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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121화. 지옥의 끝에서 ( 1 )

       

       

       

       

       

       – 《——————!!! ——————!!! …》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진 서리고룡의 시체가 서서히 먼지로 변해 흩어진다.

       

       

       “후…”

       

       

       민첩 버프만 줬는데도 상당히 수월하게 고룡을 잡은 프리가. 예상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차하면 벼락이라도 떨구면서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어서 다행이다.

       

       프리가는 먼지로 흩어지는 고룡을 잠시 바라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음으로 시련을 진행할 녀석을 골랐다.

       

       다음 순번은 제국에서 온 티그리우스라는 녀석. 딱 기사처럼 보이는 녀석이 콜로세움의 한복판으로 걸어왔다.

       

       – 철그덕, 철그덕

       

       풀 플레이트의 소리가 콜로세움을 울린다. 저번에 캐릭터 이명을 봤을 때는 제국 제일검이라는 이명이 붙어있었는데, 그 이름대로 롱소드를 옆에 차고 있었다.

       

       

       ‘무슨 시련을 골라야 할까…’

       

       

       다시 시작된 고민. 이 짓도 계속하다 보니 약간 지쳐서, 이제는 성의 없이 리스트만 내리고 있다. 얘는 영웅급 모험가도 아닌데 그냥 아무 시련이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부탁이 있습니다!”

       

       

       그렇게 리스트만 훑어보던 중, 갑자기 들려온 생뚱맞은 대사.

       

       콜로세움 한가운데까지 걸어나온 티그리우스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 “저는 상품을 포기하겠습니다!”

       

       “어… 그게 되나?”

       

       

       자기 입으로 상품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티그리우스. 주겠다는 걸 거절하다니.

       

       희한한 녀석이다. 하기야 모인 캐릭터만 몇백이고, 어떤 놈은 시작부터 지각에 술주정을 부리기도 했으니.

       

       온갖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다 모였겠구나 싶다.

       

       

       – “마땅히 저에게 주어진 영광을 포기하고, 그 영광을 황제 폐하에게 바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띠링ㅡ!

       

       《돌발 이벤트! 제국제일검, 티그리우스는 자신이 받을 상품을 황제에게 바치길 원합니다. 허락해줄까요?》

       

       《그래.》   

       《싫어.》

       

       

       ‘황제? 제국에 황제라면, 카이사르 말하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관중석에 앉아있는 카이사르를 보기는 했다. 그냥 이벤트 성으로 참석한 줄 알았는데, 이런 이벤트의 복선이었을 줄이야.

       

       선택지를 앞두고 잠시 고민에 잠긴다. 지금 황제는 상품에 걸린 아이템 중 하나인 왕홀을 가지고 있다. 티그리우스가 아다리 좋게 등수가 얻어걸려서 왕홀을 받으면, 그대로 황제한테 전해지는 셈.

       

       그러면 정말 생각도 안 하고 있던 이득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냉큼 수락을 눌렀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수락을 누르고서야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

       

       티그리우스가 왕홀을 받으면 상관이 없는데, 다른 아이템… 예를 들면 케니스의 대검이나 프리가의 도끼를 받으면 굉장히 곤란해진다.

       

       

       “아 씨… 하ㅡ 등신 진짜.”

       

       

       생각이 짧았다. 이제와서 후회해봐도 의미는 없지만.

       

       

       ‘등수 조절 빡쌔게 해야겠네 이거.’

       

       

       집중해서 등수 조작해야 된다. 아니면 망한다. 다행히 왕홀은 4등 상품.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시련 리스트를 빠르게 내리며 눈을 부릅뜬다. 

       

       

       《검의 시련》 (추천!)

       《폭포수의 시련》

       …

       《뒷방의 시련》

       《석화의 시련》

       《후회의 시련》

       《충성의 시련》 (추천!)

       

       “오.”

       

       

       중간중간 추천 마크가 붙은 시련이 있었지만, 나도 이제는 나름 고였다고 자부할 수 있는 고인물. 게임이 추천하는 데로 하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한다.

       

       느껴진다. 고인물의 감이 말한다.

       

       바로 이거다!

       

       

       《뒷방의 시련 : 알 수 없는 노란색 벽이 가득한 이곳. 괴물을 피하고 살아남아라.》

       

       

       이스칼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등수 낮게 조절하는 데는 버티는 시련이 최고다. 버티면서 깨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등수가 낮게 나오니까.

       

       

       “혹시 다 부수고 탈출하면 안 되니까.”

       

       

       정말 혹시나 싶었지만, 기사라는 놈이 괴물을 때려잡아 탈출할 수도 있으니 ‘쇠약의 손길’로 디버프를 걸어둔다. 이러면 괴물을 잡지는 못할 것이다.

