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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업보라는 말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불교의 카르마 사상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그리 복잡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상을 받는다.

       

       이런 기본적인 선악에 따른 상벌 개념은 집단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고, 그렇기에 업보는 그 형태와 이름이 달라질 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

       

       생전에 선행을 쌓은 이가 천국에 간다거나,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이가 영원한 전장에서 영광을 누린다거나, 오늘치 할당량을 채운 작가가 큰맘 먹고 산 위스키를 할짝이며 밤새 버튜버 방송을 본다던가.

       

       얼핏 보면 참 좋은 개념 같아 보인다. 하지만 기억해 둬야 한다. 사람은 언제나 악에 치우치기 쉽고, 업보에 예외는 없다는 것을.

       

       악행을 쌓은 이는 지옥에서 불타며, 겁쟁이는 헬에 떨어져 의미도 없이 썩어가고, 밤새 술 마시며 버튜버 영상 보다가 늦잠 잔 작가는 얼마 남지 않은 마감에 고통받는다.

       

       그리고 확률 조작은 마찬가지로 조작된 확률에 억까 당하리라.

       

       최근에 돌린 가챠 몇백 번이 죄다 1성으로 도배된 것처럼 말이다.

       

       “허어억!”

       

       세상에.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수치인가.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천장 없는 시스템은 초창기 성배 전쟁 게임으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착각이었나 보네.

       

       아무리 내가 4성 권능과 스킬을 땡겨 받았다고는 하나, 이건 너무 과도한 처사 아닌가.

       

       오락거리라고는 야스밖에 없는 이 중세 남역 판타지에서 가챠의 찌릿함을 빼앗다니.

       

       하지만 그런 무채색으로 물든 나날도 오늘까지다.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책상 위를 나뒹구는 큼직한 자루가 2개.

       

       호다닥 이브에게서 도망친 후. 바로 베니의 공방으로 향해 정확히 반반으로 나누고, 샤도우랑 놀아주고, 일전에 슬쩍 챙긴 한쪽 니플 패치를 손등에 붙여 보여주고, 기겁한 베니가 쫓아오길래 싫어요 안돼요 이러지 마세요로 퇴치한 다음에야 돌아온 요정과 은화.

       

       크게 다칠 뻔한지 얼마나 됐다고 어딜 자꾸 돌아다니냐는 엘리의 잔소리를 딸감 사러 갔다는 말로 침묵시킨 뒤에야 방에 틀어박혀 문을 잠갔다. 그게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

       

       “이게 야스지….”

       

       절로 흘러나오는 황홀한 목소리로 금화와 마석 무더기를 쓰다듬었다.

       

       어차피 가챠는 마석으로도 돌아가니, 베니에게는 현금 위주로 주고, 마석의 대부분은 내가 챙겨온 터라 만지는 맛이 있다.

       

       매끈매끈하군….

       

       최상급 마석은 때깔부터 곱다는 생각에 홀로 감탄하며 로브 주머니에서 여신상을 꺼냈다.

       

       오늘은 딱히 할 말이 없는지, 혹은 미궁에서 힘을 쓴 뒤로 그럴 능력도 없는지 평소처럼 자애롭게 팔을 벌린 자세다.

       

       “그래. 여신이라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거겠지.”

       

       사랑의 여신은 미궁을 유지하느라 지상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지난 천년 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여신은 나를 위해 제법 많은 개입을 해왔다.

       

       가챠 확률 조작이야 간접적인 개입이니 그렇다 쳐도, 이젠 성물이 된 풀돌 여신상의 형태를 살짝 바꾸거나,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미궁에서 내게 무언가 알려준 것은 꽤 본격적인 개입 아닌가.

       

       당연히 그만큼 무리했겠지. 어쩌면 모종의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높은 확률로 가챠 확정 폭사 기간이 늘어나는 거겠지만.

       

       “하지만 이만큼 돌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나라도 100골드에 달하는 거금을 오로지 가챠에만 꼬라박는 것에는 저항감이 있다.

       

       중층부 내내 쓸 수 있는 풀 세트를 맞춘다거나, 고오급 오러 연성법이나 마나 호흡법을 구매한다거나, 엘리가 그러하듯 쓸데없이 땅값이 비싼 판 그레이브에 내 집을 마련할 수도 있는 금액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보다 가챠 확률의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냥저냥 배부르고 등 따숩게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뿌린 재앙의 씨앗을 내 손으로 뿌리 뽑겠다 다짐하지 않았는가.

