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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객잔에 있던 이들은 모두 보았다.

         

       욕부터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잘생긴 사내와 손만 잡아도 천국의 문을 두드릴 것만 같은 아리따운 두 여인의 모습을.

         

       본디 인간이란 선남선녀를 앞에 두어도 결국 이성 쪽에 더 높은 가치를 주는 법이다.

         

       그러니 아리따운 두 여인을 앞에 두고 망발을 내뱉는 백우진이 미친놈처럼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런 타인의 견해와는 별개로 백우진에게 그런 말을 들은 유화연과 신예화의 얼굴은 더없이 어두워졌다.

         

       ‘알고 있던 일이었잖아.’

         

       그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알고 있는 일임에도, 이미 들었던 말임에도.

         

       처음 듣는 것처럼 아니, 처음 들을 때보다 더욱 아프다.

         

       “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주변을 둘러봐. 세상에 남자는 많고, 그중 나보다 나은 남자는 다섯 수레는 되지 않을까.”

         

       그녀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고혼이 된 지 오래다.

         

       죽은 사람을 붙잡고 평생토록 늘어지는 것만큼 안타깝고 불쌍한 일도 없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때는 시리도록 매섭고, 매정한 말이라 여겼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그것은 진심어린 위로였다.

         

       “나한테도 이미 좋은 여인이 생겼어.”

         

       두 번째 폭탄 발언이 이어졌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신예화는 덤덤했고, 유화연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백우진은 홀로 술을 연거푸 들이켜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살다 보면 잊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도 결국은 잊혀지더라.”

         

       그의 씁쓸하고도 후련한 표정을 보며 유화연이 물었다.

         

       “당신도…, 그렇게 잊었나요.”

       “응.”

         

       이는 비단 연인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제 곁에서 죽어가는 동료들, 다른 세계에 두고 온 동료들, 마음을 주었던 여인까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잊혀졌다.

         

       백우진은 그렇게 잊었다.

         

       “난 그렇게 잊었지.”

         

       그렇게 잊었을 거다.

         

       아마도.

         

       “그렇… 군요.”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이상했다.

         

       ‘왜…, 슬프지 않지.’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잊었다는 말은 가슴을 날카롭게 베고 저미는 듯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나 또한 그를 잊기 위해 노력하겠단 생각은.

         

       ‘그럴 리가.’

         

       추호도 없었다.

         

       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잊었다면.’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내어 내게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거라면.

         

       ‘다시 새기면 되는 거 아닐까.’

         

       그저 그러면 그뿐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뿐.

         

       바뀐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잊는 것보다 그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잊겠다는 생각만으로도 강한 충동이 일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잊어가는 시간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충동이.

         

       “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모르는 사이, 자신은 이미 어딘가 크게 고장이 나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 * *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음에도, 몽롱하게 취한 듯한 기분이다.

         

       누구 마음대로 잊는단 말인가.

         

       혼자만의 추억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만든 거잖아.’

         

       둘이서 만든 추억을.

         

       ‘혼자 잊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혼자 지웠다고 한들, 다른 한쪽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달라졌다는 말, 그와 함께하는 동안 여실히 깨달았다.

         

       그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자신한 이가 보이는 전혀 다른 모습은 그대로 거리감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달라진 건 자신뿐만이 아니란 것을.

         

       ‘나도 달라졌단 말이야.’

         

       그녀 또한 달라졌다.

         

       정확히는 그를 향한 그녀의 감정이 달라졌다.

         

       뜬구름 같던 감정이 점점 그 형태를 명확히 갖추기 시작했다.

         

       백무혁에게 착각어린 고백했을 때, 연공실에서 제갈연지와 그가 입을 맞추고 있을 때, 어둠이 내려앉은 산길에서 제갈연지에게 제 마음을 고백하는 백우진을 몰래 훔쳐볼 때.

         

       성실히 영글어가는 신체를 따라가지 못하고 어린 시절 그대로 남은 감정이 비로소 성장했다.

         

       ‘뜨거워.’

         

       그를 볼 때마다 뜨겁다.

         

       제갈연지와 백우진의 입 맞추는 모습을 멋대로 바꾸어 자신을 대입하여 상상하곤 한다.

         

       그러면 몸은 더욱 달아오르고, 몸은 예민해진다.

         

       가볍게 만지기만 해도 전기가 찌르르, 하고 울리게 된다.

         

       더욱 갈구하게 된다.

