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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장관이네.”

       

       “여기가 최전방이구나···.”

       

       

       주위를 둘러보자,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보안 탓에 약간은 딱딱한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던 숙소와는 사뭇 다른 풍경.

       

       저 하늘 높이 솟구쳐있었을 건물들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형색색 밝게 빛났을 터인 도시가 칙칙한 회색빛으로 물들어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했다.

       

       

       “요 귀여운 것들. 놀랐니?”

       

       “그야 이런 모습을 보면 당연히 놀라죠. 너무 닮아있어요. 마치···.”

       

       “살던 도시가 멸망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네.”

       

       

       그게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곳저곳 쓰러진 건물도 많지만, 아직 무너지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건물들도 있으니까.

       

       먼지 탓에 보이지 않는 글자를 손으로 쓸어보자, 광고성 문구가 적혀있었다.

       

       ···평범한 이벤트 문구다. 날짜가 수백 년 전인 것을 제외하면.

       

       만약 건축양식 같은 게 다르다면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 같다며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충격이 덜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던 빌딩들이 꺾여나간 이 광경은 마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고 있던 도시가 이렇게 변한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다들 처음에는 그래. 하지만 곧 여기랑 너희가 살던 장소는 다르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될 거야.”

       

       “네? 그게 무슨···.”

       

       “나는 본대로 돌아가 볼게. 주변 수색 잘 할 수 있지? 후배님들의 솜씨, 구경할 테니까.”

       

       “자, 잠깐만요!”

       

       

       나는 당황하며 회의 시간에 아르테를 껴안고 비비적거리던 여성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듣지 못한 걸까, 아니면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뜻일까.

       

       그녀는 발을 멈추지 않으며, 멀리 떨어진 본대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다르다?”

       

       “으, 저 사람 왜 저렇게 겁을 줘? 무섭게.”

       

       

       믿기지 않는 소리를 들은 탓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표정을 확인한 걸까.

       

       아멜리아가 나를 바라보며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왜 그런 눈으로 바라봐?”

       

       “···무서운 게 있었구나?”

       

       “너, 날 도대체 어떻게 보고 있는 거야?! 무서운 게 하나도 없을 리가 없잖아!”

       

       

       아니, 아버지한테 그런 식으로 대하기에 진짜 무서운 거 하나 없는 사람인 줄 알았지···.

       

       

       “실례에요, 시우 군.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여성에게···.”

       

       “여자? ···아멜리아가?”

       

       “야?!”

       

       “···.”

       

       

       도로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실례라고 말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더 실례되는 행동을 한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래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아멜리아를 여자로 보라고?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해.

       

       차라리 마네킹보고 여성스럽다고 이야기하면 모를까.

       

       

       “···지금은 직감으로 무언가 느껴지는 건 있으신가요?”

       

       “아니, 아직은. 딱히 없네.”

       

       

       왜인지 기분이 좋아보이는 아르테가 내게 질문했다.

       

       뭐지?

       

       분명 사령관님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더니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이었는데.

       

       별 이야기가 아니었던 걸까.

       

       안 좋은 이야기라도 들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중에 제대로 들어보려고 했는데.

       

       다행히 괜찮은 모양이었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감각에, 내가 들어도 다급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다들 고개 숙여!”

       

       “···?!”

       

       

       -쐐액!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딱 봐도 날카로워 보이는 가시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빌딩의 벽에 박혔다.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이 당연히 그 정도의 충격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그에 커다란 굉음을 내며 건물이 흙먼지를 뿜어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어처구니없다는 듯 아멜리아가 중얼거렸다.

       

       만약 내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광경을 보고 그런 생각이 떠오른 듯, 도로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무슨···!”

       

       “어디서 날아왔나요?”

       

       “저기, 저 건물에 세워진 동상 뒤.”

       

       “알겠어요.”

       

       

       역시나 아르테라고 해야 할까.

       

       능숙하게 손에 낀 장갑의 실을 풀어내고는, 내가 지정한 위치로 정확하게 실을 날리더니 미소 지었다.

       

       

       “···잡았다, 이 괘씸한 것.”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아르테가 자세를 눕혔다.

       

       얇디얇은 실 하나에 저렇게까지 몸을 지탱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기도 잠시.

       

       저 멀리, 검은색의 무언가가 끌려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죽어!”

       

       

       그리고 위치가 노출된 적을 아멜리아가 재빨리 다가간 뒤 머리를 그 창으로 내려찍는 것으로 끝.

       

       날카로운 기습답지 않은, 허무한 죽음이었다.

       

       

       “···거미?”

       

       “아니, 거미가 맞나···?”

       

       “하지만 생긴 건 거미인데요.”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세 명은 서로 우리에게 기습을 가한 생물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누가 봐도 거미처럼 생긴 모습이긴 하지만···.

       

       거미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매우 크고, 등 뒤에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걸 쏜 거겠지?”

       

       “그렇겠죠. 으음, 신기하게 생겼네요.”