       

       내 능력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가챠가 망가진 채로 놔둘 수는 없다.

       

       “후우.”

       

       아무리 돈을 이만큼 쌓아놨다고 해도…아니, 이만큼이나 쌓아둔 걸 전부 쓸 생각을 하니 긴장되는 건가.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가챠 시스템을 활성화 시켰다.

       

       띠링!

       

       

       

       [통상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1회 뽑기] [10+1회 뽑기]

       

       

       

       NEW!

       

       [한정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3성 이상이 등장할 확률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명작이 등장할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한정 뽑기로만 뽑을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과 스킬이 존재합니다.

       

       -통상 뽑기의 10배 가격입니다.

       

       -남은 기간 23: 59: 37

       

       [1회 뽑기] [10회 뽑기+통상 뽑기권 10개]

       

       

       

       “뭣…!”

       

       여기서 한정 뽑기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언젠가 이런 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버젓이 ‘통상’ 뽑기라고 적혀있지 않았나.

       

       굳이 통상이라고 표기했다는 건 특별한 뭔가도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한정 뽑기가 등장했다. 내용은 조금 생각했던 것과 달랐지만.

       

       “가격이 10배라고? 심지어 10번 뽑으면 주는 보너스가 통상 뽑기권이야?”

       

       진짜 돌아버린 것인가.

       

       통상 뽑기가 한 번에 1실버고, 10+1뽑기에 10실버다. 1골드를 쓰면 110번을 뽑을 수 있는 셈.

       

       하지만 한정 뽑기는 그냥 10번 돌리는데 1골드다. 추가로 통상 뽑기를 10번 더 돌릴 수 있긴 한데, 이건 통상 뽑기를 1골드 어치 돌려도 주는 거고.

       

       즉, 1골드를 써도 한정 뽑기 10번과 통상 뽑기 10번. 총합 20번밖에 돌리질 못한다는 소리.

       

       아무리 확률이 개차반이고, 지금은 과거의 조작으로 인한 일종의 패널티 기간이라지만….

       

       어쨌든 뽑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횟수다.

       

       3성 이상이 뽑힐 확률을 두 배로 올려준다고 해도 가챠 횟수를 10분의 1로 줄이면 오히려 손해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은 한정 뽑기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었다.

       

       과연 정말로 가챠에서 가장 중요한 게 횟수일까?

       

       극단적인 예시로 1퍼짜리 50번 돌리는 거랑 50퍼 짜리 1번 돌리기 중 한쪽을 선택하라면 나는 분명 후자를 선택하리라.

       

       그러한 이치가 한정 뽑기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거기에 명작이 등장할 확률이 줄어든다 하였다.

       

       명작 카테고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일종의 예능템이지만 환금성은 보장된 것들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마음에 드는 카테고리 또한 아니다.

       

       애초에 이놈의 가챠 시스템은 확률이 개판이지 않은가. 

       

       3성 명작템 하나를 팔아 수십 번은 다시 돌릴 기회를 얻었다고 치자. 과연 그 수십 번 사이에 쓸만한 3성이 나올까?

       

       안 나온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지.

       

       하여 똑같은 성급이라도 명작보다는 차라리 쓸데없는 권능이라도 하나 나오는 게 낫다.

       

       어찌 됐든 권능은 써먹을 곳이 확실히 존재하는 힘이니까.

       

       그런데 3성 이상이 뽑힐 확률은 늘면서 명작이 뜰 확률은 줄어든다고?

       

       ‘유효타’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여신표 가챠엔 픽업이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픽업 버프를 뚫고 엉뚱한 녀석이 튀어나올 픽뚫 확률이 팍 줄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

       

       무엇보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한정 뽑기에서만 등장한다는 아이템과 스킬.

       

       빌어먹게 불친절한 이놈의 가챠 시스템은 뭐가 나오는지 알려주질 않는다.

       

       하지만 내겐 전생의 기억이 있다. 한정캐를 놓치고 복각까지 반년간 매일매일 꼬왔던 울분을 아직 기억한단 말이다.

