암기한 패턴은 희미해져서 기다린 시간이 무색하게 어이없게 죽기 일쑤죠.

         

       그러니 부디 이 공략을 암기하고 또 암기하셔서 도전하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요.

         

       필수 준비물인 스톱워치도 잊지 마세요.

       10초만 어긋나도 사신에게 목이 베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신 공략이 어려운 이유 두 번째, 사신의 낫입니다.

         

       사신은 체력, 공격력, 패턴 등 모든 면에서 흉악한 녀석이지만, 그중 플레이어들에게 최악으로 꼽히는 스킬은 역시 바로 사신의 낫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신의 낫에 적중당하면 해당 캐릭터는 경험치를 뺏깁니다.

         

       설정상 인간의 행복한 기억을 흡수한다고 하는데, 게임에서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말 그대로 경험치(Experience), 지금까지 우리가 모험하면서 쌓아온 소중한 추억들을 뺏기는 거죠.

         

       사신의 낫에 공격을 몇 번 허용하고 나면 어느새 기초 스킬만 들고 있는 영웅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행복한 기억을 모두 뺏겨서 폐인이 된 거라 할 수 있을까요? (웃음)

         

       그래서 사신 공략의 기본은 사신의 낫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겨우겨우 잡고 나도 능력치 초기화된 캐릭터를 보면 우울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럼 공략에 들어가 봅시다.

       우선 사신을 가장 잡기 쉬운 스테이지를 골라 보자면, 역시 아군 조력자들이 떼로 나오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Nir99님, 30코인 후원!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엘라 다음으로 마야 일러를 요청해볼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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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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