       

       “날카로워 보이는데. 창으로 쓸 수 있을까?”

       

       “저는 이런 징그러운 걸 무기로 쓰고 싶지는 않은데요···.”

       

       “징그러워도 통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

       

       

       다들 깜짝 놀랐을 텐데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대화하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라니까.

       

       ···그래도,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아니었다.

       

       

       “준비해, 얘들아. 더 올 거니까.”

       

       “엥? 또?”

       

       “건물 무너졌잖아.”

       

       “···아, 젠장.”

       

       

       피한 것은 좋지만, 하필이면 가시가 박힌 곳이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 건물이 무너지고 엄청난 소음이 주변에 울려 퍼졌을 테니.

       

       평범한 동물들이라면 깜짝 놀라 자리를 벗어나겠지만···.

       

       

       “빨리도 오셨네.”

       

       “우와, 저게 몇 마리야···?”

       

       “글쎄요···. 좀 많아 보이는데.”

       

       

       이놈들은 평범한 동물들이 아니니까.

       

       이런 소음에 도망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대해진 수많은 동물이 우리를 향해 조금씩 걸어오고 있었다.

       

       ···생긴 것 한번 끔찍하네.

       

       

       “마수는 마수구나···. 우웩, 한동안은 고기 못 먹겠는데.”

       

       “네가? 진짜?”

       

       “나 진짜 궁금한데, 유시우. 네 머릿속의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거야?”

       

       “됐고. 준비해. 슬슬 시작할 것 같으니까.”

       

       “너 진짜 나중에 가만 안 둬···.”

       

       

       

       ***

       

       

       

       “아르테, 세 시 방향!”

       

       “걱정하지 마세요.”

       

       “야, 아멜리아! 그쯤 하면 괜찮아! 빨리 빠져! 위험해!”

       

       “아직 팔팔하거든?!”

       

       “헛소리하지 말고 빠져! 어서!”

       

       “···에이, 젠장! 알겠어!”

       

       “도로시!”

       

       “버프 회수하고 있어요! 다음은 누구한테 줄까요?!”

       

       “아르테한테!”

       

       

       눈앞의 광경에 감탄이 새어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대처하고 있어서.

       

       

       “어떻니?”

       

       “대단한데요. 역시 내 딸이야.”

       

       “···네 딸 자랑을 들으러 온 건 아닌데.”

       

       “에이, 이미 다 알고 계시면서 왜 그래요.”

       

       “하여튼···. 이놈들은 다 굳이 대답하려고 하지 않아서 문제라니까. 에잉, 이래서 요즘 것들은···.”

       

       “요즘 것들이라니요. 저희도 벌써 늙었거든요? ···저게 요즘 아이들이죠.”

       

       

       라이오넬은 딸아이의 모습에 시선을 떼놓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오래 지내주지 못해 미안했던 딸아이.

       

       아픈 손가락 같던 아이가 어느새 저렇게 커버렸단 말인가.

       

       나를 따돌리며 놀려대던 것처럼, 종횡무진 마수들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최대한 시선을 분산시키는 모습.

       

       무시하려고 하면 창으로 귀찮게 콕콕 찔러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지만 얄미웠다.

       

       ···뭔가 마수한테 감정이 이입되는데.

       

       내가 당하던 거라 그런가?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헤헤···. 뭐, 굉장하죠. 굳이 저희가 가지 않더라도 저 아이들 선에서 정리할 수 있겠는데요?”

       

       “으음.”

       

       “기습적인 공격도 바로 눈치채고, 곧바로 마수의 위치도 알아낸 걸 보니 색적 능력은 충분히 증명된 것 같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옙. ···가자, 얘들아! 후배들 실력은 볼 만큼 봤다!”

       

       

       나보다는 자기 엄마를 훨씬 닮은 외모의 아멜리아가 땀방울을 흘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라이오넬은 주변 상황이 모두 정리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딸아이의 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

       

       

       

       “···흐음.”

       

       

       아직이다. ···아직이야.

       

       독자님의 감정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어. 이 정도로는 부족해.

       

       분명 이번 전투를 계기로 조금 더 주인공과 친밀해지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라고 부르기는 힘든 감정일 것이 뻔했다.

       

       독자님의 크게 뛰는 심장은 그저 전투로 인한 박동일 뿐.

       

       아직 사랑을 느낄 정도의 감정은 싹트지 않았다.

       

       ···아니, 싹트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인가.

       

       싹텄음에도 무시하고 있는 거다.

       

       자신의 감정에 거짓말하고 있는 거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그러나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발걸음을 내디디면 돼.

       

       주인공을 바라보면 점차 박동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지니까.

       

       아직 본인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 자신의 감정을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자극하는 순간 더는 물러설 방법이 없겠지.

       

       소녀는 그 상황이 금방 생기기를 고대하며, 흥분을 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p. 119. 방패 시나리오의 내용 중, 작가님의 대사 한 마디가 수정되었습니다.

    아르테의 마음을 읽는 것 같은 묘사가 설정오류라서요.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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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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