       

       한정캐는 대부분 성능이 좋다. 특히 그것이 첫 한정 픽업이라면 더더욱.

       

       내게 그것이 상식이고, 진리이며, 오리너구리의 귀여움만큼이나 굳건한 명제다.

       

       게다가 한정 기간이 일주일도 아니고 겨우 하루 아닌가.

       

       사랑의 여신이 부작용을 감내하고 있을 시기에 한정 뽑기라니.

       

       “어쩔 수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뭔가 있을 것 같아서다. 절대 한정이라는 말에 홀린 게 아니다.

       

       나는 가챠에 눈이 멀어 누가 봐도 명백한 손해를 보며 한정 뽑기를 지르는 게 아니다.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쫓아 한정 뽑기를 돌리는 것이지!

       

       이리저리 흔들리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아니 어쩌면 한정이라는 말을 봤을 때부터 기울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명분, 그리고 약간의 용기뿐.

       

       내 안에 남아있는 일말의 이성을 지워버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5성! 갈끄니까!!!!”

       

       한정 뽑기 연챠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띠링! 띠링! 띠링!

       

       쉬지 않고 귓가를 울리는 알람 소리. 하지만 이는 당초의 예상보다 10배는 빠르게 끝났다.

       

       아무리 손가락을 까딱여도 반응이 없는 시스템. 텅 빈 주머니.

       

       그리고 뒤늦게 침대 위로 쏟아지는 잡동사니들과 망막 위에 떠오르는 리스트.

       

       띠링!

       

       당연한 말이지만 초반에는 죄다 1성뿐이다.

       

       10배의 금액으로 1성을 뽑는 건 아무리 돈도 미래도 없는 연쇄 가챠러인 나조차 심장이 아픈 일이었으나….

       

       이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역시 예상대로 지금 여신의 상태와 한정 뽑기 사이에는 무언가의 관련이 있는 모양.

       

       슬슬 2성이 섞이기 시작한 리스트의 양상에 점점 가빠지는 호흡. 이를 의식적으로 조절하며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렸다. 

       

       그리고.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오색 찬란한 빛에 나도 모르게 괴성이 튀어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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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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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보라는 말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불교의 카르마 사상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그리 복잡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상을 받는다.


       


       이런 기본적인 선악에 따른 상벌 개념은 집단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고, 그렇기에 업보는 그 형태와 이름이 달라질 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


       


       생전에 선행을 쌓은 이가 천국에 간다거나,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이가 영원한 전장에서 영광을 누린다거나, 오늘치 할당량을 채운 작가가 큰맘 먹고 산 위스키를 할짝이며 밤새 버튜버 방송을 본다던가.


       


       얼핏 보면 참 좋은 개념 같아 보인다. 하지만 기억해 둬야 한다. 사람은 언제나 악에 치우치기 쉽고, 업보에 예외는 없다는 것을.


       


       악행을 쌓은 이는 지옥에서 불타며, 겁쟁이는 헬에 떨어져 의미도 없이 썩어가고, 밤새 술 마시며 버튜버 영상 보다가 늦잠 잔 작가는 얼마 남지 않은 마감에 고통받는다.


       


       그리고 확률 조작은 마찬가지로 조작된 확률에 억까 당하리라.


       


       최근에 돌린 가챠 몇백 번이 죄다 1성으로 도배된 것처럼 말이다.


       


       “허어억!”


       


       세상에.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수치인가.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천장 없는 시스템은 초창기 성배 전쟁 게임으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착각이었나 보네.


       


       아무리 내가 4성 권능과 스킬을 땡겨 받았다고는 하나, 이건 너무 과도한 처사 아닌가.


       


       오락거리라고는 야스밖에 없는 이 중세 남역 판타지에서 가챠의 찌릿함을 빼앗다니.


       


       하지만 그런 무채색으로 물든 나날도 오늘까지다.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책상 위를 나뒹구는 큼직한 자루가 2개.


       


       호다닥 이브에게서 도망친 후. 바로 베니의 공방으로 향해 정확히 반반으로 나누고, 샤도우랑 놀아주고, 일전에 슬쩍 챙긴 한쪽 니플 패치를 손등에 붙여 보여주고, 기겁한 베니가 쫓아오길래 싫어요 안돼요 이러지 마세요로 퇴치한 다음에야 돌아온 요정과 은화.