       

       

       《뒷방의 시련… 도전자는! 티그리우스!》

       

       

       

       

       

              * * * * *

       

       

       

       

       

       “여기는…”

       

       

       제국의 기사단장, 제국제일검.

       티그리우스는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이 돌덩이처럼 무겁다.

       

       낯선 공간, 낯선 공기.

       

       본능처럼 손을 움직여 검을 확인한다.

       

       

       ‘있군.’

       

       

       검은 무사하다. 그 외의 장비들도 빠짐없이 무사했다. 한시름 놓은 티그리우스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노란색 벽지가 보인다. 벽지의 구석에는 약간의 곰팡이가 있었고, 조금 눅눅한 공기가 흐른다. 그리고 조용히 흔들리는 촛대가 벽에 꽂혀있다.

       

       

       “거기 누구 없소?”

       

       누구 없소ㅡ?

       없소ㅡ?

       

       크게 외친 말이 메아리치며 공허하게 돌아온다. 

       

       기묘한 곳이다. 조금의 인기척도, 소리도 없다.

       들려오는 것은 조용히 타들어 가는 촛불의 단말마.

       

       티그리우스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들려왔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괴물을 피해서 탈출하라고 하셨지.’

       

       

       기분탓 인지 아주 작게 ‘불쌍하게도…’ 이러는 말이 들렸지만… 아마 잘못 들었을 것이다.

       

       저벅 저벅.

       

       조용한 공간을 울리는 발소리.

       

       손에 쥔 검이 무거웠다. 마치 이곳 전체가 그의 몸을 짓누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이 공간은 정말로 기묘했다. 끝없이 노란색 벽지가 이어지고, 무수한 갈림길이 나오지만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같은 풍경이 나왔다.

       

       어디선가 봤을 법한, 아주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렇기에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침묵의 괴리감이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또 여기인가?”

       

       

       티그리우스가 중얼거렸다.

       

       지나칠 정도의 정적은, 알 수 없는 기괴함을 불러오고. 티그리우스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혼잣말을 시작했다.

       

       노란색 벽지, 노란색 벽지, 노란색 벽지.

       

       저벅 저벅.

       

       조금씩 걸음이 빨라진다. 몸이 무겁다. 정적만이 흐르는 이 공간은 그의 숨통을 조여온다.

       

       지지직ㅡ

       

       끝없이 반복되는 풍경. 왼쪽으로 꺾어도 오른쪽으로 꺾어도.

       뒤를 돌아 미친 듯이 달려도.

       결국 모두 같은 길이 나온다.

       

       허억- 허억-

       

       곰팡이가 핀 노란색, 노란색 벽지. 저 벽지!

       

       미친 듯이 달렸다. 조금이라도 다른 무언가를 봐야 한다. 

       저 빌어먹을 노란색 벽지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전에!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가? 여기가 바로 지옥인 건가? 이렇게 끝없이 반복되는 공간에서 헤매야 하나?

       

       ———…

       

       “…”

       

       우뚝.

       

       걸음을 멈췄다. 저 앞, 촛불에 일렁거리는 그림자.

       

       모퉁이 너머에 뭔가 있다. 촛불이 흔들리는 만큼 저 너머의 그림자도 흔들렸다. 네발짐승인가? 아니, 발이 네 개가 맞나? 저게 생물은 맞는 건가?

       

       후욱- 후욱-

       

       티그리우스는 가빠진 숨을 애써 억누르며 천천히 물러섰다. 그의 본능과 이성이 하나되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른다.

       

       도망쳐라!

       

       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려온다. 티그리우스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뒤로 물러나다가 거리가 멀어지자 재빨리 뛰었다.

       

       

       “저건, 저건 도대체…”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란 말인가.

       

       끝없이 반복되는 공간, 배회하는 정체 모를 괴물.

       

       

       “여긴… 여긴 지옥인가?”

       

       

       티그리우스가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 * * * *

       

       

       

       

       “허억ㅡ!”

       

       

       쥐 죽은 듯 누워있던 티그리우스가 크게 숨을 마시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을 적시는 땀, 거센 호흡.

       

       반사적으로 주변부터 둘러본다.

       

       하얀 천장.

       

       일단 노란색은 아니다.

       

       그걸 확인한 티그리우스는 크게 한숨 돌렸다. 마침내 그 빌어먹을 연옥에서 탈출한 것이다!

       

       드륵.

       

       티그리우스의 소리를 들은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빨리 일어나셨군요.”

       

       

       흰 사제복을 입은 사내가 티그리우스에게 다가왔다.

       

       

       “여, 여기가… 어디요?”