         

       좀처럼 오지 않는 그의 눈빛을, 다정한 칭찬을, 뜨거운 손길을.

         

       그는 달라졌다.

         

       그리고 그에 맞춰, 자신 또한 달라졌다.

         

       그의 색으로 물들어 더욱, 지금보다 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문제 될 거 없는 게 아닐까.

         

       그녀는 그러한 감정을 촉촉해진 눈망울에 담아 그를 응시했다.

         

       “…쉽지 않네.”

         

       두 쌍의 시선.

         

       한쪽에선 뜨거운 열망이, 다른 한쪽에선 차갑다 못해 시린 의지가 전해진다.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만 가득해 보인다.

         

       ‘역시 안 되나.’

         

       이 정도 대화로 풀어보려 했던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였던 건가.

         

       오히려 그들의 열의만 더욱 키운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었다.

         

       “하아….”

         

       술병에 남은 마지막 한 잔을 입에 털어넣은 뒤, 백우진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밤이 더 깊어졌음에도 오히려 더욱 자리가 채워졌다.

         

       그중 한 자리에, 익숙한 차림새를 한 무인이 눈에 들어왔다.

         

       무복의 소매에 매화나무를 그려 넣은 이들.

         

       화산파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그들의 절기로 손꼽히는 매화검법을 일정 경지 이상으로 익힌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표식.

         

       그들을 일컫기를.

         

       ‘매화검수.’

         

       화산의 매화를 짊어지기에 합당하다 여겨진 이들이었다.

         

       “얘기는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그녀들을 단념하게 만드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은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일할 차례다.

         

       “가자.”

         

       술잔을 내려놓은 백우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들을 대동한 채,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게 감각을 세우고 있는 무인들 사이를 지나친다.

         

       멈춘 곳은 객잔의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

         

       장보도를 가지고 있는 무인은 이층에 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객잔의 무인들이 이층으로 올라서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자기도 그렇게 당할 걸 아는 거지.’

         

       그에게서 장보도를 빼앗는 데에 성공한들, 자신 또한 똑같이 당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새하얀 눈밭 위에 처음으로 제 족적을 남기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백우진은 이층 계단을 밟았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객잔의 분위기 또한 덩달아 고조되었다.

         

       이윽고 이층에 올라선 백우진은 기감을 넓게 퍼뜨려 객실 안을 살펴보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객실은 모두 비어 있었다.

         

       단 하나만 빼고.

         

       “실례합니다.”

         

       정중한 인사를 남기며, 백우진은 객실의 문을 잡아당겼다.

         

       우악스러운 힘에 잠금쇠가 버티지 못하고 뜯겨져 나가며 문이 열렸다.

         

       객실 안에 있는 것은 얼굴에 기다란 흉터가 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흐흐, 네놈이 첫 번째냐.”

         

       그가 살기를 피워 올리며 말했다.

         

       “간도 크구나. 감히 나 소살검에게 당당히 걸어오다니.”

         

       소살검(笑殺劍).

         

       사람을 죽일 때마다 끔찍한 웃음소리를 낸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였다.

         

       무림에서 악명이 자자한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무공을 연마했다고 알려져 있다.

         

       ‘절정 상입경 정도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여댔는지,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원래는 가볍게 정신만 잃게 해서 장보도만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넌 죽어도 되겠다.”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발검이 이루어졌다.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뽑혀져 나온 검은 순식간에 제 목적을 이루고 검집 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촤악!

         

       여전히 흉흉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상체를 사선으로 양분하는 거대한 상흔이 새겨졌다.

         

       “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소면살의 몸은 허물어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죽어버린 녀석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백우진은 이내 쭈그려앉아 피에 젖은 의복 안에 손을 넣어 이리저리 휘저었다.

         

       손아귀에 원하는 것이 들어왔다.

         

       손을 빼내어 돌돌 말린 양피지를 펼쳐 장보도임을 확인한 뒤, 곧장 품에 넣었다.

         

       조금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기감을 펼쳐내는 백우진.

         

       위, 아래, 좌, 우.

         

       사방팔방으로 둘러싼 무인들의 수를 가늠하며 조금씩 몸을 돌렸다.

         

       “옳지.”

         

       그나마 가장 수가 적은 방향을 찾았다.

         

       백우진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여인을 향해 말했다.

         

       “내가 신호 주면 절대로 돌아보지 말고 백하현으로 달려.”