       


       크게 다칠 뻔한지 얼마나 됐다고 어딜 자꾸 돌아다니냐는 엘리의 잔소리를 딸감 사러 갔다는 말로 침묵시킨 뒤에야 방에 틀어박혀 문을 잠갔다. 그게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


       


       “이게 야스지….”


       


       절로 흘러나오는 황홀한 목소리로 금화와 마석 무더기를 쓰다듬었다.


       


       어차피 가챠는 마석으로도 돌아가니, 베니에게는 현금 위주로 주고, 마석의 대부분은 내가 챙겨온 터라 만지는 맛이 있다.


       


       매끈매끈하군….


       


       최상급 마석은 때깔부터 곱다는 생각에 홀로 감탄하며 로브 주머니에서 여신상을 꺼냈다.


       


       오늘은 딱히 할 말이 없는지, 혹은 미궁에서 힘을 쓴 뒤로 그럴 능력도 없는지 평소처럼 자애롭게 팔을 벌린 자세다.


       


       “그래. 여신이라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거겠지.”


       


       사랑의 여신은 미궁을 유지하느라 지상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지난 천년 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여신은 나를 위해 제법 많은 개입을 해왔다.


       


       가챠 확률 조작이야 간접적인 개입이니 그렇다 쳐도, 이젠 성물이 된 풀돌 여신상의 형태를 살짝 바꾸거나,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미궁에서 내게 무언가 알려준 것은 꽤 본격적인 개입 아닌가.


       


       당연히 그만큼 무리했겠지. 어쩌면 모종의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높은 확률로 가챠 확정 폭사 기간이 늘어나는 거겠지만.


       


       “하지만 이만큼 돌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나라도 100골드에 달하는 거금을 오로지 가챠에만 꼬라박는 것에는 저항감이 있다.


       


       중층부 내내 쓸 수 있는 풀 세트를 맞춘다거나, 고오급 오러 연성법이나 마나 호흡법을 구매한다거나, 엘리가 그러하듯 쓸데없이 땅값이 비싼 판 그레이브에 내 집을 마련할 수도 있는 금액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보다 가챠 확률의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냥저냥 배부르고 등 따숩게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뿌린 재앙의 씨앗을 내 손으로 뿌리 뽑겠다 다짐하지 않았는가.


       


       내 능력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가챠가 망가진 채로 놔둘 수는 없다.


       


       “후우.”


       


       아무리 돈을 이만큼 쌓아놨다고 해도…아니, 이만큼이나 쌓아둔 걸 전부 쓸 생각을 하니 긴장되는 건가.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가챠 시스템을 활성화 시켰다.


       


       띠링!


       


       


       


       [통상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1회 뽑기] [10+1회 뽑기]


       


       


       


       NEW!


       


       [한정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3성 이상이 등장할 확률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명작이 등장할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한정 뽑기로만 뽑을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과 스킬이 존재합니다.


       


       -통상 뽑기의 10배 가격입니다.


       


       -남은 기간 23: 59: 37


       


       [1회 뽑기] [10회 뽑기+통상 뽑기권 10개]


       


       


       


       “뭣…!”


       


       여기서 한정 뽑기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언젠가 이런 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버젓이 ‘통상’ 뽑기라고 적혀있지 않았나.


       


       굳이 통상이라고 표기했다는 건 특별한 뭔가도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한정 뽑기가 등장했다. 내용은 조금 생각했던 것과 달랐지만.


       


       “가격이 10배라고? 심지어 10번 뽑으면 주는 보너스가 통상 뽑기권이야?”


       


       진짜 돌아버린 것인가.


       


       통상 뽑기가 한 번에 1실버고, 10+1뽑기에 10실버다. 1골드를 쓰면 110번을 뽑을 수 있는 셈.


       


       하지만 한정 뽑기는 그냥 10번 돌리는데 1골드다. 추가로 통상 뽑기를 10번 더 돌릴 수 있긴 한데, 이건 통상 뽑기를 1골드 어치 돌려도 주는 거고.


       


       즉, 1골드를 써도 한정 뽑기 10번과 통상 뽑기 10번. 총합 20번밖에 돌리질 못한다는 소리.