       

       “안심하세요. 여긴 만신전의 치료실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된 거요?”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경께서는 시련을 끝마치고 결투장에서 몸을 일으키셨다가, 다시 쓰러지셨습니다. 기력이 다 떨어져서 그런 것이니 푹 쉬시면 괜찮을 겁니다.”

       

       

       티그리우스는 하반신의 허전함을 느끼고, 사제에게 매달리듯이 외쳤다.

       

       

       “아래, 아래에 감각이 없소! 어떻게 된 거요!”

       

       “아래… 말씀이십니까?”

       

       

       중년 사제는 함께 들어온 여사제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갖고 계시던 검은 저희가 잠시 맡아두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휴…”

       

       

       티그리우스는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 크게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아. 시련, 시련은 어떻게 된거요?”

       

       “경께서는 시련을 훌륭하게 마치셨습니다. 이스칼 님의 시련처럼, 거대한 거울이 경의 시련을 보여줬죠.”

       

       “맙소사. 부끄러운 꼴을 보였군.”

       

       “아닙니다, 티그리우스 경. 경께서는 실로 마경에서 무사히 빠져나오지 않으셨습니까. 모두가 경의 지혜와 용기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나는 꼴사납게 도망만 쳤을 뿐이요. 기사라는 자가 검도 제대로 들지 못했지.”

       

       “음…”

       

       

       사제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티그리우스의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경.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합니다만… 아마 경께서 지옥을 다녀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옥?! 내가 지옥을 다녀왔단 말이오?”

       

       

       지옥이라는 말에 크게 기겁하는 티그리우스.

       

       시련을 시작하기 전에 신께 부탁을 드린 것이 그렇게나 불경했나?

       

       사제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를 달랬다.

       

       

       “신께서 경의 무례를 벌하고자 하신 것은 아닐 겁니다. 벌하고자 하셨으면 신벌이 내렸을 테죠. 아마 다른 큰 뜻이 있으시실 겁니다. 감히 저희로는 볼 수도, 예상할 수도 없는 대계(大計)… 그래요, 대계(大計) 말입니다.”

       

       “사제께서 그렇게 말한다면 안심이지만. 왜 하필 나를?”

       

       “글쎄요. 신께서만 아시겠지요?”

       

       

       결국 확실한 건 없는 상황. 아무튼 그 끔찍한 노란색 지옥에서 탈출했음에 만족한 티그리우스는 침대에 깊이 몸을 파묻었다.

       

       그 모습을 본 사제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좀 더 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경께서 갔던 장소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기록에 없던 것인지라…”

       

       “나중에 내가 찾아가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탁.

       

       사제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대회의실.

       

       

       “….!! 그게 말이ㅡ!! …어?!”

       

       “저곳은…!!! 분명!!”

       

       

       두터운 문이 굳게 닫혀있음에도 떠들썩한 소음이 들려왔다.

       

       후ㅡ

       

       중년 사제는 가볍게 숨을 고르고, 문을 열어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반겨주는ㅡ

       

       

       “그곳은 필시 신께서 죄인을 벌하는 지옥이야!! 성서에도 적혀있지 않은 새로운 지옥이 분명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거긴 악마가 사는 허무의 밑바닥이 분명하네!! 그 끔찍한 형태를 자네도 보지 않았나!!”

       

       “그건 악마의 형체가 아니야!!”

       

       “그 흉측한 외형이 바로 악마지, 그럼 뭐가 악마인가!!”

       

       

       치열한 토론의 현장.

       

       백발노인들이 모여서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는 모습이란. 중년 사제는 약간 질린 표정이 되었다.

       

       평소에는 현명하고 어진 분들이신데. 최근 들어서 자주 이러신다.

       

       아마 그만큼 신실함이 깊다는 뜻이리라.

       

       중년 사제는 성호를 그으며 중얼거렸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군…’

       

       크그극.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중년 사제. 뜨거웠던 대회의실의 공기와 대조되는 신선한 공기가 그를 반겼다.

       

       

       “흠흠.”

       

       “음?”

       

       

       사제의 앞으로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자네, 그으. 티그리우스 경의 진료를 다녀왔지?”

       

       

       거대한 체구, 하얗게 내려앉은 백발.

       한쪽 눈에 뿌옇게 낀 백태.

       

       방랑하는 팔라딘.

       

       

       “혹시 티그리우스경이 다녀온 지옥에 대해서, 뭔가 말한 게 있었나?”

       

       

       라이언하트가 지옥에 대해 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을 해주시면 작가는 그걸 반참 삼아서 저녁을 먹을 수 있습니다!!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프리가의 고군분?투 연???애 에피소드는 다음 기회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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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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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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