       “우, 우진이 너는?”

         

       신예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히 같이 도망치지.”

         

       얘는 무슨 이상한 질문을 하고 있어.

         

       “방향은 내가 바라보는 쪽이야.”

       “으, 응.”

       “…알겠어요.”

         

       백우진은 주먹에 기를 불어넣었다. 뿌연 검기가 그의 주먹을 감쌌다.

         

       준비를 마친 뒤, 다짜고짜 소리를 내질렀다.

         

       “객잔주! 지금부터 입는 모든 피해에 대한 보상은 섬서백가에 청구하시오!”

         

       그와 동시에 두꺼운 벽을 향해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잘게 부서져 내리는 부스러기들이 순간이나마 연막 효과를 만들어냈다.

         

       “달려!”

         

       커다랗게 난 구멍으로 신예화와 유화연이 빠져나갔다.

         

       “자, 잡아!”

       “놓치지 마라!”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모두가 우왕좌왕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발 늦게 객잔을 빠져나온 백우진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제 품에 들어 있는 돌돌 말린 양피지를.

         

       “장보도를 내놓아라!”

       “순순히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온갖 협박성 발언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백우진은 그런 그들을 향해 히죽 웃으며 소리쳤다.

         

       “나 잡아봐라!”

         

       연인과도 해보지 못한 것을 우락부락한 사내놈들과 먼저 하게 생겼다.

         

         

       * * *

         

         

       청청현에 모여든 무인들은 대다수가 낭인이거나, 정사지간에 있는 문파에 속한 무인들이었다.

         

       나름대로 배운 무공을 활용하여 일류, 절정에 오르기는 했으나 한계를 맞이한 이들.

         

       수는 무척이나 많았으나 따돌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초절정에 오른 백우진이 펼치는 신법은 그 누구도 따라잡기 힘들었고, 더군다나 그에게는 밤의 장막이라는 희대의 은신술 또한 있었으니.

         

       “휴우, 거의 다 따돌렸나.”

         

       이리저리 가짜 발자국까지 찍어낸 덕분에 대부분의 무인들이 이에 속아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우루루 몰려갔다.

         

       빽빽한 숲속.

         

       백우진은 나뭇잎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진짜배기들만 남았네.”

         

       그래.

         

       지금까지는 가벼운 걸러내기에 불과했다.

         

       초보적인 수법에도 당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을 걸러내고 진짜들만 남기기 위한.

         

       “자자, 얼굴들 좀 봅시다.”

         

       짝짝!

         

       박수를 치며 소리치자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하나둘씩 감춰져 있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허리가 살짝 굽은 노인, 삼 인의 매화검수, 대도를 등에 멘 젊은 사내 등.

         

       최소 절정, 그중에서도 중입경을 넘은 이들이었다.

         

       “이보시오, 소협.”

         

       그들 중 먼저 나선 것은 삼 인의 매화검수 중 가장 배분이 높아 보이는 사내였다.

         

       “우리는 화산파에서 나온 매화검수들이오.”

       “아, 그러시구려.”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그 장보도를 내어주시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화산파에서 보상을 약속하겠소.”

         

       명분과 보상을 적절히 내건 답안이었다.

         

       백우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이내 웃는 얼굴로 답했다.

         

       “자하검법 정도면 적당할 것 같군.”

         

       자하검법.

         

       화산파의 최고 절기로서 오직 화산파에서도 장문인과 일부 장로들만이 익힐 수 있는 검법.

         

       그것을 내어달라는 것은 화산파의 밑천을 털어먹겠다는 것과 진배없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분개했다.

         

       “지금 우리 화산파를 우롱하는 것이오.”

       “허, 참.”

         

       백우진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절세의 무공을 가져가 놓고 그럼 대체 뭘 줄 생각이셨소?”

       “그건….”

         

       말문이 막혔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것들을 생각해둔 것일 테지.

         

       대화로 일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매화검수는 결국 검을 뽑았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한 건 소협이오.”

         

       이에 대응하듯, 백우진 또한 검을 뽑으며 빙긋 웃어 보였다.

         

       “원래 남이 권하는 술은 잘 마시지 않는 편이라.”

         

       속을 박박 긁힌 매화검수의 검에서 진한 매화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뒤졌다 화산파,,,

    두 번 말씀드리지만, 유화연과 신예화는 아직 세탁을 논할 단계가 아닙니다!!

    현재는 후피집의 집합체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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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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