       


       아무리 확률이 개차반이고, 지금은 과거의 조작으로 인한 일종의 패널티 기간이라지만….


       


       어쨌든 뽑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횟수다.


       


       3성 이상이 뽑힐 확률을 두 배로 올려준다고 해도 가챠 횟수를 10분의 1로 줄이면 오히려 손해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은 한정 뽑기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었다.


       


       과연 정말로 가챠에서 가장 중요한 게 횟수일까?


       


       극단적인 예시로 1퍼짜리 50번 돌리는 거랑 50퍼 짜리 1번 돌리기 중 한쪽을 선택하라면 나는 분명 후자를 선택하리라.


       


       그러한 이치가 한정 뽑기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거기에 명작이 등장할 확률이 줄어든다 하였다.


       


       명작 카테고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일종의 예능템이지만 환금성은 보장된 것들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마음에 드는 카테고리 또한 아니다.


       


       애초에 이놈의 가챠 시스템은 확률이 개판이지 않은가. 


       


       3성 명작템 하나를 팔아 수십 번은 다시 돌릴 기회를 얻었다고 치자. 과연 그 수십 번 사이에 쓸만한 3성이 나올까?


       


       안 나온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지.


       


       하여 똑같은 성급이라도 명작보다는 차라리 쓸데없는 권능이라도 하나 나오는 게 낫다.


       


       어찌 됐든 권능은 써먹을 곳이 확실히 존재하는 힘이니까.


       


       그런데 3성 이상이 뽑힐 확률은 늘면서 명작이 뜰 확률은 줄어든다고?


       


       ‘유효타’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여신표 가챠엔 픽업이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픽업 버프를 뚫고 엉뚱한 녀석이 튀어나올 픽뚫 확률이 팍 줄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


       


       무엇보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한정 뽑기에서만 등장한다는 아이템과 스킬.


       


       빌어먹게 불친절한 이놈의 가챠 시스템은 뭐가 나오는지 알려주질 않는다.


       


       하지만 내겐 전생의 기억이 있다. 한정캐를 놓치고 복각까지 반년간 매일매일 꼬왔던 울분을 아직 기억한단 말이다.


       


       한정캐는 대부분 성능이 좋다. 특히 그것이 첫 한정 픽업이라면 더더욱.


       


       내게 그것이 상식이고, 진리이며, 오리너구리의 귀여움만큼이나 굳건한 명제다.


       


       게다가 한정 기간이 일주일도 아니고 겨우 하루 아닌가.


       


       사랑의 여신이 부작용을 감내하고 있을 시기에 한정 뽑기라니.


       


       “어쩔 수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뭔가 있을 것 같아서다. 절대 한정이라는 말에 홀린 게 아니다.


       


       나는 가챠에 눈이 멀어 누가 봐도 명백한 손해를 보며 한정 뽑기를 지르는 게 아니다.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쫓아 한정 뽑기를 돌리는 것이지!


       


       이리저리 흔들리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아니 어쩌면 한정이라는 말을 봤을 때부터 기울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명분, 그리고 약간의 용기뿐.


       


       내 안에 남아있는 일말의 이성을 지워버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5성! 갈끄니까!!!!”


       


       한정 뽑기 연챠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띠링! 띠링! 띠링!


       


       쉬지 않고 귓가를 울리는 알람 소리. 하지만 이는 당초의 예상보다 10배는 빠르게 끝났다.


       


       아무리 손가락을 까딱여도 반응이 없는 시스템. 텅 빈 주머니.


       


       그리고 뒤늦게 침대 위로 쏟아지는 잡동사니들과 망막 위에 떠오르는 리스트.


       


       띠링!


       


       당연한 말이지만 초반에는 죄다 1성뿐이다.


       


       10배의 금액으로 1성을 뽑는 건 아무리 돈도 미래도 없는 연쇄 가챠러인 나조차 심장이 아픈 일이었으나….


       


       이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역시 예상대로 지금 여신의 상태와 한정 뽑기 사이에는 무언가의 관련이 있는 모양.


       


       슬슬 2성이 섞이기 시작한 리스트의 양상에 점점 가빠지는 호흡. 이를 의식적으로 조절하며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렸다. 


       


       그리고.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오색 찬란한 빛에 나도 모르게 괴성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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